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승지를 가다 - 가야산 원형분지의 만수동

 


약 33키로


2009년 2월 1, 2일


Mt주왕, 그리운산, 팔공산, 벽암지, 난봉도, 칼용담, 요물

  

  

산행지도


  

  

화살같은 한 해가 또 지나갔다,    새해가 오면 더 높아 보이는 곳이기도 한 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해 첫 산행을 화죽교에서  시작한다,     여수에서 서울에서  대구에서 인
천에서 찾아온 소중한 산친구들과 더불어 어두움속에  달려온 가천면 화죽리의 평온함이

우리의 외침이 모자라는지 들끓는 개소리가 정적을 흔들어 깨운다,   꿈에 힘이 실린다,  

혼자 올 때보다 힘이 되고 든든하다,
 

  

  

달이 어데 떠 있는지 별구경이 참 좋다,   경외감으로 쳐다보는 파란 하늘도 좋지만 까만
밤 산속에서 얼굴뉘어 바라보면 볼수록 별은 속을 더 드러내 반짝거린다,    달은 가슴에
큰마음으로  와 뜨거워지지만 별은 작은 마음으로 여기저기서 다가와 맘에 들어와 앉는
다,  산속으로 더듬적거리며 올라가면 갈수록  많이 더 높이 떠 있는 별이 오늘따라 우리
를 불러 모은다,    작은 꿈이 하나하나 쌓여 성취되거나 큰 소망이 덜 채워졌다고 일깨워
주는 듯 하다,

  

  

  


연감산(466.4M)

  

지도를 보고 원을 그려 무작정 찾아온 이 오지에 길이 있다면 내 바람이련만 가다서길 여러
번 아득아득 걷고 또 걷다 보니 연감산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대자료에 보면 노
인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세월이 지나면서 동네 사람들이 노인봉을 영감산으로 부
르다 연감산으로 되지 않았을까,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발길을 깊숙히 걸어야 하고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 열어야 하고 산길

에서 일기를 쓰듯 내게 주어진 시간을 보다 긴 호흡으로 의연하게 걷다 보면 사색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름 모를 새소리도,  어두운 허공속에 서 있는 나무들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한 새벽을 일으킨다,   사방이 깊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왔다,

  

  

  


  

  

밤과 새벽이 서로 스미는 시간 해묵은 나뭇가지를 가로질러 올라온 고단한 눈길로 반긴다,
이름모를 폭포다!   겨울 가뭄을 딪고 꽁꽁얼어 꼼짝도 않는 커다란 산이 된걸 보니 춥기는
추운가 보다,   밤새 걸으면서 등짝에 땀이 스며 추운줄도 모르고 올랐는데 물이 흐르다
바위물결 흰덩이가 겨울높이 되었다, 

  

  



 

 마루금 절벽에 큰바위가 서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만수리를 호령하듯 가야산 아래 붙어
기상을 머금은 주봉처럼 기암이다,   둥그런 회색빛 큰바위를 돌아서면 그 위에 삼각형꼭
지를 달고 있는 것처럼 대칭을 이루고 서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하늘에 걸쳐 아슬아슬
떨어질 것 같은 조각이 무섭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낙수에 얼어붙어 바위밑이 많이 미끄
러워 오금이 저려온다,  

  



  

새해 새아침 처음으로 산에서 태양이 떠 오른다,   눈으로 보는 일출과 마음에 닿은 월출에
새해를 맞을 때도 소중한 사람과 더불어 떠오르는 해에 대고 마음을 연다,   동해 바다 정
동진, 해가 일찍 뜬다는 울산 간절곶, 밤새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다 보는 지리산 정
상.... 허지만 가야산 절벽아래서 떠오르는 태양 아래 마수리의 모양새가 드러내 보이니 귀한
선물같다,


 

  


위성사진으로 본 가천면 일대와 마수리

  

  


만수동

  

  

정감록 십승지에 수록된 가야산 만수동으로 그 둘레가 2백 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 할
수 있다 했다,   남사고가 지목한 십승지는 남한 지역에 한정되었고 도별로는 경상도 4개소,
전라도 3개소, 충청도 2개소, 강원도 1개소소 대체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다,   십승
지 중에는 그 소재지가 지금의 어디인가를 헤아리기 쉽지 않은 곳도 있다고 기록하고 있었
다,    성주(星州)의 만수동(萬壽洞)이 열 곳중 한 곳인 것이다,


 

산줄기를 잇고자 하는 나의 열망이 만수동 둘레를 2백 리를 걷는다는 건 성주호를 넘어서야

이을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가천면을 둘러싸고 있는 가야산 줄기를 따라 만수동을

내려다 보고자 한다,   마수리는 부족 성읍국가 시대에는 수동(壽洞)으로 불렸고 지금의

마수동(馬水洞)은 1895년 고종때 만수동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원형분지의 만수동

  

  

올망졸망 만수동이 원형으로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699,6 봉우리 아래 떨어진 곰시가  만수리의

제일 큰원형분지을 이루고 있었으며 마수, 음촌에도 동글동글 산 속에 원형의 분지로 새벽 안개에

서 일어나는 만수동의 명당골은 떠오르는 태양을 은밀히 맞이하고 있었다,

  

  

가야산 절벽에서 쳐다보는 만수동의 원형들은 들과 집은 보이되 가야산에서 흘러 들어간 맑은 물이

어데로 흘려 내려가는 지 수구는 보이지 않아 내심 궁금했는데 십승지의 땅모양은 호리병처럼 입구

가   목이 좁은데 원형분지로 모여있는 동네는 처음  보았다,     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글로 표

현할 수 있는 내 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홍승보는 만수동을 십승지로 꼽힐 만한 길지로 만수동 뒷

편으로 태조산에 해당하는 가야산과 탐라목성인 현무봉이 자리를 잘 잡았고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산들의 형세가 빼어나다고 했다,   무엇보다 만수동은 그 안의 생기가 밖으로 빠져 나

가지 않도록 관쇄가 잘 되어 있다 했다,  "물이 흘러 나가는 파구(破口)가 곧바로 밖으로 연결되

지 않고 산자락으로 둘러싸여 만수동의 생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이유를 들었다,

  

  


절벽에서

  

  


가야산 전위봉에 떠오르는 해가 유난히 맑게 비추어 주었다,

  

  



 만수동의 아박산이 가천면의 한가운데 서 있다,

  

  



 지나온 길이 산호초 넘어 늠늠하고

  

  


상고대 아래 더 지나온 길이 운치가 있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는 산릉에 섰다,    밤새 지나온 산릉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더 많이 묻어두고 싶은 산길,

둥그스런 동성봉 하얀옷을 이고 서 있으니 오돌오돌 떨리던 절벽의 무서움도 어느새 사라지고 눈을 하얗게 머

리에 쓴 산을 털어내는 산새의 모습은 천상의 화원이었다,

  

  

  

유난히 오늘따라 배에서 달달거렸다,    밥을 달라 재촉한다,   가져온 배낭은 빈 가방인데 우린 바위틈에 등지

를 틀어 바람막아 사는 좁은 공간에 진수성찬을 차렸다,   겨울이면 군고구마, 군밤, 호떡, 붕어빵, 찐빵이 생각

난다,   난 어릴 적 소여물 쑤어 끓이는 장작불에 군고구마 구어 부시시 일어나 있는 날 찬으로 내어 주시던 아

빠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새벽 아침 열기도 전에 마루를 닦았는지 살살 걸어 나와  군고구마 까먹던 그 날들

이 생각날까,

  

  

  



  

  



  

  



  

 바람서리꽃!

  

하늘구름이 피운 바람서리꽃, 

  덕유산의 바람서리꽃,

소백산의 바람서리꽃,

 태백산의 바람서리꽃

  

난 바람꽃을 보았었다,   지독한 애증의 생명력으로 갈구하는 자연의 재주로 빚은 하얀떨리움 달고

서 있는 바람서리꽃을 가야산에선 처음 보았다,    같이 온 친구는 우리는 행복하다라고 노래불렀고

우린 그 다음 노랫말을 이어가며 음치의 부끄러움도 숨길 수 없이 시너지 효과를 높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온 그 탄성이....

  

  



 


  

  


 칠불봉

  

  

  

가야산 칠불동에도 상왕봉에도 하얀 산으로 산객들이 꽃이 되었다,

산객들의 얼굴엔 미소가 넘쳐 입이 귀에 걸리는 흥분과 들뜬마음 똑

같다,

  

  

은빛으로 빛나는 하얀 설산은 붉은 햇살도 아량곳 떨구고 기세등등

서 있으니 밤길을 달려 올라온 저편 넘어 떨어지는 만수동 너머 그리

움을 달래본다,

  

  

햇살도 따사롭고, 바람도 따뜻하고, 달려온 먼 길에 쌓인 피로를 떨군

채 가야산은 모두를 감싸 내 안에 앉는다,   우리 모두는 하나였다,

  

  

"우리는 행복하다"

  


 


상왕봉


 

 마음에 담아 내려서는 바람서리꽃산을 등뒤로 밀어내며 내려선다,   몸이 흔들린다,   산 정
상에서 그림에 미쳐 내 몸을 가져갔던  그 산에서 이제사 내려다 보니 망신창이가 되어 간
다,   아이젠이 나에겐독이었음을  ..


 

오늘은 바람이 어데로 갔나 보다,   내 몸이 바람을 못 이겨 비틀거리며 흔들리는 순간 산
도 같이 흔들렸었다,   산이 주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 바람을 바람이 부는 쪽으로
잠시 뉘었다가 다시 일어나 산을 올랐었다,

  

  

난,   찬바람과 함께 더 단단해진 나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오늘 난  산친구들에게 짐이
되고 말았다,   꽃은 흔들리면서 피어나야 꽃이 예쁘다고 했던 말이  산을 내려서며 내가
배운 지혜였다,

  

  



화죽천에 함께 선  산친구들

  

  

  

아이젠을 버리고 난 홀라당 가방을 벗어 봉도님께  드렸다,    두리봉을 넘고 분계령이 깊은

골과 봉우리의 힘을 세우며 가는 데까지 가다 석항령에서 기다리고 있을 허비님한테로 가자,,,

,마음은 그랬는데 ...1150봉우리 전망대에서 또 한자리에 모였다,    앞에 가는 산친구들은 더 많
이 가서 이따 만나고 팔공산님과 나는 먼저 산을 내리자는 약속이 무산되었다,   아뿔싸
그랬구나,    아무 생각없이 걸은 내가 바보였구나!!,

  

  

  

엊그제 내려왔던 석항령을 또 내려선다,   수북히 낙엽깔린 산골짜기 계곡은 봄에서 언제 깨어나

려는지 숨을 죽인채 가야산 그림을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풍경화가 또 있을까

싶었다,     청주에서 달려와 몇 시간을 지키고 서 계신 산친구에게 손내밀어 악수하는 고마음으로

대신할 수 있는게 또 있을까,

  

  


 명절 이튿 날 구불구불 상개금 마을에서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시누이 남편에  배웅을 받

으며 혼자서  분계령을 넘었다,   이곳에 서면 가장 내게 정겨운 마을이름, 상개금 , 하개금,

가조..얼마 전 가야천지 100키로 종주할 때  어머니가 달아 주셨던 분홍보따리 양식!!  오늘도

난 그 때처럼은 아니어도 아버님, 어머님의 보살핌 아래 이 산에 왔다,

  

  

  



수도산 가는 길

  

  


남산, 비계산 -미녀봉, 오도산 가는 길

  

  

  

 눈이 많이 쌓인 산죽이 눈을 머물게 했고 찍어내는 내 발자욱이 산
릉에 이정표를 만들었다,     석항령 내려서는 갈림길에 눈이 많이 싸여 길이 어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고 경사가 심해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내려 와야했다,

  

  

삶의 높낮이와 세월의 오이들 이럴 땐 눈 앞에 쳐진 가야산 아래 만수동을 잡아당기듯

마음의 보자기에 담아 씩씩히 굽어진 고개를 넘어갔다,    산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솜털

처럼 피어있는 산릉의 빈가지들이 물결처럼 잔잔한 하늘금을 만들고 있었다,

  

  

  



형제봉

  


만수동과 신계리마을

  

  

풍경은 계절과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 보인다,    가야산 아래 만수동과 신계리 마을이 이곳에선

서 또다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아박산과 가야산의 정기를 이고 사는 저 마을 사람들이 풍

수길지로서 기도나 수도에 좋은 토속신앙의 성지라는 십승지중 한 곳이라고 아는 이들이 있을까,

  

  

산수가 은밀하여 몸을 숨길 만한 곳이었다면 분명 그 곳은 오지여야 했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

토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그래서 화산, 지리산, 두류산, 가야산은 곧 어진 정승이나 좋은 장수

가 계속해서 나올 곳으로 예언가들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대아래 구곡계곡

  

  

凝窩 李源祚

  구곡계곡을 읊은 시조중

구곡(  홍개(洪開) 을 적어보면

 

九曲洪開洞廓然 百年견秘此山川 新亭占得安身界不是人間別有天


"아홉 구비 홍개도 한 하늘이 열였내

백년을 아껴 둔 이 산천일세,

새로이 정자 지어 몸을 누이니

속세가 아니로세 별천지로세"

  

  

  


독용산성의 시작

  

  



독용산성 

 

성산가야 때 처음으로 축조된 성으로 추정된다 했으니 옛 고서를 찾아 지도따라 산릉에서

쳐다보니 많이 허물어져 있었다,   새로 복원된 동문과 성곽따라 길을 따르다 보면 임도가

가천면 소재지까지 나아 갈 수 있었다,   옛 지도를 보면 승병들이 머물렀던 安國寺, 太平岩

사찰과 성 외부의 마을도 표시되어 있다.
 

 

  

허물어진 독용산성 길따라 오르기도 하고 없어진 산성을 간간이 만나기도 하면서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한참 높여서야 독용산가는 너른 삼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독용산에는 형제봉에 발

길이 뜸해 사람 흔적도 없었는데 독용산성따라 올라온 산객들의 표시기가 많이 걸려 있었다.

  

  

독용산에서 직진하여 내려오면서 부터 아침부터 걸어온 긴장이 풀렸는지 지도도 꺼내보기

기찮고 하여 그냥 대충내려 오다 보니 산줄기 하나가 두 개로 분기된다,    미리 독용산의 공부

를 하여 왔드라면 마음속에 담아 있을텐데 무작정 지도만 딸랑 들고 나선 내 건방증이 화근이

되어 왔다갔다 하다  산박사 한테 전화로 들이대 물어본다,

  

"그래 전화가 편하지, 찌~익 눌러 물어보면 답이 바로 나오니까" ㅎ

  

  

  


동문

  

  


독용산성


 

새로 단장된 산성에서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선다,   임도가 구불구불 산릉을 만나기도 하고 사면을 돌아

나아가기도 하면서 걸어야  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표시기가 산속으로 들어가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난

이야기해주는 방향따라 내려서다 계속 임도를 따라 내려왔다,

  

  


성주호

  

  

신흥뒷산에 올라볼까 하다가 지는 해를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겨울 산은 금방 어두워진다,

  

     살아 숨쉬는 듯 산과 물이 만났다,     굽어진 성주호의 물결이 흐르는지   밤을 기다리는 것처럼

 저 산너머 떨어지는 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랜턴도 이마에 걸쳐야하고 거창까지 가려면 교통편이 늦게 없을 것같아 임도따라 계속 가천면으

로 내려왔다,    신흥뒷산 구불거리는 임도 사면들 돌아 설 때 어두움은 계속 짙은 색으로 날 달리게

했던 금붕리의 시어골엔 하나 둘 노란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내가 가야산 산릉에서 힘들고 지쳐 있을때 바람서리꽃이 함박 웃음을 주었고   가야산 절벽에서

달달 거리고 있을때 만수동 안개속에 피어나는 원형분지 마을을 보면서 십승지에 대한 공부가

헛된 꿈이 아니라는 걸 배웠다,    어두운 산속을 헤치며 함께 걸었던 산친구가 곁에 있어

 고단함이 반으로 줄었고

같이 나누었던 행복은 배가 되었다,  

  

  

입 안에서 오물오물 한참을 돌려야 했던 팔공산님이 건네준 눈깔사탕처럼 달콤한 가야산의 여진은

계속 될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