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 본 인

날    짜 : 2 0 0 9월  10월 11일      날 씨 : 맑음. 시계 좋음

행 선 지 : 주흘산(主屹山 冠峰(관봉) 1,039.1m, 主峰(주봉) 1,075m, 靈峰(영봉) 1,106m) 산행

산행취지 : 단풍산행과 명승지 탐방산행 (원점회귀)

참가인원 : 21명

글 쓴 이 : 요산요수 (류 인 호)

산행시점, 종점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새재주차장)  

산행코스 : 새재주차장~주흘관~성황사~주흘관봉~주흘주봉~주흘영봉~꽃밭서들~조곡관~새재주차장

산의 특성: 주릉선동쪽은 절벽이고 서쪽은 완만한 육산이며, 조곡관에서 주차장까지는 산책로 길. 


 

지점별 통과시간 및 특징 : 

-08 : 36~44 새재주차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차량통제소를 지나 사과축제텐트 사이를 올라간다.)

-09 : 00    주흘관(1관문)(양쪽 풀밭엔 행사용천막이 가득한 길을 따라 첫 번 관문을 통과 한다.)

-09 : 03    성황사(관문과 타임캡슐 사이 길을 따르다 우측으로 다리 건너 산 밑 성황사에 도착)

-09 : 05    산길시작(성황사우측 느티나무밑을 통과 성곽계단을 따라 오른 후 산길로 들어선다.)  

-09 : 40    성터끝(성터를 따라 원시림 같은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더 이상 성터흔적은 없다.)

-09 : 54~58 전망바위(625m)(급경사를 한 동안 오르자 소나무 전망바위에서 휴식 후 출발한다.)

-10 : 01    밧줄오름(우사면으로 돌아가 바위사이 밧줄을 2번 연달아 오르자 암릉길이 시작)

-10 : 19    전망암봉(739m)(틈새바위를 좌로 돌아 오른 봉우리로 1관문과 주차장까지 조망된다. )

-10 : 36    796봉(암릉길에 우측으로 잘못 내려섰다 되돌아올라 줄과 암릉길을 올라선 봉우리.)

-11 : 02    870.3봉(전망바위)(급경사를 내려가 큰바위 좌측으로 돌아 올라가 전망 좋은 봉우리.)

-11 : 03~25 단풍터널(짧은 줄을 내려선 후 평지길 단풍숲을 지나 T자 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11 : 36~39 주흘관봉(문경쪽 전망이 매우 좋은 관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삼거리를 지나 직진한다.)

-11 : 47    전망바위(능선 길에 우측과 관봉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를 지나 안부에서 좌사면 길) 

-12 : 13    1,020봉(전망터를 지나 줄을 내려섰다가 좌사면길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를 넘어선다)

-12:24~52   Y삼거리(점심)(좌측 혜국사길이 있는 삼거리서 식사후 1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감)

-13 : 01    사거리안부(전좌문)(좌측 2관문 길과 우측 월복사길 있는 전좌문안부사거리에서 직진)

-13 : 05    T자삼거리(10방으로 영봉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3분을 오르자 주흘산 주봉)

-13 : 08~14 주흘산주봉(조망이 기가 막힌 정상석이 있는 주봉에서 휴식후 T자삼거리로 돌아간다.)

-13 : 52    T자삼거리(봉우리를 3곳을 넘어 산 좌사면을 오르다 T자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13 : 55~58 주흘산영봉(1,106m)(보조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주흘산의 최고봉이지만 전망은 별로)

-14 : 59    다시삼거리 (일부는 직진길로 갔지만 이정표삼거리로 되돌아가 직진하여 내려선다.) 

-14 : 52    계곡진입(내리막과 산죽능선길에 이어 완만한 능선이 끝나자 합수머리 계곡에 진입)

-14 : 54    임도삼거리(개울을 건너 올라서자 구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개울좌측으로 내려간다.)

-14:58~15:02꽃밭서들(좌측 산사면을 차지한 너덜에 수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라 모두들 환호성)

-15 : 23    Y자갈림길(계류를 좌우로 7번 반목한 후 Y자 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지만 다시 합침)

-15 : 44    탐방지원센터(넓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자 탐방지원센터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15 : 46    조곡관(2관문)(우측으로 조곡교를 건너 숲속에 자리한 2관문인 조곡관을 살펴본다.)

-15 : 48    조곡약수(조곡관을 통과 좌측으로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개울건너 약수를 맛본다.)

-15 : 56    조곡폭포(인공폭포)(되돌아 조곡관과 삼거리를 지나자 좌측에 조곡폭포와 전망대)

-16 : 00    산불됴심비(길 우측에 자그만 한 통행인에게 당부하는 옛 한글로 세워진 자연석 비석)

-16 : 01    소원성취탑(우측에 몇 개의 돌탑이 옛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소원을 빌었던 곳)

-16 : 09    꾸구리바위(우측에 개울 속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이름을 짓고 사연을 붙여 놓았다.)

-16 : 15    예배굴(길 좌측 산으로 50미터 올라가니 바위하단에 예수와 마리아상이 있는 기도처)

-16 : 20~24 용담폭포(길 우측에 있는 기다란 맑은 물이 흐르는 폭포와 널따란 반석이 아름답다.)

-16 : 25    교귀정(우측엔 용추약수가 있고 좌측엔 경상감사가 임무인수인계를 하던 교귀(구)정)

-16 : 29    주막(길 우측에 몇 채의 초가집으로 된 옛날 쉼터와 산비들의 유숙처 이였던 주막)

-16 : 40    원터(길 좌측에 장방형의 돌담이 둘러쳐진 옛날 관리들의 출장편의를 제공하던 시설)

-16 : 46    지름틀바우(길 좌측 산기슭에 길다랗게 튀어나온 바위 꼭 옛날 지름틀처럼 생긴 바위)

-16 : 49    조산(쉼터)(길 우측에 돌무더기와 휴식용 원두막이 있고, 좌측 산 절벽에는 송덕비)

-16 : 53    촬영장입구(길 우측 왕건교 건너 KBS촬영장이 있지만 건너다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16 : 55    혜국사입구(좌측 산위로 시멘트 포장된 혜국사 가는 길 입구를 지나자 촬영장관리소)

-17 : 00    관찰사공덕비(좌측에 관찰사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지나침)

-17 : 03    타임캡슐광장(길 좌측에 타임캡슐을 뭍은 상징이 있는 광장에 들어가 둘러본다.)

-17 : 06    주흘관(아침에 통과한 1관문을 지나 축제천막이 즐비한 도로를  한창 걸어 내려간다.)

-17 : 23    새재주차장(산행종료)(관광관리소를 지나 길 우측 주차장에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림)

 

참 고 지  도 : 덕산(德山 50,000/1 국립지리원), 월간산 특별지도. 사람과 산특별지도

예 상 시  간 : 7시간 30분    

실제등산시간 : 8시간 39분(08 : 44 ~ 17 : 23)           

실제산행거리 : 14.32km(GPS 측정거리)  부봉을 거친 팀(18.44km) 

구간거리:새재주차장(1.08km)-주흘관(0.12km)-성황사(0.81km)-성터끝(0.93km)-796봉(0.72km)-주흘관봉(0.21km)-1,040.5봉(1.2km)-혜국사삼거리(0.4km)-전좌문(0.1km)-주흘주봉(1.33km)-주흘영봉(1.43km)-합수머리(0.21km)-꽃밭서들(2.4km)-조곡관(0.1km)-조곡약수(0.28km)-조곡폭포(1.02km)-교귀정(0.9km)-주흘관(1.08km)-새재주차장

      

산행한 동기와 개요

나의 젊은 시절(30~40대)을 거의 문경시(당시 점촌)에서 보냈으면서도 산에는 관심이 없어 겨우 문경새재 산책로와 혜국사 까지만 유람삼아 오른적이 있고 주흘산 정상은 한 번도 올라 보질 못해 늘 선망의 대상 이였다. 더구나 주위를 지날 때 위대하게 솟은 문경 진산을 바라보면서 때가 오길 기다렸는데 이번 에 마침 주흘산을 계획하게 되었고 더구나 가을의 꽃인 단풍철에 찾게 되어 기대가 되었던 산행이었다. 원래 코스는 문경읍에서 새재입구인 진안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틀목고개에서 주흘산 남릉을 따라 오르면서 주흘3봉(관봉,주봉.영봉)을 거치고 꽃밭서들과 2관문을 거쳐 새재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장거리 코스에 질역이 나고 또 설악산 공룡릉 후유증으로 무릅이 좋지 않아 짧은 코스를 찾다가 주흘관에서 성황사를 거쳐 성터 흔적을 따라 올라 관봉과 주봉.영봉을 거쳐 꽃밭서들로 하산 새재주차장에 도착하는 색다른 원점회귀 코스로 변경하였다. 실재로 올라보니 성황사에서 관봉까지 오르는 길은 정말로 원시림에다 아기자기한 코스가 너무 좋았다.  영봉을 오른 후에 나는 몇 분과 하산했지만 산행참가인 거의가 부봉6봉까지 거쳐서 하산하여 길고(GPS상 18.44km) 힘들었지만 문경새재 산행코스 중에 제1로 꼽는 부봉6봉까지 거치는 바람에 약간 저물었지만 뜻 있는 산행이 되었다. 마침 정상부근에는 불타는 단풍이 절정이어서 금상첨화가 된 멋진 산행이었고 부봉6봉을 가지 못한 대신 새재길에 있는 명소를 거의 다 살필 수 있는 보람있는 산행이 되었다. 부봉까지 간 여러분 수고가 많았습니다.   


 

주흘산(主屹山 1,708m)  소개 

 ▲ 환상적인 주흘산 원경(문경의 명산 사이트 사진)

 

 ▲ 주흘산 원경(한국의 산하 사진) 

주흘산(主屹山 영봉1,106m,주봉1,075m,관봉1,080m)은 옛 부터 문경의 진산으로 정상 남사면이 수백 길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어 문경읍에서 보면 철옹성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조선조 때는 조정에서 매년 주흘산을 진산으로 받드는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남한 땅 백두대간 가운데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긴 능선이 문경땅을 거치면서 수많은 산봉우리를 일으켜 놓았는데 등산인들 에게 문경하면 주흘산이 떠오르는 것은 육산과 바위산의 멋을 겸한 빼어난 산세와 함께 문경새재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1981년 새재길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했는데 주흘산(1,075m)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주흘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멀리 소백산까지 볼 수 있으며 가까이로는 문경읍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운달산, 희양산, 조령산, 월악산이 원을 그리며 둘러 있다. 높이 10m의 수정 같은 여궁폭포와, 공민왕이 홍건적의 피난을 하였다는 혜국사, 팔왕폭포, 역사의 애환과 지닌 문경새재 제1, 2, 3관문과 KBS촬영장 등이 있다. 영남대로를 사이에 두고 조령산과 마주보는 주흘산은 문화유적 답사를 겸할 수 있어 더욱 보람 있는 산행을 할 수 있다.


 

찾아간 길: 대구시내 출발-서대구나들목-경부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나들목 나가 좌회전-삼거리 직진-T자삼거리 좌회전-삼거리 직진-삼거리에서 우회전-사거리에서 1시방향 직진-백운동주차장에 주차.


 

산행을 하기전

05:00~08:36 산행지로 이동  맑은 날씨 이른 새벽에 고속도로를 바꿔 타며 산행지를 향한다.

새벽 5시경부터 일어나 밖을 확인하니 날씨는 더 없이 맑다. 산행준비를 하고 아침식사를 반고개 행복주유소앞에 도착하니 6시 10분경이다. 잠시 후 도착하는 유진수씨와 함께 한참 후 도착한 버스를 타고(06:24) 출발한 버스는 광장코아를 거쳐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여러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한(06:50) 버스는 21명을 싣고 성서나들목(06:51)으로 들어간 버스는 서대구요금소를 통과하고(06:54) 경부고속국도를 이용하여 구미시를 지나고 다시 중부내륙고속국도로 바꾸어 달리다가 선산휴식소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07:30~55) 다시 출발하여 중부내륙고속국도를 열심히 달리다가 문경새재나들목을 나가자마자(08:27) 나오는 T자삼거리에서 문경새재쪽으로 좌회전한 후 다시 나오는 Y자삼거리에서 좌측편길로 직진한 후 이내 갈림길이 나올 때 마다 문경새재 이정표만 보고 진행하다 ㅏ자 삼거리에 문경읍 문경새재쪽으로 우회전(직진은 충주)하여 사거리에서 우회전 잠시 T자삼거에서 좌회전 구길로 들어서서 1분도 않 되어 나오는 Y자삼거리에서 우측(좌측 이화령길)으로 새로 새운 새재일주문을 통과한 후 4분만에 문경새재 주차장에 들어선다.   

▲ 도착한 문경 새재 주차장

08 : 36~44  산행준비(새재주차장) 마침 문경사과 축제장소인 문경새재주차장에 일찍도착 산행준비

예전에는 도립공원 입장료가 1인당 얼마씩 있었는데 오늘은 받지 않는다. 근래에 입장료가 없어졌나 보다. 넓은 주차장에  주차된 차는 몇 대 뿐이다. 4,000원 주차료를 주고 차를 최대한 북동쪽 계단이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여 주차시키고 하차를 서두른다.


 

산행을 하면서

 ▲ 주차장에서 북동쪽 화장실 건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선다.

 

 ▲ 도로로 들어선다.

 

 ▲ 우측에 성 박물관이 눈 길을 끈다.

 

 ▲ 도로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통제소

 

 ▲ 문경 사과축제를 알리는 아치관문

 

 ▲ 길 좌측에 있는 새임을 알리 새재비(내용은 읽어 보지 못했다.)

 

 ▲ 길 우측에 있는 새재박물관 모습

 

 ▲ 1관문으로 올라가는 길

 

 ▲ 신종플루 예방을 위해 설치한 소독시설

 

 ▲ 풀밭에 가득한 사과축제를 상징하는 조형물들

 

 ▲ 바람개비도 한 몫

  

 ▲ 좌측 ㅈ자연생태공원을 건너가는 다리

08 : 36~44 새재주차장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차량통제소를 지나 사과축제텐트 사이를 올라간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북동쪽에 있는 반원형 계단을 오르면 좌측에는 화장실이 있고 그 앞에 나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길 우측에‘문경성조각전시관’이 눈에 띈다. 도로를 따라 벌써 사과축제(2009년 10월 9일~11월8일까지(1개월간)) 행사장 문을 열 준비로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다. 차량통제소를 지나자(08:47) 도로 우측에는 일 열로 수많은 행사용 텐트가 빼곡하게 설치해 놓고 칸칸이 모두 주인이 다르다. 길 좌측에 ‘새재碑’를 지나 한동안 오르다 보면 우측에 새재박물관이 있지만 갈 길이 바쁜지라 은행나무 가로수 아스팔트 포장길을 열심히 오르자 우측에 요즈음 유행하는 신종플루 예방으로 소독하는 천막을 위시로 사과에 대한 깃발과 홍보물들이 각양각색으로 단장되어 있고 좌측으로 ‘←자연생태공원’을 들어가는 입구를 지난다.  

 ▲ 주흘관인  제1관문의 모습

 

 ▲ 산행해야 할 주흘관의 동쪽 성벽

 

 ▲ 주흘관을 통과한다.

 

 ▲ 주흘관을 지나자 있는 삼거리 길 우측으로 간다.

 

 ▲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 삼거리에 들어서자 우측 다리를 건너 산밑까지 들어 간다.

09 : 00    주흘관(1관문) 양쪽 풀밭엔 행사용천막이 가득한 길을 따라 첫 번 관문을 통과 한다.

양쪽 풀밭에는 더 많은 행사용 천막들이 사과와 오미자등 특산품을 준비하고 있다. 복판에 난 길을 따라 팔작지붕으로 단장된 1관문으로 향해 들어간다. 첫 번째 있는 관문이라고 제1관문으로 통상 불리는 주흘관은 좌우로 빈틈없이 쌓아올린 성 중간에 반타원형의 성문을 내과 중간에 팔작지붕의 건물을 올리고 임금주(主)자, 산 우뚝 솟을 흘(屹)자, 빗장 관(關)자를 쓴 ‘주흘관’ 현판이 높다랗게 달려있다.

제1관문[초곡성(草谷城),주흘관(主屹關)] : 초곡성은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년)에 설관하였다. 영남 제1관문 또는 주흘관이라고 하며 정면 3칸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가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 1~3m, 폭 2~4m이며,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이다.

관문을 통과 한 후 계획에는 우측 성벽으로 올라가 동쪽으로 성위로 가야 하지만 타임캡슐이 바라다 보이는 길 이정표(↑혜국사3km.제3관문6.5km.제2관문3km.촬영장0.3km/↓자연생태공원0.3km.주차장1.3km.관리소1.0km.박물관10km/주흘산4.5km.여궁폭포0.8km→ 해발244m,현위치 제1관문) 삼거리에서 여궁폭포 가는 쪽인 우측 길로 50미터도 못가서 우측에 있는 다리를 건너서 산기슭을 향해 잠시만 가면 성황사에 도착한다. 

 ▲ 산밑에 있는 성황사

 

 ▲ 성황사 좌측에 있는 칠성각

 

 ▲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성황사

 

 ▲ 길은 성황사 우측 느티나무가 있는 곳 성벽을 올라간다.

 

▲ 행사장이 잘 보인다.

09 : 03    성황사 관문과 타임캡슐 사이 길을 따르다 우측으로 다리 건너 산 밑 성황사에 도착

성황사는 영험한 효과가 있어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라지만 이른 아침이라 햇빛이 들지 않아서인지 성황사는 우중충해 보였고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본 당 우측 산 쪽에 칠성각이 있는 오르는 길 목에는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설명문 내용은 대강 이러했다.

성황사(城隍祠) : 새재 제1관문 안에 있는 새재성황당은 건립연대나 누구의 손에 의해 세워졌는지 알 수 없으나 여러 차례 중수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성황사에는 병자호란 때 화의파의 주장인 遲川(지천) 崔鳴吉(최명길 1586~1647년)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최명길이 약관일 때에 안동부사로 있는 외숙을 찾아가는 길에 이곳 새재를 넘게 되었다. 구절양장 같은 험한 산길을 얼마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소복단장한 아름다운 한 여인이 따라 오는 게 보였다. 여자의 걸음걸이가 빨라 잠깐 동안에 자신을 앞질렀다. 이를 무엄하게 여긴 최명길이 걸음을 재촉하여 여인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나 그 여인의 걸음속도는 최명길의 걸음속도만큼 일정하여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여기고 한 층 걸음을 재촉하는 순간 여인이 비명을 지르기에 달려가 보니 여인이 발을 헛딛고 비탈에 구르고 있는지라 황급히 달려가 여인을 부축해 구해 주었다. 이런 사연으로 동행케 된 것이다. 최명길이 궁금함을 풀어 보려고 하나하나 물어보았다. 여인은 한참 최명길을 쳐다보더니 나는 새재성황신인데 며칠 전에 이 재를 자주 왕래하는 대상(大商)이 중국비단 치마저고리 일습(한벌)을 나에게 바치고 갔는데, 어제 안동에 사는 좌수가 성황당 앞을 지나다가 그만 가지고 가서 자기의 딸에게 입혔기에 내가 지금 그 옷을 찾고 그의 딸을 죽일 심산으로 안동까지 간다고 했다. 최명길은 속으로 깜짝 놀랐으나 겉으로는 태연자약 그 좌수의 소행은 괘씸하나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천리(天理)가 아니라고 하면서 선처를 부탁했다. 최명길이 안동에 도착하기가 바쁘게 부사인 외숙을 뵙고 문안 후 모 좌수의 유무를 물었더니 어느 곳에 살고 있다 함에 급히 달려가 보니 그 좌수집에서는 과연 아침까지도 아무 탈 없이 건강하던 딸이 갑자기 죽었다고 곡성이 진동하였다. 최명길은 또 다시 급급히 주인을 찾아 수인사 후에 내가 댁의 딸을 살릴 수가 있으니 좀 보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승낙을 받은 명길이 처녀 방에 가 보니 과연 동행했던 새재성황당신이 좌수 딸의 목을 누르고 있다가 최명길을 보더니 급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딸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주인은 백배사례하고 신의(神醫)로 우러러 보면서 몸둘바를 모르게 사례했다. 최명길이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새재성황당을 보니 성황당신은 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라 또 어디를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니 지금 중국 천자(天子)가 만주에서 탄생하여 상제(上帝)께서 천하제신(天下諸神)에게 명하여 천자를 호위하라는 명을 받고 만주로 가려는 참이었는데 때마침 잘 만났다고 하면서 “당신은 뒷날 큰 벼슬을 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될 것이니 그 때에 천자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면 백성을 살리고 종묘사직을 보전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그 길은 화의(和義)의 길밖에 없으니 명심하라” 고 당부하고 사라져 버렸다. 뒷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농성할 때 척화파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화의를 성립시킨 주역이 최명길이다. 최명길의 관(貫)은 전주(全州), 호(號)는 지천(遲川)이며, 인조 때 정사원훈(靖社元勳)으로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문경명산가이드) 

 ▲ 산길로 들어서는 초입

 

▲ 산길에 드문드문한 성터 흔적

09 : 05    산길시작 성황사우측 느티나무밑을 통과 성곽계단을 따라 오른 후 산길로 들어선다.  

길은 산신각 좌측에도 있으나 200m정도 올라가면 만날 것이므로 우리는 성황사 우측 편에 큰 느티나무 밑으로 들어가자 새로 보수한 성곽을 따라 계단이 잘 나져 있으나 군데군데 잡초가 자라고 있다.(09:03) 가파른 계단을 따라 끝까지 오르자 왼쪽에 희미한 산길이 열려 있다.  산길로 들어서자(09:05) 이내 급경사로 이어지면서 길도 제법 뚜렷한데 우거진 숲속 길에 드문드문한 성벽은 500m정도로 주위에 산재해 있는 바위를 깨거나 하여 쌓았다는 자연 석성의 성터의 흔적을 따라 오르자 사방이 원시림지대다.  

 ▲ 여기쯤이 군막터이지 싶은데 확인을 못하고 지나감.

 

 ▲ 성터 끝머리 (뒤돌아 보고 촬영)

 

 ▲ 이 바위를 지나면 더이상 성터 흔적은 없다.

 

 ▲ 이 바위 사이로 오른다.

  

 잡목사이를 오른다.

 

 ▲ 일행들이 쉬고 있는 소나무 전망터

09 : 40    성터끝 성터를 따라 원시림 같은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니 더 이상 성터흔적은 없다.

여기 어디쯤 군막터가 있을 터인데 하고 찾아보아도 끝내 차지 못 하고 허물어져 가는 성터 흔적을 따르다 보니 전면에 제법 큰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좌측으로 올라서자 더 이상 성터는 이어지지 안고 길도 다소 완만한 길이 지속되더니 우측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선두들이 쉬고 있다.  

 ▲ 전망터에서 보이는 주차장 주변

 

 ▲ 전망대바위

 

 ▲ 산 우사면 길을 돌아간다.

09 : 54~58 전망바위(625m) 급경사를 한 동안 오르자 소나무 전망바위에서 휴식 후 출발한다.

휴식을 취하는 우측 바위에선 소나무가 가려 있지만 아래로 내려다 뵈는 문경새재 초입과 하초리 풍경이 눈에 와 닿는다. 사과축제행사용 천막들이 외국의 풍경을 연상케 한다. 길은 우사면으로 이어진다.  

 ▲ 밧줄구간

 

 ▲ 밧줄을 오르는  일행

 

 ▲ 이번엔 왼쪽으로 오른다.

 

 ▲ 밧줄지대의 우측 난간

 

 ▲ 평탄한 능선길이 잠시 이어진다.

10 : 01    밧줄오름 우사면으로 돌아가 바위사이 밧줄을 2번 연달아 오르자 암릉길이 시작

길은 주능선으로 붙기 위해 바위틈새에 매달린 바위구간을 오르는 지점에 로프 3m정도 1개와 2단을 오르는 곳에 5m정도의 로프가 또 매어 있다. 로프 있는 곳을 오르면 평탄한 능선으로 좁은 능선길에 문경 하초리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 바위틈새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빠져나가 오른다.

 

 ▲ 주차장이 보이는 739m 전망 봉우리

 

 ▲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관봉쪽도 보인다.

 

 ▲ 이 바위길에서 좌측으로 넘어야 하는 것을

 

 ▲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바람에 잠시 알바을 했다.

 

 ▲ 이곳에서 좌측으로 넘어야 하는데 노란표시기를 보고 우츠으로 내려가 알바 했음.

10 : 19    전망암봉(739m) 틈새바위를 좌로 돌아 오른 봉우리로 1관문과 주차장까지 조망된다.

바위 두 개 사이 틈새길을 빠져 오른 후에(10:12) 오른 암봉(739m)에서는 주차장과 우리가 오를 관봉쪽도 보인다. 이어지는 내리막길에 바위가 가로막자 좌측으로 넘어서야 하는데 우측에 노란 표시기를 보여 힘들여 내려섰더니 엉뚱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다.   

 ▲ 이 바위 좌측으로 돌아 넘어서자

 

 ▲ 좌측 난간을 조심하여 올라선 후

 

 ▲ 이 밧줄을 잡고 올라선 후

 

 ▲ 이 바위 틈을 섰다 내려선 후

 

 ▲ 이 길을 올라서서

 

 ▲ 이 작은 언덕봉인데

 

 ▲ 좌측으로 멀리 부봉6봉도 어렴풋이 보인다.

 

 ▲ 이 길을 내려 섰다가

 

 ▲ 이 길 우측이 796봉이다.

10 : 36    796봉 암릉길에 우측으로 잘못 내려섰다 되돌아올라 줄과 암릉길을 올라선 봉우리.

아뿔사! 잘 못 왔구나 하면서 되돌아 오르기도 만만치 않아 힘들여 오른 후에 좌측으로 넘어다보니 역시 표시가 달려 있다. 좌측으로 넘어서자 낭떠러지 절벽언저리에 난 희미한 바위틈새 길을 따라 좌우로 돌아서며 오르는 길목에 있는 가느다란 밧줄을 잡고 올라선(10:30) 작은 봉우리에서 2시방향으로 내려서서 바위위를 이리저리 밟고 지나 다시 난간 벼랑길을 따라 잠시 오르니 796.8봉(GPS 789.3m)에 올라선다. 우뚝한 796.8봉의 암봉에 올라서면 맨 꼭대기 바위가 평평하여 2~3명은 족히 올라설 수 있다. 중간에 튀어나온 올려진 바위가 또 하나 있어 버팀이 되어 준다.  

 ▲ 이 표시기를 따라 우측으로 내려섰다 좌측으로 돌아 간다.

 

 ▲ 이 나무둥치를 내려선 후

 

 ▲ 칼날바위등을 넘선서서 큰 바위 좌측으로 도라 너덜지대를 지나 우측으로 들어선다.

 

 ▲ 본 능선을 들어선다.

 

 ▲ 서서히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 단풍

 

 ▲ 단풍2

 

 ▲ 전망이 좋은 870.3봉

 

 ▲ 전망하기 좋은 암봉

 

 ▲ 올라야 할 주흘관봉 부근

 

 ▲ 진안리.하초리쪽 조망

11 : 02    870.3봉(전망바위) 급경사를 내려가 큰 바위 좌측으로 돌아 올라가 전망 좋은 봉우리.

봉우리 우측에 넘어서는 길을 따라 급경사를 내려서 좌로 돌아 내려가자 이번에는 바위사이에 썩은나무를 걸쳐 놓은 곳을 건너서(10:43) 날카로운 뒤엉킨 바위를 넘어서 안부에 내려서자 앞에 큰 절벽이 가로 막는다. 절벽 좌측으로 돌아 너덜길을 지나(10:45) 다시 우측으로 주 능선길을 회복한 후(10:49) 잠사 우사면으로 이어 지던 길이 드문드문 반석길을 오르는 좌우에 고운 단풍이 심심치 않게 보이더니 이내 전망이 좋은 암봉에 올라선 870.3봉이다. GPS로 863.8m인 전망바위가 있는 봉우리로 출발지인 주차장과 조령산과 이화령을 오르는 길이며 진안리.각서리 일대가 잘 보인다.     

 ▲ 870.3봉에서 내려서는 곳의 밧줄(내려와서 뒤돌아 보고 촬영)

 

 ▲ 단풍

  

 ▲ 단풍터널 

  ▲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들

 

 ▲ 불타는 단풍터널

 

 ▲ 1040.5봉 직전삼거리. 관봉을 가기 위해 우측으로 진행(주봉은 좌측행) 

11 : 03~25 단풍터널 짧은 줄을 내려선 후 평지길 단풍 숲을 지나 T자 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870.3봉에서 내려서려면 짧은 줄을 잡고 내려선 후 한차례 암릉길이 있지만 거의 평탄한 길 좌우에 잡목들이 거의 물박달나무와 단풍나무등 각양각색으로 단풍이 물드는 나무들이여서 곱디곱고 환상적으로 물든 단풍 터널속을 힘들이지 않고 오르길 20분만에 1,040.5봉 직전에 있는 T자삼거리에서 관봉을 오르기 위해 우측으로 향하는데 선두는 그냥 좌측으로 가 버렸다.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 좌측이 낭떠러지인 바위틈새를 올라서서 2~30미터만 가면 관봉정상이다.    

 ▲ 관봉 들어리 좌측 조망

 

 ▲ 관봉 직전

 

 ▲ 주흘관봉 표지석

 

 ▲ 정상표시석 후면

 

 ▲관봉에서 문경읍 조망

 

  ▲ 관봉 남릉 조망

 

 ▲ 동쪽 조망

 

 ▲ 서쪽 백화산쪽 조망

 

 ▲ 북쪽으로 돌아보니 주흘주봉이 선명하게 보인다.

 

 ▲ 되돌아 나오며 내려서는 바위사잇길

11 : 36~39 주흘관봉 문경쪽 전망이 매우 좋은 관봉을 올랐다가 되돌아 삼거리를 지나 직진한다.

동쪽이 수 십길 낭떠러지 절벽이 아찔하고 문경읍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멀리 문경시(점촌)쪽이 뿌연 연무속에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며 남쪽에 새재관광호텔이나 틀목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 갓관(冠)자 봉우리봉(峰)자를 쓰는 주흘관봉에는 정상표지석(1,039.1m 지도에는 1,080m로 표시됨)과 그 옆으로 관봉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안내판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안내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흘관봉(主屹冠峯, 고깔봉 1039.1m) : 예로부터 주흘산은 나라의 큰 산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를 올리던 신령스런 산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은 주봉의 기상을 받들어 남쪽에 이 봉을 세워 산세의 웅장함과 장쾌한 멋을 더해주고 있다. 그동안 이 봉은 이름 없이 일부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주흘주봉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봉(南峯)’으로 불러왔으나 신라 때 문경의 옛 이름이 ‘관산현(冠山縣)’ 또는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라 한 것은 아마도 이 산의 생김새가 ‘갓’ 또는 ‘고깔’과 같은 형상을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되며, 이런 연유로 문경 애산인(愛山人)들의 뜻을 빌어 이 봉의 이름을 새로이 주흘 관봉(主屹 冠峯) 또는 고깔봉으로 명명해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 2004년 11월 7일 문경산들모임

뒤로 돌아보니 주흘주봉이 두툼한 황소뿔 처럼 삐죽이 내밀어 보인다.  사방을 둘러 본 후 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바위틈새를 내려선 후 좌사면 길을 가다 조금 올라 왔던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능선이 올라서니 전망이 좋은 1,040.5m봉이다. 이 봉우리는 주흘산을 정면(동쪽(성주봉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주흘산 좌측의 고깔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꼭지점이 1,040.5봉이란다. 북쪽으로 잠시 가자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 1040.5봉을 지나 첫번째 바위전망터

 

 ▲ 가야할 주흘주봉도 잘 보인다.

 

 ▲ 관봉쪽을 뒤돌아 본다.(문경읍 시가지도 잘 보인다.)

 

 

  ▲ 동쪽 아래의 전망

 

 ▲ 전망터에서 북쪽 전망

 

 ▲ 안부

 

▲ 좌사면길을 올라간다. 

11 : 47    전망바위 능선 길에 우측과 관봉 조망이 좋은 전망바위를 지나 안부에서 좌사면 길 

동쪽은 역시 아찔한 절벽이여서 조망 역시 상당히 좋지만 서쪽은 잡목에 가려서 전망이 별로였다. 선두와 차이가 있어 자세히 조망을 즐길 여유도 없어 서둘러 능선을 따라 북으로 걸음을 재촉하여  우사면 길을 가는 듯 하더니 안부에 내려섰다(11:59) 이번엔 좌사면으로 산허리를 올라가면서 불타는 단풍을 만끽하면서 전망터를 지나(12:06) 짧은 줄을 내려서고(12:07) 서서히 좌측으로 산허리를 돌아오르자 봉우리정상에 도착한다. 

 ▲ 1020봉에서 바라 본 서쪽 조령산-신선임봉 능선

 

 ▲ 또 하나의 봉우리

 

 ▲ 전망암봉

 

 ▲ 주흘관봉쪽의 조망

 

 ▲ 바로 아래 팔영리마을 쪽의 조망

 

 ▲ 가야할 능선조망

 

 ▲ 절정을 이룬 단풍

12 : 13    1,020봉 전망터를 지나 줄을 내려섰다가 좌사면길을 따라 올라선 봉우리를 넘어선다

GPS에 1,020m를 표시는 봉우리에서 특별한 전망이 없어 서둘러 내려섰다가 서서히 오르면서 좌측으로 산허리를 10분정도 돌아가자 삼거리 길이 나온다. 

 ▲ 혜국사삼거리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 좌측에 혜국사 길이 있는 삼거리. 우측으로 진행

 

 ▲ 우측 산허리를 돌아 가는 길

12:24~52   Y삼거리(점심) 좌측 혜국사길이 있는 삼거리서 식사후 1시방향으로 산허리를 돌아감

삼거리길 직전에 선두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 합류하여 점심식사를 마치고(12:24~52)나서 삼거리길에서 좌측 9시 방향은 혜국사에서 올라오는 길이므로 1시 방향으로 진행하여 산허리를 돌아간다. 산죽이 우거진 길이 잠시 이어지더니(12:53) Y자길에서 능선을 따르자 역시 우측 전망이 시원한 전망터에 들였다가(12:56) 좌측으로 안부에 내려선다. 

 ▲ 전좌문 직전 전망터에서 바라본 주흘주봉 모습

 

 ▲이정표사거리인 전좌문에서 동쪽 월복사쪽으로 바라 본다.

 

 ▲ 전좌문에 섰는 이정표

 

 ▲ 전좌문에 섰는 특이한 119구조위치표시판 

 

▲ 이정표사거리 동쪽의 전좌문 모습(다른분 사진) 

13 : 01    사거리안부(전좌문) 좌측 2관문으로 길과 우측 월복사길 있는 전좌문사거리에서  직진

이정표(←제2관문 4.2㎞/↓ 제1관문 3.5㎞. 혜국사 2.2㎞/ ↑ 주흘산 0.1㎞)와  특이한 119구조위치 표목(주흘산 솔라표시등-02)이 함께 세워진 곳에서 북쪽 월복사에서 올라오는 길쪽으로 바라보면 양쪽이 석벽으로 되어 있고 문경일대가 모두 보여 이곳을 임금이 앉아서 기다렸다고 하여 殿坐門(전좌문)바위, 또는 전좌바위라고 하며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전좌문(殿坐門,전좌바위): 옛날 임금이 파발(擺撥)을 기다리기 위하여 앉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주흘산 정상 바로 아래 지곡으로 통하는 입구에 바위가 마치 문(門)을 이루는 형상으로 있는 것이 전좌문이며, 그 바로 옆으로 두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세워진 곳을 전좌바위으로 부른다.

전방 1시 방향을 바라보니 주봉이 바로 쳐다보인다. 직진하여 비탈길을 3분정도 오르며 ‘주흘산(3)지점 표시판을 지나 양쪽에 매여진 가느다란 줄을 따라 오르니 T자삼거리에 닿는다. 

 ▲ 주흘주봉 직전 삼거리

 

 ▲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주봉쪽으로 오르고 있다.

13 : 05    T자삼거리 10방으로 영봉길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3분을 오르자 주흘산 주봉

길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나 있는 T자삼거리에서  좌측길은 영봉길이고 우측길이 주봉 가는 길이므로 우측으로 오르자 <주흘산 영봉, 부봉 백두대간 연결>푯말이 보이면서 주봉에 올라선다.  

 ▲ 주흘산의 최고 전망처인 주봉의 정상석

 

 ▲ 주흘주봉에서 본 주흘관봉쪽 모습

 

 ▲ 주봉에 본 문경읍 전경모습

 

 ▲ 주봉에서 본 대미산쪽 조망

 

 ▲ 영봉을 가는 길을 표시하는 팻찰

 

 ▲ 조금전 도착했던 삼거리에서 직진한다.

 

 ▲ 능선길을 가면서 우측으로 내려다 본다.

 

 ▲ 주봉이후 첫번쨰 첫전망터에쇼서 유진수씨 한 컷

 

 ▲ 전망터에서 동쪽 조망

 

 ▲ 조망터에서 주봉을 돌아 본다.

 

 ▲ 능선을 가다 부봉쪽을 조망해 본다.

 

 ▲ 암릉길에서 우회로로 간다.(암릉길도 험하지 않음) 갈대님 사진

 

 ▲ 이 산 좌사면 허리길을 돌아가면 이정표삼거리가 나온다.

13 : 08~14 주흘산주봉 조망이 기가 막힌 정상석이 있는 주봉에서 휴식후 T자삼거리로 돌아간다.

올라선 주흘산 정상엔 탁 트인 조망은 환호성이 저절로 나온다. 마침 날씨도 맑아 소백산까지 볼 수 있고 주위의 월악산, 포암산, 운달산, 백화산과 희양산을 볼 수가 있으며, 문경읍소재지가 바로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몇 십명이 들어설 수 있는 정상에는 문경군청등산회에서 세운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이 표지석 앞에는 ‘主屹山 1,075m‘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래서 주흘산영봉이 높이가 1,106m로 더 높기 때문에 종종 혼란이 오는 수도 있으나 이곳이 산의 형세나 옛날부터 전해오는 주봉이어서 여기가 주흘산정상이라고 하고 북쪽으로 약 40분 정도 가서 있는 1,106m는 주흘영봉이라고 산 아래 동네에서 부르고 있고,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이고 마치 학이 날개를 펼치며 날기 직전의 모습이라 하며, 표지석 세운 곳이 머리에 해당된다고 전하고 있다.

주흘산 정상(頂上)과 주봉(主峰)의 의미 : 주흘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주흘산 정상과 주봉의 개념에 대해 가끔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주흘산의 정상은 과연 어디일까. 사람들은 “1,106m(주흘영봉)가 주흘산 정상이다, 아니다, 주흘산 정상은 1,075m(주흘주봉)가 정상이다” 등 가끔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정상이란 그 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데 주흘산 정상은 주흘주봉(1,075m)에서 북쪽에 위치한 주흘영봉(1,106m)을 가리킨다. 주흘산에서 가장 높은 봉을 정상으로 삼고 있으니 이에는 별다른 이의가 없으리라 본다. 그러면 주봉이란 과연 무엇인가. 주봉이란 그 산의 생김새와 산세를 한데 모아 평할 때 높이와는 관계없이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곳을 말한다. 주흘산의 정면은 신라 이래로 문경현의 현아(縣衙)가 있던 문경읍소재지가 된다. 주흘산의 정면인 문경읍쪽에서 바라보면 산세가 우뚝하여 좌측에서 우측까지 이어지는 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앞쪽에서 볼 때 이들 봉 중에서 가장 높고 두드러지게 눈에 들어오며 기운이 가득 찬 우측의 1,075봉이 이 산의 주(主)가 되는 것이다. 특히 고지도인 해동지도(18C 중엽)에는 주흘산의 전체적인 봉들을 주흘산이라 표기를 하면서 우측의 주흘주봉인 1,075봉 있는 곳을 '蠶頭峯(잠두봉)'이라 표기를 하고 있다. 이곳 1,075봉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렇게 봉우리에 명칭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시대 측량이 시작되면서부터 산 높이가 정해졌으나 그 이전에는 산 높이에 대한 개념은 전혀 없었다. 어느 고지도를 보아도 산 높이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없다. 옛 사람들은 산을 우러름의 대상으로 보았지 요즘처럼 높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들은 없었다. 산 높이에 대한 것은 측량술이 발달하고 지적도가 생긴 일제 때부터의 일들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정상은 산 높이에 대한 것으로 그 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고, 주봉이란 전체적인 산세로 보아 주(主)가 되는 봉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흘산의 앞쪽인 문경읍소재지에서 볼 때 주흘주봉(1,075m)은 보이지만 주흘산의 정상인 주흘영봉(1,106m)은 주봉 뒤쪽에 위치해 형체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한 동안 머무르며 조망을 즐기고 내려서는 길목에 매달린 안내판(←주흘영봉.부봉.백두대간연결) 의 화살표 방향이 주봉쪽을 가르치고 있어 혼동이 될 것 같다. ‘T자삼거리로 되돌아 내려가 직진하여 능선을 따른다.  

 ▲ 이정표삼거리에 있는 119구조위표시 솔라등

 

 ▲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일부는 훼손되어 있다.)

13 : 52    T자삼거리 봉우리를 3곳을 넘어 산 좌사면을 오르다 T자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오른다.

올라선 공터가 있는 곳에서 우측으로 나서자 이번에는 대미산쪽이 잘 보이는 전망터가 있다.(13:21) 공터로 돌아와 11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조그만한 봉우리 두 곳(13:29,13:36)을 지나고 한차례 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한 후 좌측으로 돌아가자 역시 T자 삼거리에 닿는다. 이정표(← 제2관문 3.8km(2시간)/ ↓ 주흘산 1.3km(40분)/ ↗하늘재(백두대간), 제3관문 6.7km(3시간 30분 현위치:주흘영봉 1,106m)가 세워져 있지만 제2관문길을 가르치는 팻말은 누가 부러뜨려 보기가 흉하다. 몇 분은 더 이상 가지 않고 좌측으로 하산하기에 나는 우측으로 비탈길을 올라 작은 봉우리를 지나 20미터정도 더 가자 공터로 된 주흘영봉에 들어선다.  

 ▲ 주흘영봉 전체 모습

 

 ▲ 영봉에 있는  삼각점에 대한 안내문

 

 ▲ 영봉의 삼각점(너무 가까이 찍었나?)

 

 ▲ 주흘산영봉의 정상표지석

 

 ▲ 주흘영봉 표지석 뒤로 백두대간쪽으로 가는 길

13 : 55~58 주흘산영봉(1,106m) 보조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주흘산의 최고봉이지만 전망은 별로

10평미만의 공터 중간에 자연석 표지석엔 예서체 한문으로‘主屹靈峰 1106m'이라 표시되어 있고 옆엔 보조삼각점이 자리하고 있고 삼각점에 대한 안내문도 대구과학대학에서 세워놓았다. 뒤돌아보니 주봉의 모습만 보일뿐 사방이 잡목으로 가려서 조망이 시원하지는 못하다. 북쪽으로 나 있는 길은 백두대간길과 합쳐진 후 부봉이나 마패봉을 거쳐 제3관문이나 신선봉으로 가는 길인데, 우리일행 거의가 부봉6봉을 거치기 위해 직진하여 간 듯 하지만 나는 무릅이 좋기 않아 포기하고 유진수씨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나는 뒤돌아 내려간다.   

 ▲ 꽃밭서들쪽으로 하산하는 능선

 

  ▲ 산죽밭 비탈길로 이어진다.

14 : 59    다시삼거리 일부는 직진길로 갔지만 이정표삼거리로 되돌아가 직진하여 내려선다. 

조금 전 이정표 삼거리에 도착하여 좌회전하는 주흘주봉길을 버리고 직진하여 내리막을 부지런히 내려가며 언덕을 넘어선다.(14:00) 내려서는 길에 꽃밭서덜로 내려가는 선두팀으로 합류한 후에 코스모스님(HL5FYU 이원덕님)과 무선교신을 통해 14명이 부봉길로 갔다고 알려 준다. 7명이 꽃밭서덜길로 나와 함께 내려간다.

 ▲ 내려선 계곡에서 이교수님 내외가 즐거워 하신다.

 

  좌우양쪽 개울이 합쳐지는곳 시원한 물이 흐른다. 

14 : 52    계곡진입 내리막과 산죽능선길에 이어 완만한 능선이 끝나자 합수머리 계곡에 진입

산죽이 우거진 길로 이어 지면서 급경사길이 한동안 계속되더니 공터를 지나(14:40) 완만한 능선길이 갑자기 경사가 급해지면서 좌우 양쪽 개울이 합쳐지는 합수머리 반석으로 내려선다. 

 ▲ 삼거리에 올라서자 있는 표시판

 

 ▲ 삼거리에 올라서서 오른쪽(왼쪽은 전좌문 삼거리로 올라가는 길)으로 넓은 길을 따라 내려간다.

14 : 54    임도삼거리 개울을 건너 올라서자 구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개울좌측으로 내려간다.

시원한 반석을 건너 둑을 올라서니 전좌문에서 내려오는 길인 좌우(동.서)로 난 널따란 임도에 들어서며 우측으로 내려가길 4분만에 사람들이 웅성대는 곳에 도착한다.   

 ▲ 길 좌측 에 있는 꽃밭서덜 이정표

 

 ▲ 길 좌측 산비탈이 온통 너덜인 꽃밭서덜

 

 ▲ 중간에 돌을 세워 탑을 쌓아 놓은 꽃밭서덜

14:58~15:02꽃밭서들 좌측 산사면을 차지한 너덜에 수 많은 돌탑들이 장관이라 모두들 환호성

길 좌측에 이정표(꽃밭서덜 해발 615 m:↓주흘산2.5 km 1시간10분/↑제2관문3 km 50분)가 119 구조위치표시 ‘주흘산솔라표시등-06’이 서 있는 뒤로 비탈진 상당히 널다란 너덜지대 수 많은 돌탑들이 널브러져 장관인 꽃밭서들이다.

꽃밭서덜 : 산허리에 모두 긴 돌을 세로로 세워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놓아 마치 수많은 탑을 쌓아놓은 듯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을 꽃밭서덜이라 한다. 꽃밭서덜이란 이름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참꽃, 벚꽃, 개나리 같은 꽃이 많이 피었다는 유래와 바위언덕을 가리키는 ‘서덜(너덜의 사투리)’이란 말을 합친 곳이라는 설과, 예전에 기자치성을 위한 연등을 많이 달았는데, 그 장면이 꽃으로 만발한 듯 했다고 해서 꽃밭서덜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이곳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소원성취를 위해 많은 돌탑이 쌓여 있는데, 아들을 못 낳은 여인이 이곳에서 빌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영험이 있는 곳이라 하여 많은 무당들이 찾기도 한다. 한편 이 골짜기에서는 일본인들이 만든 철도의 흔적도 찾아 볼 수 있다. 철광을 캐가기 위한 목적으로 일제강점기 때 만든 것이 아직도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골짜기에도 화전민이 살고 있었으나, 1970년경 대성산업이 국가로부터 땅을 사들이면서 모두 떠났다. 돌탑 가운데 큰 나무는 문경새재에 유명한 박달나무다. 이 나무로 옛날에는 다듬이 방망이나 홍두깨 등을 만들었으며 가장 단단한 나무로 이름나 있다.

모두들 사진촬영에 열중이다. 이런 산중에 있는 돌탑 너덜도 주위에 볼만한 경관을 제공한다.  

 ▲ 개울건너 우측으로

 

 ▲ 이번에는 개울 건너 좌측으로 가길를 반복한다.

 

 ▲ 깨끗한 개울물에는 물반 단풍잎새가 절반이다.

 

 ▲ 개울바닥을 따라 내려 갔다.

 

 ▲ 넓은 길을 내려간다.

 

  ▲ 직진해도 되지만 우측길로 내려간다.

 

 ▲ 줄을 쳐 놓은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갔다가

 

 ▲ 개울을 건너 좌측으로 올라선다. 

15 : 23    Y자갈림길 계류를 좌우로 7번 반목한 후 Y자 길에서 우측으로 내려가지만 다시 합침

길은 먼저 개울을 건너(15:03) 우측으로 갔다가 곧바로 개울을 건너 좌측으로 건너간다.(15:04) 길을 따라가다 부봉으로 간 팀들의 무선연락을 받는다. 지금 막 1봉에 진입한다고 한다. 터널을 이룬 주변 나무엔 단풍이 물들어 있고 개울물은 너무나 깨끗한데 떨어진 단풍잎들이 꽃잎마냥 맴돌며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바닥에 돌들은 희고 희다. 다시 계류를 우로 좌로 건너기를 2번씩 더 반복한 후 잠시 개울 바닥을 따라 가다 개울건너 좌로 건너간 후 Y자 길에서(15:20) 우측(직진길도 큰 도로에서 합쳐짐) 좁은 길로 내려서서 개울을 건너 우측으로 갔다가 다시 좌측으로 건너 올라서자 큰 길과 합쳐진다.     

 ▲ 넓은 길과 합류되어 우측으로 내려간다.

 

 ▲ 좌측에 있는 주흘산 안내문

 

 ▲ 좌측에 있는 안내센터(사람도 없고 자물쇠로 잠겨있다)

 

 ▲ 제2관문 삼거리에 있는 복잡한 이정표

15 : 44    탐방지원센터 넓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자 탐방지원센터와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

넓은 도로에 들어서서 우측으로 1분정도 내려가자 주흘산안내문이 있고 좌측에 화장실과 함께 탐방지원센터가 있고 곧 1관문에서 3관문까지 연결되는 도로에 접어들자 복잡한 이정표(←교귀정1.1km.원터1.8km.촬영장2.7km.제1관문3.km/↓주흘산5.0km/이진터1.4km.동화원2.3km.제3관문3.5km.고사리주차장5.0그5km→ 현재위치 제2관문 해발 380 m)가 섰는 많은 산군들이 왕래하는 삼거리다.  

 ▲ 제2관문을 가기 위해 조곡교를 건넌다.

 

 ▲ 조곡관 현판이 붙은 제2관문

 

 ▲ 조곡관 뒷쪽에는 '嶺南第二關'이란 글씨가 달려 다.

15 : 46    조곡관(2관문) 우측으로 조곡교를 건너 숲속에 자리한 2관문인 조곡관을 살펴본다.

삼거리에서 조곡관을 보기위해 우측으로 조곡교(1977년 건설)를 건너가 조곡관 앞에 도착, 우람한 성벽 중간에 조곡관이란 현판이 달려있는 제2관문 성문을 통과한다.

제2관문[중성(中城),조동문(鳥東門),조곡관(鳥谷關),주서문(主西門)] : 제2관문은 임란 2년 후 선조 27년(1594)에 충주 수문장(守門將) 신충원(申忠元)이 단독으로 축성한 곳으로 중성이라고도 하며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구성(舊城)을 개축하였으나 관(關)은 영성(嶺城:제3관문)과 초곡성(草谷城:제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 그 후 1907년에 훼손되어 1975년에 복원하였다. 이렇게 복원한 문루를 옛이름 조동문이라 부르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게 되었다. 제 1, 3관문은 그 뒤인 숙종 34년(1708)에 축성을 했다. 

 ▲ 제2관문을 지나 좌측 개울 건너 산쪽에 있는 조곡약수

 

 ▲ 맑고 시원한 물이 일품이다.

 

 ▲ 다시 2관문을 지나고 조곡교를 건너 삼거리를 지나고 있다.

 

 ▲ 길 우측 안쪽 다리건너 민박집이 있는가 보다.

 

 ▲ 길 우측에 새재계곡임을 알리는 비석

15 : 48    조곡약수 조곡관을 통과 좌측으로 소나무 숲을 가로질러 개울건너 약수를 맛본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좌측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 개울을 건너 있는 조곡약수까지 건너가 본다. 개울건너에 있는 산에서 나오는 물인 조곡약수를 한 모금 마셔 보니 참으로 시원하고 상쾌하다. 양 옆에는 약수를 자랑하는 안내문과 약수의 수질검사 내용을 별도로 붙여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鳥谷藥水(조곡약수): 이 약수는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청산계곡 사이로 흐르는 용천수로서 물이 맑으며 맛이 좋아 길손들의 갈증과 피로를 풀어주는 영약수(靈藥水)로 널리 알려지고 있음.  

되돌아 나와 관문과 조곡교를 건너고 삼거리를 지나자(15:52) 우측으로 민박집을 건너가는 아치형 다리를 건너다보고 ‘새재계곡’이란 비석을 지나자 좌측에 물소리와 함께 폭포가 나타난다. 

 ▲ 길좌측에 있는 조곡폭포

 

 ▲ 폭포이름을 알리는 표목

 

 ▲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을 이용한 물레방아

15 : 56    조곡폭포(인공폭포) 되돌아 조곡관과 삼거리를 지나자 좌측에 조곡폭포와 전망대

몇 년 전에 부봉으로 내려왔을 때도 이 폭포는 없었는데 새로 만들어 아름다운 정취를 자랑하는 인공폭포이다.

鳥谷瀑布(조곡폭포):주흘산 깊은 골의 맑고 청아한 물이 한 방울씩 모여 이루어진 이 폭포는 높이 25m의 3단으로 이뤄진 폭포로 폭포수가 떨어져 지나는 길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 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조곡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까지 마련돼 있고 영남 제2관문인 조곡관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조곡폭포라 부르고 있다. 이곳의 폭포에 쏟아지는 맑은 물은 부봉과 주흘산 사이의 조곡계곡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끌어 폭포를 이루도록 했다.

폭포를 살펴보고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 관상용 간이물레방아를 지나자 좌측에 자연석을 세워 만든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 길 좌측에 있는 산불조심ㅂl

16 : 00    산불됴심비 길 우측에 자그만 한 통행인에게 당부하는 옛 한글로 세워진 자연석 비석

사각 철 파이프로 사각으로 둘러쳐진 고색창연한 비석엔 붉은 페인트로 덧칠을 한 옛 글씨로 새워진 비석이 있었으니

산불됴심 표석 : 다듬지 않은 원추형 자연석(높이 183㎝, 폭 75㎝)에 "산불됴심"이라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순수한글비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정조 때 별장이 잡인들의 통행을 단속할 때 역시 관방(關防) 유지를 위해서는 산불조심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고, 일반 백성들도 잘 알도록 한글비를 세우지 않았나 싶다. 당시 새재길 통행인들에게 산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의미심장한 비로서 이 비는 자연보호의 시금석으로 「조심」을 고어인 「됴심」으로 기록한 보기 드문 순수한글비로 1990년 8월 7일 지방문화재자료 제 226호로 지정됐다.

비석을 유심히 살펴보고 몇 걸은 옮기자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눈길이 끈다. 

 ▲ 길 우측에 소원성취탑

 

 ▲  가까이에서 본 소원성취탑

16 : 01    소원성취탑 우측에 몇 개의 돌탑이 옛날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들이 소원을 빌었던 곳

여러개의 돌탑들이 원추형으로 싸인 돌탑군으로 안내문을 보니 예전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나 상인 또는 과객들이 소원을 빌었던 所願成就塔(소원성취탑)이란다. 

소원성취탑 : 그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정성을 들여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몸이 아픈 사람은 쾌차하며 상인은 장사가 잘 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이곳에 돌탑을 쌓아 `소원성취탑'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요즘 이곳을 지나는 관광객들은 시험합격, 재물, 출생, 쾌유 등 소원을 기원하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돌탑을 지나 시원한 도로를 따라 7분정도 내려가자 우측 개울에 새파란 물 가운데 꼭 쥔 주먹 같이 생긴 돌이 있었으니 꾸구리바위란다. 

 ▲ 길 우측 개울에 있는  꾸구리바위

 

 ▲ 가까이에서 본 꾸구리바위

16 : 09    꾸구리바위 우측에 개울 속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이름을 짓고 사연을 붙여 놓았다.

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까지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물속 중간에 자리 잡은 큰 바위를 몇 년전에 왔을 때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어 몰랐는데 근자에 설명문까지 도로가에 세워 설치해 놓았다.

꾸구리 바위 : 큰 도랑 안에 크고 둥근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꾸구리 바위이다. 물속에는 큰 꾸구리가 많이 살고 있어 바위에 앉아 있으면 물속에서 꾸구리가 움직여서 바위가 들썩인다고 한다. 꾸구리는 송아지를 잡아먹을 정도로 컸다고 하며, 물이 깊고 큰 바위가 놓여져 있는 이곳은 전하는 얘기로는 특히 젊은 새댁이나 아가씨가 지나가면 희롱하기까지 하였다고 전한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길을 지나면서 동전을 던지면서 기원을 드리기도 하는데 물이 맑고 고요해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으로 지나는 사람마다 한 번씩 눈길을 주곤 한다.

꾸구리 바위를 지나 도로를 2분정도 내려가다 우측에 화장실이 있는 곳에 좌측 산으로 길이 나 있고 예배굴이란 안내판이 있다.  

 ▲ 예배굴이 있다는 안내문

 

 ▲ 굴속에 예수상이 모셔져 있는 예배굴

 

 ▲ 예배굴이 있는 바위 전체모습

16 : 15    예배굴 길 좌측 산으로 50미터 올라가니 바위하단에 예수와 마리아상이 있는 기도처

비록 무릅은 시큰거리며 아프지만 호기심이 발동하여 산위로 이리저리 길을 따라 2분정도 올라가자 큰 바위가 ㄴ자로 수직 절개된 하단에 틈새가 있어 들여다보니 몇 사람은 누울 수 있을 정도 공간 안쪽에 예수상과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으로 보이는 조각물이 타다 꺼진 촛불과 함께 들여다보인다.

禮拜窟(예배굴): 이곳 새재길은 최양업 신부(김대건 신부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방인사제)가 경상도와 충청도 지방의 순회 전교활동을 위하여 넘나들던 곳으로 새재길 입구(문경읍 진안리)에서 순교하여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었으며 이 굴은 조선시대 말기 기독교인들의 예배장소로 추정되며 길이7m, 폭5.5m,높이1m의 동굴내에는 당시 교인들이 사용하던 십자가가 모셔져 있다.(안내문전문)

돌아내려와 큰 길을 따라 2분정도 내려가자 우측에 있는 시비를 보고 개울쪽으로 들어가니 별세계가 펼쳐진다. 

 ▲ 길 우측 용담폭포로 들어서자 넓은 반석이다.

 

 ▲ 바위틈새에 있는 용담폭포

 

 ▲ 맑은 물은 바닥까지 보인다.

 

 ▲ 하류쪽도 절경이 이어진다.

16 : 20~24  용담폭포 길 우측에 있는 기다란 맑은 물이 흐르는 폭포와 널따란 반석이 아름답다.

수 십명이 들어설 수 있는 넓은 희고 흰 반석과 옆에 용처럼 길다란 바위틈에 내려쏟는 폭포수는 시원하다 못해 한기까지 느낀다. 우측 바위에는 바위면을 따라 올라간 담쟁덩굴이 빨갛게 물들어 운치를 더해준다. 옛 사람들의 시를 빌리면

  過鳥嶺龍潭(과조령용담): 새재의 용담폭포를 지내면서...(洪彦忠 조선중기 문신(1473년~1508년))

雷雨包藏只一泓(뇌우포장지일홍):우렁찬 폭포소리 물속에 잦아들고

兩邊山木作幽情(양변산목작유정):애워싼 나무들로 그윽하고 싶어라.

問龍夙世脩何行(문룡숙세수하행):용아 너는 예로부터 어떻게 닦았기에

今日深潭臥不驚(금일심담와불경):지금 여기 누워서도 놀라지 않는냐?

      또 한 면곡 어변갑님(綿谷 魚變甲 1381~1435 집현전 직제학) 의 용추에 대한 글은

龍動盤渦折(용동반와절):용이 꿈틀거리어 소용돌이 헤치니

涵天明日新(함천명일신):잠긴 하늘에 밝은 해가 새롭다.

晴雷白虹瀉(청뇌백홍사):갠 날 우뢰소리에 흰 무지개 쏟아지니

恍惚孰窮神(황홀숙궁신):황홀하구나! 누가 그 신비함을 알리~~~

한동안 일행들과 풍경을 즐긴 후 돌아 나오자 이번에는 길 좌측에 높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 팔작지붕이 돋보이는 교귀정

 

 ▲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교귀정 소나무

 

 ▲ 이 소나무 뿌리 애로 약수터가 어렴푸시 보인다.

 

 ▲  용추약수 안내문

 

 ▲ 교귀정에 있는 이정표

 

 ▲ 감사 도임 행사 설명문

 

 ▲   감사도임행차를 미암일기초와 탐라순역도를 기초로 하여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16 : 25    교귀정 우측엔 용추약수가 있고 좌측엔 경상감사가 임무인수인계를 하던 교귀(구)정

이곳 높은 정자는 교귀정으로 이곳에서 佔畢齊 金宗直(점필재 김종직)님 지으신 시를 음미해 본다.

交龜亭上傲乾坤(교귀정상오건곤):교귀정지에 올라앉아 하늘 땅을 즐기는데

斗覺霜華點鬂根(두각상화점빈근):문득 깨달으니 귀밑머리 흰 빛이로다.

一水宮商風自激(일수궁상풍자격):한가닥 흐르는 물은 바람과 더불어 노래 부르고

千巖圖畵日將昏(천암도화일장혼):일천 바위는 그림 같건만 날은 점점 저무누나.

詩回寫景窮飛鳥(시회사경궁비조):시로써 경치 읊고 날새 보금자리 찾아 헤매고

淚爲傷懷讓斷猿(누위상회양단원):눈물로 회포 씹으매 잔나비 울음 멈추도다

南路己銷雙斥堠(남로기소쌍척후):남쪽길 두 이정표 어둠에 모양 사라져 가는데

月明今夜宿何村(월명금야숙하촌):아- 달 밝은 오늘밤사 어디메서 머물꼬

교귀정(交龜亭):성종조 초(1470년)~15년(1484년) 당시의 첫번째 문경현감 신승명(愼承命)이 팔왕폭포위에 세운 정자로 체임하는 경상도 신구(新舊)감사가 400여년간 지속적으로 관인(官印)을 인수인계 하던 곳인 교구정(交龜亭)은 1896년 3월 의병과의 전투시 화재로 소실되어 일백여년간 페허로 방치되다가 1996년 6월 새로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한 칸임)

교귀정 오르는 입구를 지나 축대 모퉁이에는 옛날 교귀정과 역사를 같이한 교귀정소나무가 있고 좌측에는 경상감사 도임행사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음각된 안내석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길우측 이정표(↑원터0.7km,촬영장1.6km,제1관문0.9km,박물관2.4km/↓조곡폭포0.8km,제2관문1.1km,이진터2.5km,제3관4.6km, 현위치 교귀정 해발 318m) 아래에는 용추약수가 있다는 안내문은 있지만 내려가 보지 못하고 그냥 길을 따라 내려간다. 3분정도 내려가자 이번에는 우측에 초가집이 보인다. 

 ▲ 길 우측에 있는 주막

 

 ▲ 길 우측 개울 건너 조령산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 문경새재 산책로

16 : 29    주막 길 우측에 몇 채의 초가집으로 된 옛날 쉼터와 산비들의 유숙처 이였던 주막

담장 안으로 들어서니 신주소 ‘새재로 1295’인 고색이 묻어나는 원채와 마당에 있는 툇마루가 정겹게 보인다. 툇마루 옆에 있는 문경주막에 대한 시 한 수

聞慶酒幕(문경주막)

    奉寄月沙先生(봉기월사선생): 월사 선생께 드립니다.

幾年門下受恩私(기년문하수은사) : 문하에서 입은 은혜 몇몇 해입니까

主屹山前秣馬時(주흘산전말마시) : 주흘산 아래에서 말에게 풀 먹일 때입니다.

西望長安千里遠(서망장안천리원) : 서쪽으로 바라보는 서울이 아득하여

雪晴茅店自吟詩(설청모점자음시) : 눈 개인 주막에서 혼자 읍조립니다.

酒幕(주막) :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 길로 오르던 선비들과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각계각층의 우리 선조들이 험준한 새재 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 몸을 한 잔의 술로 여독을 풀면서 서로의 정분을 나누고 쉬어가던 이곳에 새재를 정비하면서 주막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옛 선조들이 읊은 시를 주막 주변 바위에 그 시를 새겨 놓았다.

삽작(대문의 사투리)에는 생육신 중 한분이며 금오신화(금오신화)와 매월당집(매월당집)으로 유명한 梅月堂 淸簡公 金時習(매월당 청간공 김시습 1435년~1493년)의 싯귀가 눈에 들어온다.

    踰鳥嶺 宿村家(유조령 숙촌가) : 조령을 넘어 시골집에 묵다.

嶺分南北與東西(영분남북여동서) : 새재는 남북과 동서로 나누어지는데

路入靑山縹緲中(노입청산표묘중) : 그 길은 청산으로 아득하게 들어가네

春好嶺南歸不得(춘호영남귀부득) : 이 좋은 봄날에도 고향으로 못 가는데 

鷓鴣啼盡五更風(자고제진오경풍) : 소쩍새만 울며불며 새벽바람 맞는구나!

아마 단종이 승하한 후 세조의 조정으로는 갈 수 없는 마음을 비유하여 읊은 듯 하여 더욱 서글프다. 다시 길을 내려가다 우측 개울건너 조령산으로 가는 길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16:37)  길 좌측에 둘러싸인 돌담을 지난다.  

 ▲ 조령원터 입구담장

 

 ▲ 원터 안엔 달랑 건문 한채 (원래는 여러채였다.)

 ▲ 건물 안쪽을 들여다 보니 썰렁하다.(용도를 모르는 탁자만...)

 

 ▲ 조령원터 안내문

 

  ▲ 등용정 안내문

 

 ▲ 등용정은 아마 이 다리를 건너 숲속에 있나 보다.

 

 ▲ 원터에 있는 이정표

16 : 40    원터 길 좌측에 장방형의 돌담이 둘러쳐진 옛날 관리들의 출장편의를 제공하던 시설

이 곳은 문경시에서 향토유적지로 정한 원터 또는 조령원터라고 하는데 돌담 중간에 난 문으로 들어서니 넓은 공터에 중간에 1채의 건물이 있다.

조령원터 : 문경 제1관문과 제2관문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직사각형으로 면적은 약 1,980㎡(600평)이다. 삼국시대부터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院)은 출장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역과 역 사이 인적이 드문 곳에 두었던 것으로 조령원은 조령을 오가는 관원 및 과객들의 숙식과 호서와 영남지방의 물물교역 장소로도 사용되었던 곳이다. 조령원터 주변에는 자연석의 석담이 정교하게 맞추어 쌓여져 있으며, 길이 동측 57.6m, 서측 53.0m, 남측 38.9m, 북측 37.7m로 대칭되는 변의 길이가 모두 다르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훼손된 것을 1995년에서 1996년에 걸쳐 보수를 하였다.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의 주흘관에서 조곡관 방향으로 약 1.3㎞ 떨어진 지점, 조령로변에 자리잡고 있다. 1977년에 문경군 주관으로 2차에 걸쳐 이곳을 발굴한 결과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온돌구조를 발견하였는데 이것은 한국 건축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원터는 조령원터 외에도 동화원과 신혜원에도 있었다고 한다. 건물 안쪽을 들려다 보니 판자마루에 간의 의자만 한 개 입구에 있을 뿐! 별 다른 시설은 없었다. 되돌아 나오자 좌측에 조령원터 유적약도와 설명문이 있고 그 옆에는 등용정이란 안내문이 있는데 아마 등용정 길 우측에 새로 생긴 섶다리를 건너 개울 우측 숲속공터에 새로 만들어 놓은 것 같지만 건너가 보지 않고 그냥 내려간다. 도로를 따르다 좌측 산위를 쳐다보니 기다랗게 튀어나온 바위가 보인다.  

 ▲ 길 좌측 산 기슭에 튀어 나온  바위를 지름틀바우란다.

16 : 46    지름틀바우 길 좌측 산기슭에 길다랗게 튀어나온 바위 꼭 옛날 지름틀처럼 생긴 바위

지름틀바우이다. 지름틀이란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짤 때 쓰였던 지렛대 역할을 하던 나무를 일컷는 경상도 사투리이고 바우도 바위의 경상도 사투리다. 튀어나온 바위모습이 옛날 기름을 짤 때 쓰는 지렛대처럼 생겼다고 이름 붙여진 바위다. 지름틀 바위를 지나 2분정도 내려가자 이번에는 우측에 한기의 돌탑이 보인다. 

 ▲ 우측에 돌무더기 인공산인 조산이라고 한다.

 

 ▲ 조산 옆에 있는 휴게장소(조게정이라 새만 쉬어 가는 곳인가?)

 

 ▲ 길 좌측 바위에 양각된 공덕비

16 : 49    조산(쉼터) 길 우측에 돌무더기와 휴식용 원두막이 있고, 좌측 산 절벽에는 송덕비

이 돌탑(돌무더기)은 조산이라고 안내문에 되어 있다.

造山(조산) : 조산은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을 일컫는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어느 곳의 기(氣)가 약한 지점에 인위적으로 인공의 산을 만듦으로써 그곳의 기운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이 깃들여 있다. 문경지역에서는 골맥이 서낭당으로 불리며, 마을 입구나 경계지점에 세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곳이기도 하다.

조산 옆에는 鳥憩亭(조게정)이란 원두막 같은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계류를 따라 길은 좌측으로 굽어지며 좌측 산 절벽에 양각으로 된 선정비(尙州牧使李00著善政泛世不忘碑 康熙十一年 庚子八月立)가 새겨져 있지만 가까이 가 보지 못하고 급히 내려간다.    

 ▲ 길 우측에는 왕건교가 있다.

 

 ▲ 왕건교 건너엔 KBS촬영장이 있지만 그냥 내려간다.

16 : 53    촬영장입구 길 우측 왕건교 건너 KBS촬영장이 있지만 건너다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길 우측에 아치형 王建橋(왕건교)를 건너면 촬영장이지만 예전에 본적도 있고 또 시간도 없어 그냥 지나친다.

KBS 촬영장 : 주흘관(1관문) 뒤편에 위치한 KBS촬영장은 부지 2만평에 고려왕궁과 백제궁의 왕궁 2동과 귀족촌 기와집 41동, 초가집 40동, 기타 13동 등 모두 96동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 촬영장은 세계최대의 사극촬영장으로서 2000년 2월 23일 완공되어 대하드라마인 `태조왕건'이 2000년 4월부터 방영을 시작해 큰 인기를 모았다. 

 ▲ 길 좌측에는 시멘트 포장길인 혜국사 가는 길이 있다.

 

 ▲ 혜국사 입구를 지나자 우측에 있는 촬영장관리소

 

▲ 문경새재도립공원 안내도

16 : 55    혜국사입구 좌측 산위로 시멘트 포장된 혜국사 가는 길 입구를 지나자 촬영장관리소

반들반들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좌측에 시멘트포장길이 있으니 혜국사로 올라가는 찻길이다. 잠시 더 내려가다 우측에 촬영장관리소와 (16:58) 좌측에 문경새재도립공원 안내도를 지나 내려간다.  

 ▲ 관찰사 송덕비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17 : 00    관찰사공덕비 좌측에 관찰사송덕비가 줄지어 서 있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지나침

이번에는 길 좌측 배수로 옆에 길 다란 풀밭에 줄지어 있는 비석을 보니 관찰사들의 송덕비를 한군데 모아 놓았다. 일일이 살펴 볼 수는 없지만 이것도 하나의 유적지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 부터는 제1관문이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가다 우측에 보이는 타임캡슐광장으로 들어간다.  

 ▲ 타임캡슐을 부장한 광장

17 : 03    타임캡슐광장 길 좌측에 타임캡슐을 뭍은 상징이 있는 광장에 들어가 둘러본다.

원형으로 만든 광장에 삥 둘러가며 경상북도의 각 군별로 타임캡슐에 부장시킨 품목을 사진을 곁들어 설명한 피캣들이 세워져 있고 중앙에는 타임캡슐의 모습을 꼭대기를 탑신모양으로 만들어 놓아 구경거리를 제공해 준다. 

경북 100주년 타임캡슐 광장 : 주흘관 바로 뒤편 길 오른쪽에 있으며, 경상북도가 개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현재를 사는 경북인의 대표적인 생활풍습과 사회. 문화 등을 대표하는 각종 자료와 물품 등 100개 품목, 457종을 특수캡슐에 넣어 그 아랫부분의 땅속에 묻어 놓았는데 개도 500주년이 되는 2396년에 우리 후손들이 다시 캐내 400년 전의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타임켑슐 옆에는 수장품들을 일일이 볼 수 있도록 영상시설도 갖춰 놨다. 이 타임캡슐은 개도 500주년이 되는 2396년 10월 23일에 개봉될 것이다。

타임캡슐광장을 나오자 아침에 올라간 삼거리 길에서 직진한다. 

 ▲ 아침에 동과했던 주흘관

 

 ▲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 주흘관 성벽 서쪽 끝 개울건너 있는 절벽

 

 ▲ 해 저무는 길을 내려간다.

 

 ▲ 주흘관관쪽의 행사장을 뒤돌아 보았다.

17 : 06    주흘관 아침에 통과한 1관문을 지나 축제천막이 즐비한 도로를  한창 걸어 내려간다.

제1관문인 주흘관을 빠져나가자 좌우가 한창 축제분위에 고조되어 있다. 각 텐트마다 자기들 품목들을 자랑하기 바쁘다. 부지런히 길을 따라 걸어서 15이상을 걸어 아침에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 우측으로 주차장에 내려선다.   

 ▲ 해는 넘어 갔어도 주차장엔 차들이 만원이다.

 

 ▲  후미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관봉쪽엔 땅거미가 내리고 있다.

17 : 23    새재주차장(산행종료) 관광관리소를 지나 길 우측 주차장에 도착하여 후미를 기다림

날은 이미 저물어 가고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주차장에 도착 배낭을 정리하고 부봉으로 간 후미들을 기다린지 1시간 만에 후미가 무사히 도착하여 반갑고 고맙다. 아직 차들이 가득 찬 새재주차장을 서둘러 빠져나와 고속국도에 들어서자 지친 몸은 잠속으로 나락을 편다. 


 

산행을 하고나서

이번에 모처럼 온 부봉 6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무릅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여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2관문에서 하산하는 도로에 과거길과 등용정을 가보지 못 한 것도 숙제로 남는다.


 

樂山樂水(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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