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밟으며 걸어간 북한산 스케치

언제 : 12월 4일

누구랑 : 나와 그림자

어디로: 불광동--구기 매표소--문수사--대남문--계곡--대서문--산성매표소(10Km 5시간)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흠뻑

남도 지방에 폭설로 인해 휴교령이 내려질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다.

하우스를 하는 농민들의 타는 가슴을 어떻게 말로 다 위로할 수 있을까마는 나에게는 또 다른 겨울산행의 맛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 기회는 잡는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부상 부위를 어루만져 보았다.

아직은 발목도 부자연스럽고, 손목은 스틱마저 쥐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눈이 나를 유혹하기에 배낭을 꾸릴 수밖에 없었다.

부상도 지난 주말 의상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뜻하지 않는 돌발 사고로 입은 상처였다.

열심히 파스를 바르고 병원 진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어 보인다.

시간이 약이란 말인가?

등산화를 신으면 되는지, 걸으면 어떤 통증이 오는지 확인하려고 이른 아침 등산화를 신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보았다. 천천히 걸으면 되겠다는 판단이 섯다,

왼손은 안쓰고 오른쪽 발목은 보호대를 차고 걸으니 걸을 만했다.

차마 가족에게 산에 간다는 말이 안 떨어져 망설이다가 9시에나 집을 나설 수 있었다.


 

북한산 가는 3호선에 오르니 좌석 여기저기 산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열차안에서 내내 다리와 팔이 걱정되어 만지작거리다 불광역에 내렸다.

비교적 무난히 오를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하여 걷자는 심산에서였다.

평소보다는 적었지만 산군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화 매표소 코스는 릿지의 부담도 있고 해서 구기매표소를 지나 대남문으로 일차 목적지로 세웠다.

시간이 얼마 걸릴지, 아니면 발목이 아파 중도에 포기를 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간혹 비치는 햇살에 나의 그림자도 내곁에서 열심히 나를 따라 오고 있었다.

나의 가장 든든한 반려자이면서 친구인 그림자.


 

구기터널을 지나 구기 매표소로 오르는 길에 접어드니 간혹 눈보라를 동반한 바람이 한줄기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길옆 포장마차에서 오뎅 2개로 시장기를 달래고, 따뜻한 국물로 속을 덥힌 후 속으로 힘내! 하면서 외치고는 한 발작씩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구기 매표소에서 표를 사는데 “오늘 바람이 불고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하고 안내원이 일러 주었다,.

나의 부자연스런 걸음걸이가 위험하게 보여서 그랬는지 모른다.


 

간밤에 온 눈을 이고 있는 소나무의 자태에 몇 번씩이나 소리를 내어본다.

햐 ~~ 바로 이거야.

이맛이란 말이야.

나와 그림자는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가끔씩 발을 잘못 디딜때의 통증을 제외하고는 나 자신이 산에 취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스틱을 꺼내어 오른손에 잡고 천천히 그것도 아주 천천히 눈속으로 젖어 들고 있었다.

한줄기 눈보라가 휘몰아가고 여기저기서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눈보라를 볼때마다 걸음을 멈추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문수봉이, 비봉이 오늘따라 외롭게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어느때 같으면 사람들로 붐빌 비봉의 정상에 산꾼들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가끔씩 일어난 눈보라가 정상을 스치고 지날뿐이었다.

문수봉 가는 승가능선에 가끔 인기척이 들려온다.

한시간여 걸으니 다리의 통증도 포기를 한 듯 느낌이 둔해 졌다.

문수봉정상에 얼어붙은 바위의 고드름은 발길을 멈추기에 충분했고 보현봉의 자태 또한 연신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문수사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작은 바위틈에 솟은 암반수로 목을 축였다.

감로수가 따로 있으랴, 부처님의 자비가 바로 물한모금에 담겨져 있는게 아니었던가?

우매한 우바새가 단지 모르고 있었을 따름이지.

나는 양지바른 산기슭에 그림자와 기대어 따스한 햇살을 가슴에 쓸어담을 때 참을수없을 정도의 따스함이 바로 부처님의 자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문수사에서 바라본 대남문과 보현봉, 지나온 계곡의 모습에 한없는 그리움을 던져 보았다.

시간이 날이 개었고, 햇살이 두터워 질수록 그림자는 나에게 더 정답게 다가섰다.

대남문에는 많은 산꾼들로 붐볐다.


 

평소때는 백운대가 보이는 북쪽에 사람이 붐볐는데 오늘은 성벽을 바람막이 삼아 즐비하게앉아 있다.

나와 그림자의 자리는 없다.

할 수없이 백운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을 정하여 배낭을 풀고 따뜻한 물고 컵라면 하나를 끓였다.

속을 데우고, 시장기를 달래며 눈앞에 펼쳐진 북한산의 설경이 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장대의 원경에는 차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꽃과 상고대는 없었지만 대지를 하얗게 덥고 있는 백설은 속세에 더렵혀진 내 마음을 다시 하얀 백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멀리 백운대와 만경대. 그 앞을 노적봉이 한편의 겨울 동화를 꾸며 내고 있었다.


 

대남문에서 산성 매표소 까지는 5.5km

의상능선을 타지 않고, 계곡을 타고 하산을 서둘렀다.

나와 그림자는 계곡 곳곳에 흔적을 남기려 남이 걷지 않은 길을 이리저리 걸으며, 가끔 잘못 디뎌 발에 통증이 오면 얼굴을 찡그리기도 하고, 산에 취해 흥얼거리기도 하며 유유자적 걸었다.

한참 내려오다 동장대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에 이르러서는 벌렁 누워 한참을 구경했다.

아마도 마음에, 눈眼속에 새겨 질때까지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그림자와 함께 서로의 체온을 느낌면서..

나를 따라 오던 그림자는 산그림자에 가려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는 홀로 걷는다.

산속이라 일찍 해가 내린다.


 

간혹 스치는 산꾼들과 목례도 하고, 수담도 나누며 노적교까지 내려왔다.

정상에서 멀어지고, 고도가 낮아질수록 내 마음도 평상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측으로 원효봉과 염초봉이 길게 따라오고, 좌측으로 의상능선이 긴팔을 풀어 나를 산성밖으로 내 밀었다.

뒤볼아 보는 산은 본래의 모습 그대로 서 있다.

다만 내가 산 속을 거닐며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흔들렸음이니, 소인배의 어쩔 수 없었던 몸부림을 용서해주기를 바라며 산성 매표소를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