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이틀이나 지났건만 반공에 산뜻한 달은 농염한 여인의 풍성한 몸매처럼 여전히 이지러짐 없이 단아하고 금모래 가득한 황강의 물줄기는 서걱거리는 갈대들의 얘기를 담아 오백리 낙동 포구로 고요히 실어 나른다.

솜사탕같이 헤실대며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황금 들녘을 넘어 감국이 흐드러진 산기슭 자투리밭의 여윈 콩이랑 사이로 스며들고 부끄러움에 불처럼 빨갛게 달아 오르던 홍시는 기여이 바람의 등쌀에 떨어지고 말았다.

신선의 옛 자최라도 혹 찾을까 하여 청학동을 물어 물어 찾았으나 꺼꾸러질듯 비탈진 마을엔 중추절 초상이 있었는지 희끄무레한 장명등이 소슬하고 후미진 고샅 텃밭에서 소피를 보는  문상객의 진저리치는 어깨가 썰렁하기만 하다.

주인 없는 매표소엔 붉은물이 고운 단풍 두어낱이 쓸쓸히 뒹굴고 산채 식당의 주인 아낙인듯한 여인의 부스스한 머리칼이 하품과 함께 아무렇게나 드날린다.


 


 

삼신봉을 바라는 완만한 오름길엔 오랜 가을 가뭄에 젖은 계곡 물소리가 낮게 재갈거리고 이따금 다람쥐란 놈이 겁도없이 눈알을 반짝이며 갈길을 막아선다.

족제비 수자리 살러가니  다람쥐가 젠체한다더니 놈이 아주 마음을 턱 놓고는 지척지간인데도 별로 어려워 하는 기색이 없다.

개울을 길라잡이 삼아 한가롭게 알랑거리던 길은 삼신천을 만나면서 제법 널찍한 자리를 내놓으며 쉬어 가기를 권한다.

 먹을겄도 없는 보따리 풀어 한가위때 먹다 남은 떡 한조각에 삼신천의 물을 한잔 길어 올리니 고드름을 삼킨듯 시원해 그런대로의 얼요기가 되어 기갈은 얼추 면한다.

한참을 쉬고 일어서니 여태 완만하던 길이 아희놈 새북좆처럼 발딱 서 땀푼깨나  공력 들이고서야 갓걸이재에 올려 놓는다.

출입통제 금줄이 쳐진 오른편 길은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로 썩 나서는 낙남정맥 구간으로 산죽의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저 앞에 떡 버티고 선 천왕봉을 오른편에 껴안은 부드러운 길은 곧장 삼신봉으로 내질러간다.

삼신봉의 조망은 청학동을 배태케 할만큼 뛰어나 꿈틀대며 용틀임하는 지리의 주능선이 승천하는 청룡의 기상같이 힘차 그저 먹먹한 가슴을 안고 바라만 볼뿐이다.    터질듯 달아 오르는 희열을 안고서,,,,


 


 

조선조 가장 악랄한 왕비라면 기사환국으로  중전에 올라 사사될 때 이씨의 씨를 남길수 없다며 경종의 하초를 잡아당겨 불구로 만든 장희빈이 으뜸일겄이요,  야사이기는 하지만 독이 든 떡으로 인종을 독살하고 지존인 명종을 어지러이 매질하여 평생 눈물의 왕으로 보내게 한 문정왕후가 버금일터요,

신유박해를 일으켜 수많은 천주교도를 몰살한 정순왕후도 만만치 않다.

이야기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정순왕후가 반대로 은혜 갚음을 한 얘기를

풀어 보고쟈 한다.

때는 근검절약으로 유명한 영조대왕 시절에 동부승지를 지낸 이사관이 한겨울에 충청도 예산 고을을 지날 때였다.

휘몰아치는 북풍 한설에 산천초목은 꽁꽁 얼어붙어 숨을 쉬지 못하고 신작로  대로엔  휑하니 인적이 끊겼더라.

동부승지를 지낸 위인이라 하여 삭풍이 피해갈리는 만무한지라 이승지는 자라목을 양피 두루마기에 깊숙이 감추고는 길을 재촉하는데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웬 초라한 가마 한 채와 입성이 남루한 중늙은이가 갈피를 못잡고 서성이고 있었다.


 


 

사내의 행색은 참으로 초라해 찌그러진 갓이 명색 양반임을 짐작케 할뿐 털토수에 양휘항은 고사하고라도 떨어진 도포는 한여름에도 고뿔을 걱정해야 할마큼 부실해 되려 마주보는 사람이 등이 시릴 지경이더라.

이승지가 차마 인정을 내치지 못하여,

“여보시오! 도대체 무슨 기막힌 사연이 절절해  모진 섣달 추위에 욕을 당하고 있단 말이요?” 

“니예 소인은 면천 사는 김생원인데 내자의 해산을 위해 처가로 가는 중입니다.”

화로위에 엿가락을 걸쳐둔 놈처럼 안절부절 못하며 턱을 들까불던 사내는 낮은 소리로 겨우 대답을 한다.

“아니 그런데 가마잡이 놈들은 모두 어디로 도타하고 댁만 주막 강아지 마냥 떨고 있는 겄이요?”

“그게, 아침부터 산점이 비치던 내자가 그만 여기서 덜컥 해산을 해버리자 동장군의 기세에 오갈이든 놈들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았습죠.”

우선 급한겄이 산모와 아이의 목숨인지라 이사관은 되는데로 자신의 양피두루마기를 벗어 가마안에 넣어주어 산모와 아이의 어한을 돕고는 가마잽이를 자청해 부실한 사내와 우선 주막을 찾아서는 궁둥짝이 들썩하도록 뜨끈뜨끈한 봉노에 산모를 들이 밀고는 자기돈으로 쌀과 미역을 계배해 해산 구완을 도와 주었다.

김생원 내외의 고마운 심정은 굳이 첨족을 허락할 이유가 없으리라.


 


 

그후 한양으로 돌아온 이사관은 까맣게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날 바람처럼 김생원이 찾아왔다.

반가움에 서로 잡은손을 놓지 못하며 초인사가 길어지는데 이승지가 먼저

“아니 무슨 좋은일이 있어 먼길 행보가 있더란 말이요.”

“예 지난번에 마음이 황란하고 수각이 급하여 제대로 인사를 차리지 못한겄이 마음에 걸렸고 또 그때 빌려 주신 양피 두루마기를 돌려 주고쟈 왔읍죠.”

이승지가 웃으며,

“그건 그때 내가 드린옷이고 설사  받고쟈 주었다 한들 남의 부인 몸에 닿았던걸 내 어찌 다시 입겠소.  당치 않으니 괘념치 마시오.”

하고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예를 차리고저 먼길을 달려온 김생원을 맞아 이삼일을 묵게하며 성심성의로 대접해 돌려 보내니 김생원은 이생원의 도량에 감읍불이할 따름이더라.


 


 

삼신봉에서 천하절경 무릉도원을 도끼자루 썩는줄 모르며 구경하다 한무리의 산꾼이 세석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무친김에 제사 지내고 벗은김에 과부 엎친다고 그들의 뒤를 따라 줄레줄레 나선다.

산불로 인해 제석봉의 고사목처럼 뼈만 남은 나무들 사이를 비집는 길은 수곡샘으로 완만히 떨어져간다.

봄이면 능선에 아름다운 금낭화가 군락으로 피어 난다는데 회남재에서 보았던 그 선연한 자태의 금낭화를 여기서 보는 맛은 또 어떤 은근함으로 피어 오를까 .

수곡재에는 한벗샘을 거쳐 자빠진골로 빠지는 길이 산중 고속도같이 시원스레 뚫려있다.

어느분의  글에서 자빠진골로 내려서는길이 만만치 않다는 표현을 본적이 있는데 지금보니 아마도 거림의 원점 회귀 산행지의 중요한 길목이 되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을거라 여겨진다.


 


 

그러고보니 산죽이 무성한곳과 잡목이 성가신 곳은 모두 길을 쳐 놓아 진행의 어려움을 모르고 내려왔다.

수곡재를 완만히 올라 오른편으로 부드럽게 감도는 길은 표지판에서 잠시 쉬어가기를 권한다.

에서부터는 대성골 갈림길까지 암봉들이 열병하듯 줄지어 서있어 무릎이 좋지않은 사람들을 은근히 켕기게 하는 구간이다.

길은 암봉을 이리 비틀고 저리 굽돌아 늙은 몸을 물 먹은 솜처럼 피곤하게 하는데 한자락을 딛고 서니 남부능선 최고의 신비경인 석문이 나타난다.

진정한 청학동의 비밀의 문이 예라는데 객도 한참이나 찾아 헤매어 보건만 도무지 오리무중으로 알길이 없다.

뙤놈 어부가 복숭아 꽃잎을 보고 무릉을 찾았다고 하니 객도 천상 도화 뜬 맑은물이 흐르는 두류산 양단수나 찾아 보아야 겄다.

지리산의 피울음이 가장 짙게 배인 대성골 갈림길을 지나 담배 두어대 태울참으로 오르니 기이한 음양수가 길을 반긴다.

혹 부실한 양기에 도움이 될까 하여 두손으로 움키어 마구 퍼마시니 스스로 생각해도 계면쩍고 무안해 뒷통수에 손이 절로 간다.

음양수를 지난길은 완만한 흐름으로 바뀌어 걸음에 날이선다.

거림에서 오르는 걸쭉한 꾼들의 대화에 기가 질려 무춤허니 섰다가 음양수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사람 구경하러 잔돌 산장엔 가기 싫은 까닭이다.


 


 

훗날 김생원은 밑천없는 선비들이 모여 산다는 한양 목멱산 기슭으로 이사해 여전히 자왈 획죄어천이면 무소도야가 어쩌구 궁시렁 거리며 곤궁하게 살았는데 혹 구사의 연줄이래두 있을까 하여 먼 척족이 되는 재상 김흥경의 사랑에 무상 출입 하였다.

어느날도 마빡에 금관자들의 한담이 무성한 사랑방 한켠에 구겨져 맥빠진 추임새만 넣고 앉았는데 전부터 안면이 소홀치 않던 붕어 주둥이 관상쟁이가 괴내기 생쥐 노리듯 한참이나 쳐다 보더니 갑자기 일어나 큰절을 올린다.

“생원님의 고생이 오늘로서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부귀영화가 장마통에 여울물 들듯 할터이니 오늘 안으로 무슨 기별이 있을 겄입니다.”

“허 ,, 농담이 지나치오. 내복에 무신,,”

김생원은 마음속으로 그리 되었으면 작히나 좋으랴 싶으면서도 겉으로는 농으로 눙쳐 넘긴다.

상석에 좌정하고 있던 한다하는 도포짜리들이 가가대소로 붕어 주둥이와 생원을 비웃는 겄이였으나 ,

“웃지 마십시요,  대감님들은 며칠 안으로 생원님께 큰절을 올리게 되오리다.”

붕어 주둥이는 여전히 진중한 표정으로 나무란다.


 


 

부끄러움과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서둘러 집에 온 김생원은 아내의 벌어진 입을 보고서야 뭔가 일이 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건 16년 전 겨울 이사관의 도움으로 살아난 딸이 왕비 간택의 단자에 오른 겄이다.

영민한 딸은 타고난 재기와 총명함으로 영조의 마음을 사로잡아 중궁전에 오르니 곧 정순왕후이다.

이리하여 삼순에 구식을 걱정하던 생원 김한구는 왕의 장인이 되어 보국숭록대부에 오흥부원군의 품계가 내린다.

점쟁이의 신점대로 모든 대신들의 절을 받는 광영을 맞은 겄이다.

새왕비는 틈만 있으면 선조께 이사관의 고마움을 아뢰어 상을 감격시켜 호조판서로 승급 시켰고 그것만으로도 갚음이 부족하다 여겨 어진 사람을 정승으로 만들어 달라는 왕비의 간곡한 청과 공명정대한 이사관의 충직에 감복한 상은 마침내 우의정의 중책을 하사한다.

적선지가 필유여경,,,   착함을 베푸는 집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 얘기는 메마른 우리 현대인이 한번쯤은 되돌아 보아야 할 얘기는 아닌지,,,


 


 

음양수의 널따란 암반에서 중화참을 들고는 신비한 청학동의 석문을 찾아 온길을 되짚어 허위허위 바위길을 내려선다.

참 이러다 진짜루  청학동을 찾아 들어 가버리면 두예삐와 곁은 우찌될까 ?

워낙 곁의 미모(?)가 뛰어나니 세상 바지들이 가만 두지는 않을테지 ,,

그럼 애들은 오데로 가야하노,,,,??

온갖 잡다한 상상 속에 멀리서 석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차를 받쳐든 동자와

비파를 안은 선녀들이 오색 구름에 묻혀 노을 곱게 먹은 능선에 내려선다.

석문을 들어서자 향기로운 바람결에 복숭아꽃잎이 어지러이 날리며 선남선녀  수백명이 푸른빛 도는 청학을 타고 너울 거린다.

문득 청학의 울음 소리 길게 울리며 날개를 지치자 몸은 두둥실 떠올라 도화꽃 만발한  마을로 들어선다.

마침내 진짜 청학동에 도착한 겄이다.


 


 

             2006년 10월8일,  난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