산행 한담 53

♥ 茶 한 잔의 여유로움에 젖고 싶은 가을날의 추억 쌓기 - - -  


 


 

 어느덧 가을빛이 완연해졌다. 차 한 잔을 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정담을 나누고픈 계절의 문턱에 다다랐다. 그렇지만 뭐가 그리도 바쁜지 좀처럼 가을맞이에 마음 쓰지 못한 채 동분서주 쏘다니다보니 경황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에서 추성골로 오가는 길목에 코스모스가 활짝 펴 가을의 풍미를 물씬 자아낸다. 추석 쇠느라 맘고생이 많았던 아내가 안쓰러워 잠시 바람이나 쏘여줘 기분을 전환해주고 싶어 오르내리기 쉬운 금성산성을 갔다 왔으면 어떻겠냐고 얘기했더니 흔쾌히 따라나서니 고맙기 그지없다.
 

 아직까지 무리한 산행은 금물이기에 담양온천에서 임도를 따라 산책하듯 걷다가 산길로 들어서니 금세 힘든지 피곤함이 역력해 보인다. 예전 같으면 내팽개치고 힁허케 올라갔을 텐데 보조를 맞춰가니 미안한지 “당신 먼저 올라갔다가 내려와요. 여기서 기다릴게” 자꾸만 혼자 올라갔다가 내려오라고 한다.
 

“괜찮아 오늘은 조금만 올라갔다가 내려갈 테니 - - -”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살피며 천천히 오르니 보국문에 도착한다. 누각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가을의 묘취를 맛보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듯 흐뭇하다. 자주 이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미안스러움이 시나브로 이어진다.
 

 머지않아 막내아들마저 내보내면 이젠 단둘이 남는다. 서로를 감싸주지 않으면 피차 외로울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맏며느리로 들어와 고생만하다가 어느새 할망구가 다돼버렸으니 애잔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 누군들 세월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 남자가 원하는 여자 그 여자가 원하는 남자」의 저자는 “사랑은 본래 고전적인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그것을 둘러싸는 외양(外樣)이 아무리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된 명작 같고 오래된 명곡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고전적이다. 그래서 꽃 선물이나 편지 같은 고전적인 방법이 디지털 시대인 현대에도 가장 강력한 효력을 지녔다고 믿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우리의 사랑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호롱불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기름방울들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한다. 작은 기름방울들이 바로 매일의 삶을 채우는 사소한 것들이다. 성실한 태도, 친절한 말 한마디, 남을 배려하는 마음, 말을 삼가는 태도, 바라보는 눈길,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작은 것들이 우리의 삶과 만남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하는 사랑의 기름방울인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좀더 여유로움을 갖고 자주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반려자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슨 일이 생기면 “여자가 뭘 알려고 그래” 퉁명스럽게 내뱉고 혼자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핑계로 싸대고 다녔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결혼기념일이나 생일날 꽃이나 사다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 마치 책무를 다한 것으로 여기면서 가부장적으로 일관해왔으니 어찌 민망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마음써주지 못하고 살아왔던 죄스러움을 만회하는 맘가짐으로 건강을 돌봐주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련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한마디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려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부간의 성숙한 사랑임을 명심하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