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 산행

참가인원:57명

코스:용문골  정상  주차장

소요시간 : 3시간30분

 

고요한 가을 바람이여

속세엔 세월만 빠르구나

풍류는 꿈인들

인생은 더없이 늙어가네

하늘이 맺어준 임결에 두고

술한잔 나누면서더덩실 춤을 추세

 

대둔산은 충남 논산시와 별곡면 그리고 금산군 추부면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사이에 있는 877.7m산이고 충남쪽에서 본다면 서대산 다음으로 두번째 높은 산이다.

대둔산 정상에 마천대를 비롯 뻗은 바위능선은 기암괴석과 수목이 수려하여 경관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대둔산 바위질은 단단하나 암괴석들이 떨어질위험이 있으니 조심을 바란다.

 

그리고 마천대에서 낙조대까지 능선은 그야말로 전망이 매우 좋고 낙조대에서 보는일물 광경은 일품이다.

낙조대 북동쪽 산기슭에 위치한 태고사 절은 전국 12승지의 하나라 할만큼 명당자리라 하는데 신라 신문왕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도선국사가 재창하였고 그후 임진 정유의 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린 것을 선조 1601년 수천 화상이 재창하였으며 숙종 1710 년에 선열선사가 또 재창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안심사라고 부르고 있으며 규모도 엄청나며 대웅전 약사전 시왕전 등 전각이 27개나 있으며 석대암 지장암등 암자가 14개나 있다.

 

대둔산은 소백산맥 추풍령 언저리에서 노령산맥으로 갈라져나온 산줄기가 남서쪽 목포 반도까지 연결된 줄기이다. 충남의 금산군과 전북완주군 접경에 놓여 충남쪽에서는 73년3월23일과 전북쪽에서는 80년5월26일 각기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충남 금산에는 일개 기생이 건달 심희수를 정승까지 오르게 한 확실하게한 사건이 있다 . 그래서 금산의 산빛은 만고에 푸르며 대둔산의 절개 일타홍 겨울철에 내린 대둔산 흰눈처럼 기생 일타홍은 마음이 깨끗하고 절개가 있어 일개 건달을 정승으로 만든 금산에 선정비가 말해주고 있다.

심회수 아버지 심덕부는 20년동안 정승자리에 있었지만 청렴하여 늘 가난한 살림을 살았기 때문에 조정대신에게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심덕부가 죽자 심희수는 건달로 세상을 살고 있었으며 조선 선조때 금산에서 태어난 일타홍이 어떤 연유로 기적에 오르게 된지는 모르지만 한양에 올라온 일타홍은 용모와 노래 솜씨 그리고 춤으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일타홍은 권문세가의 노루장화가 되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남다른 꿈이 잇었다.

남자를 상대하여 그사람을 낭군으로 삼아 자신은 벼슬길을 갈수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백성들을 편안히 살수 있도록 하는간절한 바람 때문에 영리하고 총명한 일타홍은  시문에도 밝고 관상도 보는데 뛰어난 기질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따라 당대의 정승들과 전직 대승들이 참가하는 술자리가 있었는데 기생으로 참가한 일타홍은 춤도추고 대감들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미치광이 같은 젊은 남자가 술자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니 정승들 노리가 가득했으나 아버지를 여의고 글공부라고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심희수 인지라 정승들과 심희수 아버지를 생각해서 대감들이 참고 있을 때 일타홍이 술잔을 내밀면서 곁에 앉아 술자리가 끝나면 집으로 찾아 갈 테니 장소와 약속을 하고 집으로 가게 했다.  일타홍은 약속대로 심희수 대문을 열며 들어가서 심희수를 만나니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일타홍 손목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심희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고 내아들한테 이렇게 고운여자가 찾아왔다는것에 깜짝 놀랬다  일타홍은 먼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오늘부터 모든 것을 청산하고 이댁에 들어와 아들님과 결혼 하겠다고 말하면서 도련님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하겠습니다 .

 

 그러나 어머니는 가난하고 건달 같은 아들이니 거절을 하자 일타홍은 제가 부귀영화를 탐내 이댁을 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득 끝에 어머니께서도 승낙하고 일타홍은 심희수와 결혼을 했는데 그날 밤부터 잠자리를 요구한 심희수를 일타홍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사서오경을 내 놓았다. 소첩은 살다가 도망가는일은 절대 없을 것이며 책한권을 떼면 잠자리를 허락하겠습니다. 그러자 심희수는 잠자리를 하기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다.

 

 심희수는 선대부터 머리가 좋은 집안이라 고금의 시서를 모조리 통달하여 장원급제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몇 년 세월이 흐른뒤 심희수 22세때 진사시에 합격하니 심씨 집안에경사가 났다. 일타홍 뒷바라지 덕분에 결심을 맺으니 주위 사람들은 일타홍에게 공을 돌렸지만 일타홍 마음은 한없이 아팠다. 그것은 천한 기생의 신분이라 숙명적으로 정실 부인이 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타홍은 낭군을 장가 보내기로 결심하면서 어머님에게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아드님을 배필을 얻어 주실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펄쩍 뛰며 말했다. 그게 무슨소리냐 그 애가 과거에 급제한 것은 모두 네 덕이 아니고 누구 덕이란 말이냐 그때 다시 이치를 설득했다.

냥군 장래를 위해서 양반집 규수를 얻어야 합니다 . 그래서 결국은 심희수는새 색시를 얻어 정식부인으로 맞이하는데 일타홍은 새색시를 깍듯이 예우하며 다툼 한번 없었다고한다.

이일이 마침내 임금님 귀에 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에 감동한 임금은 두사람을 불러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물었다. 당시 법도는 정경 부인이 아닌 일개 천기 출신의 기생을 임금이 부른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엿으며 임금이 일타홍에게 소원을 묻자

일타홍은 심희수를 금산 현감으로 재수해 주실것을 청했다.

 

그러자 임금은 기쁜 마음으로 즉시 윤허 했다. 심희수가 금산 현감으로 부임하자 일타홍은현감 부실이 되어 금의 환양 햇으며 일가 친척을 위로 하며 잔치를 베풀자 금산일대 소문이

자자 했으며 일타홍은 공과사를 엄격히 구분하여 친척들에게 관청을 함부로 드나들지 말것을 부탁했다.  그후 일타홍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소실인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기도 하고 남편을 오랫동안 차지 한 것이 정실 부인에게 죄 스러워 자살을 결심한다. 일단 자살 마음을 굳히자 주마등처럼 스처가는 지난 삶의 희한이 사무처오면서 달을보면서 시한수를    남긴다.

.. 새로 뜬 달 밝기도 하니

한줄기 빛에 만고의 정이 실려 있네

예나 지금이나 온누리를 밝히는데

백년 즐거움과 슬픔은 몇 번이나 누릴까,

 

 

사랑하는 모든 것을 뒤로 남겨둔채 일타홍은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나 갔다..

서방님 오늘로서 이별코자 합니다 . 원컨대 귀한 몸이니 오래도록 부귀를 누리시고 소첩 때문에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소첩 몸은 심씨 선산에 묻어 주시오 일을 당한 심희수는 텅빈

가슴을 달래며 몇 일을 슬피 울도가 일타홍을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원흥리에 묻기로 하고

일타홍을 실은 꽃상여가 금강에 이르자 가을비가 소소하게 내려 사람들의 마음을 한 없이 구슬프게 할 때 심희수도 주체할수 없는 슬픔에 통곡하면서 시한수를 옮는다,

 

한덜기 고운 꽃을 버들수레에 실려

향기로운  혼꽃이 가는길 더디기만 하네

금강에 가을비 내려 붉은 명정 적시니

그리운 내님 눈물인가 보다.

 

이처럼 산하의 곳곳에는 비문에 조차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사랑 얘기를 묻어들수 있겠는가,

박한 다식하게 산을 통해 문화 유적과 자생하는 동식물을 알수 있고 볼수 있다는 것 경타 스럽기만 하다....

##  이어지는 이야기는 2부에서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