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발하기까지 >

 

2004년 10월 23일 토요일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21-22일 학회를 이용하여 하루를 홀로 더 머물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기다리던 북한산 산행을 하였습니다. 동계 등산복 상하, 모자, 장갑, 자켓, 등산화로 부품해진 배낭을 양복차림에 매고 학회에 참석하고, 마지막 날 동료들이 떠나긴 전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양복은 먼저 보냈습니다. 간단하게 보이는 이런 방법에도 고안하는 한참의 고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산 산행 정보는 너무 많아 산행로 결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100개 이상의 산행로가 있으며 출발 위치 또한 너무 다양하여, 서울 지리에 어두운 탓에 한번에 북한산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으면서도 산행 시간까지 적절하게 맞출 수 있는 산행을 계획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행을 마치고 나자 대략적인 북한산 모습이 머리 속에 들어왔습니다. 북한산은 남북의 능선을 따라 북한산성이 쭉 이어 있습니다. 산성 중간중간에 성문이 있는데, 북한산 아래에서 이 성문으로 오르는 코스들이 주요 산행로였습니다. 그래서 한적한 산행을 하다 성문에 오면 막 도착한 단체 산행인들로 북적이곤 하는 그런 양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략 주요 코스는 아래 몇 가지이며, 아래에서 오르다보면 다시 길이 나누어져 각 길을 오르다보면 '대남문', '대성문', '보국문', '대동문', '우문' 등 성문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1. 우이동 기점-일반 코스로 정상인 백운대에 오르는 가장 지름 코스.
2. 4.19탑 주변(아카데미 하우스) 기점 - '대동문'과 연결됨.
3. 정릉·평창동 기점-'대남문'과 연결됨.
4. 구기동·세검정 기점-진흥왕순수비를 거쳐 문수봉으로 연결됨.
5. 북한산성 기점-북한산의 북쪽에서 오르는 코스

 

북한산 소개와 산행기, 그리고 몇 사이트에 질문을 올려 최종 결정한 코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북한산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체력만 된다면 가장 좋은 코스로 생각되었습니다.

 

1. 북한산성 매표소 - 의상봉 - 문수봉 - 대성문 - 대동문 - 백운대 - 우이동 매표소
   ; 이 코스의 장점은 북한산성을 모두 밟을 수 있으며, 주요 능선을 대략 종주할 수 있어 북한산

     정경을 모두 살필 수 있습니다.
2. 예상 산행 시간; 8시간(새벽 6시 ∼ 오후 2시)
3. 기차 출발 시각; 오후 4시 15분

4. 산행코스 지도;   

http://community.freechal.com/ComService/Activity/Album/CsPhotoView.asp?GrpId=2473978&ObjSeq=1&SeqNo=14&PageNo=1

 

토요일 저녁은 서울에 계시는 마음 맞는 두 분과 함께 보냈습니다. 기분 좋은 만남 덕분에 취한 듯 만 듯한 상태로 12시 가까이 택시에 올랐습니다.

 

"북한산성에 가장 가까운 여관까지 갑시다"
"북한산성 말입니까?"
"그 근처에 여관촌이 있겠죠? 가장 가까이만 가면 됩니다"

 

어느새 잠들어 버렸습니다. 한참을 깨워서야 일어나 어리둥절한 상태로 어느 깜깜한 시골에 내렸습니다. 여관촌이 아니라 하나만 달랑 있더군요. 들어서니 너무 허름한 시골집에 온 것 같았습니다. 부스스 나오는 시골 할머니는 쭉 늘어선 방 중 가장 안쪽 방으로 내려가더니, 침대 아래의 전기요를 만지며 불이 들어와 있다며 2만 5천을 달라 하였습니다. 다른 방은 온기가 없어 바꿔 줄 수 없다 하면서도 깍아주지도 않더군요. 영화 속 60-70년대 방황하는 주인공이 들른 부두의 허름한 여인숙이라 상상하면 그대로 똑 같습니다. 쓸쓸한 기분이 술기운에 더해지자 방랑하는 자의 허허로움까지 느껴졌습니다.

 

따뜻한 전기요 덕택인지 늦잠을 잤습니다. 버스 정류장의 상점에서 초코파이 한 통, 식수, 스낵류를 준비하여 지나가는 북한산성행 버스에 오르자 이미 등산복 차림 손님들이 가득했습니다. 북한산성 매표소 입구에서 오뎅 한 개로 아침을 대신하고, 김밥을 점심으로 주문하였습니다.

 

< 북한산 산행 >

 

북한산성 코스는 말하자면 팔공산이라면 북쪽 공산폭포 정도에서 오르는 코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0-30분은 간간이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분들이 집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꽤 오랫동안 식사할 수 있는 식당들이 있더군요. 다음 주 30일 경이 팔공산, 가야산 등이 단풍절정이라 하여, 북한산은 단풍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이때가 절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산행 내내 주요 코스에서는 많은 인파를 만났습니다.

 

국립공원이고 1,200백만 서울시민을 위한 곳임에도 북산산성 코스는 안내판도 미흡하였고, 산행로 주변 정리도 허술하였습니다. 그래서 매표소를 지나자 의상봉으로 바로 오르려던 계획이 어긋나 버렸습니다. 30분 정도 올라 만나 식당 주인에게 길을 물었지만 설명한 대로의 안내판을 찾는 것도 실패했습니다. '중성문'을 지나 오르다 그냥 오르면 정상인 백운대로 너무 쉽게 오르게 되어 있어 우측으로 난 소로로 그냥 접어들었습니다. 매표소에서 구입한 북한산 지도만 믿고 산행로 우측 능선에만 오르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곳에서 의상봉능선까지 이어진 우연한 산행로가 이번 북한산 산행의 가장 절정이었습니다. 1시간 가까이 오르는 산행 내내 인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도 못한 단풍 절경이 이어진 숨겨진 산행로였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감탄을 반복하다 몸이 지쳐가 무렵 드디어 능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능선에만 오르면 북한산성을 따라 잘 닦여진 산행로가 이어져 있어 주위 경관을 구경하며 그냥 가면 되는 산행을 가장 꽃인 능선 산행을 쉬이 즐겨도 됩니다. 남쪽으로 서울 전체가 한눈에 들어와 orientation이 안 되는 대도시의 대략적 위치배치를 머리 속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습니다.

 

2시간 늦은 출발로 초조해진 마음 때문에 문수봉 -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대동문은 꽤 너른 광장이 성문 앞에 있어 수유,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오른 산행인들이 많이 쉬고 있는 장소였습니다.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담배 한 대와 초코파이 한 개로 배를 채웠습니다.

노적봉을 지나 백운대 방향으로 갈수록 인파가 엄청나졌습니다. 백운대 아래의 위문까지 가는 동안 가는 사람, 오는 사람이 겹쳐져 오래 기다려야 하는 등 예상 못한 시간 소비를 하였습니다. 위문에는 더욱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점심 먹을 자리를 찾기도 힘들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잠시 휴식만 취하고, 바로 백운대로 향했습니다.

 

백운대는 달걀 형태의 통바위로 오르는 길을 따라 쇠줄이 이어져 있을 뿐입니다. 좌측은 바위고 우측은 쇠줄로 그 간격이 두 사람이 지나치게는 좁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빠르면 잠시 오를 수 있는 거리를 가다 쉬다 하면서 30분 이상이 걸렸습니다. 내려오는 사람과 오르는 사람 모두 줄지어 오르는 형태였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조망은 훌륭하였습니다.

 

북한산은 대략 설악산의 축소판 인상이었고, 건너편에 마주 보이는 인수봉에는 암벽 등반인들이 아슬아슬하게 바위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미국 애틀랜타에 가면 Stone Mountain이라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산이며, 그냥 바위 하나가 산입니다. 명물이죠. 크기는 다르지만 북한산도 비슷한 인상이었습니다. 정상 주변에 앉아 점심과 과자를 먹으면 불기 시작하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오후 어느 때를 그렇게 홀로 즐겼습니다. 이때가 아마도 12시 무렵이었을 겁니다. 4시간만에 정상까지 주파하였습니다.

 

정상에서 위문까지 내려가 우이동으로 내려가면 이날 산행은 끝입니다. 정상에서 위문까지 바위산을 내려가는 것은 더욱 밀려, 지도를 보고 택한 다른 산행로가 그 날 최악의 상황을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깎아지른 90도 바위를 유격훈련처럼 줄을 타고 내려가고, 70-80도 정도의 경사면 바위를 줄도 없이 한참을 내려가야 하는데 내려간 끝은 길이 없습니다. 끝난 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온 바위 끝을 돌아가면 내려온 바위가 본체 바위 위에 얻혀진 양상으로 그 틈새로 사람 한 명이 겨우 기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간격이 너무 좁아 배낭이 거치적거릴 정도였으며, 저쪽 끝은 까마득히 보입니다. 함께 내려온 영주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두 분이 먼저 들어갔습니다. 가슴이 답답하였지만 다시 올라갈 용기도 없어 겨우 뒤따라 가보았습니다. 취미활동의 산행이 아니라 거의 생존 수준의 기분이었습니다.

 

마지막 나오는 구멍 또한 몸만 겨우 나올 수 있는 크기였고, 배낭을 벗고 몸을 빼내고 다시 배낭을 당겨야 할 정도였습니다. 빠져나오자 산행로가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때만큼 자신이 뿌듯한 적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 . . . .

 

"어디로 가는데 이쪽으로 오시죠?"
"우이동으로 가려는데요? 이쪽이 지름길이죠?"
"?????, 효자동을 가는 코스인데? 이 길은 4-5시간 거리고 무척 길고 지루한 코스인데?"
" . . . . . "
"지도를 보고 지름길 같아 왔는데 그럼 우이동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요?"
"우리도 우이동을 내려가는데, 이곳은 호랑이 동굴을 다시 한번 경험하려고 왔어요. 우이동은 다시 올라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같이 갑시다!"
"으~악!"

 

호랑이 동굴을 다시 되돌아 70-80도 경사면을 올라, 또 90도 바위를 올라야 한다니 그 순간 기가 꺾여 앞서 동굴로 들어가는 아주머니를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4-5시간이라면 기차시간을 맞추기는 불가능하고, 다른 길은 없다니 . . . . . 도저히 방법이 없을 때는 그냥 되는 모양입니다.

 

호랑이 동굴을 거쳐, 경사면, 바위타기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정상에 오르자 내려가는 인파는 정상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얼마나 긴장을 하였던지 피로감이 마구 몰려왔습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지나가는 분들의 조언 덕택이었습니다. 하나는 바위를 내려갈 때는 선 채로 무릎을 약간 구부려 양발을 일차로 타박타박 걸어가야 가장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위를 오르고 내릴 때는 면장갑을 미끄러워 차라리 맨손이 낫다고 합니다. 등산용 장갑이라면 가장 좋겠죠.

 

정상에서 '위문'까지 내려오는데 40분 이상이 소요되었을 겁니다. 몇몇 등산 전문가들은 길도 아닌 깎아지른 바위를 걸어서 내려갔다 오르곤 하였습니다. 좋은 구경거리여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없애졌을 뿐만 아니라, 내 능력의 한계를 실감시켜 주었습니다.

 

위문에서 우이동 매표소까지는 일반 등산로로 중간중간에 대피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수대피소에서 긴장과 피로감을 들기 위해 잔 막걸리 한잔과 김치로 잠시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잠시 하산하다 피로감이 금방 몰려와 인적 드문 어느 계곡에 앉아 등산양말까지 벗고 담배 두 대와 목을 축이고 쉬었습니다.

 

우이동 매표소 아래는 가장 흔히 찾는 코스답게 차량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일인당 1,000원인가 2,000원을 주는 택시를 타면 버스 정류장까지 나옵니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버스를 이용하면 됩니다. 그때가 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습니다.

 

KTX를 타고 PDA로 임어당의 '생활의 지혜'를 읽다 잠시 잠에 들었더니 어느새 도착하였습니다. 하루를 북한산에서 보내고 저녁 7시전에 도착이 되더군요.

 

혼자 공부를 하고 지도를 보고 길을 따라 한번 가보는 것이 산행기를 아무리 많이 보는 것보다 전체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임을 매번 산행 때마다 느낍니다. 특히 북한산 산행은 방대한 정보의 혼란성 때문에 요지를 파악하기가 더욱 어려운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 북한산 지도를 펼치면 지도가 말하는 의미가 눈에 들어오니 말입니다. 자신의 몸으로 부딪혀 보기가 훌륭한 '생활의 지혜'란 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