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으로 출렁대는 영남알프스에서 어머님을...

2007.10. 06(토, 맑음)

동대구터미날(07:00)→언양IC(08:30)→석남사주차장(09:00~10)→가지산능선(10:10)→능동산(11:20~30)→배내고개(12:00~10)→배내봉(12:30~40)→전망대(13:20~50)→간월산(15:10~20)→간월재(16:00)→신불산정상(17:00)→에베로릿지갈림길(17:30)→영축산정상(17:50)→골프장(18:20)→통도사터미날(19:30~50)→경부고속도로정류장(20:00)→동대구(21:40)




찬이슬 내린다는 한로가 이틀 앞이니 조석으로 제법 서늘해 졌다.
태풍이 접근하면서 일요일엔 전국적으로 비 온다는데 오늘은 모처럼 맑다.
어머님 기일도 다가오고 공사현장 철수도 이달말로 예정되었으니 10월도 바쁘게 지나갈 것 같다.

진즉부터 설래이는 맘으로 기다렸던 영남알프스
다음주 산하가족들 신불산 예정되어 있지만 이래저래 동참할 수 없을 것 같다.

모처럼 기회가 왔으니 무작정 동부터미날을 찾아간다.
이른 새벽 동대구역행 전철은 50~60대 분들이 대부분이다.

동대구역에서 동부터미날을 물어가며 달려갔건만 울산 경주행은 있는데 언양행은 동대구역 고속터미날에서 출발한단다.

동대구역 지하철 출구 바로 옆에서 07:00 출발하는 부산행인데 고속도로 운행중 여러번 들락거리면서 경주 지나 언양IC 간이 정류장에 내려준다.


화창한 날씨에 우뚝 솟은 신불산과 간월산 그리고 저멀리 흰구름 아래 살짝 보이는 가지산 참으로 반갑다.
이게 몇 년만인가?

언양 버스터미날에서 매표하자마자 석남사행 버스를 찾으니 막 뒤로 물러나면서 어서 타라한다.
차창밖으로 신불 간월산 가지산 준령들을 바라다 보니 석남사 주차장인데 많이 달라진 모습이 서먹하다.

점심거리 찾다가 한계령 막걸리 한통과 구운 계란 한줄 배낭에 넣고 공비토벌 기념탑 쪽으로 오른다.

4년만에 다시 거닐어 보는 이 길
제법 서늘해진 가을바람 맞으며 한적한 소나무 숲길 오르니 멀리 떠나 객지생활하다 어머님 뵈러 가는 기분이다.

건너편에 쌀바위, 상운산, 귀바위도 예전 그대로 반갑고 계곡 아래 석남사도 늘 그러하듯 오늘도 조용하다.


가지산과 석남터널 갈림길에 서니 중봉이 내려다 보시며 가지산 신령님 뵙고 가야지 하는데....
눈인사만 드리고 아쉬운 발걸음 돌려 능동산으로 뻗어내린 완만한 숲길로 달려간다.


숲사이로 가끔 보이는 얼음골, 재약산, 백운산, 가지산과 운문산을 이어주는 주능선 잠깐씩 바라만 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능동산 억새숲에 앉아 한계령 곡주 맛을 보며 이곳저곳 세세히 눈인사 드리고 배내고개로 내려간다.





예전보다 넓어진 주차장 지나는데 군밤과 잉어가 잠깐 쉬고 가라길래 2천원에 5마리 먹고 배내봉을 향한다.





능선이 가까워지면서 여기저기 하얗게 피어난 억새들이 반겨주는데 저멀리 재약산 주변도 서리 내린 듯 하얗다.





배내봉에서 간월산까지 이어지는 유순한 능선길도 예전같이 푸근하고


바로 아래 등억온천과 언양시 저멀리 울산시와 문수산도 고향처럼 반갑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 간월산이 한눈에 보이는 지점에서 곡주와 양갱으로 에너지 충전하고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 보며 4년전 오늘의 어머님을 그려본다.












심근경색으로 가끔씩 옥죄이는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시며 어서 빨리 가야할 텐데 하셨던 어머님.
힘들어 하시는 어머님을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으니....

따뜻한 물수건으로 가슴과 등을 마사지 해 보지만 그것도 잠시잠깐일 뿐,
이내 몸은 멀리 울산으로 떠나와야 했으니....

떠나는 아들녀석 뒷모습 바라 보시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임종을 홀로 맞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더욱 불안해 하셨을 어머님.

이번이 마지막이 될 런지도 모르는 상황인 줄 알면서도 짐짓 괜찬을 거야 하면서 냉정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야 했으니.....

불안한 중에 홀로 많은 시간을 보내셔야 했던 어머님
모두가 곤히 잠든 긴긴 밤은 더더욱 견디기 힘드셨지요.

밤시간에 더욱 자주 괴롭히는 통증을 침묵으로 감수하시며 그저 속히 죽음만을 고대하셨을 어머님.....

차가운 중환자실 침대위에 홀로 모셔놓고 가족과 단절된 중에 임종을 맞게 하는 것 보다는 손주와 함께 하는 따뜻한 방에서 잠시만이라도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님 곁엔 아무도 없고 말씀을 들어줄 자도 없었으니 .....

일을 핑계로 멀리 떠나 노쇠현상이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저역시 솔직히 포기한 듯 했으니 참으로 불효자식입니다.

계속되는 기침과 죄어드는 가슴 통증으로 긴 밤을 고통중에 지세우시고
새벽녘엔 심장도 더 이상의 활동을 멈추고 그만 혼수중에 깊어지셨을 어머님...

자식들 애써 키워 놓아도 가실 때는 소용이 없었으니....
어머님 정말 뭐라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날도 전 오늘의 이곳 능선을 거닐고자 석남사행 버스안에 있었지요.
어머님 하늘길 가실 때 뒤따라 날아갔지만 어머님 얼굴은 뵈올 생각도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만 다녔으니.....

한 번 만남이 있으면 이별 또한 정해져 있다지만 잠시잠깐의 인연으로 살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자식들을 위해 어머님은 모든 것 바쳐 가시는 그 날까지도....

어머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자식 걱정이었으니 지금도 하늘에서?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했으니 보이는 자식 영원한 것 아니지요.
이젠 모든 것 잊으시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어머님.

건너편에 우람하게 솟은 간월산과 신불산엔 어느새 땅거미가 드리우는데 간월공룡에만 석양빛이 남아 있다.








간월정상에 이르니 저 아래 신불재까지 많은 차량들이 올라와 있다.











사면엔 온통 하얀 억새들의 향연이 한창이다.
저 녀석들 하나같이 꽃을 피우고 연신 나플거리니 조만간에 온산하가 색동옷으로 갈아 입혀질 것 같다.















많이 변해버린 신불재 지나 예전에 다녔던 길을 보니 폭우로 유실되어 폐쇄되었다 한다.




신불공룡으로 하산할 생각으로 발걸음 재촉하는데 저 아래 건너편 영축산까지도 광활한 억새들의 향연이 대단하다.


어떤 산님께 부탁하여 기념사진 찍고 하산길 이야기하다보니 야간산행까지 생각하고 통도사로 하산 예정이라며 통도사 시외버스터미날엔 대구행 버스편도 많다 하신다.


등억리에서 언양행도 뜸한 편이니 차라리 그쪽으로 하산함이 좋겠다

석양에 땅거미 드리워지는 신불공룡과 신불산 정상석에 인사하고 억새들판길 지나는데 햇님은 더욱 빠른 속도로 기울져 간다.







에베로 릿지와 아리랑 쓰리랑릿지는 벌써 잠자리에 들려 하고
하얗게 나플대던 억새들도 어느새 황금 옷으로 갈아 입었는지 온통 불그스래 하다.













한줌의 흰 구름이 영축산을 스치더니만 햇님은 더욱 나약해진 모습으로 구름속에서 잘 가고 또 오라 하시는데..
마치 어머님처럼.....



임종을 앞둔 시점에선 석양처럼 매우 신속하게 기울져 가는 법인데.....

중년기는 대낮의 강렬한 태양처럼 변화속도를 감지하기 어렵지만
장년기와 노년기는 심신의 변화속도가 빨라 세월의 빠름을 더욱 느끼게 되는가 보다.

사방이 신속히 어두워지는데 저 아래 환타지아와 골프장 불빛이 자기쪽으로 하산하라 한다.


아무것도 준비 못했는데 달빛도 기대할 수 없어 은근히 걱정된다.
사면 숲길 지나 임도에 이르니 깊은 어둠에 잠겨 버린다.

수없이 임도를 가로 지르며 조심조심 내려가니 골프장 불빛이 더욱 가깝고 갈대숲 능선길에선 조금 환한 편이다.

갈대숲이 어깨 높이로 빼곡한지라 혹시 잘 못된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는데 다행이도 골프장과 환타지아 불빛을 계속 볼 수 있다.

드디어 허름한 문을 빠져 나오니 건물이 보이고 환타지아 앞을 지난다.

시외버스 터미널 옆 식당주인에게 물어보니 대구행은 경부고속도로 옆에 있단다.
곧바로 짜장면으로 응급조치 하고
고속도로 밑 터널로 나와 정류장 찾아보니 마침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는 버스 불빛이 보인다.


대구 - 부산간 운행되는 고속도로 경유 직행버스는 40~50 간격으로 운행(대구행 막차는 통도사 정류장에서 20:30) 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산하가족 여러분 그동안도 안녕하시죠.
올해도 여지없이 하얀 억새물결 일렁이니 가을도 깊어가는가 보지요

여러분들이 물심양면으로 수고하여 준비하신 신불산행모임
평소 감동을 주신 산님들 뵈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동참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는 군요.

산하가족 여러분
낙엽 흩날리는 산길 거니시며 자연이 주시는 선물도 많이 받으시고 심신이 늘 평온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