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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진면목을 살펴가며 금오산행을 하자면 금오저수지가 있는 집단시설지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게 보편타당하다고 보지만, 오늘은 그 반대의 코스인 경북 칠곡군 북삼면 지경리에서 남에서 북으로의 종단 산행을 한다.
후덕해 보이는 대성식당의 주인이 자비로 설치한 철 계단을 오르면 바로 산행 들머리가 된다.
이 곳에서 금오산 정상까지의 30분 정도는 아베크 코스처럼 아기자기한 감흥으로 오르다 그 이후는 경사도가 점 점 급해진다. 1시간40분 정도 오르면 금오산 정상인 '현월봉'에 도달한다.

 

금오산성의 성곽이 있는 주능선에 올라 금오산 정상부와 금오산성의 성곽을 담았다.

금오산성(金烏山城)-경북 김천시 남면, 구미시 칠곡군 북삼면
둘레 약 3,500m. 남문 ·서문 ·중문 ·암문(暗門) 및 건물터가 남아 있다. 높이 977m의 금오산의 정상부를 테뫼형으로 두른 내성(內城)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되었으며, 천연의 암벽이 태반을 차지한다.

고려 말 선산 ·안동 ·개령 ·성주 등의 많은 주민을 징발하여 산성을 수비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 1410년(태종 10)~1413년에 성을 수축하였다. 이 무렵 성내에는 3개의 못, 4개의 샘에서 계곡물이 흘렀으며, 군창이 있던 것으로 보아 천혜의 요새로서 상당한 규모로 수축, 정비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국방상의 요충으로 부각되어, 1595년(선조 28) 성벽을 수축하여 승병대장 사명(四溟)도 이에 참여하였다. 1639(인조 17)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실시하여 내성과 외성을 다시 쌓았다. 1735년(영조 11)에는 선산도호부사가 산성별장(山城別將)을 겸하는 거진(巨鎭)이 되어 상주 군병 3,500여 명이 배속되었다. 1868년(고종 5) 마지막으로 수축하여 당시의 중수송공비(重修頌功碑)가 산정 부락터에 남아 있다.


 

수 년전만 하더라도 정상의 표지석에 접근할 수 없었지만, 현월봉의 표지석을 만져보니 감회가 크다. 군 부대가 철수한 탓으로 기지는 고스트타운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약사암(藥師庵)-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눌지왕(재위:417∼457) 때 아도(阿道)가 창건하였으며 이후의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중기 사명대사 유정(惟政:1544∼1610)이 금오산성을 쌓으면서 중창한 바 있다. 1990년대에 법당 왼쪽에 요사를 지었고, 앞 봉우리에는 종각을 새로 지었다. 예로부터 참선 도량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현재 건물로는 법당과 종각·요사채가 있다. 법당 안에 모셔진 약사불은 수도산 수도암(修道庵) 약사불과 황악산 삼성암(三聖庵) 약사불과 함께 삼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세 불상이 동시에 빛을 뿜었다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요사채 왼쪽 300m 지점에는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금오산마애보살입상이 있다. 《일선지(一善誌)》에 따르면 이곳에 보봉사(普峰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동쪽 암벽에는 쌀알이 나왔다는 전설을 간직한 약수가 나온다.








금오산 마애보살입상(金烏山磨崖菩薩立像)-경북 구미시 남통동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90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 5.55m이다. 이 불상은 거대한 암벽의 모서리에 조각된 마애석불로, 불상의 중심선이 모서리여서 양쪽 암벽에 조각된 특이한 구도이다.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를 모두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비교적 좋다. 머리에는 3면보관(三面寶冠)이 있으나, 마멸로 조각한 장식은 분명하지 않다. 얼굴은 갸름하고 풍만하며, 눈·코·입 등도 원만하게 처리하였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명확하게 나타났으나, 목이 짧아 가슴까지 내려오는 형식적인 것이다.

어깨의 선은 매우 원만하고 자세도 좋지만, 가슴·팔·하체 등은 둔탁하게 처리하였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을 안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팔굽을 약간 굽히고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자세로 옷자락을 잡고 있다. 발은 곧게 서 있으며, 발가락은 매우 크고 듬직하다. 입상(立像) 앞면의 평평한 대지에는 현재 기둥의 초석이 있고 기와 조각들도 흩어져 있으며, 암벽 자체에도 목조 가구(架構)의 흔적이 보이므로 사찰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금오산 정상에서 이 곳 할딱고개 까지는 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금오산(金烏山)-경상북도 구미시/칠곡군/김천시
높이는 977m이다. 주봉인 현월봉(顯月峰)과 약사봉(藥師峰), 영남8경 중의 하나인 보봉(普峰)이 소백산맥 지맥에 솟아 있으며, 시생대(始生代)와 원생대(原生代)에 속하는 화강편마암과 화강암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은 비교적 평탄하나 산세가 높고 기이하며, 고려시대에 자연 암벽을 이용해 축성된 길이 2km의 금오산성이 있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방어하는 요새지로 이용되었다.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고 계곡이 잘 발달되어 경관이 뛰어난 산으로, 1970년 6월 한국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대혜폭포
금오산 중턱 400m지점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이 쉬어가는 유명한 곳으로 높이 28m로 여름에는 시원한 물줄기와 겨울에는 웅장한 고드름이 장관을 이룬다.
일제시대부터 "명금폭포"로 잘못 불렸다.


 


도선굴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해운사와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해운사(海雲寺)-경상북도 구미시 원남동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하였으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穴寺)라고 하였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가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을 익혔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폐사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복원되었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 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요사 2동만 남아 있다. 대웅전에는 관세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는데, 근래에 석고로 제작된 것이다. 이외에도 후불탱화와 칠성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만들었다는 석조나한상도 전해진다. 이 나한상은 석조수행대사입상(石造修行大師立像)이라고도 한다. 한편 합장한 석불좌상이 전해지는데, 조성 연대는 알 수 없다.


 


 

 


채미정(採薇亭)-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1986년 10월 1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말기의 충신이며 대학자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건립하였다. 1977년 구미시에서 건물을 보수하고 경역을 정화하였다.

벽체가 없고 기둥만 16개로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중앙에 방 1칸을 만들고 사방을 마루로 하였다. 경역에는 숙종의 어필 오언시(五言詩)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敬慕閣), 구인재 (求仁齋)와 비각 등의 건물이 있다.

길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태상박사(太常博士)의 관직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1419년(세종 1)에 별세하자 나라에서 충절(忠節)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채미(採薇)’는 고비를 캔다는 뜻으로 중국 주(周)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 은거하여 고비를 캐먹으며 은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켰던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금오산 정상에서 이 곳 매표소 까지는 2시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 권경선 - 약사암의 종각에서 여명에 범종이 울리는 상상을 해 봅니다... 구경 잘 하고 갑니다. ▣ 산초스 - 산초스팀이 가기에는 아직 먼곳의 산인데 잘 보고갑니다. 정상이 군부대 때문에 통제되는지 알았는데 정상을 갈수있어 다행입니다. 용문산이나 화악산가면 항상 아쉽고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 ▣ 이수영 - 하동 금오산에 갔더니 레이더 기지가 있더니 이곳도 마찬가지 였었군요. 그래도 이젠 철수하여 정상석도 만져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흉물인 잔존 건물은 왜 철거 안하는지?? 거제 옥녀봉에 갔더니 그곳도 철수는 했는데 잔존 건물을 그대로 방치해 산의 미관이 영 아니었습니다. 기왕 철수 할바엔 깨끗이 철수할일이지.. 그래도 님 덕분에 또 정보 하나 얻고 갑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