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1일 약 25년만에 다시 겨울의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동생네 가족과 함께 함양을 지나 오도재를 넘는다.
오도재를 넘으면 칠선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칠선계곡은 어머님 생전에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 여행한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백무동을 출발해서 천왕봉 아래에 있는 장터목산장까지 오르는게 오늘의 일정이다.
중학생인 아들놈과 초등학교 6학년인 조카녀석은 앞에서 잘도 간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한시간 정도 올랐을까? 하동바위에 도착한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그저 그런 바위 같은데.... 잠시 이곳에서 쉬기로 한다.
근데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쉬었다 간 흔적이 너무 많다.
사탕을 싼 작은 비닐봉지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겨울에 산을 찾는 사람들은 정말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일진데
어찌 이리도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가는지?

다리를 건너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아직은 눈이 많지 않다
참샘에 도착하니 배가 고프다.  
짐을 풀고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가지고 간 햇반을 끊는 물에 넣고 약 20분을 
기다렸다 개봉했더니 설익은 밥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아들녀석이 좋아하는 몰라무토(시베리아 썰매견)를 보게 되었다.
한달정도 있으면 집에서 기르기로 되어 있는데 녀석은 부러운 시선으로 개를 보고 있다.

참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힘을 내어 가파른 언덕을 오른다. 
가끔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은 있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토요일은 산장예약이 어려워 휴가를 하루 얻어
일요일에 출발하게 되었는데 조용한 산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만이 메아리친다. 
언덕위에 올라서니 천왕봉이 쉬이 모습을 드러내기 싫은지 구름에 가려져 있다.

능선을 따라 걷는다. 산죽사이로 난 길은 평탄하게 이어져있다.
앞이 탁트인 능선을 걷는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을 식혀줄 때의 시원한 느낌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백무동을 출발한지 벌써 4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던 길이 갑자기 탁 트이면서 망바위에 닿는다. 
바위에 올라서니 장터목 산장이 흐릿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멋진 일몰은 기대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다.

다시 기운을 낸다. 아이들도 이젠 많이 지친 것 같다. 
어차피 오늘은 일몰전에 산장에 도착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에 쫒길필요는 없었다.
눈밭에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들은 눈밭에 누워 일어나기가 정말 싫은 것 같다.
점점 산장이 가깝게 보인다. 등산로는 산허리를  가로지른다.
눈앞에 산장이 나타났다. 출발한지 5시간을 훌쩍 넘긴후에야 산장에 들어섰다. 
산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다시 설익은 햇반으로 저녁을 때운다. 이놈의 햇반....
다음에는 그냥 쌀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무겁기만 하고.....

8시 30분에 소등을 한다.
내일 5시에 일어나야 하니 일찍 자두는게 좋을 것 같은데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구름 때문에 별볼일도 없는데.....

2004년 2월 2일
새벽 5시에 어수선한 소리에 잠이 깼다. 모두들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매제의 헤드렌턴에 의지해 어둠속을 뚫고 천왕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등산로를 조심조심 오를 수 밖에....
고사목 군락지대를 가로질러 간다. 무지하게 바람이 더세다. 바람에 노출된 양볼이 얼어붙는 듯하다.
우뚝 솟은 제석봉을 지나간다. 1시간이 지난 것 같다. 드디어 천왕봉으로 오르는 통천문을 지난다.

통천문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다.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양 바람이 더세다. 
천왕봉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센 바람을 피해 몸을 웅크리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해도 밧데리가 바로 방전되어 버린다.
일출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있지만 그리 오래 머물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일출은 볼 수가 없었다.
붉은 기운을 띤 구름만이 허전함을 달래주고 있을 뿐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장터목으로 발길을 돌린다.
여전히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피어오르는 구름뒤로 지리능선이 펼쳐져 있다.

제석봉을 지나면서 뒤를 돌아보니 구름위로 태양이 솟아올라 있었다.



올라 올 때는 어두워서 볼 수 없었던 고사목들이 벌거벗은채 모진 바람에도 꿋꿋이 서 있다.
25년 전 보다는 그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장터목산장으로 내려오니 8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햇반과 라면을 넣고 함께 끓여 먹으니 옛날에 먹던 음식이 생각난다.
경상도에서는 갱식이라고 불렀는데
표준말은 뭔지 모르겠다. 아무튼 설익은 밥보다는 훨씬 먹음직 스럽다.

산장앞에서 능선을 바라본다.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람이 강하다.

이제는 세석산장으로 출발한다. 바람도 식사를 하러 갔는지 잠잠하다.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모두들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져 있다.

연하봉을 지난다. 
탁트인 지리능선을 간다. 멀리 반야봉. 그리고 노고단이 보인다.


작은 언덕을 지난다. 
두그루의 고사목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아름답다. 동생네 가족을 렌즈에 담아본다.

그리고 또다른 고사목 한그루가 하늘로 솟아 있다.

아내는 지리산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그리고 무엇이 사람들을 오게하는지를 알 것 같다고 한다.
끝없이 이어진 능선... 그리고 운해.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이들은 눈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조금은 힘이드나 보다.

다시 힘을 내어 촛대봉을 오른다.

촛대봉을 지나면 바로 아래에 세석산장이 기다린다.

세석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이미 산장아래로 달려가고 있다.
25년 전에는 이곳에서 종주를 포기하고, 음양수 아래에 텐트를 치고 밤새 추위에 떨었었는데......
저만치 동생이 앞서고 그 뒤를 아내가 내려가고 있다

매제와 아이들은 벌써 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조용하기만 하다. 취사장은 조금은 지저분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다보니 그렇겠거니 여기고 점심을 준비한다. 역시 점심 메뉴도 갱식이다.

이제는 다시 한신계곡을 내려가야한다. 영신봉을 바라보며 한신계곡으로 내려 선다.
상당히 경사가 급하다. 눈도 많이 쌓여 있고.
가파른 등산로는 내려가기도 힘든데 이곳으로 올라오는 아가씨가 있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올라오는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
아내는 그들의 젊음이 부러운가 보다.
이곳은 유격훈련을 받는 심정이다. 때로는 밧줄을 타야하고 경사가 급하다보니 무릎에도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코스이다.
얼마를 내려갔을까?  2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한신폭포는 완전히 얼음으로 변해있다.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바람폭포를 지나 첫나들이 폭포를 향해 힘겨운 발걸음을 떼고 있다.
아이들도 지쳤지만 우리들도 많이 지쳐있었다. 유독 매제만이 여전히 힘이 남아돌고 있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 이어진다.
이제는 아이젠을 벗고 걷는데도 힘이든다. 이 길을 돌면 끝나려나 하고 기대해 보지만 
번번이 기대를 저 버리고....

오후 5시반에 우리는 백무동마을에 도착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거의 12시간이 걸린 셈이다.
지리산이여 안녕....




▣ 구자숙 - 가족이 함께한 지리산 . 비록 천왕봉에 일출은 보지못하셨을지라도 가족에 끈끈한 사랑은 넘치셨겠군요. 세석에서 한신 계곡을 눈길로 오셨으니 엄청 무릎이 힘들어했겠군요.힘들은 많큼의 배가 올한해 온집안에 축복과사랑과행복으로 넘쳐나시길.....
▣ 권경선 - 저는 겨울 지리산은 가본적이 없는데 님의 산행기속 사진을 보니 매우 정갈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여름지리만 좋다는 편견을 버려야겠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 브르스황 - 멋진 산행기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사진을 너무 멋있게 찍으시네요.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 신범재 - 산님들도 모두 건강하시고 좋은 산행 많이 하세요. 그리고 사진은 가능하면 배경을 단순화 해서 찍는데 아직 초보입니다.
▣ 그물에걸린바람 - 가족산행이 즐겁고 보람되고 우애가 깊은 추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통천문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길은 아무나 가지못해요 착한사람들한테만 허락하는 그런 문이지요 항상건강하시고 가정에 평화와 웃음이 만발하시기를 산 사나이가 보냅니다 나도 아들하고 가는게 소원인데 아들이 말을 안들어요 추운데 뭐하러가는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