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종주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순창

영진5만지도 : 476쪽 

 

호남모후동악단맥 곡성군 겸면, 입면, 곡성읍, 삼기면의 사경점인 도면상 최악산(710)에서 서북방향으로 분기하여 겸면과 입면의 경계를 따라 초곡안부(310, 2)-서리봉(△402.5, 1/3)-상덕(등동) 도로(250, 0.9/3.9)-등고선상430봉(1.7/5.6)-將破봉(△424.7, 0.6/6.2)-누에봉(250, 0.8/7)-마전사거리(110, 1.5/8.5)-13번국도 삼화관광농원(110, 1/9.5)-소룡마을 농로사거리 안부(110, 1.5/11)-광주골프장 입구 도로(130, 1.6/12.6)-내동도로(110, 0.9/13.5)-내동에서 합강리를 가는 도로(70, 0.7/14.2)를 지나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도보교 옥과천이 섬진강을 만나는 곳(0.3/14.5)에서 끝나는 약14.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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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 분기점 확인 산행



진행경로

옥과천 섬진강 합수점-내동도로-광주골프장 도로-소룡도로-13번국도 삼화관광농원-겸면농공단지 도로-누에봉-장파봉-상덕(등동)고개 도로-서리봉-초곡안부-분기봉 도면상 최악산-초악산-대장봉-배넘어재-임도-약천저수지  



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 분기점 확인 산행


종주에 필요한 5만분의1 지형도 도엽명 : 순창

영진5만지도 : 476쪽


언제 : 2017. 4. 2(일) 맑음


누가 : 신경수


어디를 : 곡성군 겸면 산정리 등동마을에서 상덕리 상덕마을을 넘는 상덕(등동)고개 도로에서 분기점으로 올라 이후 동악단맥을 따라 배너마재(배넘이재)에서 곡성군 입면 약천리 약천저수지까지


서리봉(△402.5) : 곡성군 겸면, 입면 

도면상 최악산(710) : 곡성군 겸면, 입면, 곡성읍, 삼기면

초악산(730) : 곡성군 입면, 곡성읍

대장봉(750) : 곡성군 입면, 곡성읍


구간거리 : 9km   장파단맥거리 : 4.1km  동악단맥거리 : 2.7   하산거리 : 2.2


구간시간 6:35    장파단맥시간 3:10  동악단맥시간 1:30  하산시간 0:40  휴식시간 1:15



6시40분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서 송정가는 KTX를 7시40분에 타고 

2시간도 안걸려 송정역에 9시35분에 도착해 성수형님 차로 시제장소로 간다  


임원진들이 먼저 나와 거의 준비를 마친 상태고 

석실 안으로 들어가 직계 조상님들 납골함을 확인하고 안부 여쭙고

토지지신님께 왔음을 고하는 산신제를 먼저 지낸 다음 11시 정각 시제를 시작한다 




나의 시제는 고령신씨14세손 

사옹원 주부공 상심 이후 돌아가신 후손들을 한 석실에 모시고 지내는 제사이다  



석실 안으로 들어가 

나의 조부모님 부모님 직계 조상님들 납골함을 확인하고 안부 여쭙고

토지지신님께 왔음을 고하는 산신제를 먼저 지낸 다음 11시 정각 시제를 시작한다




나는 아헌관으로 참석하게 되어 직접 잔을 올리는 경험도 하고 

1시간에 걸친 행사도 끝나고 음복주도 하고 

오늘 내일 산에 갈 때 에너지 보충용으로 떡과 유과 약과를 조금 행긴다 

 

시간을 내어 바로 옆에 조성된 고령신씨 중시조로 모시는 

산경표의 저자 신경준 할아버지 선조이자 나의 직계 선조이신 


신말주 묘소 전경



'고령신씨귀래정공파종회

재단법인귀래문화재단'에서 조성한 묘소


신말주 할아버지와 

최초의 여류화가이자 서예가 문인인 그의 부인 설씨부인 쌍묘로 가 후손이 왔음을 고하고 









설부인의 부모 신말주의 장인 장모 쌍묘


고조부 묘소 증조부님 묘소를 들른후

옥과로 이동하여 문중회의를 끝으로 오늘 시제는 끝났다 



산경표의 저자 여암 신경준의 직계 선조님이신 

귀래정 신말주 묘소가 있는 시제장소에 대해 알아본다 


2007. 4. 7 [호남모후]동악단맥종주기에서 몇자 수정하여 옮겨본다  


그 너머로 전남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 두강이 합쳐지는 곳이란 뜻 그대로 合江里이다

즉 검장산에서 발원한 옥과천과 통명산에서 발원한 삼기천이 옥과읍에서 옥과천으로 합쳐져 

바로 이 합강리에서 섬진강이 되는 곳이다


그곳 광암마을은 나의 19대조 할아버지이시며 산경표를 지으신 여암 신경준의 10대조 할아버지이신 

단종폐위 반대를 부르짖다 귀양을 다녀온후 처가 고향으로 낙향하시어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신 신숙주의 막내동생 귀래정공 신말주와

그 부인인 우리 역사상 신사임당보다 50년 이상 앞서 최초의 천재 여류문인이자 화가 서예가로서 

조선시대 여류문인이 쓴 필적으로 가장 오래되었고 

사대부 집안의 정부인이 불교인과법에 의해 쓰여진 글과 그 그림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1981년 보물제728호로 지정된 “설씨부인권선문첩(일명 贈若非文)”을 쓰시고

“설부인화”를 그리신 그러나 아직도 학계에서 제대로 평가가 안되고 있는 설부인의 묘와  

“永慕齊”라는 사당과 “귀래정공신도비”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설부인의 부모 신말주의 장인 장모 쌍묘도 이곳에 있으며 같이 관리를 하고 있다 

설씨 문중에서 보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 벌써 지금의 젊은이들과 같은 처가집 사랑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 시대의 관점으로 본다면 

이 어찌 불사이군 일부종사의 아름다운 고장이 아니라고 할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슬픔이 묻어나는 역사의 한페이지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곳


성수형님 차로 



곡성군 겸면 산정리 등동마을에서 상덕리 상덕마을을 넘는 상덕(등동)고개 도로에서 

오래전에 답사하다가 가시밀림속에서 탈출한후 분기점까지 답사를 사실상 포기했던

[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 4.1km를 이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전번에 상덕고개라고 내려온 곳에서 낮은 둔덕을 하나 넘었으면 바로 이 도로인데

내가 있는 현위치를 지독한 더위와 가시잡목속에서 정신을 잃을뻔해서 길 흔적이 나와 탈출해서 

오른 곳이 바로 이 도로였던 것이라 0.2km는 종주한 것으로 한다  

230,


상덕(등동)고개 도로 : 15:05  



무진등선원 표석이 있는 곳에서 


선원쪽으로 잠간 들어가다 

좌측 산으로 오르는 길 흔적이 있는 것 같아 일단은 절개지가로 오른다  

T자능선에 이르고 우측으로 오른다 


15:15


잠시 오르다가 우측 선원에서 올라오는 성긴길을 만나서 오른다 

290, 0.4


15:25



개활능선이 되면서 


우측으로 가야할 분기점인 최악산 어름은 



온통 바위투성이 절벽같은 급경사라 오를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우측 아래로는 초곡저수지가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가한 모습이다 


그 초곡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길인듯한 ㅏ자길을 지나 조망능선으로 오른다 

천하의 조망처인 서리산 정상 부근엔 무명묘 몇개가 흩어져 있고 봉오름이 시그널 몇개가 있으며



작명의 대가이신 분의 정상코팅지가 있는데 이번에는 작명을 안하시고 도면에 나오는 이름을 그대로 썼다

앞으로도 이랬으면 모든 산님들로부터 추앙을 받으실 일일 것이다 


앞으로 가야할 능선과 



뒤돌아본 장파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넘어로 호남정맥 괘일산 설산의 위용이 대단하다



우측으로는 대명산 차일봉 검장산 등 호남모후지맥 어름들 산줄기가 숨가쁘게 이어진다




그 중에 압권은 역시나 동악산 산줄기이리라 



가운데 벌판으로 이어지는 지나온 산줄기는 여기서 보니 미미하기 그지 없지만 

엄연히 물가름을 하는 중요한 산줄기다 

402.5  1.1


서리봉 : 15:55  16:00출발(5분 휴식)


이제부터는 곡성군 겸면과 입면의 경계를 가는 능선이다 



우측으로는 초곡저수지 아래로 돌아가신 이모님 동네인 원등마을이 모습을 보여주어 

내 어릴적 추억이 아련하다 


삼기천 옥과천에서 물고기 잡고 뛰어놀던 그 형제들은 지금 다 고인이 되어 

그 앞 호남고속도로를 건너 차일봉 자락 양지바른 곳에 부모님과 같이 잠들어 있다

돌아오지 못할 그 추억에 눈 앞이 흐려지고 목이 잠겨 온다


만10년전 마눌과 함께 했던 [호남모후]동악단맥종주시 느낀 감정을 글로 쓴 내용을 

혹시나 독자들께서도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그대로 아래에 옮겨본다 


이름도 잃어버린 전생에서의 꿈결처럼 느껴지는 곳


또 다른 한줄기가 서남쪽으로 반월산으로 뻗어내려 겸면과 삼기면을 구분지어 주는데 

다소곳한 삼기면소재지가 시골 어느 한가한 마을일뿐이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본다


어린 시절 방학때 한번씩 들러보며 제법 큰마을이라고 머리에 남아있는 원등마을 

그리고 이십을 갓 넘기고 들러본 원등마을도 제법 큰마을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겨울에 기차타고 버스타고 형이라 부르는 집으로 들어가면 

나이는 많았지만(지금의 내나이보다는 적었지만) 어여쁜 아줌마가 반겨주었고 

기르던 오리 한 마리가 생을 달리하는 비극을 맞곤 했던 기억들


밤에 막소주 몇병 갖다놓고 육백이라는 화투를 친다


꼴찌가 커다란 망치 오함마를 들고 얼음 언 냇물로 들어가서 돌맹이를 내려치기

세 번째가 건져올린 피라미 요리하기

두 번째가 기절한 피라미 건져오기

일등이 그저 설설 따라다니기


뭐 대충 이런 룰을 정하고 밤새 화투를 치던일


낮에 동네 청년들과 얼음이 언 삼기천(그때에는 그 개천이름이 무엇인지 몰랐지만)에 들어가 

커다란 망치로 돌을 내려치면 허연 피라미들이 기절을 하고 둥둥 떠오르면 냇가에서 장대에 맨 조리로 건져 올리던 일


조리할 일이 무에 있는가 초고추장 만들어 푹 찍어 마늘 한점 얹어 소주 한잔 찌끄리면 

입안 가득 고이는 피라미회의 그 진한 향수 

지금도 못잊어 하지만 그런 맛을 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그저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동네 저수지 얼음판에서 낫으로 깍아만든 팽이를 돌리고 

나뭇가지 주워모아 철사를 박아 만든 썰매를 못으로 만든 꼬챙이로 지치던일


학교 운동장에서 자치기 하던일


사랑방에서 밤새 만든 방패연을 가지고 뒷동산에 올라 사금파리 먹인 연줄로 만든 연을 날려 

이연 저연을 꼬나보며 연따먹기를 하다 떨어져 나가 멀리 날아가는 연을 따라 한없이 고개를 넘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린 연을 안타깝게 바라보던일

 

왜 그랬는지는 생각이 안나지만 

까만 밤중에 지금의 27번국도를 따라 불로치쪽으로(그때는 그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했지만) 

형과 같이 하염없이 걸으며 무서워 했던일


그런 그 형도 얼마 안되는 나이에 오래전에 생을 달리 했고 

식구들도 산산히 흩어져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그때 그 예쁜 아줌마는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혹시 구십노인 혼자 지금도 괴소리 원등마을 그집에 노구를 주체 못해 누워계시지는 안는지 모르겠다


여름이면 정자 밑 냇가에서 미역을 감고 

대나무 끝을 쪼개어 가지고 다니며 누구 말마따나 전화부에 맞은 개구리 모양으로 때려잡아 

짚에 꼬시르고 아직 덜팬 보리모가지를 흩어 역시 짚에 꼬실러 시커먼 재를 털어내고 먹던일


메뚜기 방아깨비 잡아 벼모가지 뽑아 꾸미를 만들어 역시 짚에 꼬실러 먹던일 


미꾸라지 잡는다고 논가 냇가를 흩다가 물뱀에게 놀라 혼줄이 나던일


오디를 한껏 따먹고 까만입을 보고 서로 손가락질하며 웃음보를 터트리던일


무언가 도와준답시고 망태기 둘러메고 논두렁 밭두렁 싸다니며 꼴을 베다 손가락 잘라먹던일


그러다가 서울 올라간다고 하면 쌈지돈 꼬깃꼬깃 풀어헤쳐 적지만 보태어 가라고 하던일


이런저런 희미한 옛추억을 떠올리며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적셔지는 것은 아마도 

중년의 마지막으로 들어서는 내 나이가 이미 살만큼 산 나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무언지는 표현이 안되어도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사라져 가곤 한다


이때 써 먹을려고 “아! 옛날이여!”라는 노랫말이 생겨난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로다^^

    

서리산 일원은 벌목능선이라  그런대로 지나올만 했는데 

숲속능선이 시작되면서 옛날의 그 악몽은 다시 현실이 된다 

가시 잡목 넝쿨 등 장애물이 어우러진 가시구덩이를 지나가는 힘든 여정이 시작된다 

한마디로 이 짓을 왜하는지 죽을 맛이다

1.6 


등고선상330m 안부 : 16:20  


도저히 진행을 할 수가 없지만 안갈 수도 없으니 

마치 수도승마냥 묵묵히 갈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탈출할 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온몸은 가시에 긁힌 훈장들이 여기저기 생기고 모자를 뚫고 머리까지 쑤셔대니 쓰라립기 그지없다 


등고선상350봉으로 올라서니 헉 소리가 절로 난다



뭔소리여 여가 작은서리봉이라고 한다 

미치겠다 이 험한 곳을 올라와 봉따먹기 하시는 분이 작명을 하신 것이다 

이걸 웃어야하나 비난을 해야하나 뜯어 버릴 수도 없고..........

암튼 대단하십니다 ^^

1.8


등고선상350봉 : 16:35


이런 식으로 진행이 안된다면 달리 방법이 없으니 산행방식을 수정한다 

일단 분기점까지 해질녘까지 올라간다면 

그 다음부터는 동악산 산줄기라 길이 좋을 것이니 야간산행을 하다가 

내려갈수 있는 곳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가시 잡목 넝쿨에다가 풀까지 무성한 묘터인 듯한 등고선상310m 안부에 이른다 


초곡안부 : 16:40


그저 끝없이 오른다 

등고선상410m 지점부터 급경사가 시작되며 사람을 잡는다 

앞으로 이런 급경사를 끝없이 올라 고도를 300m 정도 치고 올라야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철탑 : 17:25                      

460, 2.8


험악한 바위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우회길이 없으니 암릉을 타고 오른다


17:30


세미릿지를 해야할 곳이 몇군데 나오는데 

안좋은 무릅 때문에 채고 오를수가 없어 가진 쇼를 다하면서 오르면서

좌측으로 바위절벽인 조망 좋은 곳에 이른다


17:35


상당히 위험한 암릉을 잠시 올라서면



세상에나 잘 관리된 무명묘가 있다 참 대단한 우리네 조상님들이다 


도대체 이 험한 곳을 어디로 올라와 묘를 쓰고 관리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짐작이 안간다 

510, 3.2


17:50  18:00출발(10분 휴식)


가시 잡목 넝쿨 등 저항이 조금은 수그러들고 



칼날 암릉을 우측으로 올라간다


18:25


칼날암릉 커다란 바위를 좌측 절벽 밑으로 오르며

조금은 위험한 날릉을 타고 오른다 


18:35


드디어 분기점인 Y자능선에 이른다 

우측 조금 높은 곳이 도면상710봉인 최악산 정상이다 

해지기 전에 도착하리라 생각했는데 일단 성공을 했다 

동악산 일반등산로라 거의 산책로 수준의 길이니 걱정끝 행복 시작이다 


이곳이 도면상 최악산 정상인데 지도상 표기가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 

이곳은 그저 등고선상710m 지점 살짝 오른 둔덕 수준의 봉우리일 뿐이고

정상은 앞으로  오를 등고선상730봉을 말하는 것으로 

산이름도 최악산이 아니라 초악산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도면상 알기쉽게 그 사유를 부기하고 최악산이라고 표기하기로 하지만 

그건 다만 지도상 그렇다는 것일뿐 

실제의 산이름도 아니고 봉우리도 아님을 독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 능선이다 

3.9


분기봉인  도면상 최악산 : 18:40  18:50출발(10분 휴식) 


좌측으로 호남모후동악단맥을 따라 좋은 길을 가는데 날아갈 것만 같다

지독한 고생속에 찾은 행복 인생도 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맞지 않는 옛말일 뿐이라 서글프다  


등고선상730봉으로 올라서니 그 옛날에는 없던 정상목겸 이정목이 있다




이곳은 초악산 갈길 형제봉1.8 온길 다선사2.5km라고 한다


이제서야 도면상 최악산은 초악산의 오기일뿐이고 

위치도 도면상 장파단맥 분기점인 그곳이 아니라 북동방향으로 0.4km 정도 위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 

750, 


초악산 : 19:00


커다란 암봉 바위들을 지나 거대한 암봉전 안부에 이른다

710, 4.7


710m ㅏ자안부 : 19:20


더이상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해져 랜턴 불빛에 의지해 

직진으로 올라가는 험악한 암릉길도 있지만 

우측으로 내려가는 길에 시그널들이 더 많아  일단 그쪽으로 내려간다 


등성이에 이르고 우측으로 가면 형제봉으로 가는 길이다 

지도상 형제봉의 위치는 대단히 잘못 표기된 곳이다 

봉우리도 아니고 다만 653m 지점 삼각점이 있는 곳일 뿐이다 


좌측으로 바위섞인 좋은 산길로 오르면 등고선상750봉으로 



정상목겸 이정목이 있다 

지나온길 형제봉1.0 오토캠핑장5.1 우측으로 가면 배넘어재1.8, 동악산4.9km라고 한다 

750, 5


대장봉 : 19:40   19:45출발(5분 휴식)


좌측으로 바위섞인 길을 내려간다 우측 사면길이 있는 삼거리에 이르면 



이정목이 있다 

우측길로 가면 대장봉을 안오르고 형제봉으로 가는 길로 1.1km이고 온길 대장봉0.5km 갈길 배넘어재1.3km라네요 


이곳 어름 어딘가에 도면에 653m 지점 삼각점이 있는 형제봉으로 표기된 곳인데  

밤이라 삼각점 찾는 것은 생략한다  

650, 5.4


형제봉 갈림길 : 19:55  20:00출발(5분 휴식)


등고선상630봉 :  20:15



배넘어재0.8km 이정목을 지나 


낮은 둔덕을 하나 넘어 한없이 내려가면 



장의자와 이정목이 있는 배너미재 십자안부다 

온길 대장봉1.8, 형제봉2.4km  우측으로 내려가면 도림사3.2, 동악산3.1km라고 하네요

좌측으로 내려가는 길도 좋은데 아무런 안내가 없다 왜 그럴까?


아침 나절 오면서 성수형님 고향 후배 소개를 하며 전화를 했던 누이집을 

거리상으로 얼마 안되는 산줄기라 마산여맥을 따르다 해가 있는 충분한 시간이면 

금산리 집으로 직접 내려간다고 했는데 벌써 저녁 8시가 넘었으니 

지금 이시간에 빨리 가도 3시간 정도 더 갈릴 것이 틀림 없으니 밤11시에나 도착할 것 같아 

기다리느라 걱정할 것 같아 전화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에 도착하더라도 주무시고 계실 노인과 환자가 있는 집을 찾아간다는 것이 도리도 아니고

내일 들머리인 삼기면 금계리 용계마을 통명사를 해틀녘에 찾아가는 일도 문제라 

걱정하지 마시라 너무 늦은 관계로 도림사로 내려가려고 한다고 하니 그 시간에도 괜찮다며 

약천으로 내려와서 다시 전화를 하랍니다 집에서 10분도 안걸릴 거리니 오히려 나보러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이럴수도 없구 저럴수도 없구 모르는척 도림사로 내려가서 여관까지 잡고 난뒤 전화를 할 것을 

때늦은 후회지만 무를 수도 없구 알았노라고 하고 

너무 배가 고파 허기가 질 조짐이 보여 싸간 떡으로 요기를 하고 

아무런 표시가 없는 좌측 약천쪽으로 내려간다

530, 6.6


배넘어재 : 20:30  20:50출발(20분 휴식) 


너무 급경사라 길은 지그재그로 내려가 막판 너른 통나무계단으로 내려가면

세상에 15분만에 등로를 다 내려가 포장 임도변 너른 공터에 사각정자와 



이정목이 나온다

온길 배넘어재0.5, 입면약천3km라고 한다

390, 7


입면 약천 등산로입구 : 9:05  9:10출발(5분 휴식)


내려왔노라고 전화를 하는데 불통지역이라 의사전달이 안되어 

걷고 또 걷는데 승용차는 좀 오르기가 어려워보이는 포장 비포장이 번갈아 나오는 길이다 

통화가 되고 약천저수지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달빛 별빛은 교교하고 바람소리는 스잔한데

긴 그림자만 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미안한 마음에.........


약천저수지가에 이르고 드디어 저수지제방 밑 삼거리에 이르고 

잠시 기다리니 자동차 불빛이 보인다 

210, 8.8


약천저수지 밑 삼거리 : 21:35   21:40출발(5분 휴식)


그후 


입면 면소재지를 지나 얼마 안가 약5km를 약10분만에 도착하여

반겨줄 누이가 안보여 이상하다 했는데 방에 죽은듯이 누워있어 가슴이 철렁한다 

당뇨 합병증으로 지금도 일주일이면 3번씩 투석을 하러 순창으로 다닌다고 하며 

상태가 급속히 안좋아 지금 가료중이며 내일 새벽 5시에 순창을 가야한다고 하니 이런 난감한 일이 있는가 


인사불성이라 너무 미안한 나머지 방에 들어가 소주나 한잔 달라고 하고 

빨리 들어가 병간호하라고 하고 나니 그 큰 방에 나혼자 덜렁 남겨진다 

혼자서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지부지처를 하며 날을 넘기고 야속한 시간은 새벽으로 간다


지부지처 : 뜻은 독자님들의 상상에 맡긴다  


호남모후동악장파단맥종주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