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이글거리는 태양이 작열하던 여름도 가고 한결 시원해진 햇살에 가을을 느끼면서도 바쁜 일
로 미루어 왔던 여름휴가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짬짬이 계획을 세웠다.
원래는 휴가 계획을 여름의 절정기인 칠월 마지막 주에 잡았다. 그런데 나는 노조 일에 매
달리면서 한편으로는 사무실 일도 하고 있었으므로 야근이나 휴일 출근도 심심찮게 해야 하
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고 이번처럼 아예 휴가를 가지 못하고 연기하면서까지 월급 값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여름휴가를 맞아 오랫동안 별러왔던 울릉도 성인봉을 오를 양으로 차를 몰아 나섰
다. 때는 팔월 셋째 주, 여름도 거의 다 가 버린 싯점이지만 아직도 한낮의 더위는 만만치가
않다. 나는 8월 15일 일요일 낮에 이번 산행을 같이 할 동료직원과 약속한 삼문동 탑마트
앞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그는 있었다. 차를 함께 타고 화창한 여름 오후의 시내를 벗어
나 포항으로 향했다.
피서철이 거진 끝나 가고 있었으므로 차량이 붐비지는 않았다.
차는 유천 청도 동곡 운문댐 상류를 거쳐 경주 산내면 그리고 경포가도를 지나 영덕방면으
로 가는 23번 국도를 잠시 타다가 삼성사원 아파트가 즐비한 곳을 지나 우회전하여 포항시
내로 들어섰다.
선착장에 들어가니 주차장 이용료가 만만치 않다. 하루에 만원이라는데 삼박사일 일정이니
주차비만 사만원이다. 그와 짐을 내려두고 차를 돌려 나와 건너편의 우방신천지타운인가 하
는 아파트로 가서 상가 건물 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택시를 타고 부두로 돌아왔다.
 아름답게 지어진 부두는 흔하게 보는 연안부두의 허름한 모양이 아닌 거의 최고급 수준이
다. 공항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치 화장실도 깨끗하고 사오층 정도의 바다를 배경으
로 한껏 건축미를 살려 지은 부두 건물도 아름답다.

우린 표를 끊었다.
일등석이 오만육천원이라 기억되는데 일반석보다 좀 더 비싸지만 의자가 비교가 안될 정도
로 편하다. 우리가 타고 갈 썬플라워 호는 승객정원이 팔백명이 넘고 자동차도 15대를 같이
싣고 달리는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대형 유람선이며 저녁 일곱시에 포항에서 출발이고 열
시에 울릉도 도착이다.
이백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세시간만에 도착하니 육지로 치면 시속 팔십킬로정도의 대단한
속력이다.
마침내 기다리던 썬플라워호가 부두에 들어서며 웅장한 자태를 나타낸다.
거대한 객선에서 얼굴이 빨갛게 익은 피서객들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데 출구가 단 한곳 뿐
이라 아무리 기다려도 끝이 나지 않는데 거기다 차량도 수없이 내려오고
팔백명이 넘는 승객이 단 한 곳뿐인 출구 그것도 사닥다리로 된  어설픈 계단을 따라 내려
오는 것은 분명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그 많은 승객이 다 내리는데 삼십 분이 더 걸린다.
그리고 우리가 탈 차례가 다가온다.
나도 배낭을 한 짐 메었지만 그는 아예 짐을 자기 혼자 다 갖고 가지 못할 정도로 가져와
내 배낭 위에다 자기 짐을 더 얹어 준다.
내 배낭이 삼십킬로나 나가는데 자기 짐을 더 얹으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에 통증이 온
다. 그래도 버티고 서서 줄을 기다린다.
이윽고 배에 오른다.
여름 오후 황혼의 노을이 비스듬히 서산을 바라며 마지막 붉은 빛을 다하여 부둣가를 비추
며 넘어가는데 포항북부해수욕장 우측 끝에 위치한 대아고속해운의 울릉도행 여객선 선착장
은 여객선 특유의 하얀색 페인트가 빛나는 거대한 썬플라워호와 그림 같은 객사, 그리고 황
혼의 붉은 노을을 하얀 깃털에 매달고 끼룩거리며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자아낸다.
배는 마치 커다란 탱크처럼 상판이 물과 분리되어 공중에 떠 있고  그 선체 좌우로  탱크의
그것처럼 생긴 두 개의 부력 장치가 앞에서 보면 좌우의 차바퀴를 달고 육상에 서 있는 승
용차의 형상을 하고 있고 옆에서 보면 보통의 배와 똑같이 생겼다. 호주에서 건조한 이 쾌
속선은 시속으로 환산하면 거의 팔십킬로에 달하는 속도로 바다 위를 바람같이 질주한다.
이렇게 선체를 공중에 부양시킨 모양으로 만든 이유도 빠른 속력과 낮은 저항을 위한 설계
라 생각되는데 전속으로 거친 파도가 울렁이는 바다를 질주해도 탁자 위의 맥주캔이 미동도
하지 않으니 첨단 기술의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저녁 일곱시
황혼의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고 거대한 여객선은 동해를 향해 뱃머리를 돌려 나아간
다. 석양을 뒤로하고 쏜살같이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거대한 쾌속선에 앉아 있노라니 멀리
유조선이며 작은 오징어잡이 배들이 마치 달리지 않고 바다위에 그대로 정지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어느덧 하늘은 붉은 기운이 점차 넓게 퍼지더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고 선창에
비치는 붉은 구름도 차츰 더 어두운 빛으로 떠돌다가 이윽고 자취를 감춘다.
일등실의 안내를 맡은 아가씨의 얼굴이 참 곱다.
비행기나 고속철에도 이쁜 얼굴이 많지만 이 아이의 얼굴은 이쁘면서도 어딘가 슬픈 여운이
어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다.
승객들을 위해 조용조용히 다니며 고운 미소로 안내하는 양이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
다. 며누리로 맞았으면 싶은 욕심이 들 정도......
잠이 든다.
눈을 떠보니 울릉도 도동항이 눈에 들어온다.
시계는 밤 열시를 지나고 있다.
선창으로 보이는 도동항은 검은 바위로 가득한 바닷가를 따라 골목길 같은 시멘트길이 이어
지고 있고 그 산책로를 따라 둥근 가로등이 켜져 있는데 관광객들이 가로등 아래 공터에 삼
삼오오 둘러앉아 소주에 횟감을 시켜 술을 마시는 모양이 흥겨운데 거대한 여객선은 천천히
뱃머리를 돌려 항구를 향해 들어선다.
쾌적한 냉방시설과 안락한 의자에 묻혀 혼곤히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내리기 싫은 생각이
드는데 일등석이 만원 정도 더 비싸지만 편안하고 안락함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
니다. 아랫 칸의 승객들은 자리가 불편하여 카페트 바닥에 그냥 누워서 자는 사람이 많다.

도동항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밤은 깊은데 거대한 여객선은 팔백십여명의 승객들을 꾸역꾸역
부두로 토해 낸다.
우리도 줄을 서서 삼층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오다 마침내 울릉도에 발을 내딛었다.
우측으로 시멘트로 된 방파제를 보면서 그 뒤로 시커먼 용암이 굳은 바위절벽이 깎아지른
듯 솟아 있고 그 바위 아래 울릉도 관광안내도가 있고 오징어 모양을 한 조형물, 그리고 그
옆으로 울릉도에선 제일 높은 건물로 보이는 호텔이 보인다.
섬에 내리자마자 아주머니들이 민박을 하라고 잡아끄는데 이를 뿌리치는 일도 쉬운 일은 아
닌데 쏟아지는 사람들 틈에 끼여 부두를 벗어나니 가장 먼저 호텔 일층에 위치한 오징어 판
매 가게를 비롯 섬 전체가 오징어 가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린 길을 따라 묵묵히 걸었다.
그의 무거운 짐을 더 받아 지고 오르막을 오르는데 이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으면서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날 밤은 무섭게 코를 골면서 곯아떨어진 기억뿐이다.

이튿날 늦은 아침을 먹고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서서 먼저 독도 전망대에 올랐다.
독도 전망대에 오르기 전 약수공원에 있는 청마의 시 울릉도는 다시 한번 우리를 감격케 한
다.


울릉도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에
항시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시집 {울릉도}, 1948)

케이블카 매표소에 이르니 매표소 아주머니 얼굴 화장새가 어느 연예인보다도 더 화려한지
라 나그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준다.
케이블카를 타고 도동항 뒤에 위치한 전망대까지는 채 오 분도 걸리지 않은 듯한데 함께 탄
아주머니들이 즐거워하며 비명을 지른다.
흔들거리는 케이블카를 내려서서 전망대 가게 안을 가로질러 나가니 동쪽을 향해 독도방향
을 표시하는 팻말이 있고 그 옆으로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지 모를 망원경 두어 대가 손님을
반기고 있다.

전망대에서 본 독도는 구십킬로미터라는 거리를 두고 있어도 두 눈으로 생생히 볼 수 있었
다. 그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직 오전 중에 동으로 보고 찍는 사진이라 역광으로 되어 번쩍이는 바다를 화폭에 담았지
만 사진 찍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 실력이 내 스스로도 못 미더워 찜찜하다.
전망대의 높이는 해발 삼사백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데 아래로 우거진 원시림을 내려다보는
것도 육지에선 쉽사리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다시 흔들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도동항으로 가니 도동항 한 가운데에 관광버스 정
류장이 있고 미니버스와 대형버스가 있는데 대형버스를 타고 제일먼저 봉래폭포를 찾아 나
섰다. 승객을 태운 버스는 머리를 돌려 섬 우측방향을 향해 꼬불꼬불 나사 같은 산길을 감
아 오르는데 버스는 금방이라도 바퀴가 빠져나갈 듯한 쇳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고 기사양반
은 능숙하게 달리지만 잠시 앉아 있어도 속이 울릉울릉 이래서 울릉도인가?

저동항을 지나치며 차창밖을 내다보니 오징어축제가 파장을 맞고 있다. 아직도 축제기간 중
이지만 무대를 해체하고 있고 축제로 인한 관광객은 별로 없다. 간밤에 폭죽을 쏘아올리며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양이라 더 이상 저동항은 오징어축제모습을 찾을 수 없는데 같이
간 우리 직원님은 축제기간에 오징어회 무료시식에 기대가 크다.

차는 좁은 골짜기 길을 올라 봉래폭포 입구에 닿았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 입구의 가게 아줌마에게 맡겨 두고 차 한 대가 올라갈 만한 시멘트 포
장길을 올라가니 아름드리 침엽수가 우거진 삼림욕장이 나오고 그 곳을 지나 조금 더 올라
가니 風穴이란 곳이 있다. 마치 밀양의 얼음골처럼 한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는데 그
곳의 입구는 유리집으로 만들어져 있어 냉기를 보존하도록 되어 있다.
풍혈을 보니 자연히 우리 고향인 밀양 얼음골 자랑을 해야겠다.
풍혈은 차가운 바람 정도이지만 밀양얼음골은 차가운 냉기가 서려 한여름에도 얼음이 얼고
있고 그 바위 틈새에서 나오는 찬바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에어컨도 따
라올 수 없을 만치 강력한 것으로서 한여름에도 계곡 전체가 추위를 느낄 정도로 거대하고
광범위하게 냉기가 퍼져 나올 뿐 아니라 그 계곡의 물 또한 얼음처럼 차가와서 손이나 발을
일분도 못 담글 정도이다.

풍혈 입구에 서서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재촉하니 계곡은 우거지고 점점 더 좁아지는데 머
지 않은 곳에 봉래폭포가 아름다운 자태로 우릴 반긴다.
봉래산이란 본시 여름의 금강산을 이름이니 과연 삼단으로 된 폭포는 그 자태가 수려하고
아름답기 비할 데 없다. 가장 위에 있는 폭포는 쌍으로 되어 주렴처럼 드리워져 면류관을
그리면서 떨어지고 
갑자기 맑은 하늘이 컴컴해지고 구름이 피어오르며 사정없이 두들겨 대는 빗줄기로 천지 분
간을 하기 어려울 새, 형형한 두 눈을 부릅뜨고 입에는 여의주를 머금고 장대한 몸매에 번
쩍이는 금빛 갑옷, 날카로운 발톱을 곧추세워 바위를 치솟으니 천년을 기다려 승천하는 용
의 자태가 이 아닌가!
황망한 정신을 수습하여 다시 보니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한 마리 살아 꿈틀대며 바위
를 타고 오르는 양이 아무리 보아도 용의 자태라
사진기를 내어 찍고 또 찍었다.


발길을 돌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건너편에 있는 가게 나무 그늘에 앉아 냉면을 시켜 먹
고는 오십대의 아주머니들 일행과 예닐곱살 정도의 어린 딸을 동반한 중년부부를 보면서 그
어린 딸의 재롱부리는 양을 즐기다가 다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후엔 섬 일주 관광선을 타기로 하고 배편을 기다리니 시간이 여유가 있어 그와 나는 도동
항 바닷쪽에 있는 횟감을 썰어파는 아주머니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유명한 오징어회를 조금
사고 소주 두 병을 사서 간밤에 보았던 관광객들처럼 바닷가 산책로를 찾아 들었다.
산책로는 도동항 좌우로 한사람이 걸어갈 수 있을 만치 시멘트로 만들어진 인공의 오솔길이
다. 이 길은 흘러내리다 굳어 버린 용암 사이를 통과하고 있어 그런 대로 운치가 있고 철썩
이는 파도와 수평선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이 오솔길 중에서 약간 여유가 있는 곳에 우린 소주 두 병과 오징어회를 두고 마주 앉았다.
바다와 울릉도 그 위에 꿀맛처럼 달콤한 소주와 오징어회는 도도한 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곤 조금 늦은 오후에 섬 일주 관광선을 타고 나섰는데 배는 도동항에서 세 척이 동시에
출발하여 일렬로 서서 시계방향으로 섬 해변을 따라 도는 것으로 약 오십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를 배로 달리는데 아기곰을 닮은 바위며 송곳산, 그리고 코끼리를 닯은 코끼리 바위 등
은 물론이고 바닷가에 수천년을 두고 깎이어 나간 바위의 모습은 아름답고 장엄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괭이갈매기들이 머리 위에서 손에 잡힐 듯
이 다가와 관광객들의 과자를 받아먹는다.

배는 이윽고 일주도로가 끝이 나는 관음도 근처를 지나 도동항으로 향한다.
해는 서산에 기울고 단 한 가족이 빗물을 식수로 하며 살아간다는 관음도를 먼발치에서 구
경하며 배 안에서 백인 남자와 한국인 처녀가 짝을 이루어 관광온 쌍이 세 쌍이나 보여서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기분으로 보다가 체념하고 흔들리는 배에 몸을 맡기니 이윽고 도
동항이다.

밤이다.
저녁을 지어먹고 목욕을 하고는 자리에 누우니 행복한 피로가 물밀 듯 밀려온다.
라디오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밤중에 비가 많이 내렸다.
날이 새도 늦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아침을 해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벌써 삼일 째로 오늘은 성인봉 등산이 있는 날이다.
배낭을 가볍게 하고 채비를 하여 도동항에 나가니 함께 간 동료가 걷기 두렵다며 섬 반대편
까지 버스로 이동하여 나리분지까지 버스로 올라가서 성인봉 정상까지 가자고 제의한다.

성인봉은 해발 984미터로 천미터에서 16미터가 모자라는 높이이지만 바닷가에서 올라가면
에누리없이 천미터를 다 올라야 한다고도 하고 길이 미끄럽고 위험하다고 하도 겁을 주기에
지레 겁을 먹었지만 등산로가 너무 간단하여 지도가 필요 없다는 말을 믿고 간 것이 이 날
의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애초엔 오전부터 도동에서 올라 관모봉, 성인봉 정상을 거쳐 알봉분지 나리분지 천부동 코
스를 가려고 했지만 나의 동행께서 많이 걷는 것을 두려워하여 천부동으로 이동하고 나리분
지까지 버스로 오르기로 합의하였는데 오후 1시 경 버스가 출발하려는데 버스기사 왈 나리
분지까지 올라가는 버스가 없다고 한다. 이 말에 나는 도동항에서 출발하자며 버스에서 내
릴 것을 제안했지만 우리 미스터 박은 그냥 천부동으로 가자고 우긴다.

시간적으로 천부동으로 가서 버스 없이 산을 오르면 늦을 것 같은 걱정도 했지만 그냥 버스
에 앉아 기다리며 육로로 섬을 일주한다.
한참을 가는데 앞에 앉은 거의 거지에 가까운 행색이 남루한 등산객인 듯한 오십대의 사내
가 졸면서 옆에 앉은 꽃같이 아름다운 어린 처녀에게 자는 척하며 사정없이 몸으로 기대는
데 처녀 아이가 몸서리를 치며 옹그리고 피하기로 내가 그를 두드려 깨워서 옆에 처자 아이
한테 기대어서 피해를 주지 말라고 점잖게 타일렀다.

마침내 부자가 많다는 천부동에 도착하니 오후 두시다. 천부동에는 교회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팔월 중순 오후 두 시의 울릉도는 맑고 푸른 바다와 하늘은 서로 맞닿아 있었고 하얀 뭉게
구름은 절로 가슴이 설레이게 만드는데 우린 천부동에서 추산을 바라보면서 서쪽으로 향하
고 한참을 걸어가다 마침내 위로 고도를 높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외딴 집이 있어 이
길이 나리 분지로 가는 길이 맞는가 물으니 맞다고 하여 둘이 열심히 뙤약볕 아래 시멘트
길을 걸어 올랐다.  두 시간에 걸친 발품 끝에 나리분지에 도착했다.
그 곳 너와집을 구경하고 사진을 박고는 음식점을 찾아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나리분지는 전체가 더덕을 키우는 밭이다.
그곳에서 점심을 4시에 먹고 4시 30분 경에 길을 나서니 조금은 걱정이 앞선다.
분지에서 정상까지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케이블카가 있고 분지에도 군부대가 있다.
길은 분지에서 보아 가장 우측 능선에 있다.
우린 열심히 걸었다.
그리곤 투막집을 만나 또 안내판을 보고 사진을 찍고
마지막에 등산로 입구를 만나 샘물을 한바가지 하고는 그곳에서부터 경사를 올랐다.
그런데 한참을 오르다 보니 길이 없어져 버렸다.
길은 온데간데없고 계곡 물 속을 헤메고 있는 우릴 발견하고 보니 이미 해는 서산으로 기울
고 있다. 다시 돌아서서 내려가야 하건만 너무 많이 올라와 돌아가기도 싫고 하여 둘러보니
우리가 서 있는 좌측 능선 위에 길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 능선을 오르자고 했다.
육십도 이상 되는 경사를 거의 십미터 가량 죽을힘을 다해 올라가니 길이 없다.
그리고는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아 둘이 의논 끝에 길도 없는 그 비탈을 오르기로 작정했
다. 잡목도 없고 잡히는 것이라곤 고사리밖에 없어 기어올라가기에 한없이 힘이 든다.
육십도가 넘는 산비탈을 낙엽이 쌓여 발은 미끄러지고 거의 네발로 기어서 오르다 쉬다 나
중엔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는데 두아름이 넘는 고목이 지천이고 안개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으니 미스터 박은 자꾸만 119에 전화를 하려고 한다.
나는 그런 그를 말렸다.
등산 다닌다고 전국적으로 자랑하고 다니는 내가 울릉도에 산행지도를 갖고 가지 않아 조난
당해 아홉시 뉴스에 나오면 앞으론 부끄러워서 등산 못 간다며 극구 말렸다.
몇 번이고 119에 조난신고 하려는 것을 만류하고 우린 비탈을 기어올랐다.
그러다가 또 옆으로 가보자는 그의 제안이 나왔는데 이런 산에선 무조건 정상을 향해 올라
가야 실종 당하지 않는다며 다그쳤다.
그가 아직 젊었기로 나보다 잘 올라가기에 무전기를 쥐어 주며 먼저 올라가라고 시켰다.
그렇게 네발로 기어오르다 고사리 숲에 얼굴을 묻고 쉬며 기며 올랐다.
세시간 가량 기어올라가니 그가 먼저 정상에 닿았다며 기쁨에 무전을 날린다.
잠시 후 내 눈에도 발아래 빈 펫트 병이 보이기에 정상에 가까움을 알았고 이윽고 정상에
도착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우린 서로 부둥켜안고 등을 두드리며 기뻐했다.
해는 지고 7시가 지났는데 거의 어둠이 내리는 산 정상에서 바람은 세게 불고 흐르는 안개
속에 비가 섞여 내렸다. 성인봉이라 새겨진 정상석을 뒤로 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서둘렀다.
헤드랜턴을 꺼내 머리에 달고 안개 속 빗길을 내려가는데 미끄럽기도 하고 힘도 지쳤다.
내려오면서 간간이 이동식을 먹으며 쉬고 걷고 하는데 나중에 도동이 가까워지면서 야광나
무를 보게 되었다. 마침내 도동가까이 시멘트포장도로까지 무사히 하산하는데 성공했다.
밤 열시다.
천부동에서 오후 두 시부터 시작한 산행이 여덟시간동안 계속되었고 그 중에 세시간은 길도
없는 숲속 비탈길 원시림을 거의 네발로 기어올랐다.
그 곳에서 도동까지도 몇킬로미터는 됨직하여 난감해 하다 관광안내책자에 있는 택시를 불
렀다. 사륜구동 갤로퍼 택시가 잠시 후 나타나 우리를 숙소까지 실어 준다.
택시 기사 왈 작년에도 우리처럼 길을 잃어버리고 산비탈을 오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때
는 119 구조요청을 하여 구조대는 물론 군청직원들과 마을 사람들까지 동원되어 조난자를
구했다며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체력이 거의 탈진 직전까지 갔음에도 교만하게 입만 살아 한마디한다.
나는 지리산을 비롯 한라산 태백산 설악산 등등 전국의 명산을 안가 본 산이 없고 무박이일
의 야간산행에도 이골이 났으므로 밤이라고 해서 혹은 길을 잃었다고 해서 조난자가 되진
않는다며 큰소리를 뻥뻥......

4일째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억수같이 온다.
거대한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 한다.
배가 오후에 있기로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누군가 하는 말이 태풍이 오면 배가 시간이
되기 전에 출항한다며 알아보라기에 부두에 전화를 해보니 정말 그렇단다.
부랴부랴 짐을 꾸리고 나서서 도동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니 재미있다.
처녀 총각이 짝을 이루어 왔더라도 그렇게 비비지는 않고 부부간에 오면 더더욱 덤덤한데
유독 사오십대의 어울리지 않는 불륜 남녀들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
이들은 덥고 눅눅하고 습도 높은 부두의 벤취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
고 서로 몸을 밀착하여 비비기에 여념이 없다.
세월은 흐르고 생명은 꺼져가고......
얼마나 안타까울 것인가?
앞으로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저토록 더 애절하게 서로를 갈구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한편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비는 쉬임 없이 내리는데 배를 기다리고 있기가 지루하여 우리 박 또 소주를 한 병
사 온다. 그리고는 부두 한 쪽에서 오징어를 구워 팔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가서 반쯤 말린
말랑말랑한 오징어를 사 오는데 나 보단 조금 어린 그 아주머니와 금방 친해져 말장난을 했
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후 3시
다시 거대한 썬플라워호가 부두에 나타났다.
우린 배에 올랐고 세시간동안 예의 그 아름다운 안내양의 슬픈 미소와 비디오를 보다가 잠
이 들었는데 깨어 보니 포항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부두에 나서니 북부해수욕장에는 태풍경보로 아무도
없다.
택시를 타고 차를 찾아 와서 짐을 싣고는 달리는데 길을 잘못 들어 포항 시내를 가로질렀기
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경포가도와 경부고속도로 언양을 거쳐 능동터널을 통해 밀양에 돌아오니 4일만이다.

올 여름의 울릉도 성인봉 등산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제아무리 간단한 산이라도 가볍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는 말을 기억할 것이며
팔월에 갔다 왔지만 11월 마지막날에 기어이 미룬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산행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