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구룡산-669봉-591봉-무시듬 : 알바와 말벌수난

 

 

 

                               2004년 9월 19일 일요일

 

                               산행코스 : 경남창녕군 말흘리 화왕산 매표소-자하골-서문-화왕산 정상- 관룡산

                                             -구룡산-669봉-591봉-알바, 하산-무시듬-밀양군 조천리

 

                               예정코스 : 화왕산-부곡온천

 

                               혼자산행

 

 

 

 

 

 

<내키지 않은 출발>

 

이틀 전 회의장에서 만난 선배님이 내가 혼자 산에 다니는 버릇한다며 못내 걱정을 하시면서

몇해 전 모선배의 사고사를 상기시키면서 만류하셨다.

 

지난 밤에 인터넷을 살피던 집사람이 얼핏 잠결에 든 나를 깨워 지리산 반야봉 중봉 길에 말

벌에 쏘인 이야기를 하면서 단단히 준비하라고 했다. 컨디션은 괜찮은데 무언가 암울한 기분

을 떨쳐낼 수 없는 기분.

 

이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예감일까...... 한갓 망념에 지나지 않는 걸까...... 몇가지 코스 중

에 선택을 잘하지 못했다는 후회 탓일까.

 

계획은 화왕산에서 관룡-구룡 거쳐 부곡까지 가는 길로, 화왕산에 가면 그 코스를 소개해 놓

았고, 산노을님이 지난 3월에 다녀온 기록을 복사하여 메모칸도 만들고 숙지하였다. 지도는

591봉까지 되어있어서 나머지는 일반도로교통 지도를 준비하였다.

 

화왕산 입구까지 실어준 아내에게, 시무룩한 표정을 풀고는 하산로는 상황봐서 결정할 터이

니 염려 말라고 해놓고서는 돌아서면서는 “6시에 부곡에서 만나!“ 외치며 씨익 웃고 헤어졌

다.

 

 

<화왕산 정상의 억새의 아침 노래>

 

말이 필요 없는 이 장면들은 사진을 대신한다.

 

다음주부터 화왕산 갈대축제가 열린다. 억새와 갈대가 엄연히 다른데,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이 축제를 왜 갈대제라고 하는 지 여러 경로로 이유를 수소문 해보니, 화왕산 정상에 있던

호수(옛날 지질구조상)에 연하여 갈대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대나.....?!

 

 

 

 

 

 

 

 

 

 

<화왕산에서 관룡산 까지>

 

 

 북사면 능선을 탄다는 것이 조금 쉬운 길을 택한 탓에 자꾸만 동문 쪽으로 내려간다. 그나마

억새 숲 길을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동문 에서 성벽으로 기어올라 성벽을 타고

능선 갈림길 까지 도달했다.

 

 

 

 

 

 

 

 

처음부터 억새풀과 잡목을 헤쳐 나가는 길이 여간하지 않다. 이래가지고서야 20 킬로 넘는 여

정을 어찌 순탄히 가겠는가 싶어진다. 아래로 허준 촬영지가 언뜻 보이더니 소나무 산릉으로

접어든다.

 

길도 한결 편하고 북쪽으로 관기봉-대견봉-조화봉 잇는 비슬산 산릉이 또렷하여 잠시 바위

끝에서 조망을 즐기었다. 호젓한 능선 길을 가다가 경북대 아마추어 천문대 관측소에서 수풀

속에서 방향을 잘못 잡고 그만 임도로 내려서고 만다. 그러나 젖은 수풀보다는 낫다. 촉촉한

아침 산림임도는 그런대로 괜찮다.

 

 

 

 

    

 

 

임도는 관룡산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서 옥천리로 이어지고, 반대로 북쪽 고암면 청간마

을 쪽으로도 길이 이어지는데 지도에는 표시가 없다. 산길로 접어드니 옛 기억이 새롭다.

 

 

 

 

  

 

 

여태껏 정상석 하나 없어도 그 이름 유명한 관룡산은 헬기장으로 구색을 갖춘다. 정상 남쪽

으로는 용선대 석불에서 바로 치고 오르는 길이 나있다. 헬기장의 역할 때문에 정상석을 세

우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길목의 표지판 아래로 되내려와 잠시 쉬고 시간과 거리를 다시 가늠하고 느긋이 출발하였다.

구룡산 가는 길의 암릉은 수년 전 사진을 찍던 곳인데 그 때 그 자리에 앉아 조망과 회상을 즐

겼다.

 

 

 

 

 

 

 

 

암릉을 지나, 관룡사에서 올라오는 능선 삼거리 곁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제부터는 낯선 초

행길이다. 잠시 진행하니 산노을님에 언급하신 바위 아래 무속인의 거처가 보인다. 이제부터

는 “부곡까지 몇 킬로”라는 조그마한 표지판에 100 미터 간격으로 이어지는 것도 눈치 챘다.

 

모퉁이를 돌아 햇살이 비켜드는 양지에 유독 빛을 받는 낡은 리본이 눈에 띈다. 산노을님이

본 것을 나도 어김없이 보게 된 것이다. 필체의 강직함이 님의 품성을 빼어 닮았다. 반가운

미소와 감격으로 합장례를 올리고 기쁜 마음으로 진행한다. 리번 하나 붙이시는 것도 참 명

당에 매다셨다 싶어 감탄을 한 다.

 

“1000 산 순례기념, 김정길”

1000산이면 몇 해 전일까.....

 

구룡산 정상도 알량한 정상석 없이 맘을 비운 처지다. 구룡산에서 669 봉으로 향하는 하산

길은 완만한 경사였지만 길이 희미했고, 잡목들의 가지와 뿌리채 뽑힌 무수한 나무들도 산길

을 흐리게 하여 잠시잠시 주저하며 진행한다. 몇해 전의 태풍 루싸에 의한 상처로 짐작되었

다. 그때 영남 알프스에서 본 참혹한 광경 그대로를 낡아진 풍경으로 재현하는 것 같았다.

 

놋단이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유의했으나 찾지 못했다. 대신에 " 부곡 가는 길 13.2 Km" 인근

의 수백미터에 엄청난 밤송이들이 널부러져 잠시 배낭을 풀고 허리를 굽혔더니 금새 비닐백

에 가득이다.

 

이것은 자연계의 잉여이니 이 중생이 취해도 괜찮것소?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배낭에 쑤셔

넣었는데 어랍쇼? 더해지는 무게가 제법 느껴진다.

 

 

<669.2 봉에서 591 봉 까지>

 

이곳의 진행은 길은 명료했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인 산행로가 아니었다. 갑자기 길이 없어진

느낌에 뒤돌아갔다가 다시 진행해서 유심히 보면 나무등걸이 쓰러져있고 그 밑으로 리번이

두세개 팔랑거려 실소하였다.

 

리본이 두개 달린 쪽은 넝쿨과 억새로 막혀있고, 한개 달린 쪽은 길이 편하다. 한개 달린 쪽으

로 한참 진행을 해 보았다. 더 이상 길이 없고 혼란스럽다. 우회하는 길인가?? 두개 달인 수

풀 방향으로 진행해 보았다.

 

한참을 헤짚고 나가니 길 같은 길이 열리고 산봉우리가 드러난다. 온몸이 엉망이다. 이거야

원....

 

혼자서 대간이니 정맥이니 기맥이니 이런 것 하시는 분들의 역경에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

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지형극복을 하지 못하면 평생 국립공원이나 유람하던지, 남들 따라

졸졸거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싶어 참고 간다. 하지만 그런 인내심과 가상한 기개도 591봉에

도착해서 끝을 맺고 만다. 어처구니없게도 진행할 길을 못 찾은 것이다.

 

이럴 수가.

 

 

 

 

 

 

 

 

(1)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은 등산로를 헤매지 않고 잘 갈려면,  표지기나

이정표 등이 있어야 하는데 오늘 유일하게 의지할 만 한 안내자 구실하는

게 아까 관룡산 약간 못 와서 창녕군에서 설치한 좌측에 100m 간격으로

있는 조그마한 “부곡온천 가는 길“ 안내판(15.9㎞부터 시작)이였다. 사람

 다닌 흔적이 거의 없 거나 희미하여 오직 100m 간격으로 있는 부곡온천

가는 길 안내판만 보고간다. 그래도 알바는 몇 번하지 않았던가... 낙엽에

의한 푹신한 융단길의 오르내리막을 몇번 하다가 오늘 처음보는 가족 묘

지(청도 김씨)를 지나  계속하여 묘지를 몇 개소 지난다.  계속 가다가 또

오르막이 나온다.

 

(2) 헥헥거리며 올라와 숨 한번 돌리고 내려가니 웬 임도가 더 위에 까지

쳐있다.

 

산노을님의 산행기다.

묘지터를 몇 개 보았으니 (1)과 (2) 사이에서 나는 길을 못 찾았다. “숨 한번 돌리고 내려간

길”을...... 나 자신이 실로 한심스러 웠다. 그 댓가는 따로이 톡톡히 치르게 된다.

 

 

<591봉-무시듬 : 알바와 말벌의 습격>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 이곳이 591봉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길 대신에 부러 진 잔가지만 널

부러진 경사면 뿐이다. 되도록 능선을 타고 가야한다고 생각하 고 온갖 시도(그 당시 거기서

판단컨대)를 다하였다.

 

동쪽의 완만한 경사를 내려가다 표지리번이 없어 비탈면을 우측으로 걸어 길을 찾아보았으나

엄청난 수풀 잡목 속에 빠지고 멀리 계곡소리도 들렸다. 되돌아와 다시 치고 올라 원래 자리

로 돌아왔다.

 

여기로 왔던 코스가 맞는 지부터 다시 확인할려고 되돌아가서 마지막 리번을 확인한다. 청도

군청 산악회가 있다. 부곡가는 길과 어긋지게 함께하던 리번인 데 “부곡가는 길”은 11.2 킬로

남은 것 외는 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는 왼편 사면을 살펴보고 다시 올라왔다. 왜 길이 없지??? 리번이 있건 없건 여기가

591이라면 능선을 타야한다고 판단하고 처음 진행했 던 동쪽 완경사면을 따라 간다. 하지만

점차 하늘금에서 내려가고 있는 발걸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 알바로 나는 거의 한시간을 소비했고 이제는 내려가야한다는 쪽으로 생각의 가닥을 잡았

던 것이다. 임도를 보고 그쪽 방향을 잡았는데 나침반의 방향은 자꾸만 동쪽으로 향하고 가

야할 남쪽으로는 거대한 산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 때 그 오른쪽 능선에 따라붙어야 하는 건데...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아쉽다.)

 

고도 500 미터. 잡목 속에서 이따금 손본 지 오래된 않은 묘터도 몇 개 발견하고 안심하였으

나 길은 없다. 묘터 주위에 길이 안보이다니..... 뱅뱅 돌기와 수풀 속에서 전진과 후퇴를 반복

하니 한시간이 속절없이 흐른다.

 

고도 350 미터.

작은 계곡이 흐른다. 차라리 계곡을 타고 가면 안전할 것 같다. 곳곳이 미끄러워 몇 번 넘어지

고 빠지고 하여 조심에 신중을 기하여 진행하였다.

 

 

 

 

 

한시간 이상 기듯이 내려서니 고도가 꽤 낮아져 거의 산아래 쯤 도달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었다. 덤불과 거미줄 넝쿨과 마른 숲을 쳐내며 계류를 따라 내 려가기가 더 이상 힘들어져 다

시 억지로 산으로 붙었다.

 

젠장! 멀리서 보면 그냥 나무들 사이로 아무렇게나 내려 올 수 있는 게 산 같아도 막상 잡목

과 수풀 사이에 빠지면 진행하기가 너무 힘든다. 그렇게 생각하 면서 내 키보다 큰 잡목을 헤

지고 나아가는데......

 

뒤통수가 따악! ~  하면서 불같은 통증이 전해진다.

 

악! 하는 신음을 토해내고 공포에 빠진다. 위기가 발생한 줄은 알았으나 사태 파악이 되지 않

아 수그린 자세로 눈을 떠보니 왠 잠자리만한 벌레가 양쪽 팔에 앉아 있고 위로는 벌들의 비

행음이 요란했다.

 

땅벌?? 말벌?? 왕벌?? 그런 거는 모르겠고.. 튀자....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뒤 돌아 도망가면

서 물속으로 가야하는데 깊이가 얼마안돼 걱정이고 수풀 속이라 달리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계곡도 못가 나뒹구러져 엎드려 머리를 감싸고 있으니 더 따라오지 않는다. 천만다행이다.

 

몸을 움직여보니 그런대로 쓸만했다. 그나저나 진행방향이 그쪽 뿐인데 어쩌나. 겁도 없이 다

시 그쪽으로 가서 약간 옆으로 진행해보았다. 호안공사를 한 마을의 흔적이 보였다. 야! 이젠

됐다.

 

긴장을 풀고 안도의 숨을 쉬니 벌에 맞은 상처가 생각난다. 뒤통수는 머리가 쪼개지는 듯이

아프고, 오른팔에 한군데, 왼 팔에 두 군데 쏘였는데 팔이 욱씬욱씬 쑤셨다. 긴팔위와 모자 위

로 맞은 벌침인데 대단하다.

 

양 팔뚝에는 피도 흐르고 찔리고 긁힌 상처가 말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억새밭을 통과해

겨우 임도 끝 개울가에 도착하였다. 검은 바지는 젖은 채로 백바지가 되어 있었다. 안경은 거

미줄을 친 채로 무사하고 장비손실은 없었으나 산노을님의 산행기 교본과 메모장, 그리고 지

도는 온데간데 없다.

 

덕분에 몇가지 꼼꼼한 기록은 분실한 셈이다.

 

 

 

<무시듬에서 조천리 저수지까지>

 

 

계곡의 합수지점에서 윗옷을 벗고 상처를 씻고 응급처치를 하였다. 안그래도 지난밤 집사람

의 채근에 완벽한 준비를 하였던 터라 산행 경력이후 처음으로 응급박스가 제대로 활용되었

다.

 

놀러온 사람들인지 농로에서 아이들과 아주머니 두 분이 걸어내려와 황급히 옷을 입고 물어

보았다.

 

-이곳이 어디입니까?(허걱!! 놀랍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곳이 어딘지요?(다시 있는 힙을 다해 목소리를 짜낸다.)

 

이것이 벌독에 의한 후두부종이다. 아직 숨 쉬는 데는 이상이 없으니 곧 약효가 따라잡겠지

싶어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밀양군 청도면 조천리 무시듬!

 

 

 

 

행색을 되도록 단정히 하여 기나긴 임도를 걸어내려 가니 조천 저수지가 나오고 마을이 보인

다. 오후 네시니까 임도를 걸어온 30여분을 빼면 12시 전에 시작한 알바에 약 세 시간 반을 소

비한 셈이다.

 

택시를 불러 부곡까지 가니 일찍 도착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반가워하던 아내가 눈이 휘둥그

레진다. 자초지종을 전하니 그저 무사한 것이 다행이라 기뻐한다.

 

내 몸의 온갖 냄새 때문에 운전 내내 재채기를 하던 아내가 내 마음을 알고 위로를 한다. 낙

엽이 지면 길이 보였을거라고....

 

-다시 가 봐야지.....

나무가 옷을 벗으면.

 

.......이것은 실패한 산행이라기보다 아직은 미숙한 산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