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6

'하트'해수욕장에는 신선(神仙)이 노닐던 멋진 산이 있더라. 


  

 

 

 

 “바다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산은 사람을 생각케 한다”는 말이 있다. 드넓은 바다는 무한한 에너지가 넘실거리기에 끈임 없는 도전의 대상이다. 바다는 인간을 달구고 산은 식히는 작용을 하기에 이를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꿈꾸는 바다의 낭만에 젖고 싶은 욕념(欲念)이 꿈틀거린다.
  

 수많은 섬으로 형성된 신안군(新安郡)은 천혜의 해양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크고 작은 827개의 유무인도와 그 주변에 질펀하게 펼쳐진 갯벌과 바둑판처럼 구획된 소금밭, 해당화가 피고 지는 때 묻지 않는 백사장들 - - - 그곳에 바다를 꿈꾸는 사람들이 열악한 자연환경과 맞서면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며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특히 520여개의 섬들이 웅기종기 다이아몬드 형태로 바다호수를 이룬 ‘Diamond Islands’ 즉 ‘다이아몬드 제도’(諸島)가 있다. 이 섬 중에 생김새가 새가 나르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비금도(飛禽島)라고 부르는 섬이 있다. 흑산도의 첫들머리고 ‘섬초’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시금치 주산지이며 천일염의 생산 보고(寶庫)이다.
  

 십리(十里)가 넘는 광활한 백사장이 일품인 명사십리 해수욕장을 비롯해서 수많은 비경들이 곳곳에 산재되어있다. 특히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모양을 자아내는 하누넘 해수욕장이 최근에 각종 매스컴과 TV드라마 ‘봄의 왈츠’에 소개되어 인터넷 검색순위 상위로 올라갈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섬(島)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멋진 산이 있으니 그 산이 바로 선왕산(仙旺山)이다. 신선들이 내려와서 노닐던 곳이라는 이름처럼 어느 것 하나라도 더함도 덜이 없는 원초적 자연미가 넘쳐흐른다. 신안군에서 작년에 등산로를 개설하고 '섬 등산대회'를 개최하여 바다와 산을 동시에 즐기려는 마니아(mania)들의 입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무작정 덤벼들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수 있기에 미리 기상상황과 여객선 입출항 시간을 꼼꼼히 알아보고 산행에 나서야한다. 폭풍이 불어 여객선이 끊어지면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섬이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흑산도를 거쳐 홍도를 오가는 쾌속선이 비금도에 정박하므로 이 선박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환상의 섬 비금도를 둘러보고 싶어 목포항에서 07:50에 출발하는 쾌속선에 승선한다. 빠른 속도로 파도를 가르면서 50여분을 항해하니 비금도 관문인 송치항에 도착한다. 부두에서 산행들머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간다. 드넓은 염전(鹽田)을 가로질러 5분정도 달리니 선왕산 등산로 입구라는 표지가 나온다.

  

 

 

 

 주차장에는 선왕산 등산로가 그려진 입간판에 서있다. 뒷동산 같은 능선을 오르는 것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등산로 주변에 동백나무가 식재되어있다. 짙은 풀내음이 취하면서 먼 훗날 울창한 동백 숲을 이루리라는 꿈에 젖어본다. 오래 걷지 않아도 시야가 확 트여 찌든 가슴을 열리게 한다. 청정한 원시의 섬은 이런 맛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버티고 서있는 암봉(岩峯)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다. 자연이 빗어낸 순연(純然)한 근육질에 흠뻑 매료되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강아지처럼 생긴 바위도 있고, 한반도를 쏙 빼다 놓은 넓적한 바위도 있고, 마치 조각 작품을 진열해놓은 것 같아 눈요깃감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이런 풍광에 젖어 40여분 오르니 잘생긴 암봉이 우뚝 솟아오른 그림산 정상이 건너편에서 손짓하는 봉우리에 선다. 북한산 인수봉 같은 그림산 정상은 아직까지 등산로가 개설되지 않아 올라갈 수 없다. 바다를 벗 삼으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아 록클라이밍 장소로 개발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좌측으로는 바닷물도 검게 보이는 유형(流刑)의 장소인 흑산도(黑山島)와 우이도(牛耳島)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황량하게 펼쳐진 소금밭이 내려다보인다. 아직도 모든 작업이 인력으로 이루어지기에 짜디짠 세월의 앙금들이 가라않는 곳이 천일염전이다. 그래서 고단함과 한(恨)이 하나로 응고된 하얀 결정체가 바로 소금이다.

  

 

 

 

 눈앞에 다가서는 선왕산 정상으로 가려면 죽치우실까지 내려가야 한다. 아기자기한 내리막길은 싫증이 나지 않는다. 서둘러 청맥(靑麥)을 황맥(黃麥)으로 바꾸려는 5월의 햇살은 따갑지만 바다에서 밀려오는 갯바람은 시원함을 한 아름 안겨준다.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다시 시작된 된비알은 어느 때나 힘들지만 꿈을 꾸는 넉넉함으로 달랜다.

 

 산불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잘려나가고 듬성듬성 서 있는 고사목은 지리산(智異山) 제석봉을 연상시킨다. 큰나무가 없어 편히 쉴 곳이 넉넉지 않는데 안타깝게도 민둥산이 되었으니 새삼스럽게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사람들을 꿈꾸게 하고 가슴을 설레게 하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지루한 줄 모른다.

  

 

 

 

 이름 없는 봉우리에 올라서 왔던 길을 돌아보니 수려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와 감탄사가 연발된다. 바다와 산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사량도(蛇梁島) 지리망산(智異望山)과 견줘도 어느 것 하나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연이 그려내는 풍경처럼 아름다운 그림은 어디에도 없음을 다시금 실감하면서 가쁜 숨을 고른다.

  

 세 사람이 한데 부둥켜안고 있는 형상인 삼형제바위가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뚜렷하게 보인다. 잘 정비된 등산로는 큰 어려움을 안겨주지 않기에 즐거움을 증폭시켜준다. 아마도 뭔가를 이루려는 기대감을 안고가기에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르기 때문일까?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있는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이 부부(夫婦)의 날이기에 부부바위라고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동료들도 좋아한다. 2+1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저마다 꿈을 이루려고 아옹다옹하면서 자신의 둥지를 지켜나가는 것이 부부의 연분(緣分)이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꿈을 이루려는 열정이 식지 않도록 끈임 없는 사랑의 담금질로 돈독함을 유지해 나가야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오르다보니 어느덧 산정(山頂)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1시간 40여분 소요되었다. 산정에는 표지석(標識石)과 산불 감시탑이 세워져있다. 이곳에 올라서니 하트 모양을 연출하는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져 비경을 빚어낸다. 먼저 도착한 외지에서 오신 산우(山友)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찾았는데 아주 흡족하다고 한다.

 

 하누넘 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다. 아마도 비경(秘景)의 현장에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일까? 내리막을 단숨에 내려와 해수욕장을 둘러보니 산에서 내려다보았던 모습과는 차이가 많아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지역이기에 함부로 시설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다고 귀띔한다.

  

 

 

 

 우리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쉼 없이 달려가 보니 애당초 생각했던 것과 갭(gap)이 생길 때 그 허전함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이것이 세상살이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꿈을 꾸지 않으면 좌절감에 사로잡혀 자신감을 잃어버리므로 항상 꿈을 꾸면서 살아가야한다. 
  

 건너편 해변에서는 ‘봄의 왈츠’ 촬영에 열중이다. 부두로 나가기 위해서 대기한 차를 타고 해변을 감싸고 돌아가는 정감이 넘치는 시멘트도로를 달려가다가 하트모양이 연출되는 조망지점(view point)에서 내려다보니 영락없는 ♡'하트'♡모습이다. 자연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무한한 꿈을 안겨주기에 그 품을 안기기를 반복하는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