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단상 5> 삼각산 사모바위의 손짓 - (삼각산)

 

 구파발 지하철역 인공폭포 앞에 꾸역꾸역 모여든 인파는 아직도 단풍 빛깔이다. 토요일이라 더 많은 사람들이 삼각산(북한산)을 벗하려고 모여든다. 삼각산은 어느 곳에서 올라도 좋은 산이다. 특히 구파발 기자촌 뒷길은 가까이는 새색시 시집갈 때 쓰는 족두리 모양의 봉을 비켜서 바라보고, 또 멀리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수려한 자태를 경탄하며 바위 능선을 기어오르는 맛 또한 상쾌하다. 향로봉과 비봉의 솟구침이 하늘을 찌르고 바위성 사이에 옷을 벗기 시작한 단풍이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일주일간 나는 삼각산이 눈에 아른거려 토요일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베낭에 녹차 그리고 사과 한 톨과 책 한 권을 꾸렸다. 긴 산행을 꿈꾸며 8시에 집을 출발한다.

 

 올림픽공원 역에서 구파발 역 까진 대충 한 시간,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읽다가 구파발 역에 당도했다. 택시를 탈까 하다가 읽은 책이 걷게 만든다. 느리게 살기 위하여 무작정 걸으니 35분 후 기차촌 산마루를 넘어 향로봉 길에 접어든다. 일주일전에 친구들과 함께 걷던 길이다.

 

 바위성을 기어오르니 땀이 송골송골 베어든다. 우측으론 족두리봉이 좌측으론 멀리 백운대, 인수봉이 만경대와 함께 일주전 보다 훨씬 큰 키로 우뚝 솟았구나. 백운대와 인수봉이 바로 코앞에서 손짓한다. 쉴 때만 쳐다보고, 산을 오를 땐 미끄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서 천천히 오라고 당부하는구나.

 

 비봉엔 벌써 사람들이 태극기가 꽂혀 있듯이 빼곡하게 차있다. 진관사 계곡은 여승의 독경소리를 품은 채 말이 없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향로봉을 바라보니 바위 틈새마다 산수화를 그려 놓았다. 사모바위는 떠난 임을 생각하는지 등을 돌리고 삼각산을 바라본다.

 

 그런데 오늘은 사모바위가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사모바위가 손짓하는 이유를 안다. 그동안 왜 자주 안 왔느냐고 지난주엔 등을 돌리더니 오늘은 반갑게 맞는다.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지난주엔 비봉을 비켜가니 돌아보지도 않더니 오늘은 엉금엉금 기어 비봉 정상을 통과하니 잘 했다고 반갑게 맞는다. 성철스님이 자기를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3000배를 하고 만나자고 하듯이, 사모바위는 비봉 정상을 밟고 오란다.

 

  서울의 진산 삼각산은 참으로 신령스럽기만 하다. 20여 년간 보아온 보현봉 모습은 지금도 눈에 아련하다. 문수봉과 보현봉은 보살들의 화신인가! 비 오는 어느 날 대남문에서 백운대까지 종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봉에서 바라보는 사모바위는 편안하다. 승가사 계곡을 끼고 문수봉을 비켜 대남문에 이르니 산객이 줄을 이어 오른다. 대성문을 지나 칼바위를 옆으로 끼고 뒤를 바라보니 보현봉 줄기에 오색 단풍이 옷을 벗고 있다. 대동문, 동장대를 지나니 백운대, 인수봉이 바로 눈높이에 떡 버티고 서 있다. 한적한 산모퉁이를 찾아 땀을 식히며 시장기를 때운다.

 

  잰걸음으로 용암문을 지난다. 노적봉이 왼편에 동그마니 서있고 백운대 정상엔 등반객이 촘촘히 줄을 잇는데 인수봉 봉우리 위엔 흰 구름 한 점이 두둥실 떠있다. 능선 길엔 빨간 단풍이 낙엽 되어 누어있다. 백운암문을 지나니 사람들이 빽빽하게 줄을 서 있다. 인수봉엔 10여명의 알피니스트들이 자일에 메달려 있다.  836m 백운대 정상에 서니 왼편엔 인수봉을, 오른편엔 만경대가 삼각편대를 지어 서서 ‘우리는 삼각산’이라고 외치고 있구나.

 

 산은 어떤 산을 불문하고 좋다. 설악산도 좋고, 지리산, 한라산도 좋다. 검단산도 좋고 남한산도 좋다. 그런데 여러 산중에서 삼각산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산임에 틀림이 없다. 바위성채의 북한산은 ‘내 품에서 용서와 화해 그리고 겸손을 배우라’고 내일도 모래도 사람들에게 손짓을 할 것이다.

 

 오전 9시부터 걸은 걸음이 오후 3시에야 백운대 정상에 섰다. 눈을 들어 도봉산 쪽을 바라보니 뿌연 안개로 산 그림이 선명하지 않다. 수락산과 불암산은 나지막하게 건너편에 서 있다. 백운암문을 거쳐 도선사방향으로 하산한다. ‘삼각산 도선사’ 현판을 확인하고 우이동을 거쳐 귀가 길에 오른다. 오늘 하루가 참으로 긴 묵언의 산행 길이었다. 사모바위의 손짓이 또 다음을 기약하자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