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던 11월 24일(수요일)은 그 전날 밤 9시의 TV 뉴스에서 일기예보가 바뀌어 적어도 비는 오지 않고 오전에 구름이 많다가 오후에 갠다고 한다. 사진을 찍지 못 한 수리산을 다시 한번 가기로 한다.사진을 찍기 위해 산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 자료는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11월 24일은 일반적인 수리산의 완주코스라는 안양 현충탑에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한다. 현충탑으로 찾아가는 교통편이 불편하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한참 검색해 보니 범계역에서 10-1번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는 정보를 어렵게 찾아낸다.

 11월 21일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 후에 8시 30분에 집을 나와서 전철을 이용하여 범계역 4번 출구를 나오니 9시 53분. 4번 출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10-1번 마을버스를 타니 10시 3분. 마을버스는 여러 정류장을 거쳐 세무서 앞의 다음 정류장인 소방서(정확히 말하면 안양소방서 안양파출소) 앞에 정차한다. 버스 정류장 이름은 (안양)5동 현충탑 입구이다. 하차시각이 10시 18분. 버스 정류장 근처의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니 돌계단이 올려다 보이는 오르막길이 있다. 주저하지 않고 오르막길과 돌계단길을 오르니 자연보호헌장 비문이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조그만 절인 장안사가 있다. 다시 계속해서 이어지는 돌계단길을 오르니 현충탑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무벤취 여러 개가 설치된, 언덕 위의 작은 공원 같은 곳에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현충탑이 하늘 높이 솟아 있다. 이 곳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15분 가량 쉰다. 노인 몇 분이 쓸쓸히 앉아 있을 뿐이다.

 현충탑의 우측길로 가니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된 수리산의 들머리가 현충탑의 바로 뒤편에 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가끔 한두 사람이 지나가는 등로는 한적하기 짝이 없는데 소나무 숲길의 정취가 솔 내음과 함께 후각과 폐부를 흐뭇하게 한다.

 지릉길을 걷다 보니 등로 옆에 멋진 돌탑도 보이고 등로 위에 수리정이라는 이름의 팔각정이 있어서 오르니 다시 내려가서 팔각정을 우회하는 등로와 만나게 돼 있다. 다시 등로로 내려와서 조금 나아가니 황토바닥의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다가 산비탈을 깎아 만든 좁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등로의 위와 아래의 비탈에는 소나무들이 빽빽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안양 5동의 현충탑.

 


산불감시초소 - 수리산 들머리.

 


등로의 정경.

 


등로의 돌탑.

 


황토의 지릉길.


 등로를 계속 나아가니 할아버지들이 제초기 비슷한 기계에 시동을 걸고 있는데 석유 냄새가 진동한다. 산중에서 웬 기계 정비를 할까 해괴하게 생각하고 지나치는데 할아버지들이 이 기계로 등로를 청소하기 시작한다. 흡입구로 공기를 빨아들여 토출구로 내보내는 강한 바람으로 등로의 낙엽을 등로의 좌우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싸리비로 등로를 청소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광경은 또 처음 본다.

 정비가 잘 된 상쾌한 오솔길을 지나다 보니 드디어 병목안을 상징하는 두 개의 돌탑이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3일 전에 다녀 왔던 코스대로 진행하게 된다. U자형으로 이어진 수리산의 봉우리들 안에 좁은 병목 속의 넓은 병몸처럼 고립된 넓은 마을이 있다고 해서 병목안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이 석탑은 자연석으로 만든 석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두 개의 돌탑 사이로 들어가서 돌밭길을 걸으니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 쇠기둥에 로프를 친 등로가 나오는데 이 곳의 돌탑도 멋지다.

 


기계로 등로를 청소하는 모습.

 


상쾌한 지릉길.

 


병목안을 상징하는 두 개의 석탑.

 


돌밭길과 석탑.


 조금 더 나아가니 왼쪽의 명상의 숲과 오른쪽의 백영약수터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온다. 백영약수터 쪽으로 간다.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예쁘장한 다리를 건너 돌밭길을 오르니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른쪽은 암릉 밑에 쇠기둥과 로프를 난간 대신 설치한 돌계단길이고 왼쪽은 돌밭길이다. 전에 갔던 대로 왼쪽의 돌밭길로 오르니 팔팔약수터가 나타난다. 이 곳에서 약수를 마시고 수통에 가득 채운다. 다시 등로를 진행하니 낙엽이 두텁게 쌓인 돌밭길이 이어지고 길이 점점 더 가파르고 험해진다. 쇠기둥에 로프를 설치한 돌밭길을 다 오르니 관모봉과 태을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의 관모봉 쪽으로 오른다.

 


백영약수터로 가는 길.

 


팔팔약수터.

 


가파르고 험한 돌밭길.

 


관모봉(좌측)과 태을봉(우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해발 425 미터의 관모봉에 오르니 삼성산과 관악산, 모락산과 광교산이 조망되는데 날씨가 흐려서 뚜렷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관모봉에서 20여분간 쉬면서 간식을 먹고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 태을봉으로 향한다. 바로 태을봉으로 가지 않고 태을봉 전의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밟기 위해 훨씬 더 가파른 직진로로 올라간다.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서 헬리포트를 밟으니 헬리포트의 바로 위에 해발 489 미터의 태을봉이 기다리고 있다.

 


관모봉 - 해발 426 미터.

 


관모봉에서 바라본 삼성산과 관악산.

 


태을봉의 전위봉으로 오르는 능선길.

 


태을봉 - 해발 489 미터.


 수리산에서 태을봉이 가장 높지만 주봉은 태을봉이 아니라 해발 474.8 미터의 수리봉이다. 주봉의 개념에 대한 혼동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태을봉의 나무벤취에서 식사를 하며 20여분간 쉬다가 슬기봉을 향해 내려가니 바로 병풍바위의 위험한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일단 올라서 암릉을 내려가려고 하니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3일 전처럼 포기하고 다시 우측의 안전한 우회로로 간다.

 수리산을 악산(嶽山)으로 여기게 하는 곳이 이 태을봉과 슬기봉 사이의 암릉구간과 수암봉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봤을 때에는 수리산은 육산(肉山)이고 상당한 부분은 악산의 면모도 갖추고 있는 산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기암괴석들을 쳐다보면서 밧줄바위를 거쳐 암릉구간을 지나니 슬기봉으로 오르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병풍바위의 초입부분.

 


병풍바위에서 내려다 본, 태을봉과 수암봉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병풍바위.

 


기암괴석 1.

 


밧줄바위.

 


기암괴석 2.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슬기봉 못미처에 큰 바위 몇 개가 울퉁불퉁 튀어 나와 있는 절벽지대가 나온다. 그 곳에서 바라본 태을봉의 웅장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태을봉과 함께 힘들게 통과한 암릉구간이 눈에 들어온다. 다시 등로를 진행하니 정상표시석은 없고 지적삼각점만 설치된 해발 429 미터의 슬기봉이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2분 정도 내려가면 슬기봉과 수리봉 사이의 안부 사거리가 나온다. 그런데 이 곳의 이정목에는 슬기봉이라고 명기해 놓고 수리봉의 높이가 표기돼 있다. 군부대가 있어서 출입이 통제된 수리봉을 슬기봉으로 오기해 놓은 것이다.

 안부 사거리에서 통제구역(군사보호시설) 쪽으로 조금 오르니 ‘위로는 공군부대, 접근금지’라는 경고 팻말이 나무에 걸려 있고 조금 더 오르니 동계에는 극히 위험하다는 경고 팻말이 걸려 있는,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수사사’)이 개척한 등로의 초입이 나타난다. 수사사의 붉은 리본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슬기봉 못미처의 절벽에서 바라본 태을봉.

 


지적삼각점이 설치된 슬기봉 - 해발 429 미터.

 


슬기봉과 수리봉 사이의 안부 사거리.

 


접근금지 경고표지판.

 


위험 경고표지판.

 


수사사의 붉은 리본이 휘날리는 수사사 개척길 초입.


 과감히 이 길로 들어선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워지면 사고가 나기 쉬운 험로이기 때문에 눈이 오기 전에 다시 오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3일 전과는 달리 등로를 잘못 타서 내려가야 할 곳을 올라가니 전보다 더 험한 낯선 등로가 나타나고 이 곳을 내려갔다가 추락사고를 당할 뻔 했다는 어느 산행객의 섬뜩한 표지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한눈에 봐도 위험한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되오르다 보니 처음 들어선 수사사 개척길이 아니라 그 위의, 또 다른 군부대의 경고표지판이 있는 곳이 나온다. 다시 약간 내려가서 수사사의 개척길로 들어서니 나무 줄기의 밑부분에 매어 놓은 검은 밧줄이 보인다. 이 밧줄을 보지 못 하고 밧줄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지 않고 거꾸로 오르다 보니 아까 그 섬뜩한 표지판이 있는, 더 위험한 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검은 밧줄을 따라 내려가니 흰 밧줄이 작은 나무의 줄기와 가지에 고정돼 있고 눈에 익은 험로가 나타난다. 가는 밧줄에 체중을 전부 실으면 위험할 듯이 보인다. 우여곡절 끝에 40분 만에 수사사 개척로를 벗어나 군사도로로 내려온다. 비포장의 군사도로를 6분 정도 오르니 오른쪽에 빈터가 나타나고 빈터의 안쪽에 등로로 오르는 발판이 설치돼 있다. 아까 병풍바위 초입에서 접었던 스틱을 다시 펴 짚는다.

 


수사사 개척길 위의 더 위험한 등로로 올라서...(제가 이 곳을 내려갔다가 추락사고를 당할 뻔 했습니다. - 2003.5.11 산을 좋아하는 이가)

 


수사사 개척길 1.

 


수사사 개척길 2.

 


수사사 개척길 3.

 


수사사 개척길을 벗어나 군사도로로...

 


빈터에서 이어지는 등로.


 등로를 10분 정도 오르다 보니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 곳이 나온다. 밑에 발판이 설치돼 있다. 이 곳을 내려갔다가 오르막을 타니 부대 쪽으로 들어가지 못 하게 하기 위해 얼기설기 원형 철조망이 쳐 있고 ‘수암봉, 위로는 공군부대 접근금지’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잠시 원형 철조망을 따라가다가 짧은 지릉길을 지나니 철책이 설치돼 있고 철책 위에 방향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철책에서 우측으로 꺾어져서 철책을 따라 지릉길을 걷다 보니 수암봉이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네거리쉼터가 나타난다. 네거리쉼터에서 나무벤취에 앉아 잠시 쉬다가 바로 위의 헬리포트로 가니 빼어난 암봉이라는 뜻의 수암봉이 그 웅자를 뽐내고 있다.

 


로프를 잡고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으로...

 


수암봉, 위로는 공군부대 접근금지.

 


철책의 방향표지판.

 


철책 옆으로 이어지는 지릉길.

 


네거리쉼터.

 


헬리포트에서 바라본 수암봉.


 헬리포트에서 암릉길을 십여분 오르니 해발 395 미터의 수암봉이다. 사방으로 시원하게 조망이 터져 있다. 슬기봉과 해발 474.8 미터의 수리봉, 해발 451.6 미터의 꼬깔봉이 선명히 보이고 아까 올라왔던 헬리포트도 뚜렷이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병목안의 담배촌으로 하산하는 능선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수암봉에서 17분 정도 쉬다가 병목안의 담배촌으로 하산하는 능선길로 내려선다.

 


수암봉으로 오르는 길.

 


수암봉 위의 새 한 마리.

 


수암봉 - 해발 395 미터.

 


수암봉에서 바라본 슬기봉(429 미터)과 수리봉(474.8 미터), 꼬깔봉(451.6 미터), 헬리포트.

 


병목안의 담배촌으로 하산하는 능선길.

 


수암봉에서 바라본 석양.


 일몰시각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소나무능선길은 역시 운치가 있다. 낙엽이 깔린 황토길이다. 소나무쉼터를 지나 원래는 해발 356 미터의 봉우리였는데 한국전쟁 때에 유엔군의 엄청난 폭격으로 335.3 미터로 낮아졌다는 봉우리의 삼거리에 도착하니 직진하면 통제구역이고 우측으로 꺾어져 내려가면 순례자성당까지 1650 미터가 남았다는 이정목이 설치돼 있다. 우측으로 내려가니 4분 만에 두 번째 삼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역시 통제구역이고 우측으로 꺾어져 내려가면 순례자성당까지 1200 미터란다. 우측으로 꺾어져서 낙엽이 깔린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민가가 가까워지자 인기척을 감지한 개들이 우렁차게 짖기 시작하고 17시 43분에 병목안 중간의 담배촌에 있는 원두막 음식점 입구로 하산을 완료한다.

 개울을 따라 내려가서 18시에 병목안 시민공원 조성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에 닿고 18시 6분에 병목안 삼거리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15번 버스를 타고 금정역 삼거리에서 내려 금정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하니 20시 10분이다.

 


소나무능선길.

 


소나무쉼터.

 


335.3 미터 봉우리 삼거리의 이정목.

 


두 번째 삼거리의 이정목.

 


낙엽이 쌓인 내리막길.

 


수리산 날머리 - 담배촌의 원두막 음식점 입구.

 


오늘의 산행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