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살랑대니 산천초목도 나들이 준비가 한창인데

2006.03.18(토, 황사+구름)

대공원역(10:10)→샘터→소매봉→전망대(12:20~13:00)→이수봉→사색로(13:30~14:30)→대공원역(17:10)


봄이 온다고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갑자기 집안숙제가 많아졌다. 평소엔 무감각하게 지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기 저기서 자기를 봐달라고 하니 하얀손 사장직도 바쁠 때가 있는 것 같다.

집안 구석구석에 파뭍힌 것들을 들춰내서 장래 용도를 예상해 보는데 멀쩡하더라도 쓰임새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공간만 차지한다며 과감히 제거하려 대들어 보는데 지난날의 애정때문인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내 발을 묶는 일이 많다 해도 최소한 주단위로 자연의 품안에 안기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니.... 지난주엔 관악산을 갔고 오늘은 2주만에 청계산을 찾아간다.

양지쪽 진달래는 꽃망울이 제법 부풀어 졌고 어떤 나무 가지는 허물 벗으며 윤이 난다.
뾰족뾰족한 새싹도 보이고 생강나무와 산수유 꽃이 피기 시작하니 2주후엔 푸른색으로 갈아 입고 꽃잔치가 벌어질 것 같다.

적은 량이지만 봄비가 내려선지 무척 촉촉한 느낌인데 봄바람 타고 능선길의 소나무 향도 평소보다 진하게 풍긴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오르내리는데 상당히 큰 조직과 마주쳐 한쪽으로 비켜나서 기다린다.
3열 종대로 좁은 등산로를 꽉 체우고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며 마치 여왕벌을 뒤쫓는 일벌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저마다 조직에 붙어 있어야 함이 당연하겠지만 산에서까지 조직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산에서 만큼은 되도록 끼리끼리의 문화를 탈피하고 순수하게 자연과 일대일로 만나면 좋으련만 우린 언제 어디서나 창당하길 좋아하는 것 같다.

평소 즐겨 찾는 전망대 바위에 앉아 맞은편 국사봉과 그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광교산과 백운산에 눈인사를 건네며 시원한 곡주부터....

저 아래 양지쪽의 수북한 낙엽이 이젠 자신의 품으로 어서 내려 오란다.
곧바로 사색길로 내려 낙엽위에서 한 시간가량 단잠을....

청계사 윗길로 다시 올라 능선따라 가는데 이번에는 소나무가 쉬어 가란다.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햇볕 드는 소나무 밑 소갈비 위에서 30여분을...

홀로 산행은 이래서 좋은 것 같다. 아무것도 꺼릴 것 없으니 그야말로 자유다.
새소리 바람소리 흙냄새 나무 향에 취할 수 있고 나를 구속하는 세상것들로부터 잠시나마 격리되니 얼마나 좋은가

하얀손 사장인데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오후시간대에 욕심 가져봤자 해만 될 뿐이지... 모든 것이 정해진 때가 있는 법인데....

봄바람 살랑대니 잔설의 흔적을 그 어데서도 찾아볼 수 없는데 북쪽사면 일부에 얼마 남지 않은 얼음이 보인다. 아쉬운 마음에 가까이 가보니 바위형상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녹아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바위면을 타고 찾아든 봄기운이 얼음옷에 틈새를 만들고 봄바람이 드나들면서 간격을 키워가는가 보다.

태양을 출발한 열이 봄기운으로 다가오면 초목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비축한 생존 에너지를 새싹에 집중시켜 딱딱한 껍질을 뚫게 하고 점점 강해지는 햇볕과 함께 성장한 후 햇볕의 강도가 멀어지면 후손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동면준비에 들어가니 이놈들의 지혜와 판단능력이 참으로 신비롭다.

침묵의 자연은 절대 대우주의 법질서에 역행하여 도전하려 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생명활동을 이어간다.

우리들의 삶도 순리에 따라야 하지 내 마음대로 목표 설정하고 고집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