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백운산(白雲山) 산행 Photo 에세이/전철여행(8)

*. 백운산 이야기

   김포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무의도(舞衣島), 장봉도(長峰島), 신도(信島), 시도(矢島)와 모도(茅島)를 몇 번이나 다녀오면서 늘 아쉬움으로 남았던 것이 영종도 백운산(白雲山)이었다.
이 산은 영종도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어서 거기 오르면 서해바다의 여러 섬은 물론 인천공항과 이를 연결해 주는 영종대교와 2009년에 새로 개통한 인천대교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곳이어서였다.

  그래서 오늘은 큰 맘 먹고 그 백운산만을 찾아 공항철도를 타고 왔다.
바닷가라서 이 산의 정상에 아침, 저녁으로 흰 구름과 안개가 자주 끼는데 그럴 무렵이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약수를 마시며 놀고 간다는 곳이라 하여 백운산(白雲山)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산이다.
   그 선녀들이 마셨다는 약수터가 있다면 어디였을까?
정상에서 용궁사 쪽으로 600m 갈림길에서 100m만 가면 있다는 약수암(藥水庵)이 거기였을 것 같다.
  영종도 백운산(해발 255.5m)은 서울의 남산(해발265m)보다도 낮은 산이다.
넉넉하게 잡아도 3 시간 내외면 산행할 수 있는 완만한 육산(肉山)이어서, 봄철에는 진달래와 산 철쭉꽃을 보거나 태고종 천년 사찰 용궁사(龍宮寺)를 찾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산이지만, 백운산의 가장 큰 매력은 그보다 정상 조망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가족 산행이나, MTB(김포 공항 역이나 인천공항화물청사 역에서 탑승 가능)트레킹 코스로도 권하고 있는 산이다.

*. 백운산 가는 길 
   인천지역에서 사는 분들은 인천연안부두의 인천선착장에서 운치 있게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영종도선착장에서  백운대 산행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
거기서 202번 버스를 타고 백운산입구(우체국 앞)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1시간 간격인 것이 흠이다.
선착장에서는 용궁사 쪽을 들머리로 등산을 시작하게 된다. 
  나 같이 수도권이나 서울에서 사는 사람들은 김포항항까지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와서 공항철도를 타거나 환승하여 운서역에서 내린다.
부득이 인천공항까지 가게 될 경우에는 15분 간격의 공항철도를 이용하면 27분만에 이름도 아름다운 운서역(雲西驛)에 도착하게 된다.
운서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고 생각했지만 백운산이 지척으로 보여서 도보로 가기로 했다.
  
 
 
 
 
 
 
 
  
 
 
 
백운산을 바라보며 역 오른쪽에 있는 기차 철로 밑으로 난 길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좌측 큰 길로 들어섰다. 주변이 한창 공사 중인데다가 이정표도 없고 물어볼 사람들도 없어서 어리짐작으로 하여 산 밑의 우람한 건물을 향하게 되었다.
그 건물은 인천교육과학연구원으로 그 캠퍼스 내에 인천과학고등학교와 인천국제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그 캠퍼스를 통해서 산을 오르는 길도 있는 것 같은데 등산복 차림으로 교육시설 내를 들어서는 것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이를 지나서 영어영재교육원을 돌아가니 숲속에 비로소 등산로가 나타난다.
여기가 백운산 등산 들머리였지만 이 산은 덜 알려진 야산이라서 들머리 어디에나 있는 산의 지도나 정보는 물론 그 흔한 리본 하나도 없었다.
시원한 숲길을 걷다 보니 쉬어가라고 나무의자와 정자가 있고 '신도시 1.4km/백운산 정상 1.0km/ 젓개 0.5km' 라는 이정표가가 비로소 나타난다.
   그런데 웬일인가. 등산로 주변에 광대한 범위로 벌목을 하였는데 아깝게도 한 뼘 넘는 소나무도 무수히 잘라 놓았다. 이 정도면 허가를 얻은 벌목 같은데 그 허가 이상의 큰 나무를 잘라낸 것 같아 인천 중구청에 묻고 싶어진다.

*. 산(山)과 봉(峰) 이야기
  홀로 야산 백운산에 오르다 보니 '산(山)'과 '봉(峰)'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백운산은 255.5m로 서울의 남산 265.5m보다도 낮으면서 '봉"이 아닌 '산' 이란 이름을 갖고 있어서다.
철쭉꽃으로 유명한 바래봉 (1,165m)이나 오대산의 노인봉(1338.4m), 울릉도의 성인봉(983.6m), 지리산의 반야봉 (1733.6m) 같은 명산도 1,000m가 훨씬 넘으면서도 '봉(峰)'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 않은가.

높이로만 이 산(山) 저 봉(峰) 따지지 마세요,
주위 따라 산(山)도 되고 봉(峰)도 되는 것이니
공자(孔子)도
가정에 서면
형님 아우 아니던가요
.


그런데 '봉'이란 한자에는 '山 '이 머리 위에 놓은 '峯'도 있고, '山 '이 나란히 옆에 선 '峰'자도 있지만 우리는 '峰' 자를 더 많이 쓰고 있다.
그 '峰' 자를 파자 하여 둘로 나누어 보니 '산+ 만나다'는 뜻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나도 오늘은 백운산을 처음 만났구나 하였다.

*. 아아, 세계 최장 5위인 인천대교여!

  그 백운산 정상을 100m 앞두고 있는 체육시설에서 굽어보는 백운산의 전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그 위의 멋진 전망대가 있어 서둘러 올라 보니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
지난 5월에 10월이면 개통 될 인천대교의 전망을 위해서 가로 8.4m, 세로 1.8m 크기의 목조로 총 공사비 5,700만원을 들여 완공한 전망대였다.  
인천대교 전망대로는 송도유원지 뒷산 청량산(172m)도 있지만 백운산(255.5m) 전망대를 따르랴.
청량산 전망대는 송도 쪽에서 영종도를 바라보는 것이지만 백운산 전망대는 영종도에서 바다를 건너 나날이 발전하는 인천 국제도시 송도를 향하여 펼쳐지는 전망이라서 우뚝우뚝 솟은 송도의 마천루는 물론 인천의 찬란한 모습까지 볼 수 있는 황홀한 전경이다. 
   인천대교는 총 길이 21.4km로 사장교로는 세계에서 5번째로 길다는 다리다.
몇 년 전에 크루즈 여행으로 오사카를 갈 때 보던 일본이 자랑하는  철도·도로 병용교로서는 세계 최장이라는  세토대교도 총길이 1,447m였다. 그 세토대교는 5개의 섬을 연결한 교량이었지만 인천대교는 인천과 영종도 바다을 그대로 잇는 다리였다.
  내가 인천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해방 당시만해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Korea가 그 64년 동안 이렇게 성장한 것이다.
미군의 구호물자로 살던 나라가 그 가난을 벗어던지고 가난한 세계의 나라를 돕는 세계 유일의 경제 대국에 끼게도 된 것이다.
  그동안 연 인원 2백만 명을 투입하였고, 총 2조 4,566억 원을 투자할 만큼 우리 Korea가 큰 것이다. 2005년 7월 공사를 시작한 지 4년 4개월만에 완공된 다리였다.
이런 다리가 오로지 우리 Korea의 힘만으로 건설 되었다는 것은 건설대국의 위상을 높여주어서 앞으로 세계 각국의 다리를 우리의 기술력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축하해야 할 일인가.

나는 그런 내 고향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왕복 6차로의 총연장 21.4km로 교량부분만 18km나 되었다. 저 중앙부분의 사장교 주탑은 높이가 63빌딩 높이(249m)에 준하는 238.5m(서해대교는 60m)로 중앙부분이 경간 길이가 800m로 국내 최장, 세계 5위로 크기 때문에 이 사장교로 10만 톤급(서해대교는 5만 톤) 대형선박이 동시에 고행할 수 있도록 건설된 다리였다.
사장교란 다리 밑으로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교각과 교각 사이의 거리(경간)를 크게 하기 위해서 주탑을 쌓아올리고 주탑을 중심으로 케이블을 경사지게 매달아 차량이 지나가는 상판을 지탱하는 형태의 다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기술로 인천대교는 2005년에 영국 건설전문지 <컨스트럭션뉴스>에 '경이로운 세계 10대 건설푸로잭트(10 Wonders of the Construction World)'로 선정되었고. '유로머니Euromoney') 선정 '2005년 올해의 최우수아태지역 교통 인프라 부분상('06. 3)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내 고향 인천에 이런 세계적인 다리가 완공되면서 그 '인천대교 개통기  념 걷기대회'가 2009년 10월 17일(토)에 있다 하여서, 나도 그 6만 명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스팔트 아닌 팍팍한 시멘트 다리였지만 우리들은 얼마나 행복하였던지. 그때 받은 영광스런 기념 메달을 나는 고이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때 아쉬웠던 점이 인천대교 전경을 내 손으로 내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였는데 오늘 백운산에 올라 그 소원을 풀게 된 것이다.

.*. 서해 섬 이야기
  백운산은 등산의 멋보다 그 전망으로 유명한 산이다.
산에서 굽어보는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전망대에서는 서해 바다와 거기 둥둥 떠 있는 서해의 섬들을 시원스레 조망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오늘은 나도 하나의 문화 해설사가 되어 그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다.


  보세요. 위 사진 우측에 보이는 높은 산을.
저 산이 참성단이 있는 강화도 마니산(摩尼山)이고 그 건너가 신도(信島)입니다.
  마니산의 '마'는 머리의 옛말인 '마리'의 준말입니다.
거기에 석가모'', 중''(仲尼: 공자의 자字)처럼 존칭을 뜻하는 '尼'(니)를 더해서 '마니산'이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니산 바다 건너 있는 섬이 신도(信島)입니다.

  조선왕조 말엽인 1880년경부터 이곳에서 화염을 제조하였답니다.
그래서 섬 이름을 "진염" 이라 불려왔지요. 이 섬은 세 섬이 어울려 있어서 삼형제 섬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도, 시도, 모도이지요.
그 중 이 섬이 제일 커서 맏형이라고 하는 섬으로 섬사람들이 인심이 후하고 정직하여 서로 믿고 순박하게 살아간다는 뜻으로 믿을 '信(신)' 자와 섬 '島(도)' 자를 따서 신도(信島)라 불리게 되었다는 섬입니다.


  그 세 섬은 연도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육교(連陸橋)라 하지 않고 연도교(連島橋)라 하는 것은 섬과 섬 사이를 연결된 다리이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는 하나로 붙어서 보이지만 위에서 본 그림은 아래와 같습니다.

   신도 왼쪽에 있는 섬이 시도입니다.

고려 말엽.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하여 강화군 마이산에서 군대를 훈련을 시킬 때였습니다. 군사들에게 이 섬을 목표로 활쏘기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화살 '矢'(시) 자와 섬 '島'(도)자를 따서 矢島(시도)라 부르고 일명 "살섬"이라고도 한답니다.

  그 끝에 조그만 섬이 70 가구가 살고 있다는 모도(茅島)입니다. 
그 이름의 유래는 너무 평범하여 여기서는 생략하렵니다.
  모도에서 생략할 수 없는 것이 이일호 조각가가 바다가 보이는 앞마당에 만들어 전시하여 놓은 70여 점의 조각 공원입니다.
그 작품들의 주제는 남녀 간 사랑의 에로물로 작가의 에로티즘을 추구한 작품이라서 찾는 관광객에게는 눈요기로는 황홀한 조각 작품들입니다.

   모도 앞의 길다랗고 커다란 섬이 보이지요. 장봉도입니다.

장봉도는 한자로 길 ‘長'(장), 봉우리 ‘峰'(봉), ‘長峰島’라 씁니다.
섬의 봉우리가 완만한 능선을 만들며 길게 이어져 있다 하여 생긴 이름입니다. 

  장봉도는 섬 넓이가 7.0㎢, 해안선 길이가 27km밖에 안 되는 여의도(8.48㎢)보다 조금 작은 이 섬으로 이곳에 약 9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섬이지요.

  이 신도, 시도, 모도와 장봉도에 가는 배가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떠나는데 여기까지 가려면 공항전철 운서역에서 내리면 삼목도행 버스가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라 설명을 생략하렵니다.

영종대교입니다. 인천광역시의 서구와 중구를 잇는 .4,420m 의 다리로 위층에는 6차선 도로가, 아래층에서는 4차선 도로와 복선철로가 지나가는 교량입니다.
  주탑과 주탑을 잇는 케이블을 다리 상판에 직접 걸어놓는 방식으로 시공한 세계 최초의 3차원 케이블 자정식(自定式) 현수교인 이 다리는 한국의 기술로 국력을 자랑하는 다리입니다.
  저기 보이는 마천루의 나라가 인천송도국제도시입니다. 세계를 놀라게 하던 두바이의 기적처럼, 우리 스스로도 놀랄 만한 찬란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우리 인천향우회 회원이 다녀간 곳이랍니다.

저기가  ilman의 고향 인천광역시랍니다. 이만하면 고향 자랑할 만하지 않습니까?

*. 용궁사 이야기

  백운산 전망대에서 조금 오르면 정상이 있지만 야산이라서 정상석은 없었다.
그 정상을 넘어서니 바로 밑에 헬기장이 있고 거기가 백운산 봉수대가 있던 자리라는 설명이 입간판으로 서서 말한다.

   옛날 백운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구담사(舊曇寺, 용궁사의 옛 이름)의 수도승이 1명씩 교대해서 서남해에서 황당선(荒唐船 :국적 불명의 외국 배.)의 출몰을 살폈다는 것을 보면 이 산이 전략상의 요충지였던 것 같다. 

   쉬엄쉬엄 내려가다 보니 얼마 안가서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미륵불상이 보인다. 용궁사가 최근 조성했다는 높이 11m의 불상이지만 안타깝게도 시멘트로 조성한 미륵불이었다.

  이보다 더 눈에 띠는 것이 높이 20m, 둘레 5.6m 가량 되는 느티나무(인천 기념물 제9호) 한 쌍이었다.
사람들은 오른쪽을 할아버지 나무, 왼쪽은 할머니 당나무라고 부르며 나무 아래에 정성껏 치성을 드리고 있는 수령이 1, 000년의 고목이었으니 이를 보아도 용궁사는 역사 깊은 고찰이었다.
  용궁사(인천 유형문화재 제15호)는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영종도 백운산 동북쪽 기슭에 원효대사가 건립했다고 전하여 오는 절이지만 지금은 웬만한 절의 암자보다도 더 초라하였다.
옛날에 이 절은 구담사(舊曇寺)라 하다가 백운사(白雲寺)라 하였는데 이절의 사액(寺額)을 용궁사(龍宮寺)로 바꾸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옛날에 손 씨라는 가난한 어부가 백운사 부근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에 친 그물을 걷어 올렸더니 조그만 옥부처가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옥부처를 바다에 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다 올리니 또 옥부처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어부가 생각하기를 이는 신의 게시 같다 하여 이 옥부처를 백운사(옛 명칭)에 모셨다.
  그 후 사람들이 백운사 앞을 말이나 소를 타고 지나다 보면 발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에 내려서 가야 하였다.
이런 소문으로 백운사가 영험한 절로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고 가난한 어부도 그 후 고기를 많이 잡아 부자가 되었다.
조선 철종 때 흥선대원군이 은둔 시절에 이 절에 왔다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이름을 "용궁사"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 하고 현판을 써 주고 간 이후로 절 이름을 용궁사(龍宮寺)라 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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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이 절에 가는 이는 용궁사에 걸려 있는 편액(扁額)을 지나치지 말일이다.
 
  용궁사에서 버스 정류장이 있는 농협출장소 앞 버스 주차장까지는 한참이나 걸어야 했다. 그 정류장에서 1시간 간격의 222번 버스는 나를 더 기다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