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53F4E57E3FF360259DB


2651DD4E57E3FF36172179

-창룡문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이 너무 맑다, 홍화문(북수문) 풍경-





중추절(仲秋節) 연휴 기획 산행 넷째 날 : <팔달산, 화성행궁>

2016099063호          2016-09-17()


자리한 곳 : 경기도 수원시

지나온 길 : 수원역-수원화성관공안내소-행궁성길-팔달문-화성성길-서남각루-관공안내소-도청오거리-수원역

거리및시간: 5시간 19(12:01~16:20) 총거리 : 10.8km(화성둘레:5.7km+행궁왕복:1.5km+, 날머리3.6km)

함께한 이 : 계백 혼자서

산행 날씨 : 흐림(구름 많고 가랑비 내림)


업무상 종교행사장에 가보려다 취소하니 아들놈이 저녁밥을 사겠단다.

잠실운동장에서 예수교회 어느 종파의 종교대통합 만국회의(WARP: World Alliance of Religions Peace Summit) 2주년 기념 평화 축제에 업무상 참석하려다 내키지 않아 접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팔달산)을 다녀오려고 준비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려 그치지를 기다리는데 어린애인줄만 알았던 아들놈이 근처에 제주도흑돼지집이 오픈했으니 저녁밥을 녀석이 사겠다는 말에 귀를 의심하며 확인하지만 대답은 역시 자신이 가족들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선언에 귀밑까지 찢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로 기쁨이 넘쳐흐른다. 비가 그치고 활동에 불편이 없음만큼 날씨가 회복됨을 확인하고 배낭을 꾸려 집을 나선다.(10;30)

2223DE4D57E3E41A103603


262C094D57E3E41B06B8A0

-서장대 관광안내소에서 서장대로 가는 성곽 풍경-


지하철(6,2,1호선)로 환승해 수원역에 도착했는데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서 화성이나 팔달산으로 통하는 출구를 찾았으나 안내판이나 문구가 없어 사람들에게 물었으나 시원한 답은 없고 거리가 멀어서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라는 답변에 어처구니가 없어 잠시 망설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밖으로 나가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일단 8번출구 나와 관광안내소를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아 행인에게 물었으나 택시를 타라는 생뚱맞은 대답에 화가 치밀어 묻기를 포기하고 무작정 걷다보니 매산4거리 이정표에 서장대 직진화살표가 너무 반가웠다 도청오거리에서 만난 행인에게 팔달산을 물었는데 그분은 중국동포라 말이 매끄럽지는 못했지만 차를 타고가라 알려주어 방향을 물으니 손으로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아무튼 곡절 끝에 수원화성관광안내소 도착해 안내지도를 하나를 요청하니 한글판은 없고 영문판을 손에 넣고 수원화성을 답사를 시작한다.(12:44)

2214974D57E3E41D20F7F7


2715664257E3E41D342DFE


2324364257E3E41E230C63-서장대(화성장대)와 서노대 (다연발 활터)-


염태영 수원시장님께 바램한지가 있으니 참고바랍니다,

관광객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수원역, 수원화성이 수원의 전부다 말해도 크게 오답이 아닐 겁니다. 따라서 수원역에 하차한 관광객이 망설임 없이 화성으로 방향을 잡도록 역사지정 안내판, 또 출구 도로에 간이관광안내소를 설치하면 어떨지 살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八達山(팔달산) : 경기도 수원시의 구시가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146m).

동국여지지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팔달산은 부(, 옛 읍치로 지금의 화성시 화산동)에서 북쪽으로 17리 정도, 고조동(高祖洞, 현재의 고등동 옛 지명으로 추정) 뒤에 있다. 산은 비록 높고 크지 않지만, 들판 가운데 솟아 있어 사방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팔달산이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원군읍지에는 팔달산의 옛 이름과 팔달산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 고려 말에 팔달산을 탑산(塔山)으로 불렀다는 사실과 조선 태조가 팔달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고지도 가운데 '팔달산' 이름으로 표시한 것은 1872년지방지도가 대표적이다. 그 이전에 제작된 현존 고지도에서 '팔달산' 이름 그대로 표기한 것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여지대전도, 해동여지도, 광여도등의 고지도에서 광교산과 화산(팔달산으로 옮기기 전의 수원 읍치가 있던 곳) 중간에 '팔탄산(八呑山)'이 표기되어 있다. 위치나 명칭 등을 고려할 때 지금의 팔달산으로 추정된다. 팔달산에는 화성 성곽의 절반 정도가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서장대 · 서노대 · 서포루 · 화양루 등의 누대가 있다.                       - 출처 : 한국지명유래집 중부편-

2717FA4257E3E42031DD0E


262B0B4257E3E4201BD2D3


2533483F57E3E42131550A-화성공사에 사용한 장비들, 화서문과 공심돈 풍경-


水原華城(수원화성) :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에 위치한 조선시대 성곽.

[개설]

사적 제3. 수원화성은 1796년에 축성된 읍성의 하나이다. 그러나 다른 지방 읍성들과의 차이점은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 지금의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융건릉)으로 옮겨 명칭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쳤으며 능행을 위한 행궁을 화성 안에 건축하였다는 점이다.

[내용]

정조는 1789(정조 13)에 사도세자의 무덤인 영우원(永祐園)을 수백 년간 수원도호부가 있던 화산(花山)으로 옮겨 현륭원(顯隆園)이라 개명(改名)하고 수원 도읍을 새 장소인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옮기도록 하였다. 그리고 수원부로 부르던 고을 명칭을 화성(華城)으로 고쳐 부르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줄곧 수원은 화성이란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1895년 지방 관제개편 과정에서 다시 수원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수원시로 불리고 있다.

수원부를 옮기고 정조 17(1793)부터 화성 축조가 본격적으로 준비되어 이듬해 정월부터 시작해 2년 반 만인 1796년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성벽 전체 길이는 당초 정약용이 생각했던 4보다 늘어난 5.4정도이다. 성곽 시설에서도 적대나 누조, 공심돈, 포루 등과 같이 다른 성곽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시설이 많이 도입되었다.

2434714357E3E42812A00E


2416C44357E3E42A34B720-봉수대와 팔달문 풍경-


성벽은 돌로 쌓았으며 높이는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46m 정도이고 성벽 위에는 1m 정도 높이의 여장을 두고 여장에는 총안을 뚫었다. 성벽은 위로 올라가면서 배가 안으로 들어가는 규형(圭形) 쌓기를 기본으로 했다. 성벽에는 4개의 성문을 두었고 암문 5개를 설치해 통행토록 하였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앙에는 행궁이 자리 잡았다. 화성이 위치한 지세는 서쪽에 팔달산이 있고 그 반대쪽인 동쪽에도 나지막한 구릉이 있으며 이 동서 경사지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개천이 흐르고 그 주위에 약간의 평지가 펼쳐진다. 화성을 비롯해 우리나라 성은 자연지세를 이용해 불규칙한 형태로 쌓아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성문은 동서남북에 4개가 있는데 북문이 장안문이고 반대 남쪽이 팔달문이다. 동서에 청룡문과 화서문이 있다. 남북문은 중층문루로서 도성문루에 버금가는 규모와 형태를 갖고 있다. 암문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는 출입구를 내서 사람이나 가축이 통행하고 양식을 나르는 통로이다. 화성에는 모두 5곳에 설치되어 있으며 대개 벽돌을 많이 사용했고 원여장 등의 특수한 장식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암문에는 보통 건물을 세우지 않지만 서남암문에만 예외적으로 포사를 설치했다. 이외에도 수문 2, 적대 4, 노대 2, 공심돈 3, 봉돈 1, 치성 8, 포루 10, 장대 2, 각루 4, 포사3곳 등의 시설이 있다.

[의의와 평가]

화성 축성은 정조의 개혁적 정치노선과 당시 실학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 사상 및 자유시장경제체제가 만들어낸 근대적 생산방식에 의한 건축공사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화성 축성을 계기로 한국 근대건축이 시작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624B94257E3E42C23A3B6


21320F4257E3E42D14176B


252CBE4257E3E42E19FD7A-화성행군 임금의 공간인 봉수당 전경-


에필로그

1245분에 수원화성에 들어서 1555분까지 130분 동안 성곽은 물론 화성행궁과 시장 통을 돌아보고 출발지인 수원화성관공안내소 화성탐방을 매조지하고 왔던 길로 원점회귀하며 불행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는 동안 어느새 수원역에 닿았다.(16:20)

전철을 이용해 귀가하니 가족이 모여 아빠를 기다리고 있어 간단히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아들놈이 앞장서 신장개업한 음식집을 찾아 아주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저녁식사를 겸해 반주로 소주병을 비우며 마흔 살 차이의 늦둥이(스물네 살) 녀석이 얼마나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지 부족한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녀석 때문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복한 기분으로 소주 한 병으로 부족하지만 내일 계획을 완성하려면 자제가 필요했고 이처럼 아름다운 분위기를 오랜 시간 느껴보고자 불광천변 체육 길을 아이들과 거닐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


~오라는 곳도 불러준 이도 없지만 찾아가 안기면 언제나 포근하기만 한 을찾아서~


2016-09-22

계백 (배상)


클릭하시면 저에 관한 조금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blog.daum.net/goodh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