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19

진정 아름다운 그대의 모습

 


 

 흔히들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산행이나 독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취미활동을 들먹이기보다는 산행과 독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대중성이 강한 요체(要諦)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산행은 동적(動的)이고 행동적(行動的)이지만 독서는 정적(靜的)이고 관념적(觀念的)이다. 그러므로 산행과 독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틈나면 산으로 쏘다니고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다보니 산행과 독서가 서로 유사점이 많은 것 같아 나름대로 비교분석해본다. 
 

 첫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산행과 독서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한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본질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반드시 발품을 팔아야 산정에 오르듯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직접 읽지 않고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그 내면에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꾸준한 지구력(持久力)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나 끈기를 가지고 추진해야 기대했던 결실을 얻을 수 있듯이 산행이나 독서나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강인한 인내력이다. 진정한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이 세상사가 아니던가. 
 

 산행을 하다보면 저 높은 곳을 언제 올라갈까 자신의 의지를 수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나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보면 정상에 서듯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권의 책을 받아들고 언제 다 읽을까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그러나 한 페이지씩 읽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속에 도취되어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나면 고생스럽게 오르막을 올라 산봉우리에서 맛보는 묘취와 다를 바 없는 감동을 느낀다. 
 

 얼마 전에 이이화 선생의「한국사 이야기」22권을 독파했다. 이처럼 전집이나 대하소설을 독료하려면 큰 산을 오르는 마음가짐으로 읽기 시작해야한다.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마지막 종점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 종주 산행이듯 부단한 노력과 끈기를 경주(傾注)하지 않고는 대작을 읽어낼 수 없다. 
 

 셋째,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산행은 다른 운동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정해진 룰이 없고 특별한 테크닉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혼자 가더라도 무방하고 마음에 맞은 사람들과 패거리를 이루면 더욱 좋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책을 많이 읽을까? 지난 7월 마케팅 조사 전문기관이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 결과, 한달 평균 1.3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6.6권, 일본 6.1권, 프랑스 5.9권, 중국 2.6권 등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책을 읽지 않느냐고 질문하면 대부분이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다고 대답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댄다. 그러나 정말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까. 다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자신의 인생 시간표에 독서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빨리 간다고 인생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아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돌아가는 것이 시간이다. 자신을 위해서 절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범위에서 자신을 가꿔가는 시간을 스스로 할애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바로 독서의 첫 걸음이다. 
 

 그동안 바쁘게 사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면서 쓸데없이 이곳저곳을 배회하다보니 솔직히 많은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잠시 멈춤의 시간에 직면해서 수직적 사고에 매몰된 초췌한 모습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많아 마음을 가다듬고 읽지 못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책을 읽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아 이순(耳順)의 문턱에 들어서서 무슨 주책이냐 포기하려고도 했지만 산에 다니는 심정으로 독서 습관을 길들이는데 심혈을 기우렸다. 그런 연유로 작년에는 연수중이라서 다소 여유가 있었기에 1주에 2권 정도를 읽었으나 올해는 1권 정도로 목표를 정하고 지금까지 착실하게 실천해나가고 있다. 
 

 넷째, 독특한 매력에 빠져드는 속성이 있다. 산행이나 독서는 한번 빠져버리면 쉽게 헤어날 수 없는 매혹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속에 매료(魅了)되어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몸살을 앓았던 시절이 많았던가 경험해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산행도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어 그 맛에 길들어지면 쉽게 헤어날 수 없다. 한번이라도 빼먹으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산으로 떠나는 산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처럼 독서나 산행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섯째, 경제적인 부담이 많지 않다. 산행이나 독서는 다른 취미활동에 비해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요즘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아 아우성이지만 산행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예전에는 책을 사서 읽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서 봤지만 요즘은 도서관이나 대여점이 많아 큰 돈들이지 않아도 신간서적을 손쉽게 섭렵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작금의 세태가 균형 있는 삶을 중시하는 추세다. 그러므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삶의 의미를 되찾고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면서 지나치게 한편으로 기우러져 편협한 사고를 바로잡는 실천적 행동이 산행이며 독서라고 생각한다. 
 

 책속에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지표를 제시해주는 인생의 나침판이 있다. 그래서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자신의 인생항로를 바로잡아준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를 가늠하지 못한다면 결국 좌초될 수밖에 없기에 항상 나침판을 지켜보는 혜안을 가져야한다. 

 

 과연 균형을 이루는 삶을 엮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사고와 행동이 필요할까? 사람마다 환경과 정서가 다르기에 실천하는 방법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한권의 책이라도 읽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설가 이외수는 「바보 바보」에서 책을 읽지 않고 자신의 인생에 사랑과 행복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콘크리트 전봇대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사람과 진배없다. 그러므로 사랑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산행과 독서에 대하여 그동안 경험에서 우러나온 소회(所懷)를 밝혔으나 무슨 궤변(詭辯)이냐고 치부할지 염려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글을 읽고 많은 산우들이 바쁜 가운데 책과 가까이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다소곳이 책을 읽는 그대의 모습이 진정 아름답기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