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엄쉬엄 지리산 종주 혼자 즐기기 (대원사-화엄사 3박3일) ◇

 * 작년 음력 사월 초파일, 십년만에 다시해 본 지리산 종주의 희열과 가을의 대원사를 다시 찾으리라던 희망을 마음에 담아둔 채 늘 밀린 숙제처럼, 비올 것 같은 날씨의 침침함 속에서 해는 바뀌었고 드디어 예기치 않은 늦봄에 미련없이 다시 지리산으로 떠나다. 이번 산행은 아무런 제약없이 산속에서 한 사나흘 쉬다 오기로 작정한 만큼, 바쁠 이유 하나 없는 완전한 자유시간이었음에 기쁨은 두배였다..

ㅇ 종주일자 : ‘04. 5. 22 - 5. 25  (4일동안, 실제산행3일)

ㅇ 종주구간 : 대원사주차장 - 유평(새재마을) - 치밭목대피소(1박) - 써리봉 - 중봉 - 천왕봉 - 제석봉- 장터목대피소 - 연하봉 - 삼신봉 - 촛대봉 - 세석대피소(1박) - 촛대봉 일출 - 세석 - 영신봉 - 칠선봉 - 덕평봉 - 벽소령대피소 - 형제봉 - 연하천산장 - 명선봉 - 토끼봉 - 뱀사골산장(1박) - 삼도봉 - 반야봉 - 노루목 - 임걸령 - 돼지령 - 노고단 - 코재 - 중재 - 연기암 - 화엄사 (총 44 km정도)

 ◆ 5. 22(토) 11시에 지리산으로 출발하다

 ○ 지난해 늦봄에 대원사 하산시 가을의 단풍을 기대하고 역종주를 기대하였으나 불발에 그치고는, 올해 봄 느닷없이 찾아온 여유에 무작정 나서기로 하고는 며칠째 들뜬 마음에 부산으로, 그리고 남해고속도로를 단숨에 달려 진주역에 도착하다 (포항에서 3시간 소요)

 ○ 대원사 방향은 교통편이 약간 불편하다, 진주터미널에서 1시간 소요 버스를 타야 하는데 종주 마치고 구례에서 다시 차를 가지러 와야 하는 불편에 차는 진주터미널에 파킹할 수 밖에 없다. 대원사행은 1시간 간격이므로 치밭목까지 갈려면 늦어도 3시30분이전에는 출발하는 것이 좋다(아니면 랜턴을 켜고 산행을 감수). 돌아오는 길은 구례에서 하동행 버스를 타고(소요시간 40분), 다시 하동에서 진주터미널 버스(소요시간 1시간10분)를 타야 한다

○ 오늘은 치밭목에 가서 자야겠다. 시간을 보니 조금 바쁠 거 같다. 그래도 하늘과 별과 바람을 벗삼아 산장에서 지리산의 첫 밤을 보내리라. 예약이 없어도 항상 푸근할 거 같은 산장지기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진주터미널 부근에는 차량을 주차할 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몇차례 주변을 돌다가 겨우 조금 떨어진 곳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다. 강너머에 유료주차장이 있는데 며칠 있다 나오면 주차비가 얼만디..., 덕분에 터미널에 달려오니  14시30분차가방금 떠났단다. 할 수 없지. 아무래도 산에서는 외로울 거야 산장지기에게 줄 야시(?)한 스포츠 신문잡지를 구겨 넣고는 15시30분발 대원사행 버스로 출발하다 (3,400원) . 1시간여만에 대원사주차장에 도착하니 맑은 샘물이 설비되어 있는데 맛 또한 달다,

○ 16시50분에 이제 지리산에 첫 발을 딛다  유평매표소에서 매표 및 출입대장을 작성하니 치밭목은 저물거라고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이왕 시작한 거 계곡 물소리를 따라 천천히 1시간여를 걸었을까 오솔길행임에도 땀이 솟는다. 대원사 가는 길은 비교적 넓고 차량이 다니는 길이라 자칫 지리하다. 절 구경이 아닌 산행을 온 이상 유평까지는 차를 얻어 타는것도 괜찮을 성 싶다.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한데, 대원사를 지나서는 이제 하산길 등산객만 몇 보이고 인적조차 드물다. 치밭목에는 아직 한번도 자본 적이 없어 욕심에 길을 재촉하려 대웅전에 들리지도 않은 채 건성으로 기도하고 새재마을로 계속 직진하다. 시멘트 포장길이 지겹기 시작한다. 한참길에 차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화물차를 타란다. 민박 구할련가 묻는다. 치밭목을 예기했더니 저문 시간에 자뭇 걱정을 또 보태준다. 18시20분에 새재 민박끝집 도착, 치밭목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 산장까지는 4.8km거리이다.

○ 이제 본격적으로 지리산에 접하다, 갑자기 꽃내음이 화악 풍겨오고 녹음속에 오직 새소리 뿐, 이 한적함이 정말 좋다. 예쁜 나무다리 조개골교를 건너 19시30분에 새재 갈림길에 도착하다. 치밭목 하산길에서는 여기서 유평과 새재길로 나뉜다. 작년에는 유평길로 하산하였는데, 산죽과 너덜지대로 별 풍광은 없었다 (유평까지는 4,4km, 새재마을까지는 3.0km이고 비교적 등산로가 좋은 편이다. 주위는 슬슬 어두워지고 적막한 가운데 새소리,물소리는 더욱 초량해지는 가운데 이제 도 닦는 맛이 들기 시작한다.

○ 19시40분에 무재치교에 도달하다. 작년 종주시 하산때는 정말 시원하게 목욕을 한 적이 있다. 무재치 나무다리도 예쁘고 물이 정말 좋아 두손을 적셔보고는 슬슬 치밭목을 향하여 본격적으로 치밭으려(?) 하는데 이 맑은 공기속에 마음이 씻기는 듯 상쾌하다. 10분여후에 무재치폭포에 도달하다. 작년 하산때는 그냥 지나쳐 아쉬움이 남았는데 안내표지가 친절하다. 나무계단에서 아래로 100여미터를 내려가니 3단의 시원한 폭포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표고 1,000미터이니 이 또한 지리산의 비경이 아닐까 싶다

○ 무재치 폭포 아래에 퍼질고 앉아 떨어지는 물소리를 듣다. 세상에 무어 원망할 일이 많으며, 또한 무엇이 바쁘다고 설쳐대며 살았단 말이냐 (가슴 복잡한 내 심정을 털어 내 본다. 억지 산에 오르고자 하는 마음 또한 욕심이리니). 이제 사위는 어두워 산은 보이지 않는데 왜마디 홀딱새(?)의 울음이 갑자기 처량한 듯하게 들린다.

○ 20시40분. 작은 손전등에 의지하여 콧노래를 부르는 사이 어느덧 치밭목 산장에 도착하다. 새재마을에서 대략 2시간20분정도가 소요된 모양이다. 치밭목에는 전기따위는 없다. 아랫목 같은 침상도 없고, 편한 취사장도 없다 그래서 더욱 좋은지도 모른다. 예상외로 등반객은 많은 편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각자 해드랜턴과 손전등에 의지하여 식사와 여흥을 즐기고 있다. 자그마한 취사막엔 먼저 온 손님들로 북적대고, 별수 없이 산장입구 좁은 통로에서 쪼그리고 앉아 먹는 육개장국과 햇반은 그래도 꿀맛이다. 그리고 옆 단체일행과 소주한잔하고 늦은 시간에 지리산 첫밤을 맞다.. (숙박료3,000원, 담요3장 3,000원,1장은 배게로 사용)

 ◆ 5. 23(일) 05시에 기상하다

 ○ 천왕봉으로 일찍 나서는 이들의 부산함에 눈이 뜨여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싸하다. 밤에 못 본 치밭목이 새단장을 하고 있다. 목조건물에 동판기와까지, 열명정도가 자리할 수 있는 간이 취사장까지 마련되고 있다. 구름에 가려 해뜨는 것은 보지 못하고, 바쁠 일 없는 몸 천왕봉에서 하산객이 내려올 때까지 한숨 더 자다가 소꼬리 곰탕 한그릇 거나하게 하고는 08시30분에야 산장을 나서다.

○ 산행시 세면이나 양치는 귀찮은 일이다. 나는 팻트 큰 병에 물을 가득 채워서 산능선 등반객이 보이지 않는 꼭 경관이 좋은곳에서 해결을 한다. 세면은 물티슈, 가져온 물로 양치를 하면 간단히 해결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다지 환경에는 무해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지리산에서는 자기 쓰레기는 몽땅 가져와야 한다. 대피소.산장에서도 예외는 없다.(금번 산에서의 3박동안 0.5리터정도 쓰레기 발생). 치밭목 능선에서 간단세면을 하고는 하늘을 베게삼아 또다시 바위에 눞다.

○ 09시30분, 써리봉 오르는 길은 가히 장관이다. 바위능선과 오르막 그리고 지리산 남쪽중산리 쪽의 장관은 일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치밭목쪽 산행에서 가장 좋은 비경이다. 바람은 가슴을 시원하게 일구고 바쁠 거 없는 발걸음을 아는 양 한시간이나 붙잡는다. 10시30분에 써리봉에 도착하니 치밭목에서 1.8km 거리임에도 경치에 취해서 바람에 취해서 두시간을 해맨 듯 하다. 써리봉에서 중봉 가는길은   V자 계곡이다. 줄타기에다 모처럼 난간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비로소 땀이 찬다. 이제 하늘은 구름이 걷히고 맑다.

 써리봉 오르는 길에서의 남쪽정취

 

○ 11시40분 중봉에 도착하니 남쪽으로는 천왕봉이 버팀하고, 동쪽으로는 치밭목이 보인다. 온 사방이 산천지고 그 가운데가 지리이다. 쉬엄쉬엄 걸으니 12시40분에야 천왕봉에 도착하다. 구름은 일고 바람 역시 좋다. 사람이 많아 제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서쪽 저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 제석봉의 고사목은 점점 적어진다. 13시30분에 장터목대피소에 도착, 점심으로 사골우거지국을 끓여먹고 14시 20분에 세석으로 출발하다. (사실 당일치기로 대원사에서 천왕봉 해서 장터목에서 1박하고 새벽 일출을 기대했으나, 휴일전후 장터목에는 웬만해선 자리가 없다 - 예약필수 및 확인)

○ 연하봉 봉우리 바위를 넘으니 저 멀리 반야봉과 노고단이 희미하다. 갈길 바쁠 리 없는데 세석은 바로 저 너머에 있다. 장터목에서 물 받아 오면서 시원한 그늘에서 양치를 하다, 이왕 지리산에서 아무 미련없이 한 사나흘 쉬다 갔음 좋겠다. 배낭은 기본 11키로그램을 유지함에 피로감이 없다. 이제 사람이 뜸하다. 15시 10분에 삼신봉에 오르니 구름도 많고 새소리 또한 천국이다. 바위에 누워 구름을 즐기다. 아예 경치만 좋으면 엉덩이를 걸치니 장터목에서 출발 2.7키로 거리를 두 시간이나 걸려 촛대봉에 이르니 16시20분이다.

○ 광활한 평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꽃들은 만개하지 않고 봉오리가 한창이다. 매년 자연보호의 덕분에 나무와 들풀이 잘 복원되고 있어 정말 아름답고 다행스럽다,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세석산장으로의 방향은 이국의 어느 산장을 방불케 하고, 여기서 오늘 머물 생각을 하니 절로 흥이 난다. 아름다운 꽃 정원을 내려와 산장에 도착하니 16시 40분, 너무 깨끗하고 빨간 우체통은 윤을 더한다. 시간은 이르고 그러나 천왕봉 대신 내일의 촛대봉 일출을 위하여 꽃내음 나는 이 산장에서 하루 머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 예약없는 이들은 19시부터 입실이 가능하다. 일찍 식사를 하고 홀로맨 3명이 모여 소주를 4병이나 땄다. 살아가는 이야기, 화엄사로부터 넘어오는 산 이야기에 세석의 밤은 젖고 지리산의 둘째 밤을 맞다. (숙박비 5,000원, 담요 3,000원, 왠만한 호텔급 여정이다)

◆ 5. 24(월) 04시40분 촛대봉 일출을 기대하며 눈을 떠다

○ 밤새 이웃사람 잘 만난 덕에 잠을 설쳤다. 설마니 귀마개까지 챙기려니 그렇고 했더니, 가히 기차화통은 완전히 저리가라다. 일찍 천왕봉으로 나서는 이들의 부산함에 잠이 깨고 덩달아 배낭을 챙겨 밖에 나왔다. 평원에서 불어오는 새벽공기의 상쾌함에 가슴속이 시릴 정도이다. 이상하게 일출 보러 가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신발 끈을 조이고 촛대봉으로 한달음에 오르려니 새벽 숨이 차다. 일출시간은 다가오는데 출발이 좀 늦은 성 싶다. 05시15분에 겨우 촛대봉에 도착하다. 늦봄이라 해도 지리산의 새벽공기는 아직 차고 새벽 뻐꾹새가 우는 가운데 저 멀리 동쪽으로 아침여명이 밝아오다.

촛대봉에서 본 천왕봉(구름) 일출

 

○ 정확히 5시17분 천왕봉 너머로 아침 해가 떴다. 복이다. 내가 만일 이 시간에 천왕봉에 있었더라면 구름 속에 서서 떠오르는 해를 상상했겠지? 보이는 천왕봉은 구름과 안개속에 묻혀 있고, 천왕봉을 비켜선 일출은 지금 촛대봉을 밝혀 준다. 장터목 자리가 없어서 세석에서 자리를 풀었더니 용케도 일출은 나를 반겨준다. 우리 조상님 만만세...(오늘 이 세석의 일출은 홀로 맛보다. 나중에야 늦게 온 두 사람의 아쉬운 탄식에 더욱 흐뭇(?)하다). 지리산 세석에서 새벽을 맞이하는 이 기쁨, 산하를 비추는 아침햇살과 그 빛의 향연은 오랫동안 남을 성 싶다. 지금까지의 3번 종주때마다 일출을 놓친 적이 없음은 정말 복이 아닐 수 없다.

지리산 일출 그 빛의 향연

 

○ 세석산장에 내려와 미역국을 끓여 해장하고 07시10분에 영신봉으로 오르다. 너른 평원에는 연분홍 철쭉과 이름모를 꽃들이 곱기도 하다. 경치좋은 바위에 앉아 아침세면을 하고 벌러덩 누워 반시간 동안 이 맑은 산하의 정기를 받는다. 영신봉에서 연하천까지는 9.3km 거리, 연하천에서 여정을 풀기로 예약하였더니만 오늘 또한 어중간한 산행이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기약없는 시간이 아니던가. 저 멀리 서쪽으로 노고단과 예쁜 엉덩이 반야봉이 아스라히 보인다.

○ 드디어 영신봉과 칠선봉 사이 비경에 접하다. 개인적으로 지리산 능선에서는 여기와 치밭목의 써리봉-중봉 사이 풍경이 가장 좋다. 더구나 천왕봉에서 노고단 방향으로 서쪽풍경을 보고 걷는다는 것은 가히 신선놀음이라 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높은 절벽과 바람과 고사목이 즐비하고 혼자 보기는 아쉬운데 똑딱이 카메라 밧데리가 벌써 깜박인다. 덕평봉 하신길에 175목계단을 걷다. 걸음마다 미움하나, 원망하나, 욕심하나, 시기하나, 불어오는 바람속에 하나씩 털려 나갔으면 좋겠다. 숫제 얼음냉탕 같은 이 시원함 속에서는 나풍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온 가슴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 없다. 이 길에서 개목걸이는 필수, 모자가 바람에 날리면 끝장이다..

○ 08시40분 칠선봉에 도착 , 세상이 온통 바위봉이고 바람이 좋다, 여태껏 오가는 등반객이 없다. 심심하다. 아참 음악이 있었지, 다행히 출발할 때 큰 녀석이 챙겨준 MP3가 생각난다. 가방을 뒤져 이어폰을 대니, 녀석 다양하게도 준비를 꼼꼼히 해주어 고맙다는 생각에 비로소 가족이 생각난다. 여태껏 이기적인 나는 큰놈이 고2가 될 때까지 별로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가장 축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주장대로 살아왔는데 고맙게도 우리가족의 건강이나 집안일은 여태껏 아내 몫이다. 이 지리산에서 비로소 나의 마음속에서 아내와 두 딸을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정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다. 09시 40분 선비샘에 닿을 때까지 큰 녀석이 챙겨준 음악 볼륨을  높히고 걷다.

○ 선비샘 물맛 또한 일품이다. 수량은 작년보다 준 듯하고 샘터에서는 대여섯 사람들을 만나 산길을 얘기하고, 나중에 남아 세수 한번 하고 수건을 적셔 윗몸을 닦으니 이 시원함. 10시에 일어서서 30여분 후에 음정(마천) 갈래길에 도달하다. 이제 벽소령은 멀지 않다. 벽소령 내려가는 길은 평탄하고 단조롭다. 등허리에 다시 땀이 쏟는데 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통에 미숫가루를 타서 마신다. (봄 종주시는 지리산 각 샘터에서 작은 팻트병 하나면 족하다. 미숫가루는 처음 준비했는데 무게.부피와 영양 측면에서 꽤 추천할 만하다. 물만타서 흔들면 간편) 이제 모퉁이를 돌면 벽소령이다. 비교적 잘 된 오솔길에서 새소리와 음악소리를 겸하니 저 멀리 그림 같은 벽소령이 보인다. 11시10분에 도착.

○ 관리소 직원과 산을 얘기하다. 같은 방향 단체종주객(서울 통신공사 7명)은 벌써 점심준비이다. 미숫가루 물을 마시니 금새 시장기가 사라진다. 연하천에 가서 맑은 물에 라면을 끓여 먹으리라. 11시 30분에 벽소령을 출발하다. 형제봉 구간에는 보기 드문 바위 통천문(?)들이 자주 반겨주고, 별로 흔치 않는 오르막길을 지나 12시20분에 형제봉에 도착하니 온천지가 산천지이다. 이정표에 노고단까지의 거리는 12.6km이다. 바위에 걸터앉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다람쥐가 노니는 가운데 서울 사는 부부를 만나 또 산 이야기를 나누다. 인심이 좋아 사탕을 한줌이나 주머니에 챙겨주었다. 이제 1시간 거리에 연하천이 있는데, 그래도 시간은 너무 이르다.

○ 연하천 가는 길은 약간의 계속되는 오르막 길, 달콤한 바람속에 재에 오르니 이제부터는 평탄한 능선길에 연분홍 철쭉이 한창 자태를 자랑한다. 형제봉에서 1시간을 걸었을까 마침내 주목 보존지역 철책이 보이는데 연하천인 모양이다, 작년보다 주목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태풍에 가지가 찢겨져 마른 나무가 애처럽다. 13시40분에 드디어 연하천 도착, 예나 없이 맑은 통에는 역시 음료수, 맥주캔까지 담겨 있다. 산에 와서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김치까지 넣으니 그야말로 성찬이다. 서울일행이 도착하고 시원한 맥주캔을 또 얻어 마시다. 이번 지리산에서는 꼭 연하천에서 쉬고 싶었는데 (어렵게 마지막으로 예약, 장터목 1박이라면 적당할 것임). 연하천은 산장지기의 텁수룩한 수염만큼이나 정감이 있다. 14시30분에 뱀사골 산장으로 출발

○ 연하천을 넘어 오니 반야봉이 시야에 가득하다. 날씨는 덥지만 서쪽 경관은 정말 좋다. 내가 걷는가 기는가도 모를 정도이니 토끼봉이 아칙 한참이나 남았는데 시간은 벌써 16시에 다가간다. 중간 이정표를 보니 뱀사골 산장은 이제 2.6km 남았다. 토끼봉 가는 길은 키가 큰 떡갈나무와 단풍나무가 반겨준다. 오른쪽 계곡에서는 쉼 없이 찬바람이 불어오고, 바쁠 리 없는 걸음은 자꾸만 풍광 좋은 바위터만 찾게 된다.

○ 16시 15분에 토끼봉에 다다르다. 동쪽으로는 아스라이 천왕봉,중봉이 구름에 드리워져 있다. (내가 나선곳, 지리산 시작이 어드메뇨, 어느뫼뇨?) 연분홍 철쭉이 너무 곱다. 서쪽을 보니 이제 반야봉이 손에 잡힌다. 이제 뱀사골에 다 왔나 보다. 시간은 아직 이른데... 헬기장에 도착하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쬔다. 일대는 철쭉 군락지로 보호길 안내 표석이 아름답다. 이제 뱀사골로 가는 하산길은 구상(주목)나무 그늘이다. 돌바닥석으로 길을 내어 풍치는 더한데 예산은 엄청 퍼부었겠다. 자연훼손과 복원문제가 이렇게 순식간에 다르다. 16시50분에 뱀사골 산장 입구에 도착하다. 자연생태 복원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제법 운치가 있다. 천왕봉에서 여기까지가 19.2km. 노고단은 6.3km, 반선쪽 하신길은 9.2km 거리임을 표시하고 있다.

○ 17시에 오늘의 종착지 뱀사골 산장에 이르다. 반선쪽으로 200미터를 내려가면 있다. 작년 여름 야간종주를 하겠다고 장대비속에서 헤매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칼잠을 잔적이 있었다. 일찍 저녁식사로 햇반에다 사골우거지국, 참치, 햄, 소주, 김치, 김 등등, 이제 내일이면 하산길이니 남길 일이 없다. (사실 대피소에는 별별 음식이 있어, 무게가 염려되는 분들은 가볍게 지갑만 채우고 오면 쉽다). 또다시 서울 일행과 합석하여 주거니 받거니 그리고 산나무를 넣어 끓인 특식라면은 추억으로 남았다. 깊은 산속에 밤은 찾아와 발전기 소리는 들려오고 외등불이 들어온다. 내일이면 반야봉, 노고단, 그리고 화엄사 하산길만 남으니 섭섭한 마음조차 든다. 지리산 2004년 봄 추억이여!. 대피소는 시설이 대체로 빈약(?)하고 밤에는 한기가 돌았다 ( 숙박비3,000원, 침낭2개 4,000원, 1개는 베개사용)

◆ 5. 25(화) 05시 지리산 마지막 여정이 시작되다

○ 밤새 한기에 뒤척이다 새벽에 나오니 다람쥐가 아침을 맞아준다. 보통 천왕봉행 종주객은 이맘때쯤 미리 서둔다. 남은 햇반에 고추참치 비벼서 아침을 만들고 천천히 길을 나서다. 06시20분 드디어 공포의 목계단에 다다르다, 안내판 1999년도 설치, 길이 240미터, 폭 1.5미터, 오랜만에 다리운동 삼아서 튀어 오르니 열댓걸음에 숨이 찬다. 다리 중간중간에는 간이휴식소도 있어 이곳에서 담아 온 팻트병으로 양치, 물티슈 세면에다 선크림까지 간만에 폼을 내려 하니 한 며칠새 면도없는 얼굴에 손바닥이 따갑다. 30여분만에 정확히 551계단 마루에 올라서다. 남쪽으로 광활한 계곡이 한눈에 들어 온다.

○ 삼도봉에 도착하니 정각 7시. 황동 표지석이 광채를 발하는데 경상도면 어떻고 전라도면 어떤가, 저 멀리 동쪽 끝 천왕봉은 햇빛속에 갇혀 있다. 서쪽으로는 노고단이 손에 잡힌다. 그늘진 나뭇길과 철쭉사이로 5분여를 가다가 이름하여 “명당 묘자리”에서 오른쪽 갈림길 반야봉으로 향하다. 반야봉 오르는 길은 아름드리 구상(주목)나무에서 산소가 절로 뿜어져 나온다. 철쭉군락지를 지나 철계단을 오르니 이미 하산길 한 학생이 왠 선문답을 한다. “아저씨 무거운 배낭을 왜 지고 올라 오세요?” 글쎄다. 그러고 보니 사실이 그렇다. 다시 내려갈 길을 왜 매고 왔을까?. 대답없이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내등의 짐, 가정과 부모와 직장과 주위 모든 것들..., 짐이 아닌 나를 지탱해준 고귀한 선물”, 그래 등짐이 있어 이제까지 편안한 산행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3일째의 지리산행에서 이 싯구절을 생각해 내다니, 이제사 도 닦은 보람이라고 여겨 버릴까 보다.

○ 07시 40분에 반야봉 정상, 발 아래 지리산은 아직 산안개에 젖어 있다, 반야봉은 대자연 지리산의 조망을 자랑한다. 동쪽 천왕봉. 남쪽 피아골. 서쪽 노고단까지 장관이다. 특히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남녘 산등성이는 실로 감탄을 자아낸다. 하산길 중턱 바위에 걸터앉으니 온갖 상념이 다 날아간다. 하산하여 08시50분 반야봉 갈래길에 다다르다. 노고단에서든 천왕봉에서든 종주시 반야봉을 오를려면 양방향 갈림길에서 조금 오르면 서로 만나는 지점이 있어 배낭은 여기서 두고 내려올 때 각 진행방향으로 가면 쉽다. 반야봉까지는 약 1km 정도 오르면 되는 거리이다.

○ 노루목길은 별로 따분하다. 바람도 거의 없는데다 산죽 사이로 먼지도 인다. 이때는 음악이 제격, 알아듣지 못하는 랩음악도 이젠 제법 귀에 익숙하다. 가끔씩의 떡갈나무와 단풍나무 바람과 즐기는 사이에 금새 임걸령 샘터에 도착하니 09시20분. 물맛은 변함없이 좋다. 10분정도 손을 담그고 나서는데 돼지령 가는 길에는 떡갈나무 그늘과 선선한 바람을 벗삼는다. 이름이 돼지령인가 갑자기 시장기가 돈다. 그늘바위에 걸터 앉으니 삼겹살 상치싸서 소주 한잔 했으면 아무 부러울 게 없겠다... 30여분만에 피아골 삼거리 도착, 이제 노고단은 2.7km 남았다.

○ 돼지평전 오르는 길은 이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오르막이다. 이제 종아리에 약간 댕김이 있고, 노고단 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다. 평전에 오르니 우측으로 종석대, 노고단이 보인다. 하늘은 구름한점 없이 맑고, 멀리 구례까지 온 산하가 확 터인다. 지천에는 철쭉군락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음악소리를 높여 10시30분 왕시루봉 갈래길에 도착하다. 돼지평전에서 왕시루봉 길은 2005년말까지 자연휴식년제로 표시되어 있다. 노고단 오르는 길은 이제부터는 너덜지대, 그래도 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다.

○ 드디어 10시45분 노고단에 도착하다. 아쉽다. 이 아름다운 지리산을 오래 가슴에 담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1시에 대피소에 내려와 마지막 남은 라면1개, 김치로 점심을 대신하고 이제 배낭 정리할 차례, 3박동안의 쓰레기가 작은 비닐 1봉지. 비교적 환경인으로써 만족한 수준이라 자찬하다. 노고단대피소에서는 쓰레기 수거함이 있다. 진정한 산행인이라면 자연보호, 쓰레기 되가져오기는 이젠 필수이다

○ 12시, 성삼재 하산길에 코재로 하여 화엄사로 접어들다, 시원한 그늘에서 양치한번 하니 더위가 씻겨간다. 완전한 그늘길 인적하나 없고 오직 새소리 물소리만 벗삼아 하산하다. 오르는 길보다는 이 한적한 하산길도 괜찮을 성 싶다. 맑은 계곡 물소리에 작은 소가 보인다. 이 상황에선 자연에게 미안해도 도리가 없다. 아 시원함 3일만에 해보는 목욕의 기쁨. 계곡에서 1시간을 놀았다. 13시40분에 중재 도착하니 화엄사는 이제 4.0km, 땡중마냥 돌길로 어슬렁 걸어오니 세상천지 부러울 게 없다.

○ 14시30분 연기암에 도착하다. 문수관음기도도량, 보다도 연기암 운해사진이 더 돋보인다. 계곡 물소리는 시원함을 더하는데 어은교, 어진교 다리를 지나 15시 20분 드디어 3박3일의 마지막 종점인 화엄사에 도착하다. 이정표를 보니 천왕봉까지가 32.5km, 제법 걸었는가 보다. 마침 내일이 부처님 오신 날인데, 경내에는 연등이 곱게 걸려 있고, 대웅전에 들러 짧았지만 무탈하게 귀한 시간을 허락해준 지리산에 감사기도를 드리다. 변함없이 화엄사는 고색창연함을 지니고 있는데, 가슴 한구석엔 지난해의 종주를 시작하기 전날 밤 천은사의 고운 연등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짧았지만 또한 긴 시간, 그래도 남은 욕심과 미련일랑 저 흐르는 계곡의 물에 마져 떠내려 가 주기를.... 또 다른 내년을 기대하다.

고색창연한 화엄사 경내

 

* 화엄사 주차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시내버스를 타고 구례역(750원)에 나오니, 진주행은 바로 없고  18시30분발 하동버스(2,600원, 40분 소요)에 시간이 남아, 그토록 갈구하던 삼겹살 2인분을 소주1병(17,000원)과 게 눈 감추듯 하고는, 다시 19시40분발 하동에서 진주버스(3,800원, 70분 소요)를 타고  진주역에 도착하니, 사우나 휴식보다 집생각이 더 간절하여 처음 나설 때처럼 21시에 단숨에 차를 몰아 24시에 포항에 도착하다.

ㅇ 산행 준비물 (3박3일기준임) - 배낭무게 11키로그램 한도 유지

  - 장 비 : 헤드랜턴,손전등(소), 코펠(소형), 휘발유 버너, 휘발유(소형), 라이터, 숟가락,젓가락, 스틱, 무릎보호대, 면장갑, 맥가이버 칼, 선그라스, 화장지2, 물티슈, 모자, 비상약, 썬크림, 에어파스, 볼펜, 수첩, 소형디카, 세면도구, 핸드폰, 방수우의, 방수배낭카바, 등산지도, 비닐(대,소여분), mp3, 여분건전지, 팻트병(대,소)

  - 여벌옷 : 자켓(경량), 짚티(보온), 등산양말(2), 쿨팬티,

  - 부식류 : 사골우거지외건조국(8), 라면(2), 햇반(5), 고추참치(2), 봉지스팸류(2), 초콜렛사탕류(1봉), 소주(3), 김치, 마른김, 미숫가루, 기타 안주 등 (각대피소에 부식류 비치).

  - 포장박스는 버리고 내용물만 챙겨 부피와 무게, 쓰레기 발생량을 줄이는 것도 요령이다.

ㅇ 여행경비 (총132,000원, 이동경비 및 부식류 포함)

  1. 부식류 30,000원, 자가용 유류 30,000원, T.G통행권 20,000원

  2. 대피소 21,000원(3박), 이동여비 11,000원, 기타 20,000원 (특식 포함)




▣ 똘배 -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보단 즐기신걸 축하드립니다. 누구나가 꿈꾸워온 여유로운 지리산 종주를 하셨네요.고교시절에 들은 "안빈낙도" "유유자적"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부럽습니다.^^
▣ 푸르뫼 - 님의 가벼운 발걸음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오랜 기간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군요. 님의 기록에서 산행의 진면목을 보고 지리산의 진한 유혹으로 인하여 한동안 감정을 다스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즐겁고 유쾌한 지리산 종주를 축하드립니다.
▣ 김학준 - 여유있는 지리산행을 즐기셨군요. 지리산을 당일에도 종주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더군요. 지리산에서의 3박3일 마치 내가 산에 있는양 잘봤습니다. 즐산하세요!!!
▣ 산초보 - 무사히 종주하심을 축하드립니다.진주에서 차를 주차 하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무료 주차장 인가요?
▣ 소백 - 정말 가슴따뜻한 산행기 잘보고 갑니다. 지리를 진정 사랑하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복받으실터!!!
▣ 빅주니 - 진주터미널 주차문제는 정말 어렵더군요. 강너머에 주차장이 있던데 유료라 부담이고 해서, 동편으로 몇바퀴 돌았더니 무슨 호텔옆에 다행히 빈 공간이 있더군요. 덕분에 대원사행은 1시간이나 지체되었습니다.
▣ 불암산 - 참 너무나도 여유로움이 부럽습니다. 모든 산님들에게도 님과같은 여유로움이 주어지면 좋겠건만..... 시간상으로 보아 저와 반대코스로 타셨는데 아마도 스치지 않았습니까? 즐산하시고 늘 행복하십시요.
▣ 산거북이 - 여유있는 산행과 간결한 표현, 격조있는 사진 넉장의 절제..... 아! 지리산 종주는 이와같이 아름다울수도 있구나 싶습니다. 이른 아침에 보는 가슴벅찬 산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