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약산(載藥山) 1,189.2m

 


회원 : 대구 [산바위] 산악회 회원 33명 (http://cafe.daum.net/rockface)
일시 : 2006년 2월 26일 일요일
위치 : 경남 밀양시 단장면, 산내면,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산행시간 : 10시 - 17시 30 (7시간 30분)
산행거리 : 대략 17KM
코스 : 배내고개 - 능동산 - 사자산 - 수미산 - 층층폭포 - 흥룡폭포 - 고사리분교터 - 표충사
버스 길 : 대구 - 동대구 - 청도 - 배내고개 - 표충사 - 청도 - 동대구 - 대구

 


산행기

 

토요일.. 저녁 

 

여보. 밖에 비 오나?.  함 봐라.

 

비 오는데요.

 

얼마나 ..

 

제법 옵니다....

 

그래.......

 

 

무심한 듯 혼자 중얼거렸지만 속은 꺼멓게 타 들어간다.
계획했던 일이 아닌 어쩌다가 산악회가 만들어졌고 홀로 산행에 익숙한 내가 어찌어찌 하여 세세한 일거리 많은 총무 일을 맡게 되어 이제 첫 산행을 떠난다. 그것이 내일이다.

 

근데..  몇날 몇일 그렇게 깨끗하던 하늘이 어찌된 심술인지 꾸물꾸물 흐리더만 기어이 빗님을 내려보낸다. 

그저 날 더운 여름날이면 우중산행도 나름의 멋이 있어 큰 걱정을 하지 않을 터이지만 봄이 코앞이라 해도 아직도 영하의 날씨가 오락가락 하는데 ... 

 

회원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
차는 대절해 두었고.. 
머릿속에선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신 없이 왔다갔다한다.

 

눈앞의 9시 뉴스는 뭐라고 저 혼자 떠드는데 내 머릿속은 성서 홈플러스에서 법원까지의 각 모임장소의 회원들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한다...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 이제는 계획이고 뭐고가 없고 그저 닥치는 데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밤새 전화가 온다. 밤늦은 시간에는 문자가 날라든다

참석한다 안 한다 그러다가 다시 한다... 참. 기가 막힌다..

 

새벽5시45분에 또 문자 알람이 띵동거린다.
부스스 일어나서 들여다보니 산행캔슬 문자다.. [미안하다. 못 가겠다...]

그래 오지 마라 아무도 안 오면 45인승 버스에 나 혼자 타고 간다.... 

혼자 씩 웃고는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그러면서도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이제 와서 내다보면 뭘 하나 하는 생각에...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밥상머리에서 집사람이 하는 말이..

 

여보 비 안 온다. ..

그래..? 

 

그렇게 해서 일단 집에서 나온다. 약속한 버스기사와 7시에 만나기로 한 홈뿔로 갔다.

벌써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 속에는 고령에서 오셨다는 수석산대장님 손님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비가 오건 말건 멀리서도 오셨는데.. 역시 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를 챈다.

 

첨에 성서에서 탈 분들이 많았는데 어쩐 일인지 전부 법원에서 타겠다고 그리고 가신다고 전화가 온다..

그 사이 캔슬 전화가 줄줄이 온다.

적십자 병원 앞에서 준비한 고기와 떡을 차에 싣고 법원에 도착을 해서 예정데로 8시 정각에 출발을 한다.

 

출발이 좋다. 시간의 늘어짐도 없고..
총 33분의 회원님들을 태우고 1억3천만원 짜리 하이클래스 신형리무진 버스는 새로 건설한 대동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청도 휴게소에서 간단히 볼일과 준비할 물건들을 챙기고 꼬불꼬불 고갯길 넘어 배내고개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첨에 산행계획을 표충사에서 시작을 해서 배내골로 넘어가는 코스를 잡았는데 어제 비가 온 관계로 오르막 오르기가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배내고개에서 능선코스로 수정을 하였다.
약은 놈이 제 꾀에 속는다고...

 

배내고개를 올라서는 순간 길은 반죽이 질은 밀가루 같다. 

꺼먼 흙들이 덕지덕지 신발밑바닥을 끈질기게 잡아당긴다... 

이런.. 이거 뭐이래?..

 

조금이라도 덜 진창인 곳을 찾느라고 엉덩이이 뭐 끼인 넘 같이 다리 벌려 어기적거리고 걷는다.

볼만하다... 전부들..ㅎㅎㅎ

 

앞사람 엉덩이 쳐다보며 혼자 낄낄 웃는다..

다리 벌려 어기적거리며 걸으니 엉덩짝들이 모두 이리 실룩 저리 실룩이다. ㅋㅋㅋ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능동산 정상에 선다. 오랜만에 능동산에 섰다.

 

영남알프스 재야산 구간을 오늘 뜻하지 않게 종주를 하게 되었다.
질척거리는 길고 긴 길을 웃고 떠들고 하면서 걷는다. 오늘 실컷 걷겠다.
무릎을 시험해보려고 얼마 전 갔던 오대산과 오늘은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런데로 무난한 것 같다.

 

멀리 사자산이 으르렁거리며 쳐다보는 것 같다.
사자산 밑 샘물상회 근처에서 자리를 폈다.

정상엔 아마 세찬 바람이 정신 없이 불어 댈 것이고 어제 비온 탓에 오늘은 날이 꽤 차가웠다.

그래서 적당한 자리에 점심자리를 만든다. 멧톳의 던 들이 널려 있어 이리저리 자리를 만드는데 조금 서성대었다.

 

온갖 반찬과 먹을거리가 나오고 회장님의 이슬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그렇게 점심을 잘 먹고 천천히 사자산을 올랐다. 참으로 잘 생긴 영남알프스이다.

언제 와도 그 산 정상에서의 장쾌함이라 뭐라고 표현하기가 사람의 글로는 할 수 없다 라는 것만 절실히 느낀다. 높은 봉우리 안부마다 넓게 펼쳐진 억새평원은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넓게 만들어 그  통쾌함이란...

 

어느 쪽으로 눈길을 주던 그 호탕한 산세의 아름다움에 세찬 바람도 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마냥 푸근하게 느껴진다.  어제의 비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아래 누런 갈대밭의 색감이 어느 파스텔화의 부드러움 같은 느낌이다.  참 잘 왔다. 지난 대간 길을 끝으로 아픈 무릎 탓에 산행을 많이 쉬었다. 역시 산의 느낌을 아는 사람은 산으로 와야 한다는 진리를 또 한번 깨닫는다...

 

갑자기 낙동정맥 길이 눈에 들어선다. 

래 저 길이다. 저 신불산을 걸어 북으로 가지산으로 남으로 영취산으로...

 

아.. 낙동정맥이 저기 누워 있는데..

당장 내일이라도 배낭 걸머지고 낙동 길을 따르고 싶다.

태백의 매봉산 피재에서 시작을 하여 동해안 정맥을 따라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그 맥을 마감하는 우리의 낙동정맥.... 

그렇게 사자산 정상에서 멀리 간월 신불 영취. 가지산의 정맥길에 넋이 빠진다.

같이 가신 회원님의 재촉으로 다시 수미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잠시 낙동의 환상에서 깨어나 의사의 말을 되새긴다. 

[일년쯤은 산에 갈 생각은 아예 마소...]
[일년 뒤에도 한 두어 시간 짜리 산만 댕기소 알겠능교?]

 

이런 말을 듣고 내 딴에 엄청 의사 말에 충실하려고 근 두 달을 산을 가지 않았는데.. 오늘
이 재약산 사자봉에서 또 사나이 가심에 불을 확 댕겨부렸다..... 
무슨 수를 내어서 저 길을 가기는 가야겠는데..

혼자 그런 궁리를 하면서 주적주적 걸으니 어느새 수미산 안부이다.

 

다시 낑낑대며 수미산을 오르니 저 멀리 표충사의 고즈넉한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어느새 시간은 5시간을 넘기고 있다. 이제 저 아래 내려가면 시원한 막걸리가 기다리고 있는데.. 
다리가 급해진다. 후딱후딱 걷는 무릎은 찌릿찌릿 신호가 오고...

 

왁자한 소리가 들여온다.

시원히 떨어지는 물줄기에 모두들 탄성을 내어놓고 녹다가 만 얼음 한 줄기 옆으로 획을 휙 그어 놓았다.  떨어지는 그 물줄기에 무지개가 생겨 그 모습이 신비하기까지 하다.

층층폭포의 구름다리를 건너 다시 얼마가지 않아 저 멀리 흥룡폭이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을 한다.

재약산의 두 명물로 인해 시간을 많이 소비를 하였다.

이제 해는 뉘엿거리며  산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표충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오니 먼저 도착하신 회원님들은 벌써 반쯤 거나 해 계시고...


삶은고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잔이 이토록 행복한데.. 
왜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목숨 걸고 살고 있을까...

시원히 목구멍 타고 넘어가는 막걸리에 뒷일 걱정 없이 들이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