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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멀리서 잡아본 삼막사 풍경, 삼막사 원효굴-


삼성산(三聖山) <기축년(己丑年) 섣달그믐날 다녀온 삼막사(三幕寺)>
2022010010호       2022-01-31()
 
자리한 곳 : 경기 안양시, 서울 금천구
지나온 길 : 관악역-경인교대-간이주차장-등산로-삼막사-원효굴-염불사-우회등산로-예술공원-수영장터-관악역
거리및시간: 3시간 32(13:50~17:22)       도상거리   9.1km      보행수(步行數)   : 15,579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비교적 맑음 <“해 뜸 07:37     해 짐 17:54     /     ‘최저 -7,     최고 2’>
 
네 번째 선친(先親) 기일(忌日)의 섣달그믐 삼막사를 찾아서
섣달 그믐날이면 일반가정에선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환담을 나누느라 왁자지껄 소란스럽고 정감이 넘치는 대화와 차례음식 장만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우리 집은 분위기가 다르다. 아버님의 네 번째 기일(忌日)이니 당연하게 슬하(膝下)7남매가 덕담과 추모하는 것이 정상적이나 어수선한 시국이라 전염병 방역차원의 거리두기에 동참하는 의미로 형제들을 출생순서로 홀짝으로 구분 짝수는 아버님 제사, 홀수는 설날차례에 참석하고 자매는 노모(95)면회를 다녀오도록 정리했다. 각자 임무에 충실하느라 제수씨들께서는 음식을 장만하시고, 난 병풍과 제기를 꺼내 손질하고, 시제축문을 완성하고, 쉬고 있는 둘째 아우에게 제사상에 올릴 밤까기를 숙제로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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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관악역에서 도로를 따르다 이곳에서 산길에 들어선다-

오후에 4~5시간쯤의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고자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 본가에 가까운 삼성산
(三聖山)에 자리한 사찰을 마음에 두고 길을 나서 기축년(己丑年) 섣달그믐날 삼막사(三幕寺)에 도착 부처님께 편안함을 기도하고 하산하며 안양예술공원를 지나며 안양수영장터 푯말에서 젊은 시절 추억을 반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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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삼성산 능선에서 만난 겨울 풍경-

삼성산(三聖山) : 서울특별시의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 금천현의 진산(각 고을을 진호(鎭護) 하는 주산(主山))이며, 관악산은 지금의 과천시 관문동 소재 온온사가 있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5리 지점에 있는 과천현의 진산이어서 두 산이 별개의 산임을 밝히고 있다. 삼성산의 유래 또한 설이 구구하다. 보통 원효, 의상, 윤필의 세 고승이 신라 문무왕 17(677)에 조그마한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진하던 곳이 삼막사의 기원이며, 아울러 삼성산의 산명도 이 세 고승을 정화시켜삼성산(三聖山)이라 칭했다는 설이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으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교주(敎主)인 아미타불과 그 왼쪽에 있는 관세음 보살 및 오른쪽에 있는 대세지 보살을 삼성(三聖)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산명이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산중에는 삼막사를 비롯하여 염불암, 망원암, 안양사, 성주암(서울) 등의 사찰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1592)병조판서를 다섯 번이나 역임하고 후에 우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18)이 생전에 이 산에 올라 읊은 차유삼성산운(次游三聖山韻)이란 장시와, 일제강점기에 고백록(高百祿)의 시조가 전해진다,또 일찍이 (900) 왕건이 금주, 과주 등의 고을을 정벌하기 위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능정이란 스님을 만나 안양사를 지어 오늘날의 안양시명이 탄생되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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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삼막사에서 만난 풍경들-
 

삼막사(三幕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677(문무왕 17)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潤筆) 3대사(大師)가 관악산에 들어와서 막()을 치고 수도하다가, 그 뒤 그 곳에 절을 짓고 삼막사라 하였다. 사지(寺誌)에 의하면, 원효가 창건하고, 신라 말 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개칭하였는데, 고려의 태조가 중수하여 삼막사라 하였다고 한다. 1348(충숙왕 4) 나옹(懶翁)이 이 절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고, 1394(태조 3)에는 왕사 무학(無學)이 이 절에서 국운(國運)의 융성을 기원하였는데, 이러한 인연으로 1398년 왕명에 의하여 중건되었다그 뒤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1880(고종 17) 의민(義旻)이 명부전(冥府殿)을 짓고 이듬해 칠성각(七星閣)을 지은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을 지칭하여 조선시대부터 남왈삼막(南曰三幕)이라고 하였는데, 이 절이 남서울의 수찰(首刹)이자 서울 주변의 4대 명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망해루(望海樓대방(大房요사·칠성각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은 조선 초기 무학 대사가 석조기둥으로 중수한 정면 3, 측면 2칸의 다포계양식의 건물이며, 내부에 봉안된 탱화와 범종은 광무연간에 제작된 것이다. 정면 5, 측면 3, 맞배지붕인 망해루는 청명한 날 서쪽을 바라보면 서해가 보인다고 하여 망해루라 일컬었다. ,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地藏菩薩십대왕(十大王판관 등의 상이 모셔져 있는데, 십대왕상은 이 절의 보물이라 한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높이 2.55m3층석탑과 조선 정조 때의 인물인 김창영(金昌永)의 탄생전설을 지닌 거북모양의 감로정석조(甘露井石漕)가 있으며, 자연암석에 양각한 아미타삼존불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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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jpg-안양예술공원 섣달 그믐날 풍경-
 

안양예술공원 : 안양유원지는 1960년대에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편리한 교통편, 주변 산과 고찰 관광 등으로 많은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몰렸다. 이후에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서 유원지의 자연경관이 훼손되었고, 1977년에 있었던 안양지역 홍수로 인해서 유원지에 토사가 유입되었다. 안양시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 환경사업을 추진했으며, 2005, 안양예술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위키 백과-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 찾아서 ~
 
2022-02-10
계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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