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님의 06/09/28일자 글 "설악산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이 안된이유" 를 읽고 나니, 몇년전 늦가을 내설악 백담사를 찾았다가 보았던 가슴 아픈 광경들에 대한 씁쓸한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좁은 국토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이지..라고 변명을 하기엔 너무도 생각없이 너무도 빨리 그리고 너무도 쉽게 망가지고 사라지고 있는 '한국의 산하'가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을 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百潭 有感>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 중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것이 있었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아가는 어느 시골 농부에게 황금알을 낳는 신기한 거위가 있었단다. 매일 한 알씩 낳은 그 황금알은 농부의 어려운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고그러던 어느 날 착한 그 농부에게 문득 邪心이 발동하게 된다.

거위 배를 갈라 그 속에 있을 모든 황금알(?)을 일시에 꺼내 내다 팔면?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가난도 이제 끝 아니겠는가? 농부 마침내 거위의 배를 가르다......하지만 농부가 확인한 것은 일확천금을 안겨줄 황금알 무더기가 아니라 피비린내 진동하는 내장과 한 줌의 고기덩어리뿐 이었단다
.욕심이 과하면 눈이 멀고 눈이 멀면 회복불능 통환의 후회를 곰씹게 될 뿐이다.

다시 찾은 11월의 백담사에서 그 우화를 생각하다. 諸行이 無常이라. 어찌 모든 것이 변치 않고 동일하기를 바라겠느냐 만은 25여년전 용대리에서 부터 내 키만한 배낭을 짊어지고 씩씩하게 산속으로 스며들면서 감동적으로 바라 보던 절경의, 천혜의, 그 백담사 가는 길 그리고 그 백담사 계곡 풍경..그리하여 내 마음속에 영원히 우리 산하, 우리 자연의 대표적 아름다움으로 각인되어 있던 그 산길이...여전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그래도..그래도..최소한의 추억은 할 수 있기를 기대 하였거늘
.....

백담사가는 5키로의 그 산길 계곡길은 파헤쳐져 조악한 시멘트 포장길이 되어 버스가 다니고 있었고..그 길 마져도 직선화(?)를 위해 계곡 여기 저기에, 먹이를 앞두고 탐욕스러운 침을 흘리는 야수의 모습처럼 놓여 있는 험악한 주황빛 포크레인의 모습을 보다. 우리 설악의 품위, 우리 설악산의 존엄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있는 그 파괴의 모습에서 深山幽谷 山寺의 신비스럽던 모습은 간데 없고 유원지화 되어 가는 그리하여 조금은 희극화되어 가는 백담사 그리고 백담사 가는 길의 모습에서 가슴 저리는 회환을 맛보다
.

산행 동료들의 싱그러운 웃음 소리와 땀방울이 서려있는 그리고 투명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리 기쁜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을 얘기하던 그 깊고 깊은 산속, 계곡 물소리 가득하던 내 마음속 백담산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시골 읍내 먼지 가득한 초라한 구멍가게 같은 모습의 백담산장을 보다
2018년에 세계 핵전쟁이 터진다는 둥 횡설수설하는 그 산발의 산장지기 모습에서 눈물처럼 사라져간 내 싱싱한 젊은 날을 추억하고 반추하고 싶었던 작은 희망은 조각난 유리 거울 처럼 산산히 부서지다...  

山寺의 식구들....그들도 도를 닦는 승려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인 것을 이해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러하기에 4천원씩이나 하는 입장료와 2천원의 왕복 버스 요금 수입이 탐이 날 수 있겠고 그러하기에 심산의 고요한 산사로 남는 것 보다는 도심의 절처럼 수많은 탐방객에 대한 호객행위(?)에 욕심이 날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난도질하듯 계곡 길을 파헤치고 산 자락을 가르고 그 지긋지긋한 시멘트 포장 길을 뚫어야겠다는 유혹을 억제하기 힘들수도 있겠고.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우리 영토의 뼈대이자 이제 어쩌면 우리 민족이 보유하고 있는 마지막 자연 일지도 모르는 그 백두대간 한 가운데 깊고 깊은 산속에 내 마음의 보석처럼, 늘 새벽처럼 신선한...그러하기에 자주 찾지는 못해도 생각만으로도 혼탁한 속세의 때를 씻어 주었던, 내 마음 속의 대자연, 마음속의 내 젊은 그날의 백담이...무언의 비명을 지르며 영원히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던 농부의 그 핏빛 탐욕과 오늘날 심산을 파헤쳐 시멘트 길을 내어 몇 푼의 입장료 수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그 절집 스님들의 모습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생각을 해보다.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내가 내 푸른던 젊은날에 경험하였던 그 가슴 벅찬 백담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듯 우리의 아이들도 그들의 젊은 날에...내가 느끼던 그 백담과 다르지 않는..그 깊은 자연 속에 푸르고 장엄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백담을 영원히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님이 이 백담을 꼭 지켜 주십옵서소....하고 진심으로 빌어 보았다..

<
세계 꽃 박람회>라는 그 어설픈 일회성 행사를 치루기 위해
.수천년 동안 간직하여 왔을 밀가루처럼 곱고 희고 아름다웠던 긴 모래 사장을 일순간에 흙빛 자갈밭으로 전락시킨 안면도 꽃지 바다의 흉직한 모습을 다시 보았을 때……..순간을 살다 가는 인간의 하찮은 탐욕이 초래하는 긴 세월의 재앙을 생각 했었는데 ..또다시...순수하고 품위 있던 모습은 사라지고 짙고 천박한 화장빨에 요사스러운 웃음을 파는 창부의 모습에 비유될 만큼 저주스러운 그 백담 파괴 현장을 보면서....도데체 우리는 언제까지 거위의 배를 가르는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그 자연 파괴행위를 반복해야 하나...하는..서글픈 절망감을 느낀 그런 백담 여행이었다....<2004. 11 .14 常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