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찾아 떠난 원효봉 


 

언제 : 2005년 12월 10일

누구랑 : 나홀로

어디로 : 산성입구--계곡--원효릿기길--원효봉--북문--산성입구


 

얼마동안 산행을 접었더니 온 몸이 가만 있지를 못한다.

 산으로 자꾸 가잖다.

영동지방에 내린 폭설로 강원도 산도 유혹을 하지만 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후 창고 구석으로 던져 버린 배낭을 꺼 낼 힘이 생기기 않았다.

요즈음 내 가슴은  형언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부풀은 고무 풍선마냥 터질듯하지만 어디 토해 낼 곳조차 찾지를 못하고 있다.

창문에 기대선 겨울 햇살의 따사로운 유혹도 나를 산으로 데려 가지 못했는데 느즈막한 시간 그리움에 끌려 창고속의 배낭을 꺼집어 내었다.

며칠 전 다친 허리가 아직도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거워 걱정이 되지만 그리움이 북받쳐 올라 토해내지 않고는 안 되겠기에 늦은 시간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에 내려 5호선에서 2호선으로 6호선에서 3호선으로 옮겨 다니면서  무수히 걸었던 길을 오랜만에 걸었다.

 

오솔길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길은 마음이 닿은 것 하나 하나  그리움의 흔적을 찾아내고 있었다.

텅빈 승강장...

나와 같은 지각생 산꾼들 간간이 줄을 잇는다.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이 그리움에 끌려 산으로 갈까?

아니면 무엇 때문에 산으로 갈까?

마음속으로 끝없는 질문이 던져본다.

택지개발 지구를 돌아서니 차창너머로 북한산의 영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햐얀 눈을 이고 섯는 백운대와 만경대, 그 앞으로 노적봉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산성입구에 내리니 배가 고프다.

 

포장마차에 들러 오뎅 한개와 따뜻한 국물로 허기를 달래고 차거워진 속을 덥혔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입니까? 올라가는 길입니까?”

“올라가는 길이예요”

“이 시간에 가서 언제 내려옵니까, 하기야 남자들은 빨리 걸으니까”

포장 마차 아줌마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가는데 까지 갔다 올려고요”

아직도 마음속에는 어디로 갈지 결정이 서 있지 않았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아니 그리움을 토해 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미미가든으로 들어섰다.

오늘따라 잘 다듬어진 나뭇가지 가지마다 그리움으로 쌓여있다.

겨울햇살이 그립고, 겨울 바람이 그립고, 이 길을 따라 걸어간 수 많은 산님들의 발자욱이 그립고, 고향에 계신 어머님이 그립고,  사랑했던 사람도 그립고, 잊혀져 가는 사람도 그립고, 아름다웠던 추억도 그립고, 가슴 아픈 이별도 그리워 졌다.

 

텅 빈 등산로, 한적한 계곡......

홀로 걷는 외로움을 그나마 그림자가 동행을 해주니  말벗이라도  될 듯하다.

그 여름의 뜨거웠던 태양과, 부적대던 산님들의 발걸음 마져  눈에 띄지 않는다.

매서운 겨울바람도 오늘따라 어디로 갔는지 포근하기 이를 데 없다.

원효능선을 올라선다.

어디 한적한 바위 끝자락이 그리워 서 였다.

참 많이도 걸었던 길이다.

곳곳에 그리움의 흔적들로  흩어져 있는 발자욱들을 더듬어 본다.

신발 때문에 걱정이 되지만 덕암사 길을 우회하지 않고 땀 바위로 올라선다.

평소 그렇게 씩씩하게 걸었던 길을 그림자와 내가 힘겹게 올라간다.

무거운 허리는 풀릴 기색도 없어 끙끙거리며 걷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겨울 산길은 그것도 릿지 길은 혼자 다니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가 선택을 해 버렸으니....

땀 바위를 올라 따뜻한 물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그리움을 토한다.

 

의상능선과 노적봉. 백운대, 숨은벽, 승가능선, 응봉능선,, 비봉능선, 족두리봉, 향로봉......

북한산 구석구석에 쌓인 그리운 발길들이 하나둘 머리를 파고든다.

이제는 그 그리움이 추억이 되고 바위가 되려한다. 영원히 변치않은 바위가 되려한다,

그 바위 길은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되고 있음을 느낀다..

원효봉 쪽으로 가지 않고 우측 길을 따라 걸었다.

신발의 끈을 고쳐 매도 도무지 바위에 달라붙을 수가 없었다.

자꾸 슬랩을 먹는다.

우회에 우회를 거듭하며 오르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길을 잘못 들어 남사면에서 다시 북사면으로 오던 길을 다시 걷기도 했다.

앞으로의 내 발걸음을 보는 듯했다.

바위 아래 바람을 피하며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면발이 익어가기를 기다리며 또 그리움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낯익은 소나무와 바위들.....그리고  지난 흔적들

 

3시가 되어서야 정상에 올라섰다.

감회가 새롭다.

꼭 원효봉을 처음 오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바퀴 둘러보며 곳곳에 시선을 던져 놓고는 발길을 돌린다.

내리막길이 힘이 들었다.

지팡이에 의지 해보지만 입에서 악! 소리가 날정도로 통증이 왔다.

그리움을 찾아 떠나온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으로 접어드니 땅거미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 하루의 그리움도 밀려오는 땅거미 속에 또 묻혀져 밤새 바위가 되겠지 하고 중얼거리며 산성을 빠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