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그 길을 따라서...(Ⅲ)

(Ⅲ),  (6월6일) 유평마을, 지리산을 떠나며...

1. (01:50)   세석(細石), 하늘에는 별들이 산다.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깬다.(01:40)
   너무 이른 시간이기에 다시 침낭 속에서 누워 보지만,
   오가는 사람들로 잠이 오지 않아 마당으로 나온다.
   칠 흙 같은 어두움 속에서 지리산의 차갑고 세찬 바람이 나를 깨운다.
   천왕봉 일출을 맞으려는 산객들은
   이 세찬 바람과 어두움을 뚫고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하나, 둘 길을 나선다.
   촛대봉 오름에도 작은 불빛이 하나 둘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그 무엇이 이 어둠과 세찬 바람 속에서도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일까?
       왜! 나는 이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지리산 능선에 서 있는 것일까?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    별!
   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처럼 밤하늘 가득 그 많은 별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반짝이고 있었다.
   은하수라는 말을 실감한다.
   도심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별들 중에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북두칠성도 이 많은 별들 중에서는 쉽게 찾을 수가 없다.
   난생 처음 보는 그 많은 별들을
   차가운 밤바람도 잊은 채 경이롭게 올려다본다.

     하늘에는 그토록 많은 별들이 살고 있었다.
   공해 등의 장애에 가려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변함 없는 진리를 무명에 가린 우리가 알지 못하듯이,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별들은 변함 없이 빛나고 있었다.

  

2.(03:41)  어두움에서 밝음으로 향하다.
     반짝이며 지켜보는 그토록 많은 별들의 배웅을 받으며
   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칠 흙 같은 어둠을 헤치며 촛대봉으로 향한다.(03:41)

     오름을 걸어 어둠 속에 잠긴 촛대봉에 도착한다.(03:57)
   바람은 더욱 세차게 몰아치는데
   숲 속에서는 밤을 잊었음인가?
   신기하게도 이 어둠 속에서 뻐꾸기 울음이 들린다.

     연하봉(烟霞峰:1,667M) 가는 오르내림을 반복하자,
   이제 희미하게 하늘이 열리고 여명이 든다.
   부지런한 새들은 벌써 노래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연하봉 마지막 오름으로 향하는 선경(仙景)에 이른다.
   하얀 고사목과 살아있는 주목 그리고 푸른 나무와 풀과 꽃,
   연분홍 철쭉들이 기묘한 바위들과 어우러진 연하선경(烟霞仙景)을 느낀다.
  

3.(04:59 )  연하봉, 이제 늦었음을...
      연하선경(烟霞仙景)을 거닐어 연하봉 정상에 도착.(04:59)
   해오름(日出)을 보기 위해 일출봉(日出峰:1.590M)으로 향하나,
   길이 없어 두 번이나 되돌아온다.
   연하봉(烟霞峰:1,667M) 정상에서 바위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일출봉으로 향하는
   희미한 길을 다시 발견하지만 낮은 줄이 쳐져있다.
   아쉽지만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오늘처럼 그토록 많은 별들이 뜬 날.
   아름다운 해오름을 보리라 크게 기대하였건만,
   낙담하여 연하봉 바위 위에 앉아 동쪽 하늘을 가리고
   우뚝 솟아있는 천왕봉을 아쉬워한다.
   이제 밝음은 점점 느껴지고, 보이지는 않지만 해가 떠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줄을 넘어 풀 사이로 난 길을 뛰어 일출봉으로 향하기도,
     한 번의 날개 짓으로 저 앞 천왕봉으로 날아가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해오름(日出)을 보기에도

         이제는 늦었음을...

   아쉬움에 한동안 연하봉을 떠나지 못한다.
    

4.(06:50)   장터목, 하늘을 찾아...
    
장터목대피소에서 아침을 먹고 천왕봉으로 향한다.(06:50)
   돌계단 오름을 걷자, 제석봉(帝釋峰:1,806M)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
   길 양 켠 목책 안에 하얀 알몸을 드러내고 서 있는 많은 고사목과
   다시 인간에 의해 심겨져 푸르게 자라고 있는 어린 주목들,
   연분홍의 철쭉과 푸른 풀 그리고 바위들.
   그 아래로 펼쳐지는 골짜기.

     하늘의 왕 천왕봉을 만나는 절정을 향해 가는 점점 고조되어 가는 선경들.
     연하봉, 제석봉의 선경을 거쳐 통천문(通天門)을 지난다.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그리고 통과하고 난 후에는 하늘과 지리산에 대한 고마움과 부끄러움에...

  

5.(07:45)   천왕봉(天王峰), 하늘에 이르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는 천왕봉 정상(1,915M)에 선다.(07:45)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정상석을 어루만진다.
   일출에 대한 아쉬움은 이토록 맑고 푸른 하늘을 만난 기쁨에 묻힌다.

     돌아보면 굽이치며 이어진 노고단까지의 주능선 길이 선명히 보이고
   그 뒤로 고리봉 등의 서부능선이 보인다.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진 백두대간 길이...

     남쪽으로는 지리산을 향해 달려온 많은 지능선과 골짜기가
   북쪽으로는 지능선과 골짜기 그리고 첩첩이 이어진 산 들
   동쪽과 남해 바다는 구름에 잠겨 있고,
   다도해 섬들은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 위에 떠있다.
   녹음에 덮인 지리산 능선아래 유독 구례 땅만은
   구름의 바다에 잠겨있다.
  
나는 하늘에 서서 이 굽이치며 힘차게 뻗어 내린 산과 들,
   구름에 잠긴 바다를 내려다본다.


     중봉(中峯;1875m)을 건너다본다.
   한라산(1,950M), 지리산 천왕봉(1,915M)에 이어
   한반도 남단의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건만,
   모든 영광을 천왕봉에 돌린 체 드러나지 않고 말없이 산객들을 반기는 중봉.
   중봉과 하봉(下峯;1781M) 그리고 멀리 웅석봉(熊石峰;1,099M)으로 이어진
   지리산의 기운은 그 아래 경호강(鏡湖江)을 만나 끝나는 걸까...
      
백두산(白頭山;2,744M)에서 발원하여 한반도 등줄기가 되어
       뻗어 내린 백두대간을 마음속으로 그린다.

   하늘의 왕 천왕봉 정상에서 나도 맑고 푸른 하늘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

  

6. ~ )  지리산! 그 길을 따라서... ...
    
중봉으로의 가파른 내림을 거쳐 산사태 복구공사를 하는
   가건물을 지나 오름을 거쳐 중봉(中峯;1875m)에 이른다.(08:27)
   연분홍 철쭉이 만개한 중봉에서 올려다보는 천왕봉.
   깍아 지른 동쪽 사면의 힘이 느껴진다.
   중봉 아래로는 중봉골과 칠선계곡이 펼쳐지고
   하봉으로 이어지는 황금능선은 막혀있다.
   하봉에서 꺾어져 써리봉을 거쳐 치밭목대피소가 보이고
   그 능선 너머 가야할 길을 내려다본다.

     써리봉 가는 길은 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아서인지
   자연의 상태가 잘 보존된 것 같은 우거진 숲과 좁은 길이
   오히려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내림의 길과 많은 철 계단을 오르고 내리며
   고사목과 주목 그리고 신록의 푸름과 어우러진 많은 봉우리들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써리봉(1,602M)에 다다른다.(09:32)

     다시 내림의 숲을 오랫동안 걸어 치밭목대피소를 지나(10:22)
   무제치기 폭포에 이른다.(11:00)
   '무지개를 치는 폭포'라는 무제치기 폭포는 수량이 많지 않아
   그 위용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커다란 둥근 3단의 바위위로 떨어지는 폭포와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바라본다.
   이제 라면을 끓여 식은 밥을 곁들여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기고
   차가운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쉰 후, 다시 길을 나선다.(12:03)

     새재와 유평의 갈림길 삼거리를 지나(12:38)
   계곡을 옆으로 끼고 산죽이 우거진 좁은 길을 한동안 걸어
   고개를 넘는 지루한 내림을 걷는다.
       지리산의 옛 종주 길,
   대원사 길은 이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때문인지
   길은 좁고 산죽과 잡목이 무성한 긴 길이 이어진다.
   계곡을 끼고 걷지만 경치도 보이지 않는 너덜길을 한동안 걷자,
   이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보이고
   드디어 밤밭골 유평상가로 통하는 철문이 보인다.(13:58)
   마을 옆 계곡 물에 3일간 땀에 젖은 몸을 담그고 계곡의 시원함을 즐긴다.
  

7.(16:40 )   유평, 지리산을 떠나며...
    
이제 너른 반석들 사이로 맑고 푸른 물과 소가 흐르는
   아름다운 대원사 계곡을 따라 난 포장길을 걷는다.(15:00)
   비구니 도량인 대원사(大源寺) 대웅전에 들러 선각자에 대한 예도 갖춘 후,
   2박3일 간의 지리산 전통종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을 감사 드린다.
   합천 해인사 말사(末寺)라는 사찰 앞 안내판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부터 지리산에 들어 경남 산청의 대원사로
   지리산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끝맺음을 기다리는가?
   대원사에서 유평매표소까지의 포장길이 왠지 길게만 느껴진다.
   계곡을 끼고 포장길을 한동안 걸어 유평매표소에 도착.(15:55)
   2박 3일간 46.2KM(100여 리)가 넘는 산길을 걸어 지리산 전통종주를
   무사히 마친다.
   진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따르는 하산주 잔 안에는 만족감과 안도감이 가득하다.

     이제 지리산을 떠난다.(16:40)
   지리산에서 멀어지는 버스는 덕산에 멈추었다 다시 출발하고
   차창가로 남명(南溟) 조식(曹植)선생의 묘소가 보인다.
   지리산을 그토록 사랑하셨던 처사(處士) 남명(南溟) 선생의 시를 생각하며
   멀어지는 지리산에 또 다시 그리움을 보낸다.  

    - 題德山溪亭柱 -      덕산계정의 기둥에 씀

    請看千石鐘         보게나! 천석들이 종을,
    非大鼓無聲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네.
    爭似頭流山         어쩌면 두류산(지리산)처럼
    天鳴猶不鳴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게 될까

  

산행시간 : 12시간 14분   (03:41 ~ 15:55 )
   산행거리 : 18.8 Km + @   (세석 ~ 유평)

    

   * 2박 3일 간의 지리산 전통 종주

총산행시간 : 29시간 14분   (식사, 휴식 포함 )
   산행거리 : 46.2 Km + @   (화엄사 ~ 유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