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리산 자락의 성제봉을 찾아서.

  

                               <섬진강을 건너면서,  때마침 해돋이의 모습>

  

  

-산행 일시: 2004. 11. 22.

-산행구간: 평사리- 고소산성- 신선대- 성제봉- 원강재- 시루봉- 회남재- 악양.

-함께한 사람: 회사 직원 U씨와.

  

나에게도 지리의 품을 떠나 살 수 있을까.

警防期間 한달 동안의 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지리의 중독에서 오는 무력감일까.

그러나 아직은 여기까지는 아닌 것 같다.

그냥 그곳에 있으면 한없는 마음의 대화 속에

나의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어 좋다.

내 자신의 모두를 주고 올 수 있는 그 곳. 지리-

내 허물 모든 것을 안고, 내 괴로움 모두를 털어내는 그곳, 지리에서

오늘도 숨가쁘게 달려와 헉헉대는 자신의 체온을

따스한 지리의 남부자락에 육신을 내 던져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섬진강의 모습은 운무에 가려>

  

  

  

-섬진강에서.

집에서 6시30분에 출발한 우리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었다.

때마침 광양에 왔을 때 출근 차들과 부대끼면서 짜증은 더해갔다.

그런 와중에 어느덧 섬진강에 다 달았다.

짜증스런 마음의 조급함은 이내 사라지고 자꾸만 강변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해돋이의 모습이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강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의 모습은 오늘이 처음이다.

검붉게 떠오르는 태양은 淸流인 섬진강에서 빛을 반사시켜

은빛 색의 영롱한 자태를 뿜어내고 있다.

운전을 하면서도 강가에 피어 오르는 물 안개와 이따금씩

먹이를 쪼아대는 부지런한 아침 새는 갈길 바쁜 우리의 시야를 흐뜨려 놓는다

옆에 앉은 U씨가 나의 운전모습이 무척이나 불안했던 모양이다.

  

  

  

  

                                       <너무 이른 아침 최참판 댁의 안채를 >

  

  

-08:00 최참판 댁에서.

악양 벌판에 도착했을 때 평사리 상평마을은 어느 시골마을과 같은 평온한

아침 기온이었다. 그래도 그렇듯이 지리산 자락이면서 섬진강을 마주보고 있어서일까.

주위의 물 안개와 운무에 휩싸여진 이곳이 차에서 내린 우리의 몸을 움추리게한다

너무 이른 아침일까.

최참판 댁 대문은 굳게 잠겨있어 그냥 갈까 망설였는데

옆집 아주머니의 자세한 설명에 뒷문을 통해 최참판 댁 안채를 넘겨본다.

구한말 5대째 지주로 군림해오던 만석꾼 최참판 댁의 몰락과 외동딸 서희의

시련과 갈등, 자신의 가문을 되 찾으려는 일념의 서희.

길상이 자신의 신분의 벽 때문에 고독을 느끼면서 서희와의 결혼 등등.

U씨에게 전해 들으며 이곳 대문을 나선다.

  

  

  

  

                                <주차장과 박경리의 문학관 앞에서 성제봉을 배경삼아>

  

  

-08:30 산행 시작.

평사리 최참판 댁을 뒤로하고 아스팔트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한산사 대웅전 축대 밑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서 약간의 된비알은 시작된다.

U씨와 오늘산행은 처음이지만 그래도 왕년에 자신의 지리산 종주의 무용담과

설악산 산행경험은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였다.

이윽고 고소산성에 도착하였다.

  

  

  

  

                                                 <고소산성을 오르면서>

  

  

-고소산성에서.

신라시대의 석축산성으로 성벽둘레가 약800m 라는 등등의 안내간판은 본척만척 지나

축대의 흔적을 살펴보니 최근에 복원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곳의 석 축산성의 의미보다는 나에게는 섬진강의 조망이 압권으로 다가왔다.

북서쪽으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서쪽으로는 섬진강의 굽이굽이 흐르는 물이

햇빛에 굴절되어 눈부심이 배가되고 남쪽으로 펼쳐지는 악양 들판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고소산성을 지나고 나니 한참 동안 솔밭길이 이어진다.

계속 이어진 소나무 숲 사이로 떨어진 낙엽 솔은 어린 시절 우리 땔나무의 가리나무가

아니던가. 이따금씩 펼쳐지는 암 봉을 지날 때마다 좌우로 펼쳐지는 조망은 이번 산행의

초행길인 U씨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 신선대를 바라보며. 가운데: 섬진강 건너 광양 백운산의 모습>

  

  

-10:30 신선대에서.

산행시작 2시간의 소요시간으로 이곳 신선대에 올랐다.

남으로 섬진강 건너 광양 백운산의 모습.

백운산 좌측으로는 억불봉이 아련히 보이고 중간지점에 백운산의 정상이 뚜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좌측인 서쪽으로는 거대한 지리산의 능선인 왕시루봉 능선이

이곳 남부능선과 시위라도 하듯이 뚜렷하게 보이며 우측으로는 저 멀리 하동의 금오산과

가깝게는 칠성봉과 구제봉의 능선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신선대 바로 밑에 묘지를 보면서 그의 후손들은 왠 만한 정성과 노력 없이는 조상을

섬기지 못하리라 생각해본다.

  

  

  

  

  

  

               <위: 출렁다리. 가운데: 성제봉을 향하면서. 아래: 성제봉에서 섬진강을 보며>

  

  

-11:40 성제봉

두 개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형제봉인데

이곳 경남 하동에서 형을 성이라 하기 때문에 성제봉이라 한다나?

성제봉은 지리적으로 지리산의 남부능선의 (세석에서 성제봉까지)장장 30km의

지리산 군에 속해 있으면서도 쉽게 이곳을 걸치지 않게 됨은 어찌 된 일일까?

아마 상불제에서 일부 구간이 비 지정 등산로로 묶여있음도 생각해 본다.

또다시 지리산 주 능선을 바라본다.

언제 보아도 잔잔한 흐름의 느낌을 주는 지리의 하늘 금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창연히 빛나 보인다.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같이 산행한 U씨에게 지리산의 주 능선의 모습을 설명해본다.

  

  

  

  

                   < 임도에서 바라본 지리의 주능선과 내가 가야 할 1130m 능선을 보며>

  

  

-12:20 임도에서

이윽고 30-40여분간의 평지 같은 숲 탐방 길을 걷는다.

상록수, 원추리, 참나무, 조릿대들의 군락지를 지나 첫 번째 임 도에 도착하였다.

나의 성제봉 코스를 적극 추천 해주신분께 전화를 해봤다.

물론 코스 문의도 있었지만 우선은 그분의 지리사랑이 무척이나 크신 분이길래

지리의 현재의 모습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얻어야 될 산물을 (코스문의) 또다시 기어이 얻어내고 만다.

이러한 나의 산행이 한때는 회의적이기도 하였다.

남들이 보면 나의 이기적인 산행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자신의 힘든 과정을 무시하고 선답자의 도움을 받아 하는 이기적인 산행을

탈피하고 싶어 지금도 가끔씩 홀로 떠난 산행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1130m 의 암봉에서/청학동과 지리를 바라보며>

  

  

  

-13:35 1130m능선에서

첫 번째 임 도를 벗어나서부터 등로는 잡목과 가시덩쿨이 얽매여 있으며 또한

산죽이 키를 넘어 이따금씩 눈을 찌르는 아찔한 경우가 있었다.

산행 중에서도 좀처럼 썬그라스를 착용하지 않는 나는 이런 경우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뒤에 따르는 U씨에게 못내 불안하여 몇 번이고 당부의 말을 전한다.

발 아래로 청학동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 상불재을 거쳐 남부능선을 잇는곳

좌측 남부능선을 타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우측의 회남재로 되돌아선다.

계속된 잡목 속에서도 낙엽송들의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양탄자를 밟은 기분이

우리의 피로를 반감시켜주는 것 같다.

  

  

  

  

  

  

<위: 빨치산 루트 안내판. 가운데: 회남재에서 칠성봉을 바라보며. 아래: 임도에서 지나온 길을>

  

  

-15:10 회남재

2개의 돌탑과 시루봉을 거쳐 어느덧 회남재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도 빨치산 루트길이 있었나?

구재삭님의 말을 빌리면

지형상 이곳 악양은 남부군이 마지막으로 체계적인 공격을 했다고 한다

구례에서 접근한 도로는 신선대 능선에서 막고,

하동에서 접근한 도로는 구제봉 능선에서 막아냈던 그들이

결국은 역으로 경찰과 토벌군들이 시루봉능선을 차단함으로써 남부군의

이현상 부대가 패배를 좌초했다는 곳이 이곳인가 보다.

  

  

  

  

                         <도로포장 중인 임도: 악양에서 회남재 중간지점까지>

  

  

지루한 임 도를 걷기 시작하였다.

혹시 계곡으로 뻗어 내리는 길이 있을까 찾아도 봤지만

지름길을 찾지 못하고 한참 내려올 때 임도 중간까지 2차선의 도로 포장을 하고 있었다.

이곳 임 도가 무슨 목적으로 언제 만들었는지 몰라도 결국은 포장되고 있으니

이 또한 엄청난 불행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을까?

혹시나 하여 어디까지 포장할거냐고 물으니 올해는 여기까지 할거고,

앞으로는 계속된 포장은 환경단체의 눈치를 봐야 한단다.

과연 그들의 말대로 도로가 포장된다면 우리의 산객들은 더욱더 편리성을 이용할까?

그냥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줬으면 하는 우리의 바램이다.

아무튼 별 탈없이 오늘 산행을 마칠 수 있게 따라준 U씨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며 이만 산행기를 줄인다.

  

  

                                   <꼬불꼬불한 임도에서 지나온 길을 찾아서>

  

  

  -산행시간과 코스.

-08:00~08:35 주차장과 최참판 댁내에서.

-08:50 한산사/외석문.

-09:00 고소산성.

-10:30 신선대.

-10:50 철쭉제단.

-11:40 성제봉(1145m).

-12:20 첫 번째 임도.

-12:45 원강재(두 번째 임도).

-13:35 1130m 능선 갈림길 (좌: 상불재/ 우: 회남재)

-14:10 시루봉.

-14:50 KBS 송신탑.

-15:10 회남재.

-16:40 약수장

-17:20 보건소 버스 정류장.

                                                            2004. 11. 26.

                                   

                                                                         전   치   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