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는 산이 없다.

도시를 주변으로 사방 수백 킬로미터 이내에는 산이 없고 더욱이 모스크바 그 자체가 높은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좁디 좁은 땅덩어리에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한반도에 살다가 모스크바로 가니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살기를 몇 년..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속이 다시 답답해 지기 시작했다. 

변화가 없는 지평선의 단조로움은 우리나라의 변화 무쌍한 산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고, 평소에 등산에는 관심조차 없던 나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산이란 산은 모두 올라가 보겠다는 만만찮은 야심(?)마저 가지게 만들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길에 보이는 다시 만난 낮은 산들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안겨보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날 정도의 푸근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이상이 내가 산을 찾게 된 동기이다.

처음, 서울의 남산과 같이 200 ~ 300여 미터 높이의 낮은 산부터 헉헉거리며 오르기 시작했고, 지금은 600 ~ 800 정도 높이의 산까지는 비교적 여유 있게 다니는 수준이지만, 장래의 희망은 지리산을 종주하고, 백두대간을 종주해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주말(2005.3.5)에는 수락산에 올랐다.

그 동안 청계산, 관악산, 검단산, 북한산, 유명산 그리고 용문산 등 다양하지는 않은 산을 다니며 비축한 자신감으로 638미터 정도 높이의 산 쯤이야 하며 오른 산이지만, 글쎄. 나에게는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은 산이었던 것 같다. 

 

동막골 - 540고지 철모바위 정상

 

동막골에서 시작한 것은 주차하기가 비교적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잠시 해메다가 들어선 곳이 동막골 입구의 약수터다. 약수터 앞에는 조그마한 주차장터가 있어 차를 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와보는 산이라 어느 정도 가야 할 지 전혀 감이 없는 상태였다. 송암사가 있는 곳부터 경사가 가파르게 변한다. 도안사를 거쳐 오르다 보이는 540 고지가 처음에는 정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올라 보니 저 건너에 조금 더 높은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어쩐지 너무 싱겁더라)

다시 건너간 그 바위 봉우리가 제법 특이하게도 생겼다. 하강바위라는 표지가 있는 곳을 거쳐 코끼리 바위라는 곳으로 가고, 다시 철모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르기를 한 2시간 반은 걸렸다 보다. 중간 중간 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이 너무 좋아 쉬엄 쉬엄 간 탓도 있지만, 이른 아침에 오가는 사람 없는 낯선 길을 가다 보니 간혹 길을 잘못 들어서기도 해서 다소 시간이 걸렸다. 다시 오면 2시간 이내에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산에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나 보다. 간혹 눈에 보이는 빈 물병이 눈에 거슬리고, 더욱이 빈 담뱃갑이나 꽁초가 상쾌한 마음에 재를 뿌린다.

540 고지를 오를 때까지는 산 아래에서 진행중인 터널 공사의 굴착기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도심 특유의 소음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아서 귀에 거슬린다. 도심 근처에 있는 산이라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소음들은 하강바위를 지나서야 사라지는 듯 하다.

 

봉우리마다 특색 있는 기암괴석이 대단하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시원하다. 특히 멀리 보이는 북한산과 도봉산의 위용이 대단하다. 가지고 간 사과 한 알을 먹으며 천천히 사방을 돌아보니 기분은 상쾌하나, 어둡게 깔린 도시 특유의 잿빛 대기로 인해 탁 트인 시원함은 덜하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청정한 산을 찾아 다니려 하는 것이 산을 찾는 사람들의 욕구가 아닌가 하지만, 그래서 산은 더욱 더 오염되어 가지 않는가 하는 느낌이다.

 

오른 길을 다시 돌아가는 하산 길은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아침 7:00에 강남에 있는 집에서 떠나, 8부터 오르기 시작했고, 내려오니 12:00 정도. 그리고 다시 집에 도착하지 1시 반쯤 되었나 보다.  

 

당초에는 수락산을 오른 후 불암산까지 종주할 계획이었지만 시간이 너무 걸려서 포기했고, 다음 주에는 좀더 교외로 나가 봐야 할 것 같다.

 

(2005년 3월 5 / 수락산을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