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 2006년 3월 26일 (토요일)

 

 

해는 벌써 오래 전에 저물었고

봄이 오는 춘삼월에야 새롭게 한 해가 시작되는 느낌이 온다.

봄이오면 붉은 황토 밭을 뒤덮는 푸른 보리밭이 그리워지고

푸른 바다의 화폭에 노란 화사함을 수놓은 유채 꽃이 보고 싶고

섬처녀 같이 수줍은 연분홍 진달래 미소를 먼저 만나고 싶다.

 

 

봄이 온다기 섬으로 갔다.

추억과 그리움을 뱃전에 달고.

잘 접혀진 기다림이 남아 있는 곳

늘 망설이기만 하는 봄이 그 섬에 돌아와 있을까?

무엇을 보고 싶은지도 잘 모르는 막연한 그리움을 따라

섬으로 가는 길

 

 

섬에 갈 때는 다 버려라

살아 가면서 따라 붙는 쓸데 없는 고민과

우스꽝스러운 비밀들

내가 누구의 아버지이고 남편인지

내가 살아가기 위해 무슨 일을 하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인가?

하늘과 바다가 함께 푸르른 오늘은

 

 

 

가져갈 건 몇 개

나 혼자와

푸르름이 쉽게 번질 수 있는 마음의 빈 노트

희미하게 빛 바랜 섬의 추억과

봄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여린 가슴 하나

 

 

가는 길

맵시 있는 달이 웃는다.

가끔 스쳐 지나는 불 빛이 나 혼자만이 아님을 일깨우는 섬으로 난 도로

 

 

점액질의 밤을 질러 푸른 새벽이 달려오고

산의 실루엣이 희미한 기지개를 켠다

보리밭이 푸릇푸릇한 곳에서 새벽의 빗장이 풀리고

붉은 축복이 쏟아져 내리는

섬으로 가는 길

 

 

바닷바람이 차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섬으로 가는 사람들

다도해의 꿈은 뱃전을 수런거리게 하고

사람들 표정엔 기대와 흥분이 가득하다

 

 

그날 그 섬에 있었네

눈부신 햇살이 바다에 부서지고

푸른 바다를 건너온 봄이 섬으로 오르던 그날 

 

 

아지매에게 묻는다.

조용한 섬에서 살아 가는 게 좋지요?

어데예 공기 좋고 물가 헐하고 다 좋은디 너무 외롭소

옛날엔 몰랐느디 요즘 몸이 쪼매 아프니 병원 댕기는기 보통일이 아임니더

 

 

섬이 갖는 의미란  

오래 잃어버린 고독과 고립과의 조용한 해후

그리고 희미한 추억에 실리는 쪽 빛 바다의 설레임  

 

 

그래서 섬에서 살지 않기로 했다.

생활이 거두어 가는 가슴 떨림이 두려워

잘 길들여진 도시의 회색 둥지에서

준비된 안락함과 편암함 그리고 가끔은 적당한  권태 속에 둥굴다가

한번씩 날아오르는 거지

푸른 창공을 마시며

푸른 바다의 눈부신 햇살 속을 비상하는 새가 되는 거야

섬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없는 섬으로 갔다. .

너도 나도 섬으로 가서 너무 소란한 섬과

오히려 쓸쓸할 도심

태양빛이 너무 눈부시고 해사한 어느 봄날

 

 

황홀한 고독의 빛을 따라 하도로 건너간다.

버스가 떠난 후의 고요함

낚시꾼들 몇몇이 떠나 버리고 혼자 남겨진 덕동 포구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만났다.

수조차에 물고기를 운반하는

포장된 도로 한가운데가 개인 땅인데

포장을 허락하지 않아서 저렇게 남아 있데요…”

참 고약한 사람들이지 도로에 편입된 땅인데 공연한 심술입니더

맨날 이 길을 댕겨야 하는데 차가 망가지는게 걱정시럽심더

통포가는 내내 아저씨가 들려준 말이다.

섬에는 관광객의 북적거림도 없고 그저 조용한 일상이 흐르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흐드러 지게 피었다.

 

 

통포

그림 같은 바다 풍광을 바라보는

해풍이 그렇게 가슴을 풀어헤치는 조용한 섬마을

바닷물이 하늘 빛인 섬의 뒷편에 내가 서있다.

구부정한 할머니가 소를 끌고 아들이 쟁기 방향을 잡는다.

개미의 일손을 방해하는 얄미운 베짱이가 미안해서

길을 묻지 못하고 한참을 배회하다가

나무 등걸에 매달린 붉은 리본 하나로 길을 잡는다.

섬위에 솟아 있는 산

 

 

 

화창한 날씨에 바람은 시원하다.

잔잔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조용한 섬마을의 풍광이 평화롭다.

모든 것 다. 잊어 버리고 하얀 머리인 채로 바위에 선다.

그저 봄바람이 좋고

붉게 피어 준 진달래가 고맙고

푸른 새순을 피워낸 나무들이 반갑다.

 

 

아무 생각 들지 않은 이 시간이 좋다

나 혼자 수다스러울 수 있고

가던 길 가던 게으름 피우던 내 맘이라 좋고

복잡한 일상을 가슴에 담지 않아서 좋다.

사람이 산다는 게 단순한데

이렇게 단순한 날이 꿈 같은 건 왜 일까?

 

 

오래 전부터 봄을 먼저 실어 나르던 섬

장구한 세월을 한결 같이 그 자리에 있고

또 오랜 세월 그 자리에 남아 있겠지만

세상의 많은 것처럼 또 그렇게 변해 가는 섬

위섬에 이젠 가고 싶지 않은 것처럼

더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통포와 읍포의 호젓한 산행로를 욕심 내는 날

섬에서 그리움이 떠나는 날

내가 그 섬을 떠나는 날

 

 

수많은 섬들이 먼저 꽃을 피우고 나비 날릴 텐데

나는 한적한 섬에서 봄 꽃이 피는 모습을 몇 번이나 더 바라볼 수 있을까?

몇 번 더 봄이 오는 섬이 그리워 질까?

몸과 마음이 함께 늙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만

마음이 먼저 늙어가지 않기를 

아름다움에 쉽게 흔들리는 가슴

콧날이 시큰한 감동이 언제나 내 곁에 남아 있기를

 

 

보아라 세상이 얼마나 눈부시고

봄 빛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모두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날씨가 더워 봄 옷으로 바꿔 입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바라보며 능선 길을 간다.

봄의 화원으로 가는 길

마늘이 웃자라고  푸른바다와 초록 빛 보리밭이 해풍에 눈부시는 곳

진달래가 피고 산수유는 벌써 지려하고 있다.

산 벚 꽃과 목련이 흐드러지고 벌써 나비가 나폴 거리는 섬

 

 

무슨 소용일까?

눈부신 봄

황홀한 바다

여기 저기 피어 나는 소박한 들풀과   화사한 꽃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이 섬에 있지 않다면

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섬을 떠난 봄이 내 회색 둥지에 봄 향기를 전해올 때만 기다렸다면

 

 

분명히 돌아갈 곳이 있어서 좋다

자연

그 속의 하나의 물상인 나

그곳은 내 삶의 비무장지대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란

한 폭의 그림에 실린 정갈한 한편의 시가 아닐까?

그림 같은 섬들이 떠 있고

그 너머는 하늘과 바다가 푸른 빛으로 동화되어

푸른 물감처럼 번져 있는 그림

그리고 그 위에 가슴으로 쓰는 서정시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더군

글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섬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되지

혼자만의 동행

봄에는 늘 혼자 떠나는 버릇이 되어

동행이 불편해지더군

변화하는 계절 속의 자연에 대한 갈망과 욕심이 지나쳐

동행마저 질투하는 이기적인 나

산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흠뻑 취하는 나르시즘

하지만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네

 

 

아쉬운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여하한 이유로 흘러 보내는 수많은 것들

변하는 계절의 기쁨

움직이는 자연의 아름다움

우리가 한탄할 그 무엇은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을 흘려 보내는 것

 

 

인생성공 단십백을 아나?

한평생을 살다가 죽을 때 단 한명의 진정한 스승과 열명의 진정한 친구

그리고 백권의 좋은 책을 기억할 수 있다면 성공한 거라더군

난 한 명의 진정한 스승과 한 명의 진정한 친구

정말 좋은 한 권의 책을 알고 있지

자연

 

 

바다가 보이는 읍포 초등학교

더 낡고 쓸쓸한 모습으로 벚 꽃과 목련을 피어 올렸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사라진 교정에 머무는 나른한 봄 빛

사방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닭들이 사람을 무서워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