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산코스 :

1.1.1.1.1.1.1. 1부 산행 : 낙남 미결 <약 3시간 10분 소요>망천고개(05:33-38)→인성쓰레기공장 뒤 도로(06:47)→벌거숭이 무덤(07:05)-낙원공원묘지(07:21)→조식 및 휴식(07:45출발)-괴정교회 부활동산에서 右回-정맥길 복귀(07:52)-까막골재(07:54)-운동시설(08:18)-쇠금산(08:20)→ 덕운봉(08:24)-덕암묘지(08:38)-누릉내미고개(08:48)


 

②2부 산행 : 자암산(봉화산)

   봉화산 들머리안내도(10:09)-실폭포 및 토굴(10:15)-마애불(10:21)-목교(10:23)-사명대사상(10:32)-봉수대,사자바위(10:36)-관음상 옛터(10:54)-호미 든 관음상(10:55)-정토원(11:02)-약수암(11:10)


 

2. 산행거리 : 합계 11킬로미터

3. 산행일시,날씨 : 2008.7.6 일 합계 4시간 7분 ,맑음, 습도 40%이하

4. 산행인원 : 홀로 산행

5. 산과 마을 유래(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망천 마을  :  동리 앞에 내(川)가 있는데, 그 내를 바라본다 하여 망천이라 함

  -금음 마을  :  이 부락 뒷산 이름이 金音山이라 하여 금음이라 함

  -딱바위궁 마을  : 약100년 전에 딱바위가 있었는데 그 부근에 집을 지었다 하여 딱바위굼이라 함

  -까막골재 : 까마귀가 많이 날아든다고 해서 불린 지명이다.


 

  -누릉내미재(추정):  “내미”라 함은 냄새를 의미하는 경상도 사투리이고, “누릉”은 사투리체로 “누렁”의 변형이니, 누렁냄새나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쇠금산(추정) : 김수로왕으로부터 시작된 가야의 역사에 따르면 이곳 한림면은 금관가야중 구야국(狗邪國)의 영역으로서 “쇠 金”에 대한 신성시가 있었으며, 신천리나 명동리 쪽에서 볼 때 벌판에 우뚝 솟은 산인지라 쇠금산이라 명명하지 않았을까?


 

-무릉산  :  범곡의 남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자암산: 가락국 시대에 密陽 父巖, 生林 母巖이 있었으며 이곳 진영에 子巖이 있었다 하여 자암산이라 함

-봉하 마을 : 봉화산 밑에 있다고 하여 봉하라 함

-정사과 마을  :  마을뒤에 서울 정司果 묘가 있다고 하여 정사과라 부르고 장방리 중앙에 있다고 하여 중완이라 부르고 있다


 


 

6. gps data


 

1부 산행 : 낙남 미결 Cartographic Length = 8.195 km

Average Speed: 2.6 km/h

Maximum Speed: 31.1 km/h

Minimum Speed: 0.0 km/h

Total Time: 03:10:51


 


 

2부 산행 : 자암산(봉화산)Cartographic Length = 2.891 km

Average Speed: 2.3 km/h

Maximum Speed: 22.5 km/h

Minimum Speed: 0.0 km/h

Total Time: 01:16:37


 

7.游山記

-1부 산행 : 낙남 미결

어제 유정님이 데려다주신 찜질방에서 5시에 잠이 깨어 행장차려 나오니 선듯 소름이 든다.

부영아파트 앞에 나와 버스를 타고 망천고개 자이언트 가구백화점 앞에 내리니 5시33분, 고개 쪽으로 거슬러 올라 한창 건물을 짓기 위한 절토공사중인 237m봉 급경사를 올라가, 봉우리에 도착하니 벌서 비지땀이 흐른다, 어제 날씨와는 달리 하늘은 청명하지만 찜통더위가 될 것 같은 예감!


 

237봉에 서니 전망은 좋으나 진행하려는 서쪽으로 잡초가 우거져 길을 분간하기 힘들다. 겨우 우회하여 제 길을 찾지만 꼭 긴팔 옷이 필요한 가시덤불 길이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곤혹스럽다. 미처 예비 옷을 챙기지 못하여 어제 입던 얇은 셔츠로는 감당 못할 덤불숲을 거의 3시간이나 헤매게 될 前兆가 보인다. 표시기 보고 따라가지만 잡초 때문에 더 이상 진행불가! 띄엄띄엄 표시기가 있지만 풀이 워낙 무성해서 길인지, 아닌지, 또 정맥길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들다. 잘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나싶고, 다시 되돌이키기 몇 번...... 송전탑을 기준삼아 헤쳐가노라면 문득 다시 길은 이어지고  마루금은 성원ENT 회사로 표시되어있지만 공장 우측으로 이어진 잡목숲을 통과하여 쓰레기가 많이 쌓여있는 곳으로 내려선다.

쓰레기 더미와 건축폐기물을 거지꼴로 지나고 거푸 물을 들이키며 헤쳐 갈 길을 왔다 갔다 해보지만 gps track이 지워진 상태라 waypoint를 이용한 goto 항법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길이 우회하는 대로 alarm은 울려대지만 오르막길을 올라 벌거숭이 흙묘1기가 위치한 봉우리정상에 도착한 후 또 한숨 쉬어간다. 어제의 비단길과는 영 딴 판이라...


 

다시 미끄러운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가 깊은 안부에 도착하여 정면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28번 송전탑을 지나서 비로소 斜面 전체가 망자들로 포위된 낙원공원묘지 20000기가 펼쳐진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라 묘지 매점은 열지 않았고 몇몇 성묘객만 눈에 뜨이는데 화장실에 들어가 2시간 만에 온통 엉망이 된 옷차림을 정비하고 머리를 감는다. 잠시 쉬며 맛밤으로 아침을 때우고 위쪽의 능선을 잠시 따라가면 이정표 설치된 까막골재(매점이 있는 도로를 까막골재라 할 수도 있음)에 이른다. 슬슬 길 좋아지는 것은 금음산 등산로이기 때문일 것이고 아니나 다를까 운동시설이 눈에 뜨이니 의자에 벌렁 누워 쉬어간다. 다시 서서히 올라가 삼각점(밀양458,1998재설) 설치된 375.1봉인 쇠금산에 도착해보니  수풀 사이로 신천리의 건물들이 내려다보인다. "재한림 김해고 동문회"에서 정상석(350.8m)을 설치해놓았는데 지도상의 표고와는 20미터 차이가 나고 gps 상의 고도인 381미터와도 30미터 차이가 난다. 잠시후 아무 표시 없는 덕운봉을 지나니 이제부터는 불과 20분이면 영락공원묘지에 도착할 것이고 곧 까마귀와 까치가 어우러져 몰려있는 무덤가 도로에 내려선다. 이곳 이름은 현재 김해추모공원( 6000기정도가 있으나 아직 여유가 있는 듯 곳곳에 공터가 보임)인데 묘지 입구에는  영락공원묘지라는 표석이 있었다. 원래는 누릉내미고개에서 황새봉 분기점까지 올라가 병동리 무릉산으로 이어가고 싶었으나 초반 2시간에 진을 뺀 걸 생각하고 그만 물러서고 만다.


 

한갓진 오솔길을 풀잎 헤쳐 가노라면

이 길이 제 길인가 소스라쳐 맴맴 돌고

아서라, 여름 洛南이 사람을 잡는 고나.


 

산등성이 깎아 내려 사람의 殘在들을

파묻고 덮었으나 그것이 최선일까?

가는 길 말랑한 흙이 발길을 잡아주고.

(함민복 시인의 <뻘>을 마지막 연에 援用함)


 

2부 산행 : 자암산(봉화산)


 

어제 산행의 여운이 발로 남아 마찰로 쓸린 등산화 바람에 물집 터진 오른발에 신경이 영 쓰이지만 비록 무릉산 종주와 자암산 이어가기는 포기했지만 부근에 있는 진영읍의 봉하마을과 자암산(봉화산)을 들르러 간다. 덕암교차로가지 편승하여 김해택시를 부르면 call비 1000원 포함 미터 요금 16,700원에 잘 뚫린 14번 도로 덕에 봉하마을까지 20여분에 주파한다. 기사양반은 자기도 어제 무척산에 갔다 왔노라고 하며, 노대통령 덕에 택시 영업이 잘 되냐고 물었더니 주로 자가용이나 버스로 오기 때문에 별 덕은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하기야 마을 입구에는 김해시에서 고용한 사람이 일일 입장객 수를 적고 있기도 하였고...


 

역사 살피건대 김해 일대는 가야 옛터 중 구야국,반파국(김해시)의 영역이었고 이웃 창원시는 미오야마국,임나국(임나일본부의 근거가 되는...)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봉화산의 봉화는 숙종36년(1710) 경 제작된 김해부 지도를 보면 부산일대의 봉수체계가 성화야봉수→분산성봉수→자암산 봉수로 이어지는 데 이를 주민들은 가덕도 연대봉의 천성봉수대나 부산 녹산의 봉화산 봉수대에서 받은 봉홧불을 밀양으로 연결했다고 말한다. 또 김해읍지에 따르면 가락국에는 불교와 관련된 세 원찰(願刹)이 있었다. 무척산 모은암(母恩庵), 삼랑진 천태산 부은암(父恩庵)과 함께 자암(子庵)이 그것으로, 봉화산에 있었다는 것이다. 봉화산의 옛 이름이 자암산이었던 것은 이를 입증한다. 지금은 자암 터에 이 고장 출신인 선진규 스님이  1950년대 중반부터 정토원으로 願力을 일으켜 이 고장이 남방불교의 근원임을 전하고 있다. 정상의 호미든 관음상과 마애불 위를 누르고 있던 커다란 바위를 제거해 마애불이 자유로운 몸이 되도록 한 것도 역시 그였다.


 

 봉화산이 뛰어난 것은 넓은 들판에 홀로 솟아 조망이 기가 막힐뿐더러 작은 동산답지 않게 묘한 바위와 陰氣가 성하여 마을 사람들은 특히 고사리와 뱀이 많다고 말했다. 안내도를 다라 잘 정비된 산길을 올라가면 등로 좌측으로 좁다란 산길이 하나 보인다. 진입하면 너른 터로, 이 터 우측 바위 사이로 예상외로 깊은 굴이 보인다. 이 토굴이 방송에 방영되면서 한때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이 굴의 기(氣)를 받기 위해 몰려든 곳이기도 하다. 토굴 옆에는 물줄기는 가늘지만 3단쯤 돼 보이는 실 폭포가 있다.  이 정도 높이의 산에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것도 흔하지 않을 터! 조금 더 오르면 안내판 왼쪽 끝 바위틈 사이에 마애불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본래 있던 암벽이 떨어져나가 누워있지만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높이 2.48m. 봉화산 중턱 바위틈에 끼여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마애불(높이 240cm)은 통일신라시대 마애석불좌상이다. 봉화산 자연 암벽에 조각된 앉아 있는 석불인 이 마애불은 처음 발견을 할 때부터 산중턱 바위틈에 끼여 옆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있었다 한다. 누워있는 이 마애불에 깃든 전설 또한 재미있다.


 

옛날, 당나라 황후의 꿈에 한 건장한 청년이 나타나 자꾸만 황후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당나라 황후는 이에 神僧의 힘을 빌려 그 청년을 바위틈에 넣어 김해 봉화산의 석불이 되게 했다. 그 전설 속의 석불이 지금까지도 바위틈에 끼어 비스듬하게 누워 있는 봉화산 마애불이라는 것이다.


 

이 석불은 민머리에 상투 모양이 크게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3개의 주름(삼도, 三道) 흔적이 보인다. 석불의 코와 입 등은 부분적으로 깨져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없으나, 얼굴은 둥글고 아주 풍만하다. 석불의 지그시 감은 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듯하며,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U자형으로 자연스레 흘러내렸다. 이 석불의 손모양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른 손은 손바닥을 펴 어깨 높이에서 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있다. 왼 손은 허리춤에서 손가락을 아래로 향해 펴고 있다. 이는 오른 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풀어주고,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손모양은 주로 삼국시대 석불에서 나타나고 있고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석불로 추정된다.-마애불 안내판에서-


 

부엉이 바위로 가는 목교를 지나 봉수대쪽으로 올라가면 名板이 지워진 사명대사 상(像)과 봉화산 정토원이 나타나고, 곧 봉수대와 사자바위다. 사명대사상은 왜 세워졌으며 도 명판이 지워져 잊혀져가는 것일까?


 

노 대통령 생가 앞 주차장에서 봉화산을 바라보면 사자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바위 군을 볼 수 있다. 산 아래를 바라보며 호령하는 우측 바위가 사자머리고, 이 바위에서 왼쪽으로 치우쳐 떨어진 바위가 부엉이바위(표기는 부흥이)로 사자 다리에 해당된다. 옛날부터 부엉이가 많이 살아 붙여진 이름이라나? 이 사자바위는 가락국 이전 고대인들이 불교가 들어오기 전 제사를 올린 터로 알려져 있다. 바위 곳곳에는 움푹 팬 곳이 몇 곳 있어 이곳이 제물을 담은 監室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봉하마을이 발아래 오른 쪽으로 安穩하다. 노 전 대통령 사저와 생가 등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여기서 10여분간 신발 벗어들고 드센 하늬바람을 쐬며 부르튼 발과 심신에 精氣를 채운다. 그러나 내리쬐는 햇볕을 감당하기 힘들어 일러서 정상을 향하면 왼손에 연꽃, 오른손에 호미 든 관음개발성상이다. 수풀이 웃자라 조망은 관음상 기단위에 올라서야 한다. 관음상 뒤 동쪽으로 무척산을 중심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신어산 분성산 경운산과 어제 다녀온 불모산 신정산 대암산 정병산 용지봉 마산의 천주산 등 김해 창원 창녕 밀양 등지의 어지간한 산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하산은 봉화산 정토원(옛 봉화사) 방향으로 내려서서 안 가본 길 위주로 약수암 쪽으로 내려간다. 급경사 내림길에 약수암은 본체만체, 드디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인 노대통령의 소리가 들려와 급히 생가 쪽으로 달려가면 거지반 연설은 끝났고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여름휴가를 갖는다고 말한다. 전에 kbs 다큐“3일”에서 본대로 휴식 시간의 부족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점을 감안해 매주 월요일은 방문을 사양한다고 한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 12시10분 부터 20분 사이에 마을에서 진영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노사모 기념관을 둘러보며 사진 찍고 되돌아서 국수로 배를 채운다. 진영읍을 거쳐 마산 동양고속터미널로 가니 서울행 일반고속버스는 15:40분(17,500원), 때를 맞추어 부근의 작은 교회에 들러 오후예배를 드린 후 이틀간의 뿌듯한 산행을 끝내고 상경한다.


 

아쉬워 돌린 발길 子巖山에 이어지고

生氣를 念願하며 願力 모은 佛事 정성

돌부처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길 비는 것가?


 

봉하마을 안온한 터 자리 잡은 아이콘은

노란 깃발 풀뿌리로 번져간 작은 힘들

오늘에 살아 숨쉬어 萬歲토록 無窮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