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을 다녀와서.

오늘(2월 17일) 날씨가 제법 춥다는 예보가 있어, 은근히 걱정하면서 좀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매월 둘째 일요일이 우리 산악회(미림산악회)가 산행하는 날이지만, 설 연휴가 있어 한 주 늦춰 오늘 출발하게 되었다.

화곡역에 도착해보니, 벌써 김 회장과 몇몇 산우들이 먼저 와 있다가 반겨주었다. 매월 가는 산행이지만 매번 작은 설렘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생각보다 날씨는 그리 차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일행이 모이길 기다려 약간 늦게 출발, 구청 앞을 지날 때 송 성흠 산우가 좀 늦었다면서 택시로 따라와 동승해 다행이었다. 올림픽대로로 들러서는 순간 다들 탄성을 발했다.

   (전략)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해야, 고운 해야, 늬가사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두진이 주체할 수 없는 시정으로 웨쳤던 그 해가, 지금 바로 눈앞에 솟아오르고 있지 않은가! 감격이다. 일출을 맞이하는 격정을, 이 한강변에서 빌딩 숲 위로 볼 수 있다니...

잠실에서 서 홍일 산우를 태우고,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서니 막힘없이 달리기 시작, 10시 반경 대둔산 시설지구에 도착,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맑은 해를 보면서, 청산을 좋아한 두진의 산이 여길까, 앞을 가로 막고 우뚝 솟아 있는 산, 이게 바로 한국8경의 하나 대둔산이 아니던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이 산을 일러, 호남의 소금강이라 부른다. 허명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수준급 산우들은 곧바로 등산로로 향했고 몇몇 분들은 우리와 어울려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안 종수 부회장이 쌍화차로 우릴 따뜻하게 해주셨다. 높이 81m의 금강구름다릴 건너고, 삼선계단을 오를 땐 오금이 저려 아래를 볼 수가 없었다.  숨이 턱에 찼지만 삼선바위에서 뒤돌아보는 대둔산의 비경 또한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산악회원 사이에 섞여 오르다, 초등학생 아들 둘을 데리고 따뜻한 바위 사이, 아늑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모습이 인상에 남는다.

어느 시인은, 산은 한사코 높아서 아름답다 했던가. 돌서들로 된 등산로 따라 쉬엄쉬엄 오르다 보니, 표지판이 반긴다. 매점이 있어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어쩐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에 이런 매점이 자리하다니... 仙資玉質의 이 산에, 부끄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효선사가 하늘에 닿을 듯하다 해서 이름한 마천대에 오르니 꽤나 많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비집고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설 수밖에... 멀리 지리산과 마이산까지도 보인다는 이 곳에서 조망할 여유조차 없다. 게다가 개척탑이란 이상한 구조물로 천혜의 비경을 헤집어놓다니.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용문골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눈이 얼어 있어 아이젠을 하고 걸을 수밖에. 마침 우리 일행 중, 김 고문이경주 씨가 동행이 되어 나즉한 산죽 사이로 난 길을 이리 돌고 저리 넘으면서 태고사 쪽을 바라보면서 하산길로 접어들어, 적당한 자리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좁은 바위문을 지나니 앞이 훤히 트인 칠성 전망대, 마치 열반의 문을 열고 들어온 듯, 선계가 따로 있을까. 저 아래 산자락 아래, 따사로운 마을이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였다..

   깊은 산허리에

   자그만 집을 짓자.

      텃밭엘랑

      파,

      고추,

      둘레에는 동부도 심자.

          박꽃이

          희게 핀 황혼이면,

          먼 구름을 바라보자.


 

저 아래 아늑한 마을에 촌부로 신선처럼 살고프다. 그럴싸 그러한지 입춘 우수를 지나니 솔빛이 더 푸르게 보인다. 얼마 안 있으면 여기저기 봄이 움트는 소리가 귀를 간지리겠지.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 반겨 아니 맞으리.


 

 이런 정이 흠뻑 묻어나야 할, 여기 시골이 너무나 번잡하다. 탈속의 선경으로 남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방으로 조망하면서 보니, 아찔한 절벽 아래 촛대 바위가 우뚝 위용을 뽐내고. 장군봉 거쳐 동심 바위를 지나, 얼마 쯤 내려오니 동학군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이 산엔 왜군에 저항하던 동하군의 아픈 역사가, 한국 전란 때, 공비토벌로 산화한 숫한 영령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라 잠간 머리 숙였다. 사람은 가고 이름은 남는 것일까?

 예정 시간 보다 일찍들 하산, 먼저 목을 축인 듯했다. 우리도 동동주로 하산주 한 잔, 오늘도 신 동화 부회장은 맛있는 막걸리로 일행들을 즐겁게 했을 테고, 이 유청 수석부회장도 일행들 보살피느라 바빴을거야. 항상 조 기사를 끔직이 챙기고, 

4시쯤 귀로에 오르면서, 번번이 일행들 뒷바라지 하는  수석부회장 미진 엄니의 노고, 버스에서 박사학위 강의로 우릴 즐겁게 하는 김 무섭 수석부회장의 구수한 입담, 모두가 원족 나온 듯, 흥겹게 하루를 보내고 서울로 오는 차중에서도 즐거운 표정들로 다음달 (삼악산)시산제를 기약했다.

        목어  백 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