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관녀 그녀는 기녀(妓女)였을까, 무녀(巫女)였을까  (장흥 천관산)

  

                      

                                                                                                                                               연대봉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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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13 (일) / 네 쌍 (황금오리, 꾀꼬리, 산그라 그리고 필자 부부)

                     *천관사(10:05)-대세봉-구정봉-천주봉-환희대-천관산(연대봉)-환희대-

                       구룡봉-진죽봉-지장봉-자연휴양림-수정재-천관사(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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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봉 능선에서 본 진죽봉


 동해바다나 서해바다의 일출 일몰의 풍광을 좋아하여 가끔 훌쩍 길을 떠날 때가 있다. 고향이 남쪽이라 남도여행 길은 항상 설레임을 동반하며 마음까지 포근하다. 구름에 달 가듯이 떠나는 여행길은 청명한 날도 좋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운치가 있어 좋다. 주말에 남도쪽에 비 온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비는 만나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우산 하나 받고 비 내리는 해변을 걸어 보았는가.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는 하얀 눈을 맞으며 산사 오솔길 따라 적막에 쌓인 암자에  올라 노스님이 끓여 주신 작설차(雀舌茶) 한 잔에 시름을 놓아 본 적이 있는가.

  

# 멀고 먼 남도 천리 길

  

 서울에서 천리 길이 넘는 장흥 천관산을 당일치기 산행으로 하기엔 조금은 버겁다. 하기야 예전 여행 습관으론 가능한 일이지만 정읍에 사는 친구 부부와 동행하기로 한 산행이므로 정읍에서 일박을 한다. 번개통지를 받고 40년 지기 두 친구 부부가 익산과 광주에서 이번 산행에 합류를 한다.

  

 5년 전 해남 땅끝 마을까지 왕복 1000km 당일치기 여행이 회상된다.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땅끝을 돌아 완도 어시장에서 점심을 들고 장보고 거리축제를 보고, 해남 대둔사(구 대흥사) 박물관에서 완당 김정희 선생의 벗, 초의선사의 유적 유물을 만난 적이 있다. 상경 길에 영암 월출산 아래 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귀가하니 그 날 하루해가 어찌나 길던지.

  

# 들머리를 어디로 할까? / 천관녀는 기녀였을까, 무녀였을까?

  

  

                       

                        절 마당 뜰에 나와 선정에 드신 부처님, 어쩌면 천관보살님(천관녀)이 아닐런지?

  

 천관산 들머리를 장천제로 할까, 아니면 천관사로 할까? 고민하다가 혹시 전설 속의 천관녀(天冠女)를 만나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고 천관사 능선을 타기로 한다.


 천관산(天冠山, 723m)은 신라 김유신 장군과 천관녀의 사랑 이야기 전설이 서린 곳이다. 혈기 왕성한 젊은 유신은 기녀(妓女)인지 무녀(巫女)인지 하는 한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 학문을 게을리 한다고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받은 유신은 다시는 그녀를 찾지 않기로 맹세한다. 그러나 어느 날 사냥 길에서 말 타고 귀가하는데 피로에 지쳐 말 잔등에서 존다. 애마는 평소 들락거리던 천관녀의 집으로 안내했나 보다. 깨어 보니 자기 집이 아니고 그녀의 집이기에 단칼에 자신의 애마 목을 베고 귀가한다. 오매불망 떠난 임을 그리던 천관녀는 그 후 천관산에 숨어들어 머리를 깎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로 그 산이다.

  

 천관녀란 이름은 아마 그녀가 처음에는 기녀였으나 나중에 머리 깎고 경북 월성의 어느 암자에서 비구니로 살았다고도 하나, 필자의 생각으론 처음에는 기녀였으나 천관녀란 이름으로 보아 그 후에 입산하여 하늘을 떠받드는 무녀가 된 것이 아닌가하고 추정해본다.

  

# 기암괴석에 넋을 앗기고

  

                                         

  

  

                                      

 전국의 산하를 돌아보며 수많은 기암괴석을 만난다. 물형을 닮은 기암도 있고 석파 란(蘭)의 그림소재가 됨직한 괴석도 많다. 이곳 천관산의 기암은 빼어나다. 대세봉 오름길에서 건너 다 본 선인봉 능선의 기암들, 구정봉과 천주봉의 기암, 환희대에서 바라 본 지나 온 천관사 능선의 대세봉, 구정봉, 천주봉의 기암과 농안제쪽 지장봉의 늘름한 기상 모두가 하나같이 천관산의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한다.

  

 도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여러 능선에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길손들에게 감탄의 인사치례를 받는다. 그 중에서도 구룡봉능선에서 바라 보는 진죽봉과 지장봉의 그림은 단연 압권이다. 


 일행은 연대봉 아래 억새밭에 자리를 펴고 먹자전을 연다. ‘황금오리 부부’가 직접 담군 복분자 한 잔 술에 불콰해진 ‘꾀꼬리 부부’, 광주에서 뒤 늦게 달려 온 ‘산그라 부부’도 허기진 배를 채우며 아름다운 풍광에 찬사를 보내기에 바쁘다. 멀리 다도해는 천관산보고 성큼성큼 걸어와 당신의 품에 안겨보라 하는 듯 가슴을 풀어헤치고 속살을 드러낸다.


# 소슬바람에 허리 꺾인 억새의 마지막 춤사위를 보며

  

                           

  

                           

  

  

                            


 환희대에서 연대봉가는 억새평원엔 너울거리는 억새의 춤사위가 늦가을 소슬바람에 허리가 꺾인 채 넘실댄다. 이팔청춘을 넘긴지가 이미 오래된 내 모습을 하고 있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흰 수염을 나풀대며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하며 가을의 절정을 노래했으리라.

  

 자연의 순환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봄에 새싹을 틔운 파릇파릇한 생명이 여름철에 싱싱한 초록 세상을 살고 가을에 알록달록 치장하더니 겨울철에 접어들며 낙엽으로 구른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면 또 내년 봄엔 환생하겠지. 이것이 대자연의 윤회 아닌가.

  

 인간의 생로병사의 순환도 대자연 법칙 속에서 한 톱니를 이룬다. 인생에서 늙음과 아픔의 고통이 없다고 치자. 모든 사람이 다 갈망하는 일이지만 얼마나 단조로울까? 그렇지만 늙음을 한탄하지 말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연습을 한다면 결코 나이 듦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닐 것이다. ‘늙어감도 축복의 하나’라고 설파한 어느 작가의 말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 지장봉 능선을 타고 내리며 다시 뒤 돌아보는 기암, 기암들

  

                                     

  

                                      


  

 천관사 능선 오름길에선 진죽봉, 지장봉 능선의 아름다운 기암들이 발길을 붙들더니 반대로 지장봉 내림길엔 천관사 능선의 대세봉, 구정봉, 천주봉 등이 길손의 발길을 더디게한다. 산행길 내내 아름다운 기암들의 승천하려는 모습 때문에 일행들은 아름다운 산 그림에 푹 빠졌던 하루였다.

  

# 못내 헤어지기 섭섭하여

  

 수정재를 돌아 산죽 터널을 지나 천관사 주차장에 도착한 일행은 헤어지기 섭섭하여 회진항 포구로 차 머리를 돌린다. 횟집 주인이 잡았다는 크고 잘 생긴 돔 한 마리를 놓고 흥정하고 일행들은 늦은 귀가길 정체도 아랑곳 하지 않고 깔깔대소회를 열다 보니 창 밖 포구에도 이미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한 잔 술에 우정을 확인하고 늦은 밤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포구를 벗어나 어둠 속을 뚫고 긴 상경 길에 오른다.  (2005.11.14)

  

* 사진모음


구룡봉 정상에서  꾀꼬리여사의 노랫가락을 경청하는 부부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