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대원사 → 노고단)
일시 : 2004년 7월 16일(금) ∼ 7월 18일(일)
날씨 : 흐리고 비, 무척 더움
인원 : 박헌철, 이화봉, 정연주(3명)
주요이동시간
7월 16일(금) 21:00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7일(토) 01:30 진주버스터미널→ 03:00 유평리 → 04:30 새재갈림길 → 05:30 무재기폭포 → 07:00 치밭목산장 → 09:10 천왕봉 → 10:00/10:30 장터목산장 → 12:00/13:00 세석산장 → 15:30 벽소령산장 → 17:30/18:10 연하천산장 → 20:00 뱀사골 산장

18일(일) 07:00 뱀사골 산장 → 09:00 노고단산장 → 09:50 성삼재 → 12:00 남원→ 15:00/16:15 진주버스터미널 → 20:00 인천버스터미널

7월 16일(금)
몇 일간 내린 장마비로 지리산에 갈 수 있을까, 걱정에--, 날씨가 좋은 때나 산에 가고 비가 많이 오거나 한 때는 자제하라는 집사람의 주의사항,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대원사에서 출발하는 지리산 역종주를 하고 싶어서, 매번 함께 가는 제임스와 미스터 정과 약속한 서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종주 시 배낭무게에 따라 속도와 시간이 곱으로 비례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자, 라면 5개, 밥 3개, 스포츠음료 500미리 2개, 쵸코렡 3개, 비타민 씨 10개, 정제 소금 약간, 비상약 약간, 판쵸우의, 헤드랜턴, 소형자동카메라, 코펠, 버너를 짊어지고 사무실에 출근, 차를 시청에 놓고 전철로 이동하였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비상용 바테리를 서울버스터미널에서 사고, 저녁으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미스터 정이 김밥 5인분을 사가지고 진주로 출발. 도착 시간을 물어 보니 평소에는 한 서너시간 걸리는데요, 라는 대답뿐 정확한 시간은 운전기사도 잘 모르는 것 같다.

7월 17일(토)
새벽 1시가 조금 지난 진주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 한분이 열심히 따라 다닌다. 흥정하여 해장국을 먹은 후 4만5천원에 대원사까지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해장국집으로 갔다. 콩나물 해장국 3천원, 술에 취한 사람, 멀쩡한 사람, 그리고 산에 가는 3사람, 손님은 제법 있다. 건더기는 별로 없지만 시원한 해장국을 먹고 대원사로 출발.

조용한 새벽길에 이슬비가 내린다. 또 걱정. 드디어 대원사를 지나 유평입구의 슈퍼앞에 내려주고 택시는 돌아갔다. 힘차게 흐르는 개울 소리를 들으며, 르카프에서 4만5천원에 구입한 북한산 반바지로 갈아 입었다. 모양이 예뻐서 무리해서 샀는데, 쟈크를 보니 여자용인 것 같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헤드랜턴을 켜고 출발. 처음 표지가 있는 곳에서 들어서니 느낌이 처음 가는 것 같은 길. 그래도 5분 정도 후에는 전에 잠을 잔 적이 있는 민박집 앞을 통과. 산행길로 접어 들었다.

비가 많이 와서 식물의 활동이 왕성해졌는가, 중간 중간에 더덕 향기인지, 산삼 향기인지, 약초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처음 만나는 계단부터 전날 술을 많이 먹은 미스터 정의 산행 속도가 떨어진다.

새재 갈림길에 도착하니 04시 30분, 어둠이 걷혀가기 시작한다. 새로 계단이 생겨, 대학생 시절부터 이 길을 걸을 때, 건너다 보던 전망대를 무의식중에 지나쳤다.

배낭을 내려 놓고, 휴식삼아 무재기 폭포를 한참 구경한다. 일본의 폭포라면 소원을 빌려고, 어떤 밧줄이나 표지등이 매달려 있을텐데, 아무것도 없다. 신이 없는 것 일까? 힘차게 내려치는 물줄기가 아름답다.

치밭목산장에 도착하니, 중년 남자분 혼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산장은 최근에 수리를 한 듯---, 조리 장소에 유리창문을 달아 놓았다. 안에 들아가 김밥을 먹고 있는데, 인기척에 잠이 깬 듯, 안에서 자던 등산객이 나와 본다. 한 10여분 쉬는 사이에 한팀의 등산객들이 올라왔다.

천황봉까지 9시면 도착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9시 10분에야 도착.
바람이 세차고, 비가 내려 약간 춥다. 주위에서 반바지 입고 있다가 얼어 죽겠다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추워서 바로 장터목 산장으로 향했으나, 산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뜨거운 캔 커피 하나를 들고 세석산장으로 이동.

가는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은 틈을 겨우 비집고 앉아 라면에 밥을 넣고 끓여 먹고 출발. 벽소령까지 6키로 약간 넘는 길이 지루하다. 중간에 대피소가 한 곳 있으면 좋으련만---, 벽소령대피소에는 쉬지 않고 그냥 지나쳐 연화천 산장으로---. 노고단에서 오는 사람들의 출발시간을 물어보니 대략 6시간에서 7시간 걸린 것 같다. 대피소에 잠 잘 장소도 마땅치 않은데 그냥 노고단까지 가기로 하고 열심히 걸었다.


연화천 대피소에 도착, 또 어렵게 라면을 먹는데, 옆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매너가 없다. 내 생각에 부모가 거지였던 것 같다. 남에 입에 있는 것이라도 빼앗아 내 입에 넣지 않으면 굶어 죽는 그런 환경의 부모 밑에서 살아서 그런지, 옆 사람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이 바닥에 내려논 배낭을 밟고, 다 먹지도 않았는데 어깨로 밀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요즘은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없고, 양심도 없고 남은 어떠하거나 간에 자기만 좋으면 그만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은 대개 30대 전반의 젊은 사람들. 불쌍한 거지 같은 인간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많으니 대한민국의 앞날이 무척이나 걱정스럽다.

연하천 대피소는 다른 대피소에 비하여 규모가 적으나 식수는 많은 편으로 주로 점심을 하고 떠나는 등산객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대피소를 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듯, 느낌상 상업적 분위기가 너무 짙은 것 같다. 산에서 산장이나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는 분들을 보면 거의 산신령에 가깝게 산과 인연이 있는 분들인 것 같은데, 연하천 대피소는 그냥 길거리에 있는 주점과 같이 생각되었다. 내가 잘못 느끼고 있는지 모르지만----.

연하천 대피소에서 제임스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나와 미스터 정은 어두어지면 식사를 하기 어려우므로, 버릇없는 젊은 녀석들에게 욕을 하면서 겨우 입에 넣으니 굵은 빗줄기가 힘차게 내린다. 예약도 안된 상태에서 연하천에서 자기도 어렵고, 다음 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 같아,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노고단을 목표로 출발.

토끼봉을 눈앞에 두고부터 갑자기 세사람 모두 체력이 급강하하면서 진행속도가 엄청 느려진다. 토끼봉 2키로 지점부터, 뱀사골 대피소 1.4키로 지점을 통과하려니, 왜 그리도 먼지, 안개 속에 헤드랜턴 불빛도 희미하고, 겁 없이 설악산, 지리산, 소백산--, 큰 산만 골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종주를 하다가 드디어 사고쳤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무리한 산행은 화를 부르는 것 같다.

나는 극우파에 속하는 인간이니, 빨치산 귀신이 있으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하루 밤 산 속에서 보낼 걱정이 태산같다. 안개 속에서 뱀사골 대피소를 지나치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을 하여, 드디어 대피소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 때의 기쁨이란, 급경사 나무계단이 짜증나지만, 무사히 8시경에 대피소에 도착, 2만1천원을 내고 잠자리를 배정받았다.

잠자리는 취사장 옆에 붙은 별실, 또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 후, 젖은 옷을 갈아입고 포근한 새 침낭 속으로--, 한참 자고 있는데, 다른 일행이 들어온다는 말과 함께 다른 등산객들이 웅성거리면서 들어온다. 늦게 오면 앞에 와서 자는 사람들이 깨지 않도록 주의를 하면 좋으련만, 웅성거리다가 잠을 잘려고 하더니, 미스터 정이 소리치며 일어나서, 왜 잠을 깨우느냐?, 코 좀 골지마라, 그래도 그렇지, 피곤해서 자는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서 잠을 깨우느냐, 금방 죽일 것 같은 험악한 분위기가 되었다.

대피소에서 자다 보면, 코를 고는 사람들이 많다. 나처럼 365일 코를 고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 코를 골지 않는 사람들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2∼3십키로 걸으면 피곤해서 코를 골면서 잔다. 그래서, 나도 잠을 푹 못자니까, 매트와 침낭를 가지고 비낙하면서 등산하고 싶어한다.

길길이 날뛰던 미스터 정이 눕고, 2십여분이 지나니까, 늦게 온 팀들이 잠꼬대에, 코 골면서 잠을 잔다. 복수로 다 깨울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다가는 대피소에서 결투가 벌어질지 모르겠고, 나도 한잠 자고 난 뒤라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날이 밝았다.

아침 6시, 일어나 침낭을 반납하고, 배낭을 메고, 출발.
공포의 545계단, 그래도 자고 난 뒤라서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삼도봉에 도착, 건포도를 한 주먹 입에 우그려 넣고 다시 출발.

어제는 커다란 배낭에 매트와 침낭을 짊어진 검은 기능성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많더니, 노고단 근처에는 면바지 차림의 산행객이 많다. 적당히 걷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겠지 노고단 대피소에서 떡 한 조각을 얻어먹고, 성삼재로 출발.

성삼재 주차장은 만원, 손님은 왕이다는 말은 찾아 볼 수 없고, 주인은 왕이다. 주차 정리하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쫏아다니며, 남원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냐? 언제 오냐?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도 없고, 안내원도 제대로 없다. 에이∼, 국립공원관리 사무소에 계신 분들 고생은 하지만, 안내도 신경 좀 써 주면 좋겠죠.

지나가는 사람들이 버스는 2시간 뒤에나 온다고 하고, 남원까지 택시는 4만원이라고,올라올 때 4만원은 싼 것 같았는데, 내려가는 차는 그냥도 내려갈려니, 너무 비싼 것 같아 등산객을 내려놓고 가는 산악회 버스나, 개인차를 얻어 타려고 왔다 갔다 하다가, 드디어, 눈치 빠르신 한국담배인삼공사 남원지사장님의 콜을 받고, 뒷 자석에 앉아 남원까지---.

남원에 오신지 2개월 반이 되셨다는데, 남원의 인구, 특산물, 자랑거리 줄줄 외우고 계신다. 가다가 배낭에서 쑥떡도 꺼내 주고, 시골 장터에서 토마토도 사고, 담배 이야기도 하고, 지방세 증대에 필요하니 차비 대신 담배 한 보루 사가지고 가라고 슈퍼 앞에 차를 대는 순간은 현기증이 낮지만, 그래도 존경심이 생겼다. 자기 업무에 이렇게 열심인 분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가? 공무원인 신분에, 대통령과 시장의 정책과 지시에 비평과 불만 덩어리인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진심으로 감사, 감사 또 감사.

지사장님의 말대로 남원의 추얼탕을 먹을려고 여기저기 기웃 기웃 결국 포기.
다음에는 추얼탕 잘 하시는 곳 까지 추천해주면 좋겠다.

인천행 버스는 12시 30분, 6시 30분(?)이라서, 전주로--, 전주에서 목욕하고, 4시 15분차로 인천으로---, 이십대 초반의 야한 차림의 아가씨 한분이 같이 탔는데, 왜 야하게 입고 예쁜 아가씨를 보면, 술집 아가씨로 생각될까? 이런 저런 생각에 인천에 8시 무사 도착.

지리산 역 종주(마지막에 화엄사로 내려 갔어야 했지만)는 화엄사에서 오르는 것 보다 느낌상 쉬운 것 같다. 간단한 도시락과 간식만 가지고 출발하면, 20시간내에 화엄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 운해 - 광한루 정문안에 가셔서 남원숙회집 물어 보시면 초등학생도 안답니다. 워낙 유명해서...줄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