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백 산(小白山) 1439m
비로사-비로봉-비로사

산행일자 : 2004년 1월 21일/나홀로

집출발09:30-비로사10:00-사구터10:27-양반바위11:05-비로봉11:57/12:02-양반바위12:30/12:40-사구터13:00-비로사13:12-삼가리매표소13:37-집도착13:50

민족 최대의 명절 구정이 눈앞에 다가왔다.
어릴때 느끼던(세뱃돈, 설빔, 푸짐한음식등) 그런 설레임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그래도 오랬만에 보게될 친척, 친구들 모습은 가슴 한편에 잔잔한 흥분으로 남아있다.
꿈 같은 3일의 구정연휴!
고향에 살고있기에 귀성전쟁에서 자유로운 나의 발걸음은 자연히 소백으로 향하고 있다..

올들어 제일 춥다는 날이지만, 특유의 풍기 세찬 바람이 거친 소리로 위협하는 날이지만…...
소백의 넓은 품속에 안겨보고 싶은 열망을 식힐수는 없는 것인지….
삼가리를 지날 즈음 눈에 들어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장엄한 소백의 모습에 차를 세우고 감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삼가리 매표소를 지나 오르는 등산로는 쌓인 눈으로 해서 빙판길이니 집사람이 모는 차는 계속 헛바퀴만 돌리고있다.
운전대를 받아 쥐곤 겨우겨우 넓은 공터까지 올라 차를 돌려 세우곤 신신당부의 말과 함께 불안한 마음으로 집사람을 돌려보내고 중무장을 한 후 한걸음 한걸음 소백을 느껴 본다.

비로사를 지나고 달밭골 마을에 이르니 자식들 기다림에 초조한 시골 할아버지는 손자, 손녀 오는길 미끄러울까 눈치기에 정신이 없고 시골집 꿀뚝에선 훈훈한 연기가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을 실어 뭉실뭉실 솟아나고있다.
추운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에 까맣게 매달린 새둥지도 찬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아줄 솜털 같은 흰눈을 지붕 삼아 집단장을 마친체 설날을 기다리고있다.
모두들 설날맞이에 바쁘고 들뜬 그믐날 낮을 난 걷고 있다.
나름의 설레임을 간직 한체……

언제나 그렇듯 사구터에 들러 대나무 잎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을 시원스레 들이키고 한적한 등로로 들어서니 하얀 눈밭엔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
오늘은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걸으려하니 내딛는 걸음이 왠지 모르게 조심스럽기만 하고…
제법 쌓인 눈밭을 걸으니 발목이 잠기고 깊은곳은 무릎까지 빠져들지만 걷는 걸음 만큼 뚜렷한 족적이 점점 길이를 더해간다.
유난히 땀이 많은 나의 이마에선 방울방울 땀이 흐르기 시작하지만 차디찬 기온에 눌려 열기를 잃고 금새 서리로 눈썹을 하얗게 만들고 머리에서 흐르던 땀은 머리카락에 고드름되어 맺혀버린다.
속은 땀이 흐르고 겉은 얼고…

양반바위를 지나 오르니 바람은 점점 더 거세지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얼굴은 이제 찬바람을 원망할 힘조차 잃은듯하다.
게다가 제법 가까이 보이는 비로봉정상엔 거친바람에 휩쓸려 날리는 눈보라가 뿌옇게 허공으로 허공으로 퍼져 오르고 있고, 이에 질세라 등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나보다 몇배 빠른 걸음으로 눈보라를 몰고 정상으로 달려가니 온몸으로 바람을 느낀 난 작게 움츠려 들어만 간다.

체면이고 뭐고 던져버리고 눈과 코만 빠꼼히 뚫린 빵모자를 눌러쓰니 어떤 바람도 이겨 낼 수 있을 듯 다시 힘이 솟는다.
바람이 워낙 거세니 눈꽃인들 배겨날 수 있겠나?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거센 소리를 내는 바람만이 지날 뿐….
바람에 못 이겨 비스듬히 기운 나무들마다 등에 힘겹게 흰 눈을 업고있는 모습만 간간히 보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선 비로봉…
거부의 몸부림인가?
세찬바람에 숨이 턱턱 막히고 내몸이 내몸이 아닌 냥 마음대로 움직일수가 없다.
어렵사리 카메라를 꺼내 흐릿한 연화봉과 국망봉능선을 급하게 찍노라니 두툼한 장갑속의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잘려 나갈 듯이 아려져 오니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쫓기듯이 황급히 계단으로 내려 선다.

수십번 경험해본 소백산 칼바람이지만 겪을 때 마다 낯선 느낌이 드는건 왠일인지?
등산로를 내려오는 내내 모든걸 집어 삼킬듯이 윙윙거리는 바람소리는 소백산 가득 끊이질 않고 계속되었고 차에서 내린 아파트 마당까지도 칼바람은 멈추지않고 불어오고 있었다.

삼가리에서 바라본 소백산


비로봉 오르는 계단


달밭골 계곡


▣ 미루나무 - 으아~그 추운 날....? 글과 사진 감상 잘 했습니다...
▣ 김정길 - 님의 산행기는 빠짐 없이 탐독 하면서도 처음 올리는 댓글입니다. 그동안 부족한 제가 님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기에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부디 건강하시며 무탈한 산행 이어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길문주 - 산 고수님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님도 복많이 받으시고 즐산하시길 바랍니다.
▣ 산적 - 눈속에 나만의 족적을 남기는 기분<설레임,두려움...>애쓰셨습니다.저도 어제 명지산에서 그랬어요.길을 몰라서 무서웠고,추웠습니다.
▣ 바부탱이 - 설경이 넘 좋으네요. 건강하시구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 이동명 - 님의 첫 글을 읽고 혹시나 하는 기분입니다.
▣ 이동명 - 임걸령에서 아침식사 할 때 뵙던 분이 맞는지요? 저는 영주에 살고 있습니다. 님의 열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 길문주 - 산적님, 바부탱이님 이동명님 볼품없는 산행기 읽어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동명님 임걸령에서 뵌분들이 맞는것 같군요 ㅎㅎㅎ 이렇게 웹상에서 만나니 너무 반갑습니다. 요즘도 산행잘하고 계시죠?
▣ 지인산 - 그날 그시각 희방사 출발하여 연화봉 거쳐, 저도 비로봉에 있었읍니다. 많이 추웠죠. 전 다시 희방사로 회귀하였고, 동네 목욕탕만한 소백산 풍기온천에는 발디딜틈 없을정도로 비좁았죠. 계속 안전산행 하시길...
▣ 이세종 - 설 준비안하고 억시 돌아다닌다. 다음에 갈땐 좀 끼와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