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산행...그러나 아름다운 동행!(조령산)

언제 : 2009.05.16(토)

누구랑 : 뫼산악회 따라 아내랑

산행 발자국

09:28 이화령...참 예쁜 고개이름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화령 고개에 서 보마고 수년동안 염원했던 것은 꾼들이 한 번은 거쳐가야 하는 백두 대간의 이화령-하늘재 구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화령 고개에 골백번 서있으면 뭐하나?...이화령에서 조령산을 타고 백두 대간을 밟아보지 않으면 앙꼬없는 앙꼬빵인걸!...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이화령에는 궂은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는 돌풍을 동반한 비가 전국적으로 내린다고 했지만 설마 비가 하루종일 내리지는 않겠지?...7~8월 장마통에도 속곳 말릴 짬은 있다던데?....혹시 비바람이 걷혀 운해를 볼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내는 이미 조령산을 두어차례 다녀온 터라 내가 굳이 빗속의 조령산을 오르는게 영 마뜩치 않했던지 위험한 암릉길과 로프타는 곳이 많다며 지팡이는 아예 접어서 배낭에 걸어두라며 은근히 겁을 주고 자기는 날머리에서 나물이나 뜯겠다며 조심히 다녀오란다.

갈까?...말까?... 화장실에서 우장을 챙기며 갈등을 하다가 순간 웃음이 픽 나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난 달에는 전에 다니던 직장의 후배들과 "부덕고백" 종주 약속이 있었는데 그날 비가 온다는 예보에 산행을 취소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내가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야!...우리가 이때까지 비 맞고 산행 한두 번 해보냐?...." 이렇게 억지 춘향이로 부덕고백을 마친터라 아전인수 같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하여 늦으감치 우장을 챙기고 후미조 맨뒤에 묻어 이화령 비바람속으로 녹아 들어간 것이다.

야후스님이 오늘은 성님 뒤나 졸레졸레 따라 가야겠다고 해서 혹시 "제암산 오토바이 사건" 으로 그저 농담이려니 했는데 정말 조령산 산길 초소 입구에서부터 내뒤를 밟고 있는 것이다. 조근조근 얘기하다보니 초입의 산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곧장 올라가면 가파르니 오른쪽 편한 산길로 가면 금방 조령산이라며 코스를 정해준다. 알고보니 야후스님은 백두 대간을 마친 종주꾼이었던 것이다.  

산행시작후 얼마되지 않은 시간에 너덜구간을 지나고 나니 여성 한분이 힘들어하며 뒤쳐진다. 얇은 비닐 우의를 걸치고 짧은 지팡이 하나 달랑들고 배낭도 안메고 신발을 보니 일반 운동화라 번뜩 아뿔싸!...신데랄라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우리가 뒤를 받쳐줄테니 걱정말고 가시라고 격려를 하는데 뒤에서 원회장님이 나타나신다. 직감적으로 사태를 파악한 원회장님의 당혹함과 낭패한 얼굴의 그림자자가 스치는걸 나는 놓치지 않고 보았다.

원회장님 : 버스는 이미 돌아갔을꺼고... 조령산은 탈출로가 절골밖에 없는데 거기는 길이 험한데?....

야후스님 : 회장님?...이런때는 회장님 직권으로 산행을 포기하고 주막에 막걸리 동이나 들여놓고 술추렴하는게 좋았을텐데요?....ㅋㅋㅋ

원회장님 : 허...허...허...

그후로 조령샘에서도...갈라지는 길이 만나는 안부 삼거리에서도... 비를 쫄딱맞은 신데렐라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리쉼을 하는데 원회장님 속이 터지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얼굴 가득히 웃음이 떠나지 않으며 좋아 죽는다.

09:41 너덜구간을 오르는 하얀 비닐 우의를 입은 사람이 신데렐라다. 너덜이란 말은 산꾼들에게는 익숙한 말이지만 얼마전 TV 우리말 바른말 퀴즈쇼에서 1:100 예선을 거친 결선 우승자들이 너덜에 대한 정답을 아무도 맞히지 못하는걸 보니 천만 뜻밖이었다.

09:57 야후스님과 가을에님은 조령산의 수호천사였다 

10:20 조령샘이다.

통나무 계단을 올라와 갈림길에서 만나는 안부 삼거리에 때늦은 연분홍 철쭉이 반긴다

10:45 조령산

11:08 후미조 일행이 위험한 암릉구간을 건넌다

11:57 비바람을 막어주는 커다란 바위 덕분에 산길에서 전라도 된장에 쌍추쌈 맛이라니?....거기다가 매실주 한잔을 겯들이니 이렇게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걸망을 챙기는데 원회장님과 가을에님을 앞뒤로 거느린(?) 신데랄라가 나타난다. .

엉덩이를 땅에 내려 놓을수 있고 다리를 쉴 수 있다는 현실에 이렇게 행복해 할 수 없다!....얼마나 지쳤는지 신데랄라는 땅에 털썩 주저 앉으며 원회장님이 건네준 떡과 가을에님이 건네준 초코렛, 오렌지를 받으며 폭포같은 웃음은 터뜨린다. 나는 재빨리 카메라를 들이대며...

빵과버터 : 행복한 순간을 기념하겠습니다!...ㅋㅋㅋ

후미조는 나를 포함한 여2, 남3으로 뭉쳐지고 원회장님과 신데렐라, 가을에님으로 자연스레 나누어진다. 그후 비바람에 젖은 손은 곱아서 움직이기도 어렵고 등산화는 빗물이 스며들어와 천근만근이고 속곳은 얼음골이니 그 비바람속을 어떻게 걸었는지 나도 모른다.

오늘은 전문 찍사들이 산행을 포기했다. 눈앞에 이런 그림이 나타날때마다 나는 비닐 봉지에 넣어둔 카메라를 꺼내야하나 말어야하나?...갈등을 한다. 허접한 산행기 하나와 디카를 바꿀 수도 없고....그렇다고 기록 없는 산행은 휘발유와 같아서 금방 날아가 버릴거고....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12:18 어떤 사람은 조령산 로프줄 구간이 36개나 된다고 하던데?...

 

12:27 드디어 신선암봉이다. 여기에 서면 주흘산이니 부봉이니 월악산이니 한눈에 다 보인다드만 오늘 보이는건 오직 하얀 허공뿐이다.

13:37 새터 갈림길이다. 새터는 우리가 가는 길이 아닌데 그 옆에는 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시기가 당당하게 걸려있으니 빗속에서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고 혹시나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빽을 하다가 일단의 산꾼들을 만나니 등산로 아님이라는 표지기를 넘어 당당하게 내려간다. 대간길에 이런일도 있나?....

13:37

14:37 삼각점에서 잠시 쉬며 일행을 기다리다가 야후스님과 일행을 만나 깃대봉 갈림길에서 바로 제3관문으로 내려간다. 

15:05 제3관문 샘터에서

15:05 제3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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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 과거 보러 가는길을 20여분 걸어 주차장에 내려오니 한참뒤에나 내려 와야할 가을에님과 회장님이 말끔한 얼굴로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푸라스틱 접시에 담는 모습이 눈에 띄인다.

빵과버터 : 아니?..회장님 어떻게 벌써 내려 오셨습니까?

원회장님 : 절골로 탈출해서 택시타고 왔어요....

흐미!...그렇다!..산행은 시간이 남는다고 해서 심심풀이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동네 뒷산도 아니고 하물며 산행 내공이 깊은 대간꾼들도 혀를 홰홰 내두르는 조령산임에야!....허기짐→ 탈진→ 추위→ 졸음 → 죽음에 이르는 공식이 아닌가!...하지만 초보때는 누구나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는 법이다. 이 바닥에 처음 발을 디딘 신데랄라에게는 혹독하지만 값진 교훈이 되었을테고...또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니 다음 산행때도 호탕한 웃음을 다시보기 기대한다.

그후 버스가 휴게소에 잠시 쉬는 참에 신데랄라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쑥쓰러운 듯 원회장님이 앉은 자리로 다가서는 것을 나는 보았다!......(산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