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쓰는 꽃 편지

  

2006년  6월  14일

  

설악동 소공원-권금성-집선봉-칠성봉

  

혼자서

  


 

 

칠성봉에서 바라본 구름꽃

  

  

  

  

산들산들 바람 불어 오는 소리, 신록의 싱그러움은 초록의 풋풋함도, 농염한 밤꽃 향기가 진동하는 요즈음 산 속의 향내가 내 마음 속에 더 진해진다.   "그래, 설악산에 에델바이스가 피었구나.   함박꽃도 쪽동백도 피었다고 전할까?"   오랫만에  군에 간 아들에게 꽃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설악산의 꽃 소식을 전해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오랫만에  꿈길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일도 모레도 비가 내린다는데 그냥 배낭을 등에 업기만 해도  참 좋다.

  

  

  

함박꽃

  

  


엄청이도 오고 싶었다,  설악산!
부랴부랴 짐을 기본적이고 아주 작고 아주 덜 무거운 것으로 배낭을 꾸려도 허리가  부실한 몸으론 참 무겁다.   아마도 아프지 않았다면 벌써 와 노래 부르고 걸어 갔을 것인데 이 몸은 어찌도 한 달이 넘도록 배낭을 등에 업어보지 못했으니 참말로 그리웠다.   소공원에 도착하니 이미 날은 저물어 반겨주는 개똥이 아저씨가 그래도 따끈한 차 한잔 끊여 주면서 어서 오라고 반겨 주신다.  

  

  

월드컵 예선 1차 토고전과 있을 저녁이라선지 낯설은 숙소에서 혼자 잠을 자려니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도 아직 잠을 잘 시간도 아니되고  소공원의 북적이는 한낮하고는 너무도 다른 인적없는 쓸쓸하고 어두움 뿐 속초시내로 나가 야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자니 남들은 토고와의 예선전에 황홀감으로 텔레비젼에 눈독을 들인다.   토고전 경기를 보려면 소공원까지 차가 없음을 알고 미리 자리를 떠 다시 숙소로 돌아온다.   휘영찬란하게 비치는 설악동 계곡을 따라서 넘 밤풍경이 멋지다. 

  

 

잣  

 

잠이 오지 않는다.   낯설은 잠자리와 토고전의 경기는 어떻게 될까?   텔레비젼도 없고 오직 내게 비치는 그 무지무지한 장비들과 한적한 밤공기 소리만이 있을 뿐 고요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정과 진실을 알 것만 같은 그런 밤이다.  

  

  

아침이 참 아름답다,   창을 여니 밤새 깨끗해진 공기가 숙소로 들어온다.   저 멀리 동쪽 하늘로부터 빛의 자락이 내려오면 어두움은 잠에서 깨어나 어디론가 길을 떠나 간다.   나도 나무들은 어둠 속에서 움추려 있다가 세상의 모든 아침은 하루의 시작이듯 걸어 갈 그 능선의 환상적인 풍경을 생각만 해도 힘을 돋우는 일이고 희망을 만나는 산 길이다.

  

  

잦꽃

  

  

  

이른 아침 일찍 나서려 했으나 수아저씨, 봉아저씨, 근아저씨 모처럼 인사할 분들이 넘 많아 10시가 되어서야 봉아저씨의 안내로 하늘을 날으는 곳까지 인도해 주신다.   작년 가을 휘영찬란한 설악정원의 꽃단풍을 보면서 내 마음의 혼을 빼앗아 갔던 그 길!   그 땐 이 길을 내려서 왔는데 오늘은 다시 하늘을 날아 오르고 있었다.  

초록 정원에 하늘을 날아 하얀 구름속으로 그렇게 순식간에 권금성에 닿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초록물결 속으로 걸어가는 향기 짙은 간절한 그리움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많은 산행을 하면서 익숙해져 있는 빗길들이 꿈과 현실의 세계를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밤하늘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나를 어딘지 높은 곳으로 데려가 주 길 원한 적도 있었고,  반짝이는 별을 보면서 뜨거운 숨결을 눅진한 기운의 호흡으로 떨어내려 보기도 했었다.  

  

  

집선봉을 바라보며

  


이내 오솔길로 오른다.     아침에 내리는 빗속에 고개 숙여 있는 생명체들이 향내가 너무 강해서 촉촉한 숲 내음이 그윽하게 코속을 간지럽힌다.   오렌지와 레몬의 중간색을 무슨색으로 표현할까,  활짝 핀  각시원추리가 수줍어하고 있다.   가끔은 봉우리를 쑤욱 내밀어 애정어린 눈  길로 바라 보지만  낙엽 무더기가 땅에 떨어져 또 다른 열기속에 노오란 금마타리가  사랑을 고백한다.

  

  

각시원추리

  

  

금마타리

  

  

  


어디론가 쉽게 떠날 수 있고 제멋대로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는 내가 그들보다 더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닐기도 하고 달릴 수도 있지만 더 많은 나뭇가지 가지마다 묻어나는 새로운 색깔,  제각기 지니고 있는 들꽃들의 모습이 왜 아름답지  아니한가.   바위 틈속에 살아 숨쉬는 금강봄맞이가 "해마다 피는데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앙증맞을까, 차라리 시들지 않는 조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말해 주어야겠다.  

  


 

금강봄맞이

  

  

  


지난해는 수 도없이 설악산을 누볐었다.    모든 혼을 빼앗아 갔던 너덜겅의 헤매였던 그리움과 외로움, 대간 길에서 만났던 6월의  조개나물, 박새, 관중, 피나물, 연영초, 솜대, 줄딸기, 고비, 홀아비꽃,은방울꽃, 개별꽃들이  취하기 보다 향과 색깔을 낸다.   

금강초롱꽃을 보면서 확실히 알게 된 모싯대의 구별 ,  내 눈을 황홀하게 빛냈던 투구꽃의 자태,  유독 설악산 구간에서만 자란다는 눈잣나무의  초록 양탄자,  허리만큼 올라있는 잡목속에 우뚝 솟아 있는 분비나무,  5월이면 올망졸망 피어있는 털진달래에 반했던 대청봉의 그림들이 향기나는 바람처럼 일고 있었다.

  

  

  

돌양지

  

  

  


설악조팝나무의  꽃봉우리를 보면서 아직은 이르구나!,   바위에 터를 잡아 치열한 삶을 살아 가고 있는 노오란 돌양지의 모습을 보면서  내 눈의 초롱초롱한 이유를 알게 했다.
솜다리에는 산솜다리와 왜솜다리가 있다고 했는데 설악산의 산솜다리가  어쩌면 두고두고 보고 싶은  설악산의 존재가 되어 이 땅의 정취를 느끼게 하리라!
오늘 이곳에서 잘난 산솜다리를 보았다고 하면 못 알아볼 것 같아 에델바이스라고  꽃 편지에 써야겠다.

  

  

  

설악조팝나무(1)

  

  

설악조팝나무(2)

  

  

  

솜다리(1)

  

  

솜다리 (2)

  

  

  

비가와서 일까,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혼자만의 길을 걸어가는데 다람쥐가 졸랑졸랑 앞장을 선다.   요즈음 다람쥐는 산님들을 보면 꼬리를 친다.   내가 여자라를 것을 알고 한참을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달콤하게 사랑스러움을 표하는것을 보니 분명 남자일꺼야.   그냥 놀기가 겸연쩍어 내가 한 잎 물었던 당귀 잎새를 던져주니 쏜살같이  달아난다.   당귀 잎새를 물었던 내 잎에서 박하향이 진동한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색다른 그림을 그려 대청봉에  걸어 주고 싶다.  

아주 예쁘게....

  

  

  


집선봉에도 범봉에도 1275봉에도 구름꽃 피어 오른다.  북으로는 울산바위,황철봉에도 꽃구름, 뭉개구름  피어 오른다.   서쪽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귀떼기청봉이 안개꽃에 더 외로워 보인다.   칠성봉의 하늘을 날으는 춤추는 요조숙녀가 눈부신 봉우리에 영혼을 채운다.   감겼다 풀렸다 보여줄 듯 말 듯 봉우리들이 꽃잎처럼 전율하는 느낌들이 기다리는 사람에게 반짝여준다. 

구름를 밟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꼬옥 전해 주어야겠다.  

  

  

오늘도 저 구름속의 설악산이 분홍빛의 설렘 가득한 느낌을 꽃 편지지에 그려 주어야겠다.

  

  

  

  

  

  

  

칠성봉이 구름속에 (1)

  

칠성봉이구름속에 (2)

  

  

칠성봉에서 (1)

  

  

칠성봉에서 (2)

  

  

칠성봉에서 본 (3) 중앙이 1275봉

  

  

  

잦꽃(2)

  

  

  

  

*입산통제구역이므로 자연생태계 조사의 목적으로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산행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