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의 주목과 설경

 

 

 

 

 


  100대 명산인 태백산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영산(靈山)이라고 부리는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민족혼을 나타내는 모산(母山)입니다.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이 있어 사시사철 하늘에 염원을 비는 기도가 끊이질 않습니다.


  눈이 내린 다음날 태백산 산행들머리인 화방재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비록 국도(31번)라고는 하지만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꼬부라진 도로를 따라 영월을 지나 태백으로 가는 차량들은 미끄러운 길을 느릿느릿 오르내립니다. 운전기사가 등산객들에게 안전벨트를 매라고 당부할 때 이는 매우 드문 일이라 버스가 미끄러질 것 같은 착각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버스 두 대에 등산객을 가득 실은 T산악회버스는 서울잠실역에서 출발한 지 4시간 30분만에 화방재에 도착합니다(11:30). 몇 대의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등산로로 들어섭니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아이젠을 착용합니다. 당골제3매표소를 통과하니 숲 속으로 연결됩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대지위로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등산객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은 한 마디로 장관입니다.

 

     <당골 제3매표소>

 

  <매표소를 통과한 후 뒤돌아본 모습>

 

   <설경1>

 

  <설경2> 

 


  몰려든 인파로 북적이는 등산로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등성이에 다다른 후부터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는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그런데 유일사 삼거리에 도착하자 등산로는 만원입니다(12:20). 왼쪽 유일사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과 화방재에서 진행하는 사람들이 합쳐진 것입니다. 흡사 러시아워 때 서울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신도림역의 인파를 보는 듯 합니다. 여기서부터 주목군락지에 도착할 때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산악회에서는 4시간 30분의 시간을 주었는데 이렇게 지체되면 문수봉을 답사하지 못할 까봐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유일사삼거리의 인파>

 

  <설경3>

 

 <설경4> 

 

  


  주목과 설화의 향연
 
  "살아 천년, 죽어 천년"간다는 주목은 태백산의 산행을 더욱 의미 있게 해 주는 볼거리입니다. 주목 한 그루가 나타날 때마다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주목은 강원도 가리왕산(1,561m)의 주목군락지도 유명하지만 가장 으뜸은 두위봉(1,466m)의 북쪽 사면에 위치한 수령 1,800년이 지난 주목일 것입니다. 이 주목을 처음 보는 순간 먼저 그 크기에 놀라고 다음에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그 생명력에 놀라게 됩니다.


  수령이 오래된 큰 주목은 몸통이 삭아내려 인공적으로 보강공사를 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를 처음 보면 꼭 죽은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둥치와 줄기를 통하여 수분을 공급받아 푸른 잎을 피운 것을 보면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태백산의 주목은 능선에 위치하고 있어서 주변의 경관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주목사이로 북쪽의 백두대간 길에 위치한 함백산(1,573m)의 조망도 일품이고, 하얀 눈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나뭇가지사이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입니다.

 

 

  <주목1>

 

  <주목2>

 

   <주목 뒤로 보이는 함백산>

 

  <설경5>

 

 <설경6>

 

  <주목3>

 

  <설경7>

 

  <주목4> 

  

   <설경8>

 

 


  장군봉과 천제단

 

  태백산의 정상인 장군봉(1,567m)에 도착하니(13:52) 돌무덤 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올라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곧장 빤히 보이는 천제단(1,561m)으로 갑니다. 장군봉에서 천제단에 이르는 길목은 바람이 세어서인지 잡목만이 자랄 뿐입니다.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에도 사람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어 접근하지도 못합니다(13:58). 4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허름한 담요로 겨우 몸을 감싼 약간 명의 사람들이 움직이지도 않고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제단은 둘레 27m, 폭8m, 높이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 가량의 원형 돌제단으로서, 삼국사기에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신라에서 오악 가운데 태백산을 북악으로 받들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천제단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구한말에는 쓰러져 가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우국지사들이,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런 제단으로 1991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곳입니다(자료 : 한국의 산하). 

 

   <장군봉의 인파>

 

 <장군봉에서 바라본 천제단>

 

   <천제단>

 

 

  웅장한 태백산 표석

 

  천제단 아래에 있는 태백산 정상표석 주변에도 기념사진을 남겨놓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져 제대로 된 표석사진 한 장을 찍기가 어렵습니다. 태백산의 최고봉은 물론 장군봉이지만 오히려 천제단과 표석이 있는 이곳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산의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산에 얽혀있는 정신을 기리는 것이겠지요.

 

   <태백산 표석 주변의 인파1>

 

  <태백산 표석 주변의 인파2>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명산이 있고 산에는 저마다 특색 있는 표석이 있지만 태백산의 표석만큼 위대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큰 비석처럼 직사각형의 검은 대리석을 대패로 잘 다듬은 후 일필휘지(一筆揮之)의 명필로 음각하여 새긴 太白山(태백산) 세 글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또한 비석이 너무 커서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천제단 아래 넓은 터에 자리를 잡고 있어 오히려 주변의 경관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필자는 그동안 약 250곳의 산에 올랐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표석은 태백산 표석이외에 영남알프스 산군(山群)에 속하는 운문산의 그것입니다. 둥그스름한 모양의 사람의 키 만한 돌에 雲門山(운문산)이라고 음각하여 새긴 글씨는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들여 올라온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산의 고도와 명성에 걸맞지 않게 볼품 없는 표석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덕유산 향적봉(1,614m)의 표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대한 태백산 표석(2003. 2. 23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필자가 좋아하는 운문산 표석(2003.7.24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

 

   <천제단에서 바라본 가야할 문수봉> 

 


  강풍이 몰아치는 문수봉

 

  북동쪽에는 유명한 단종비각과 망경사가 자리잡고 있지만 한가로이 들릴 시간적 여우가 없습니다. T산악회 명찰을 단 등산객은 단지 몇 명만 보일 뿐이어서 필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주변 공터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필자는 문수봉 방향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하단(下壇)으로 가는 길목에 유달리 무거운 눈을 잔뜩 머금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사철나무가 있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나뭇가지에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무거운 빙하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여러 형상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설경9>

 

  <설경10>

 

  <가야할 문수봉>

 

  <얼음덩어리로 변한 나무들>

 

   <푸른 하늘과 설경>

 

  <설경11> 

 

 


  문수봉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완만합니다. 백두대간의 갈림길인 부쇠봉(1,547m)을 살짝 돌아 문수봉(1,517m)에 도착합니다(15:00). 문수봉은 태백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입니다. 특히 정성스럽게 쌓아 둔 서너 기(基)의 돌탑은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한 배경으로서도 제격입니다. 동쪽으로 바라보이는 이름 모를 바위봉도, 북쪽의 함백산도 맑은 날이면 아름다움을 뽐내겠지만 시계가 흐린 것이 아쉽습니다. 

    
  고깔모자 형식으로 되어 있는 뒤편의 돌탑을 찍으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몸이 뒤로 밀려납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잠자고 있던 세찬 바람이 문수봉정상에 서자 사납게 몰아칩니다. 그러나 영하 39도의 소백산 비로봉에서 살인적인 칼바람을 경험한 후로 이 정도의 바람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경험은 매우 소중한 자산입니다.


  아래쪽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내려놓습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30분만에 비로소 물을 마시고 요기를 합니다.

 

 <문수봉 돌탑1>

 

    <문수봉 돌탑과 함백산>

 

    <너럭바위로 이루어진 문수봉> 

 

   <문수봉에서 바라본 태백산 정상>

 

  <이정표>

 

   <동쪽의 조망> 

 

 


  눈 조각축제를 기다리며
 
  서둘러 배낭을 들쳐 매고 소문수봉 방향으로 갑니다. 중간에 좌측 당골광장으로 연결되는  등산로로 진입합니다. 부드러운 길이 이어지더니 한꺼번에 고도를 낮추려는 듯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4발 아이젠 대신에 오늘 처음으로 보다 튼튼한 6발 아이젠을 착용했더니 내리막길을 가기가 훨씬 안전하고 편리합니다.


  병풍바위를 지나자 낙엽송지대를 통과합니다. 오후인데도 올라오는 나들이 객이 보입니다. 당골광장에는 1월말 개최될 눈 조각경연대회에 대비하여 조각용 얼음을 만드는 작업중입니다(16:08). 눈이 얼음처럼 단단해진 후 조각가가 혼을 불러 넣을 경우 차가운 얼음덩어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시 태어날 것이고 그 때 당골광장은 더욱 붐비게 될 것입니다.  

 

  <낙엽송 지대> 

 

 <눈조각 경연대회를 위해 조성중인 얼음 덩어리>

 

  
  버스가 보이는 곳에서 산악회로 전화를 하여 버스의 위치를 문의하니 제2주차장에 있다고 합니다. 제2주차장은 상가가 끝나는 지점에서 내려와 좌측에 있다고 하기에 한참을 내려갔더니 제3주차장입니다. 제2주차장을 물어보니 이미 지나왔다고 합니다. 참으로 허탈합니다.  주차장을 운영하려면 제2주차장이라는 안내표시라도 크게 해 둘 일입니다(16:35).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미 하산하여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승차중입니다. 태백산 정상에서 문수봉을 경유할 경우 바로 하산하는 것보다 1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하므로 이들이 바로 하산하였다면 모르되 문수봉을 거쳐왔다면 대단한 실력입니다. 필자는  그냥 버스에 오릅니다. 오늘산행에 5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등산로가 지체되지만 않았더라면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인공분수로 조성한 얼음>

 

 


  주문 즉시 제공되는 휴게소 식사
 
  버스가 제천과 장호원을 동서로 연결하는 38번 국도상의 박달재 휴게소에 정차하자 묵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웁니다. 시간이 급한 나그네에게는 음식을 주문함과 동시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이런 휴게소가 정말 마음에 듭니다.


  태백산은 전형적으로 부드러운 육산(肉山)이라 그 산세는 별로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꽃이 피는 계절에는 달라집니다. 필자는 지금까지 태백산을 세 차례 다녀왔는데 공교롭게도 전부 한겨울에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바람서리꽃(상고대)이 피어있지 않아 아쉬웠지만 역시 태백산은 신년일출을 포함하여 겨울에 찾아 볼 만한 가치가 있는 100대 명산입니다(2007.1.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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