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숙제를 풀고 나서.

-언제: 2005.09.23.
-누구와: 산노을님.
-어디를: 쇠통바위능선과 미완의 선유동계곡.


<고마리>

-산행기를 읽기 전에.
이 산행기는 지난번 산행기(9/12  산행기 8166번) ‘남부능선에 뻗은 계류를 찾아’ 의 후속편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그때 미완의 선유동계곡 산행이 마음속 찌꺼기로 남아 있어 결국 11일 뒤인 오늘 숙제를 풀고 나서 이 산행기를 쓴다. 그리고 한가지 깜짝 놀란 일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리의 산행이 2004.2.4 배재길님의 산행일정과 어쩌면 이렇게 같을 수 있을까 하면서, 더욱더 믿기지 않은 것은 U턴 했던 위치까지 같을 수가 있었으니……

요즈음 이곳 날씨가 새벽이면 한두 차례 비를 뿌리고 희뿌연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아 부을 것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충청지방과 경상지역에 많은 비가 내려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추수의 기쁨을 만끽해야 하는 그곳 농부들의 마음은 심난한 마음을 대변하는 냥 불쾌지수만 높이고 있다. 연속되는 휴일 속에 천관산으로 갈까 가지산으로 갈까 마음만 주다가 이틀을 보내고 오늘 아침에도 날씨상태로 봐서 별로 내키지 않은 산행을 해 보기로 한다.


<선유동 계곡의 이끼>

평상시 보다 늦게 출발한 탓도 있으려니와 밀려드는 출근 차를 피하다 보니 의외로 길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8시 30분에 선유동 매표소로 들어선다. 이 시간에는 출근했겠지 하는 마음에 준비를 하였는데 덕분에 공짜라……
쇠점터 지나 단천교 건너 좌측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오늘의 산행은 시작된다. 단천마을 청년회(?)에서 걸어놓은 프랑카드가 추석의 여운을 남기며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 고향에도 그렇듯이 요즈음 젊은 세대들 모두가 힘든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마을 청년회라고 하지만 50~60에 가까운 나이에도 청년회의 구성원이 되고 있단다.


<용추폭포골 본류>


<쇠통바위 능선 가는 길>

-산행시작.
시멘트 포장된 길을 따라 오름은 이어지고 있었다.
혹시 단천마을까지 올라가는 차편이 걸리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 보면서…… 이윽고 첫 번째 우량관측탑을 만나 직진길(단천마을)을 버리고 우측의 다리를 건넌다. 길옆 밤나무에서 떨어진 알밤들이 우리를 유혹하였지만 분명 임자 있을 것 같은 농작물에 손을 대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우리 앞에 마주 오던 코란도가 멈춰서더니 ‘어디 가십니까? ‘산에 가는데요’ ‘산에 가는 줄 몰라서 묻는 줄 압니까? 하는 사이에 산노을님이 거든다. ‘용추폭포 갑니다’ 하는 말에 요즈음 이곳에 단속이 심하단다. 재수 없어 걸리면 00 이니 하면서 차를 어디에 주차 시켜 놓았냐 하면서 그곳까지 태워 주겠다는 식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을까마는 정중히 거절 하면서 ‘저 사실 용추폭포에서 사진 몇 컷만 찍고 오려고 합니다’ 누구신데 이렇게 친절을 배 푸느냐고 물었는데 50이 훨씬 넘어 보이는 그 사람은 단천마을 청년이란다. ㅎㅎㅎㅎ




<용추폭포의 비경>

농로가 거의 끝날 무렵 밤나무 단지로 들어선다. 이곳 역시도 많은 밤들이 널려 있다. 밤나무 단지 사이를 미로처럼 파고들어 계곡을 건너고 또 건너 단천골과 용추폭포(우측)의 갈림길에 닿는다. 그냥 스쳐 지나 갈까 생가 했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지리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보니 바위 홈을 타고 미끄러지는 모습이 마침 용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며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용트림의 기운이 감돈다. 키 작은 산죽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오르고 한참은 계곡과 멀어 진가 싶더니 710고지에 들어서 양쪽으로 흐르는 지계곡을 건넌다. 사면길이 계곡과 만나더니 계곡을 따라 잠시 오르니 계곡 본류 건너기 전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나 돌아 갈 곳’ 산행 중에 이 시그널을 만나면 나는 마음 속으로 ‘나 돌아 버리겠네’를 외친다.






<이끼 천국에서>

-이끼천국에서.
본류를 왼쪽에 두고 845고지 이끼천국에 와 있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집채만한 바위에는 오랜 세월을 말해주듯 이끼 위로 앙증맞은 바위딱풀이 피어 있다. 어느 해 태풍으로 뚝 부러진 아름드리 전나무와 주목들이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쓰러진 고목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군데군데 피어 있으며 여기에 흐느적거리는 나무덩굴들이 마치 원시 밀림의 탐험 길에 올랐다면 지나친 나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까?


<1000고지 이상에서 운무>


<고도 1120에 있는 비박터>

-운무가 안개비 되어.
1000고지 이상에서부터 시작되는 운무가 주위의 조망을 용납하지 않겠단다. 그럼 어떡하랴 자신의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갑자기 고도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경사각 70도를 넘어서는 길이다. 바위 밑의 비박터를 지나 또 다시 갈림길에 들어선다. 우측의 길은 아마 선유동 계곡으로 빠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위험스러울 정도로 급경사의 암봉의 군락지를 타고 오르면서 왜 이곳에 누군가 보조 자일을 해 놓을 법도 한데 하면서 답지님을 생각 해봤다. 겨울에는 정말 위험한 코스라 생각된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찾아보면 우회하는 길은 다행이 열려 있었다. 이미 안개비로 인하여 온몸은 젖어 있는 상태이며 위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이 타고 내려가 양말까지 젖어오고 있었고 키 높이의 산죽을 지날 때마다 느껴지는 감촉은 한마디로 껄쩍지근 하였다. 산노을도 행여 지루하게 느껴졌던지 자꾸만 나에게 고도를 물어보곤 한다.




<선유동 계곡의 이끼류>

-남부능선에서.
고도상으로 지금쯤 능선에 닿지 않을까 하기를 여러 번 생각 했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걷는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동물적인 감각으로 능선을 향해 가는데 의외로 안내판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했던 코스인 수곡골을 향해 간다. 지리 표시석 15-14를 지나 내삼신봉 아래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쉬었다. 날씨가 추웠다. 젖은 양말을 쥐어짜고 있을 때 산노을이 한마디 거든다. ‘나는 양말까지 젖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야 러셀을 누가 했는데’ 하고 퉁명스럽게 내 뱉었다. 솔직이 이때까지만 해도 코스변경은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나에게 물어 온다. 수곡골 능선상의 들머리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2시간 걸린다고 하였더니 그냥 선유동계곡으로 내려가자고 유혹을 한다. 순간 앞으로 산죽의 안개비를 털면서 헤집고 가야 할 능선이 까마득하기만 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유혹은 아직 미완으로 남겨진 선유동계곡의 능선상의 길 찾기 다.


<선유동 계곡의 1050고지에서>

-밀린 숙제를 풀러 가자.
가자 선유동 계곡으로 밀린 숙제를 풀러 가자. 다시 U턴하여 상불재로 향하였다. 지난번에 이 길을 찾지 못하고 산죽 밭에서 헤맨 고생들이 어디에서 잘못된 산행인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정표의 헬기장 내리막길에서부터 우측의 들 머리를 찾으면서 내려오는데 의외로 들 머리는 쉽게 열려 있었다. “등산로 아님” 팻말이 선유동 계곡과 국사암능선의 들 머리가 될 줄이야. 이곳에서 지능선을 따라 10~15여분을 내려 가니(1170) 우측으로 길이 열려 있다. 이번 태풍 나비의 흔적이 이곳에도 유별나게 흐트러진 모습이 혼란스러울 정도이다. 썩은 잡목들이 우리의 갈 길을 훼방 놓고 있으며 아직도 사위는 온통 운무에 싸여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내 보이지 않는구나.


<지난번 잘못 선택된 선유동 계곡 지류에서>

-그래 그렇구나.
1050고지를 벗어나고부터는 다시 펼쳐지는 주위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 온다. 또 다시 심혈을 기울어서 내려가야 한다. 이따금씩 계곡 사이의 능선이 시야에 들어 온다. 전체의 윤곽을 보니 지난번에 우리가 900고지에서 왼편의 지능선으로 산행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고도 840 에서 너무도 빨리 좌측의 지능선으로 올랐던 기억의 산길을 찾았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지난번의 산길을 기억하면서 내려오는데도 몇 군데에서 그래도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이곳 지리가 언제쯤 내공이 쌓일는지 덕분에 매표소 뒤의 산길도 확인 하면서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에필로그>
언젠가 나의 산행스타일을 얘기 한적이 있었다.
한번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3번의 산을 오른다고. 첫 번째 산은 오르기 전에 준비의 산을, 두 번째 산은 직접 올라가는 체험적인 산행을 말하며, 세 번째 산행은 다녀와서 눈을 감고 기억의 지도를 떠 올리는 복기의 산행 즉 산행기의 산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나의 3번의 산행스타일에 변화를 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첫 번째 산행이 문제인 것 같다. 비록 오늘도 후회 없는 산행은 아니었지만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항상 지리산의 가이드 역할을 해 주시는 다람님과 이곳 지리99사이트에 감사 드립니다. 항상 이루고 나면 아쉬운 허탈감이 나오듯이 미완의 선유동 계곡을 마치고 나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 다른 수곡골의 양진암이 한동안 마음 한구석에 차지하고 있겠지……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2005. 09.26.
청산 전 치 옥 씀.




<단천교 위에서 산행을 마치고 /야생화>

-일정정리.
08:45 산행시작(단천교 위 공터)
09:10 두 번째 우량 관측탑(500)
09:25~09:35 용추폭포(575)
09:37 갈림길(우: 계곡으로 향함/능선으로 올라야 함)
10:00~10:05 작은 지계곡 건넘(710)
10:15 계곡 건넘(780)/’나 돌아 갈 곳’ 시그널 발견
10:25 좌측에 계곡을 두고 이끼천국 오름(825고지에서)
11:05 바위 밑 비박 터(1120)
11:13 갈림길(우: 선유동계곡으로 빠질 듯)
11:18 전망바위(1190: 시계 불량)
11:46 헬기장(1200)
12:04 남부능선 만남(1290)
12:25~12:40 내 삼신봉 아래에서 점심.
12:53 원위치(쇠통바위능선 날 머리로)
13:11 헬기장 이정표 1340(삼신봉3.2/세석10.7/쌍계사5.8)
13:20 국사암능선 들머리(1300)
13:32 국사암능선과 선유동계곡 갈림길1170(시그널 발견 ‘산경표님’)
13:50 1025 계곡 상부(이끼천국)
14:35~14:52 800고지에서 휴식.
16:05 감나무 밭(380)
16:00 산행종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