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4. 11. 28
목적산 : 신어산(630.4m)
위 치 : 경남 김해시 삼방동, 안동, 대동면, 상동면
코 스 : 선암다리-체육공원-돛대산-삼거리안부-철쭉광장-신어산정상-출렁다리-헬기장-천진암-은하사-반야암 (4시간)
누구랑 : 친구들과
날 씨 : 대체로 맑음



파노라마 (신어산 정상 못 미쳐 바위 전망대에서 촬영, 날씨가 흐려 깨끗하지 못함)





개요

신어라는 단어는 수로왕릉 정면에 새겨진 두 마리 물고기를 뜻한다.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할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고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탄강지로 전해오는 구지봉은 이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다.
정상에서 서쪽 주능선길을 따라 630봉까지 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암봉이 있고, 광할한 김해 평야를 내려다보는 경관이 장쾌하다. 580봉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460봉의 암봉에 올라서서 신어산을 바라보면 빼어난 경치에 감탄하게 된다. 460봉의 전망대 같은 바위에서 동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암벽 밑에 천진암이 있고 숲길과 대밭 길을 거쳐 은하사에 닿게 된다
정상은 조망은 무척산, 토곡산, 매봉, 오봉산, 금정산의 고당봉과 파류봉 등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온다.


은하사, 동림사

오천년이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채 옛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찬란한 민족의 역사가 숨쉬고 있지만 옛가락국 만이 역사적 고증이나 문헌이 없어 국가로서의 인정을 받지도 못하면서 인정하여야만 하는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여러 향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거나 발굴된 유물들을 살펴보면 가락국의 문화수준이 찬란한 만큼이나 수준이 높았음을 입증하면서도 문헌적인 역사성을 찾지못해 안타까운 실정이다.
은하사, 동림사 두 절은 가락국(42-532)의 초기 장유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은하사의 본명은 서림사였고 서역불교의 번성을 기원하는 뜻에서 세워졌으며 동림사는 가락국의 안존과 번영을 염원하는 뜻에서 창건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은하사는 묘, 경화 두 화상이 중창하였고 동림사는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크게 복원하였다. (위의 내용은 관련자료에서 옮겨 왔습니다)



은하사 입구에 있는 산행지도



산행기

오늘은 원래 무등산을 갈 계획이었으나 사정으로 인해 김해에 있는 신어산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모처럼 늦잠으로 시간을 보내고 자가용을 이용해서 신어산으로 향합니다. 가까이에 있는 산인데도 자주 가지지 않는 산이라 시간이 나면 한번 종주를 해보리라 마음 먹고 있었던 산입니다.
선암다리 부근에 주차를 하고 쉬엄쉬엄 올라갑니다. 텃밭에서 무를 캐는 아주머니가 잎을 잘라낸 다음 그 땅에 무를 다시 거꾸로 묻는 것을 보니 이제 겨울이 오는가 봅니다. 날씨는 맑으나 먼 산들이 뿌옇게 흐려 깨끗하지 못합니다.


13시 10분, 시민 간이체육공원



김해평야와 백양산 방향(날씨는 맑으나 뿌옇다)



김해공항 방향(희미하게 활주로가 보임)



파류봉과 상계봉 방향



태풍 매미의 영향인 듯(아직도 흔적들이 남아있슴)



시민 체육공원



공원묘지를 지나 능선을 몇 번 오르내리니 저 멀리 돌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김해소방서에서 세운 위령탑입니다. 이 곳은 지난 2002년 4월 15일 오전 중국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안착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던 중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가 가려 추락한 돛대산 정상 부근입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사고당일 책상위의 직통전화가 요란하게 벨을 울리자마자 외과선생님을 팀장으로 응급구조팀이 결성되어 현장으로 급파되고 응급환자들이 속속 응급실로 실려오고.......
당시 129명의 승객이 사망하고 20여명이 부상당한 참혹한 사건이 발생한 흔적이 2년이 훨씬 지났건만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아직도 보상문제 등 완전한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니 관계당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끝마무리를 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의 명복을 빌며 정상을 향합니다.


13시 40분
돛대산 정상에 김해소방서 직원들이 세운 중국민항 참사 위령탑



중국민항 참사 흔적들(나무가 불타 없어지고 대신 풀이 무성합니다)



안동뒤 삼거리 안부 이정표



금정산 조망



바위지대



가야 할 신어산 정상 조망



인제대학교와 천문대 방향



15시 04분, 걸어온 능선과 멀리 백양산



이 곳 신어산은 1995년 겨울 산불이 발생하여 능선이 벌거숭이가 되어 있는 것을 김해시가 약 5000여평의 철쭉밭을 조성하여 관리하고 있는 곳입니다.


철쭉광장 입구 이정표



김해시에서 조성한 약 5000평의 철쭉광장



정상을 향해



정상에 있는 이정표



신어산 정상입니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고 무척산과 토곡산, 금정산, 상계봉, 파류봉, 백양산, 구덕산 등이 하늘금을 그리며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쪽의 김해평야와 불모산, 시루봉 방향은 뿌연 가스로 인해 조망이 좋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다면 이 곳에서 파노라마 촬영을 하면 정말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15시 31분, 신어산 정상석



정상에서 바라보는 무척산



토곡산



출렁다리



장척계곡 방향



지나온 신어산 정상



16시 07분, 천진암






영화 『달마야 놀자』촬영장소였기도 한 은하사는 전설에 의하면 가락국 수로왕 때 장유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원래 이름은 서림사였다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1600년대에 중창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건물은 다포계 양식의 맞배집으로 용두와 봉두를 새겨놓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이들 조각과 구조수법으로 보아 조선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대웅전의 수미단에 쌍어문양이 있어 인도 아유타국과의 관계를 전하고 있다 하며 은하사 대웅전(도유형문화재 제238호)은 조선중기 이후의 건물이랍니다.


16시 21분, 은하사



범종루















달아놓은 메주는 절에서 간장 된장 등으로 담궈서 신도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고 합니다.


은하사 메주






원래 동림사는 서기48년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오빠 장유대사가 창건한 한국 최초의 사찰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어산이란 이름역시 아유타국의 공주(수로왕비 허씨) 인도의 호국신인 신어상(神漁像)에서 유래됐다 합니다.
이에 따라 동림사는 한국불교의 전래의 전설인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보다 3백여년이나 앞서는 성지이기도합니다. 또 임란 때는 부산 동래성을 공략한 왜적들이 곧바로 이 절에 쳐들어가 수도하는 승려들을 마구잡이 살상, 절을 모두 불태웠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절은 4백년만에 이룩되는 고찰로서 임란때 승군을 총지휘했던 서산 사명대사가 한때 수행했던 곳이기도 하답니다.



동림사 일주문



은하사와 동림사 입구에 있는 거대한 돌은 김해시의 H씨라는 분이 은하사 입구에 석불입상을 세우기로 하고 불상 조각을 하기위해 전라도 모처에서 옮겨온 돌이라는데 절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16시 41분, 거대한 돌




반야암 입구를 지나 오늘의 산행을 끝내니 조금은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제대학교 후문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선암다리입구에서 하차, 차량을 회수하여 오늘의 일정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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