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006. 2. 18 (토)
누구랑 : 홀로이
산행지 : 금정산 (식물원옆 규림병원-대륙봉-동문-북문-고당봉-북문-범어사)
산행시간 : 6시간


내게
또 한계절 이 겨울이
입 안의 아이스크림녹듯
달콤히
꿈꾸듯
떠나가고 있네.
그토록 갈급하던
사랑있음에
이토록 충만한
가슴은 들뜨고
날마다
시간마다
내 魂은
감사로 넘쳐났지.

멈춤없는 시간이 흐르고

멀잖아
축복의 땅 위에
溫氣가 남실대면
우린
또다른 시작을 위해
때로는
이별마저 감수하며
아린 가슴으로
입맞출 지 몰라
그리해도
봄을 기다려
부푼 희망으로
春三月을 기대해.
        ~~봄을 기다리며 作~~


흰 눈 뒤집어 쓴 영남알프스...재약산행이
출발 전날 밤 늦게, 무산된 아픔이 컸던걸까?
병원을 드나들며 10여일을 시름시름 앓았다.
이어지는 편두통 끝에 오월에 왈,
“아무래도 빡~시게 걷고나야 나을 병인가 부다.”

주어진 현실은 언제나 냉혹한 것!
몸은 하나인데 소속이 많다 보니
시시로 산을 향한 소박한 꿈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로 지나칠 때가 많았다.
오늘도 바삐 움직였지만 이미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
금정자락에 무디어진 걸음, 옮겨 놓았다.(13:10)

산행 초입부터 즐비한 소나무들이
재선충 방제를 위한 예방주사를 밑둥에 꽂은 채
힘겨웁게 떠나가는 겨울을 인내하고 있었다.
뭇생명체들이 땅속에선 힘찬 기지개 켤 지언정
산은 깊은 침묵속에 고요하기만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암릉코스는
금정산의 숨겨진 보석같은 느낌이다.
두 어 번, 로프도 의지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제법 스릴있는 바위를 타기도 하고
기기묘묘한 형상의 엄청난 암봉앞에선
절로 감탄이 솟는다.
컨디션 난조 상태로 더딘 걸음 이어
오름길 1시간 반 만에 주능선에 다다르니
이정표에는 동문 2.6, 북문 6.2키로라 표기되어 있었다.

항상 소란스런 신작로같은 질퍽거리는 길을 벗어나
우측으로 바짝 붙어 인적드문 오솔길로 걷는다.
아직은 봄이 먼 양, 빛바랜 나무들과
서걱거리는 잎사귀들......
엄청난 크기의 너럭바위를 밟고 서니 대륙봉이다.(15:00)
반대 방향에서 사람들이 삼삼오오 올라온다.
산성마을 입구는 시끌벅적 배 들어온 자갈치같고
이정표엔 북문 4.5, 고당봉 5.4키로라 표기되어 있다.

동문을 지나(15:27), 나비바위에 이르러(16:02)
잠시 쉼을 갖고 간식을 먹었다. (두유, 찰떡파이, 곶감)
아마도 금정산 주능선의 최고 절경은 여기서부터 고당봉까지인 듯,
구불구불 곡선으로 길게 뻗은 금정산성을 따라
부채바위와 3.4망루, 의상봉, 원효봉을 연이어 지나는 이 길은
넓은 초원과 목책, 계단이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멋들어진 바위 틈새로 뿌리내린 소나무의 생명력엔
경탄 그 자체로 숙연한 마음이 된다.

발아래 도시는 무채색이지만
코발트 빛 하늘이 열리고 바람마저 거세진다.
뉘엿뉘엿 서산을 향하는 오후 해가
한 아름의 눈부신 햇살을 등 뒤로 쏟아놓고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도 한 눈에 들어 온다.
묵직해지는 허리느낌과 함께
오름길을 잇는 발걸음이 더디다.

사시사철 인파들로 넘쳐나는 북문에 당도하여(17:00)
洗心井  콸콸 솟는 샘물로 목을 축였다.
이 곳에 금정산장이란 이름으로
산장이 자리하고 있단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시간이 늦었지만 고당봉을 향하였다.
“오늘은 고당봉에서 일몰을 보는거야.”

간간이 내려올 뿐, 올라가는 사람이 없었다.
금샘은 그냥 지나치고(17:25), 오름길 잇는데
유리알처럼 청아한 음으로
지척에서 산새가 목청뽑는다.
석양에 듣는 이 소리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 오는데
나뭇가지에서 포르르~~
인기척에 산새가 날개짓한다.
“산새야, 가지마라. 나랑 동무하자.”

살얼음이 살풋 언 땅을 밟으며
오름 30분만에 고당봉(姑堂峰 801,5M)에 당도했다.(17:40)
검은 고양이 같은 물체가 바위사이로 휘리릭 도망을 가고
언제나 왁자한 이 곳이 오늘은 철저히 나 혼자이다.
엄숙히, 황홀한 日沒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쪽 하늘이 길게 회색빛 雲海를 이루어가며
붉은 띠를 드리운 채 움츠리듯 하던 해가
어느 순간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며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찬란한 빛을 토해낸다.
그것은 필사적인 몸부림
생명력 용솟음치는 처절한 함성!
그리곤 일순간 사그라지듯 雲海속으로 서서히 빠져들던
체념과 순종의 얌전한 자태란......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라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얼마나 소중한가?
日沒이 있으면 日出이 이어질 터!
우리는 또 새로운 꿈 도모할 터!
해야, 해야, 붉은 해야

변함없이 내일 또 뜨려무나.

서두르지 않은 하산길(18:10)
검게 산그림자 이미 드리웠고
온 산은 거대한 침묵이다.
길바닥은 冷氣로 얼어
오히려 걷기가 수월한데
금샘 갈림길 샘터에서
난데없는 둥둥둥 장단소리
무당이 굿판을 벌이고 있었다.
아, 고요를 깨치는 소음이여!

다시 북문을 지나고(18:30)
어둠 짙어진 하산길 재촉한다.
랜턴을 켜고 조심걸음 잇고이어
우렁찬 계곡물소리를 뒤로 하산완료하니(19:10)
오호라, 난 혼자가 아니었다.
길고 긴 내 그림자 호위하듯 따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