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산행 3제

제 1제 : 북한산[칼바위~정릉코스(보국문)]
ㅇ 일 시 : 2004. 1. 23(금) 16:00~19:00

어제 설날 여기저기 다니느라 피곤해 늦잠을 잔다.
주는 술 마다않고 먹은 탓에 골이 좀 얼얼하다.

그래 돼지처럼 한껏 게으름을 부려본다.
~이리딩굴, 저리딩굴~

그제 다녀온 명지산 산행기도 정리할겸 PC앞에 다가선다.
정오가 훌떡 지난다.

...산에서나 평지에서나 시간은 빨리 가는군...
...오늘도 어딜 가긴 가야겠는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도 휴일에 집에 그냥 있으면
손해보는 느낌이다.

가볍게 부담없이 갈 곳을 찾는다.
뒷산이나 갔다와야 될 것 같다.

뒷산은 다름아닌 북한산 칼바위능선이다.
지정학적으로 우리 집은 칼바위 매표소와 도보로 한 20분 거리다.

내가 지금 깊다면 깊은 인연으로 산과 조우한 것도
다 이 칼바위 능선 덕택이다.

9월 그 어느 날 추석연휴때,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우산하나 받쳐들고 칼바위를 올랐다.
비가오니 사람이 하나도 없다.

칼바위 꼭대기에 오르니 아무 것도 안보인다.
내 발밑에 안개만 자욱할뿐. 갑자기 무서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다)

허나 몬지 모를 야릇한 기분에 쌓인다.
공포를 넘어서 묘한 쾌락같은...

첨 가는 길이라 산성주능선에 올라가야되는데
바위덩어리만 첩첩이다.

산성주능선은 왜 안나오는고...
갑자기 안개가 바람에 걷히면서 저 앞쪽으로
산성능선 성곽의 흰 화강암이 흘낏 비친다.

아.. 저기구나.. 그때의 느낌도 야릇했다.
과장되게 말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본듯한 느낌이랄까.

더우기 비가 누런 단풍을 때리면서 빚어내는 정경등이
합하여 나를 주술처럼 산에 이끌리게 한것이리라.

16:00 쯤 집을 나선다.
준비물은 500ml 물1통, 보온병, 커피, 랜턴.

여기 칼바위매표소는 동네사람들만 가는 거 같다.
어딘고 하니 옛날 삼양동 달동네 위쪽이다.
지금은 근처가 재개발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요즘 북한산 입장료도 만만찮다. 언제 300원이
올랐는지 1,600원이다. 동네사람은 무료입장 시키라~

근데 4:25분 정도에 통과하니 매표소 문을 닫았다.
원래 오후 5시 철시인데.. 작은 일인데 기분 좋다.

입구에 들어서 한 30분 땀내면 전위봉에 올라선다.
여기서 가야할 정면의 칼바위를 보고, 오른쪽 동장대를 올려본다.

입구에서 나이 지긋하신 분이 속도를 내며 올라가시길래
뒤에 바짝 붙었다. 좀 있으니 먼저 가라신다.

먼저 나서니 아 이분 내 뒤를 바짝 붙는 것이 아닌가..
알겠지만 누구든지 뒤에서 바짝 따라오면 위기감(?)이 든다.

나도 속도를 낸다. 한 20분 땡기니 이분 포기하고 잠시 쉬신다.
산행중 무언의 그런 티격태격도 얕은 재미다.

전위봉에서 한껏 여유를 부리다가 칼바위를 올라선다.
칼바위는 멀리서 보면 좀 살벌한 느낌이다.

그러나 막상 올라서면 그토록 유순 할 수가 없다.
스탠스(발 놓을 곳)와 홀드(손 잡을 곳)가 시쳇말로 왕건이다.

조망도 거침이 없다. 산 중간에 뾰족 올라온 봉우리라
동서남북이 다 시원하다.
날 안추울 때면 꼭 사과하나 깍아 먹는 곳이다.

산성주능선에 올라 바로 옆 보국문으로 통하는 정릉코스로 내려간다.
정릉매표소로 내려가는 이 길도 유순하기 이를데 없다.

그토록 순하다는 진달래능선도 여기에 비할 바가 안된다.
더우기 발에 밟히는 눈도 느낌이 상큼하다.

좀 내려가다보면 넓은 곳에 나무의자 여럿 놓인 데가 있다.
여기는 커피한잔 코스다.

여길 당도하면 이상하게 본능적으로 커피를 하고 싶다.
어느 한적한 공원처럼 포근해서리라. 아무도 없다.
오늘은 날이 어둑한게 서울의 불빛이 울긏불긏 보인다.

랜턴을 키고 정릉매표소를 내려온다.


제 2제 : 도봉산[우이암~원통사~오봉~여성봉~송추]
ㅇ 일 시 : 2004. 1. 24(토) 11:00~14:30

오늘은 어제보다 좀 일찍 나선다. 집 뒷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송추까지 가는 다소 긴 여정이다.

우이암 매표소에서 원통사까지는 딱 1구간이다.
시간은 40분 정도 걸리는데 적당히 땀 흘리면서
딱 쉬어 갈 곳이 원통사다.

내 능력으로는 여기서 쉬지 않고 더 갈 끈기도 없다.
원통사는 나침판으로 보면 딱 정남향이다. 볕이 따뜻하다.

물도 여기서 길어가며 난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산사의 묵향에 취해 잠시 쉬어갈만한 아주 좋은 곳이다.
도선사는 넘 커보여 부담스러(?)잘 안들르지만 원통사는 꼭 들른다.

원통사를 돌아 좌측으로 경사를 올라가 보문산장을 거쳐
우이암으로 간다.

오늘은 직진을 해 내려가 본다.
길따라 가보니 무수골매표소에서 올라오는 나무계단과 만난다.
우이암을 생략하고 올라온 것이다.

주능선 가기전 오봉으로 가는 길로 빠진다.
여기는 볕이 덜 쬐는 지라 눈이 그득하다.
지금부터는 희한하게도 딱딱 30분 구간씩이다.

오봉, 주능선 삼거리 ~ 오봉 : 30분
오봉 ~ 여성봉 : 30분
여성봉 ~ 송추 오봉매표소 : 30분

오봉에서 컵라면 하나 때리고 주위를 본다.
우측으로 인수봉, 백운대, 좌측으론 도봉 주능선
웅장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얄밉도록 이처럼 이쁠 수 있을까..

오봉에서 여성봉 가는 길이 또 기가 막혔다.
아담한 산책로다. 눈도 그득하다. 사색하며 가기에 딱이다.

여성봉에선 여성봉 특유의 생김새가 눈땜에 많이 퇴색(?)한거 같다.
여성봉에서 내려다본 눈쌓인 송추의 논과 밭이 아주 소박하다.

눈 쌓여 미끄러운 여성봉을 굳이 올라가보고 싶었다. 흐흐~
송추로 내려오는 길이 다소 신경쓰인다. 아이젠을 착용해
그리 우려 할 바는 아니지만..

딱딱한 눈길에 아이젠 박히는 발맛(?)이 일품이다.
송추로 내려오니 논과 밭이 반긴다. 서울쪽과는 또 다른 신선함이다.

3시간 남짓 걸리는 산행이지만 아주 긴 길을 다녀온 느낌이다.
송추엔 의정부행 버스가 자주 와 불편함이 없었다.


제 3제 : 고대산[의정부~신탄리~고대산제2봉~고대산제3봉]
ㅇ 일 시 : 2004. 1. 25(일) 10:10~14:30

이제 연휴 마지막이다. 괜히 씁쓸하다.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고대산을 택한다.
(솔직히 김치 두루치기에 소주 한잔하려 간 혐의가 짙다)

오늘은 아이들 둘과 형님이랑 같이 간다.
두루치기로 회유, 협박하는데 형이 안넘어가고 배기겠는가.

의정부발 8:20분 기차를 탄다. 출발 30~40분 전에 도착하는게 좋다.
그래야 여유있게 좌석을 고른다. 거의 도봉산 수준으로 등산객들이 많다.

1시간 20분정도 걸려 신탄리에 도착한다.
매표소를 지나 제2등산로 입구엔 10:10분에 도착한다.
날이 추워 온눈이 그대로다. 입구부터 아이젠을 건다.

날쎈돌이 큰아들놈과 그 뒤를 바짝 붙어 노익장을 과시하는 형님이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다. 난? 작은 아들놈 뒷바라지 해줘야 한다.

몸에 살집이 좀 있는지라 작은 애는 경사에는 쥐약이다.
뒤에 바짝 붙어 보조를 맞춘다.

" 내려갈걸 이런 산에 왜 와요?"
" 다신 산에 안올거예요.."

산에 올때마다 하는 작은 아들놈 단골 멘트다. 얼굴이 씨뻘개져가지고..
그래도 오늘은 정상까지 단 한번뿐이 안 쉬었니 그저 대견할 따름이다.

고대산에서 보는 철원평야는 언제 봐두 시원하다.
항상 산에 올라 보이는게 또 산이었는데 여긴 평야가 보이니깐
색다르다.

사람들이 참 많이 올라온다. 시간도 많이 안걸리고 철도로 접근하는
낭만때문이리라.(고대산은 접근이 의외로 편하다)

3봉으로 내려오면서 눈길에 아이젠 박는 발맛을 여한 없이 즐긴다.
3봉은 초반 급경사를 지나면 호젓한 길이 많다.

특히 하산 마지막 부분 긴나무들 사이로 뱀처럼 꼬불꼬불한 길은
넘 넘 서정적이다.

산행을 마치고 두루치기집에가서 김치에 섞어 구운 돼지고기에
애, 어른 모두 포식을 한다. 점심을 아예 이거 먹을려고 안가져갔으니
얼마나 식욕이 땡기랴(근데 가격이 올해부터 1근에 만원에서 만오천으로 인상)

불가사의한건 평소 참이슬 반병이면 요주위 태세로 몸이 반응하나
거기선 형과 둘이 3병을 해도 먹은거 같지 않더라는 거다. 왜일까...

이것으로 설 산행 3제를 접는다.


▣ manuel - 유순한 산길을 고르는 지혜와 여유가 우리에게 달려있듯이, 산 또한 우리에게 기쁨을 거저 주게 마련인 것 같군요...
▣ 김용진 - 가족과 함께 낭만이 가득한 기차를 타고 고대산에 오른 님의 모습이 선 한듯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너무 부르워 한 것은 아닌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금년에도 계속 즐산하십시요...
▣ 산초스 - 설연휴 기간동안 세번이나 산행을 하셨네요. 북한산,도봉산 서울의 진산을 다둘러 보시고 전방시찰까지 고대산으로 ㅋㅋㅋ 저희팀도 고대산을 가려고 하는데 영 날짜가 않잡히는데 2월중에는 다녀와야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SOLO - 설전에 명지산도 다녀왔어요. 눈이 도망가기전에 부지런히 다녀야되는거 아닌가요..하하~ 좋은 산 즐거운 산행하세요~
▣ 권경선 - 산행재미에 푹빠져 사시는 군요. 저도 처가가 수유리라 북한산에 가끔 가는데 한번 뵐 수도 있겠군요. 카페에 제가 디자인한 패찰 달고 갈테니 우연히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 아애타애 - 자연은 신의 묵시라 했지요.서정적인 느낌의 님과 산은 잘 어우러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