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을 걸어가며
<br>내 자신에게 약속하기를
<br>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며
<br>날이 어둡기전에 하루의 걸음을 멈출 것이며
<br>지나온 여정을 후회하지 않도록
<br>걸음을 재촉하지 말고
<br>마음에 채곡채곡 담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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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아침 8시 수양산이 시작되는 산모퉁이 지점에서 덕천강을 뒤로하고 밤나무 밭을 오르는데 배낭의 무게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한다. 내 삶의 무게일까? 아니면 삶의 여정에서 오는 욕심의 무게일까?  말로만 듣고 글로만 읽던 태극을 그리기 위해서 처음 시작하는 발걸음부터 무겁다.
<br>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약간은 당황해진다. 가지고 있는 지도에는 등산로가 표시가 되어 있는데 한참을 올라도 능선에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다. 덕산에서 태극을 시작한 분들이 더러 종주기를 올려놓은 것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능선이 아닌 다른 길로 들머리를 시작한 듯 하다.  약 두어시간을 숲을 헤치고 오르는데 오른쪽 아래에 작은 차도인 듯한 도로가 보여서 내려가는데 경사가 만만치 않아서 여러 번 미끄러진다. 군데군데 멧돼지가 파놓은 황토구덩이가 보인다. 작은 계곡을 지나서 조금 올라가니 작은 암자가 있고 공사 중인데 그곳에서 물어보니 수양산을 잘 모른단다. 난감해진다.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는 산을 현지인이 모른다니! 그래서 좌측과 우측에 있는 계곡의 이름을 물어보니 좌측이 마근담이고 우측이 백운동계곡 이라고 한다.  그렇면 지도에 있는 능선을 따라 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달뜨기 능선을 지나서 웅석봉을 가려고 한다고 말하니 웅석봉을 가려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하면서 도로로 내려가서 차를 타고 어천으로 가라고 한다. 그래도 한번 가보겠다고 하면서 다시 능선 쪽으로 오르는데 감나무 심어놓은 평지를 지나서 아무리 들머리를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무엇인가 하얀 것이 있다. 색이 바랜 임우식님의 표지기인 “사랑합니다” 가 오랜 시간의 흐름을 이기고 그곳에 있었다. 그곳으로 임우식님이 산행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지만 울창한 숲에는 길이 전혀 없고 다만 동물이 다닌 흔적만 있을 따름이다. 오름을 시작한다. 조금 오르는데 발 앞에 영지버섯 두 송이가 피어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아내의 얼굴이 생각났다. 어려운 일에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은 참 고마운 사람이다. 선물로 주어야겠다.  한참의 오름 후 멀리 왼쪽으로 건물이 보이는데 아마 농업학교인 듯 하다 오른쪽으로는 계곡과 임도가 보인다. 지도에 있는 743봉에 오른 것 같다. 약간의 휴식을 한 후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서 가려는데 오른쪽에 습지가 형성이 되어 있어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접근을 시도하는데 규모가 매우 크다.  갈수기 인 데도 물이 제법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왕등재 습지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물을 담고서 살펴보는데 멧돼지의 서식지인 것 같다. 여러곳에 진흙목욕을 한 흔적이 있고 덤풀 아래에 집을 지어 놓았다.  다시 능선을 향해서 오르는데 약 50여 미터 앞에서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동물의 움직임이 있다. 4마리의 멧돼지가 능선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스틱으로 탁탁치면서 소리를 지르니 걸음을 빨리 해서 도망을 한다. 저 녀석들은 왜 나를 두려워하며 나는 또한 왜 저들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서로를 두려워하지 않을 그날이 언제쯤 오려는가? 이제 가끔씩 표지기가 눈에 띈다. 그리고 등산로도 간간이 이어진다. 지도상으로 볼 때 986봉인듯 하다 오른쪽 멀리 저수지가 보인다.  이제부터 아픈 추억이 담겨있는 달뜨기능선이 이어진다. 그리멀지 않은 시기에 마음에 여러가지 이유와 아픔을 소유한 이들이 저 능선위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그리움과 사무침의 가슴을 부여잡았을까?          
<br>능선을 걸으며 생각해본다. 오늘을 사는 나는 무엇을 고민하며 나의 가족과 나의 이웃과 지나치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무엇을 하는가? 생각나는 이들을 마음에 그리며 그들과 한 마음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생각에 잠겨서 한참을 걸으니 봉우리에 오르고 멀리 초소 같은 것이 있는 봉우리가 뚜렸하다.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실망이 밀려온다. 동부능선에서 웅장하고 험한 봉우리 인 줄 알았는데 반달곰과 동네꼬마 녀석들이 씨름하며 놀기에 적당한 놀이터 같았다 웅석봉에서 남강을 내려다보며 약간의 휴식을 한 후 내려와서 우물로 가보니 물이 말라 있었다. 갈수기에는 식수확보가 어려울 것 같다. 밤머리재로 걸음을 옮기며 멀리 천왕봉을 바라본다. 오후 5시 밤머리재에 도착하여 첫날의 산행을 마무리하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br>둘째날 11월 10일 맑음
<br>밤머리재에서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한다. 처음부터 숨이 차오른다. 능선에서 식수 확보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약 2리터의 식수를 담아서 오르니 배낭의 무게가 20kg가 넘는 것 같다.
<br>어렵게 봉우리에 오르니 눈앞에 Z형태의 능선이 펼쳐진다. 지도에 그려진 길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멀리 천왕봉이 보이니 마음에 안심이 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능선과 산세의 규모에서 힘이 느껴진다. 약간의 두려운 마음이 든다. 육신의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라기 보다는 거대한 힘에 대한 두려움일까? 경외심이 온몸과 마음을 감싸고 돈다.  그 거대한 힘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내 자신을 본다. 그 분의 함께 하심을 소원하며 발걸음을 시작한다.  동부능선은 등산로에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서 오름과 내림이 무척 힘든다. 오름에서 발에 힘을 주어도 자꾸만 미끄러진다.   왕등재를 지날 때쯤 멀리 마을에서 여러 마리의 개가 사납게 짓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산 중턱에서 반달곰의 소리인 듯 한 커다란 동물의 외침이 들려온다. 과연 지리산에 곰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될까?  먹이가 없어서 민가로 내려왔다가 올무에 걸려서 죽어간 뉴스를 본 것 이 기억이 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왕등재 습지를 지나는데 규모가 생각했던 것 보다 작아서 약간은 실망스럽다. 물은 전혀 없었다. 습지를 지나서 약간 진행한 후에 갈림길이 나왔는데 오른쪽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되돌아 왔다.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에도 표지기가 있는 것을 보고 길을 잘못 간 것 이었다. 이제 멀리 오름이 시작되는 쑥밭재가 보인다.  오름 시작 전에 휴식을 하고 출발을 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스틱에 의지하여 멈추기를 반복한다.  마침내 오름에 오르고 국골 사거리를 지나서 하봉쪽으로 가다가 등산중인 한 분을 만난다. 습지 근처에서 비박을 하겠다며 넉넉한 웃음으로 안전한 산행을 기원한다.  하봉에서 부터는 분명한 지리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멀리 첫날 걸었던 달뜨기능선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중봉을 지나 천왕봉으로 오르는데 힘이 부친다.  음지에 있는 얼음조각을 깨어물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른다.  천왕봉에서 참시 쉬고 있노라니 지난 겨울 폭설속에서 함께 올랐던 아내와 큰아들 호수아와 작은아들 아론이의 얼굴이 자꾸만 다가온다. 그립다.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에 17시 30분에 도착하니 밤버리재에서 장터목까지 열한시간 삼십분이 걸렸다. 쉬엄쉬엄 걸었던 힘들었지만 여유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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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셋째날 11월11일 비
<br>모두들 천왕봉으로 오른다고 새벽부터 장터목이 시끄럽다.  랜턴을 켜서 나오는데 비가 계속 내리신다. 우의를 입고 새벽길을 5시 40분에 나서는데 장터목에서 세석까지의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촛대봉에 오르는데 안개사이로 세석이 모습을 드러내고 남부능선을 마음에서만 그려본다.  저 멀리 삼신봉을 지나면 상불재를 거쳐서 시루봉으로 올라서 내 마음에 있는 고향마을 등촌리가 반길텐데…
<br>세석에 도착해서 비상식량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아내는 이곳이 참 예쁘다고 했다.  지난 번 겨울 산행 때 한신계곡을 오르면서 무척 고생을 했는데도 세석이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있나 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함께 와서 이곳에 머물면서 아침에 시원한 동태째개를 끊여서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
<br>아쉬움을 남긴 채 칠성봉, 덕평봉을 지나 벽소령으로 가는데 한 무리의 학생들이 몰려온다 힘있는 청년들이 참 좋다.  벽소령에 들려서 간식으로 보충을 한 후 형제봉을 지나 연하천에 들렸는데 취사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 없어서 냉수 한 바가지로 기운을 차린 후 명선봉을 지나 토끼봉에 오르니 운해의 장관을 마음 가득 담아본다.  화개재의 계단을 오르는데 장단지 근육이 불평이 대단하다.  그래도 무릎이 불평을 하지 않으니 장단지를 달래가며 화개재를 지나 삼도봉에서 반야봉을 바라보는데 마음속에서 지나가자는 녀석과 태극종주에 반야봉을 넣어야 한다는 녀석이 다툼을 한다.  그래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반야봉에서 운해를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반야봉에 오르기로 결정한다.  삼도봉을 지나면 노루목까지 가지 않고 반야봉으로 오르는 표지판이 있는데 약간 험하긴 하지만 갈만 하다.
<br>배낭을 지고 나무를 붙잡고 한참을 오르니 노루목에서 오는 길과 만난다.  연하천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지만 그냥 왔기 때문에 허기가 밀려온다.  약간의 평지에서 숨을 고른 후
<br>오르막을 지나 철계단을 오른다.  몸은 너무 지쳐서 힘들어 하는데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하고 희열이 몰려온다.  마침내 반야봉에 오르고 주능선 위로 흐르는 안개와 노고단 쪽의 운해가 예쁘다.  이곳에서 늕은 점심을 먹고 노루목을 지나서 임걸령에 도착해서 물 한 바가지로 기운을 차린다.  이곳에 오면 반드시 하는 것이 있다.  지리에서 가장 물맛이 좋다고 하는 이곳의 물을 담아서 아내에게 선물로 준다. 1.5 리터 한병과 0.5리터 두병을 담아서 배낭에 넣으니 힘이 부친다.  돼지령을 지나는데 비에 젖은 등산화 속에서 발가락이 개구리처럼 노래를 부른다. 노고단 고개에 도착하니 지나온 주능선 멀리 천왕봉이 보이고 하루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데 아쉬움에 발자국 만 이라도 남기고 싶었는데 종일 내리신 비는 나의 흔적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 좁은 마음이지만 내 속에 가득 담아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17시다  장터목에서 노고단까지 반야봉을 구경하고 오는 여정이 거의  열한시간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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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11월 12일 맑음
<br>새벽에 일어나니 온몸이 아우성이다. 어깨가 주물러 달라고 하고 발가락은 등산화 말려달라고 하고 그래도 등산화는 밤새 화장지를 넣어두어서 신을 만 하다.  조용히 채비를 해서 5시30분에 마지막 날 여정을 위해서 출발하는데 하늘에서는 별들이 새벽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반짝인다.  성삼재로 내려오는 길에 수많은 무리의 등산객을 만난다.  오늘도 주능선은 몸살을 앓겠구나 생각하며 미안한 생각이다. 성삼재를 지나 도로를 따라서 약간 걸으니 능선으로 오르는 문이 있고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고리봉을 지나는데 반야봉 너머로 여명이 밝아온다.  묘봉치를 지나니 멀리 만복대가 보이는데 새벽에 바라보는 만복대가 참 정겹다.  만복대를 지나 정령치 휴게소에 들려서 약간의 식수를 확보하고 조금 쉬고 있는데 매점 문이 열려서 어묵을 하나 먹고서 출발 준비를 한다.고리봉을 지나면서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난다.  배낭이 가벼워보인다. 부럽다.  서북능선 길은 동부능선에 비하면 무척 부드럽다는 생각이 든다. 세걸산을 지나면서 전 날 지나온 주능선을 자꾸만 바라본다. 아쉬움일까? 그리움일까?  부운치 쯤에서 쉬고 있는 등산객을 만나서 가는 곳을 물어보니 인월이란다.  그분은 조용한 산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주능선은 자주 가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멀리 바래봉이 보인다.  팔랑치를 지나니 걷기가 많이 수월하다.  바래봉가는 길에 철쭉군락지가 시작되는데 너무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철쭉이 필 때 쯤이면 무척 예쁜 것 같다.  군데군데 철없는 녀석이 피어서 자신의 철없음을 과시한다.  바래봉 오르기 전에 식수장이 있어서 가보는데 물이 아주 풍부하다.  바래봉에 올라서 잠시 쉬고 난 후 덕두산을 오른다. 마침내 태극을 그렸다.  덕천강 어귀에서 시작된 태극은 내게 살아온 45년의 시간을 모아 생각하게 했고 소중한 이들과 가족, 좋은 벗들 그들을 나의 심장에 새기게 했다.  때로는 길을 찾지 못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첫날의 수양산에서부터의 달뜨기능선은 큰아들녀석의 한마디의 말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출발하던 날 밤 배낭이 예상보다 너무 무거워서 어쩌면 빨리 집에 올 수도 있다고 했을 때 이 녀석이 나에게 “ 아버지는 절대 포기하지 않으실 걸요” 라고 했던 말이 나와 함께 했고 작은 아들녀석의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가 힘을 주었고 사랑하는 아내의 표현하지 않은 마음이 또한 그렇했다.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이제 내가 살아가면서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위해서 기도하며 마음을 나눌 벗들이 있음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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