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원숭이와 작약산(문경)

언제 : 2009.06.18(목)

누구랑 : 목요산악회 따라 아내랑

아내 : 목요일은 당신 쉬는 날인데 어느 산으로 갈라요?

빵과버터 : 그래 어느산이 떳오?

아내 : 구봉대산하고 작약산...

빵과버터 : 구봉대산은 안가봤는데 거기나 갈까?...당신은 어디로 갈꺼요?

아내 : ???...옴마!...거기는 노래방 산악횐데 괜찮겠어요?...당신 노래방 질색이잖아요?

빵과버터 : 그런가?!...그러면 안되지!...

이렇게 작약산에 가기로하고 "한산"의 산행기를 뒤져보니 존애하는 신경수님의 "백두작약지맥" 어쩌구하는 난해한 산행기 하나가 달랑 올라와 있다. 나는 속으로 산악회에서 별볼일 없는 산을 잡았구나 싶었지만 원체 매주 목요일마다 하는 산행이니 어지간한 산은 재탕, 삼탕 다 우려먹었을 테고 이제 갈데가 없으니 이름도 없는 작약산을 잡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한편 신경수님이 다녀온 산을 나도 밟아 본다는 일말의 자부심을 가지고 오랜만에 목요산악회에 따라 나선다.

다녀온 길

09:57 갈티재 오름길이다... 버스 기사님의 잘못도 아니고 산행 대장님의 잘못도 아니다. 단지 그눔의 내비게이터가 내린 결정이다. 이 근처에 힘있는 국회의원이라도 나왔는지 산중에 이런 탄탄대로가 가당키나하고 이 길이 어디로 연결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게 "사회간접시설"인지도 의심스럽다. 아무튼 가파른 경사길을 근근히 올라온 44명을 태운 리무진 버스는 이제는 도처히 올라갈 수 없다는 듯이 자빠져 버린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다. 어거지로 경사가 급한 커브길을 돌다가 어이쿠! 구르게 되면 44명의 보험료가 얼마인가?...

때묻지 않은 아스콘에서 올라오는 지열이 만만치 않게 뜨겁다

도대체 이 길을 닦은 이후로 몇대의 차가 오고 갈지는 모르지만?...관광을 위한 길도 아니고 물류소통을 위한 길도 아니니 졸속의 길이란 말을 면치 못할거 같다

갈티재에서

10:07 농막 맞은편 아랫수예 마을 입구. 민박 1호....민박 5호 참 이상한 마을이 있었다.

연잎이 몇장 물위에 떠 있기는 하지만 그물망이 쳐 있으니 아마도 산중 미꾸라지 양식장인 듯...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토데미즘은 반갑다

폐가와 마을회관...이것도 이상한 그림이다

이제는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샘물인가 보다

10:22 하늘아래 첫동네라는 지리산 심원마을보다는 못하지만 제법 높은 곳에 자리잡은 윗수예 마을이다

10:33 윗수예 마을을 지나고 선두는 제법 넓은 세멘트 길을 잡았지만 그 길은 사과밭으로 연결되고...빠꾸하여 물탱크 쪽으로 난 산길 옆에는 잡초속에 묻에 잘 보이지 않던 스텐레스 이정주가 작약산 방향을 가르킨다. 이때 후미조가 도착하면서 노회(老獪)한 어떤 목소리가 들린다.

어떤 목소리 : 오늘같은 날은 선두조에 나서는게 아니여!....알바하기 십상이여!...으흐흐흐!!

빵과버터 : (속으로 : 하먼이라!....선두조는 그렇지만 후미조도 곤란하당게라!...까딱 잘못하면 바닥에 깔아논 표지기를 놓쳐 삼천포로 빠지기 십상잉게요....ㅋㅋㅋ)

잡풀이 무성해 풀냄새가 싱그럽지만 소나무는 무슨 병에 들었는지 전부 말라 죽었다

 

오늘아침 해결한 멧돼지의 분변인지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10:53 고마운 손... 측은한 손... 만만한 손... 30년 넘게 함께 살아오며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준 손이며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평없이 견뎌준 손이며 언제 어디서 잡고 흔들어도 시비걸놈 하나 없는 만만한 손이다!....ㅋㅋㅋ

아랫수예 마을에서 없어진 아내가 나타나더니 산딸기를 한움큼 따주고는 또 달라뺀다.

11:09 작약산 정상에 올라서니 K형이 기다리고 있다가 눈짓을 한다. 나는 그 눈짓이 무슨 말인지 알기 때문에?...ㅋㅋㅋ

아내와 K형은 거북바위 쪽으로 가면서 따라오라고 했지만 별거 아닐거 같은 거북바위 보잡시고 100메타 행보를 하는게 귀찮아 혼자 뒤돌아 표지기를 보고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제 산행도 점점 힘들어지니 자전거나 살살 타고 다니다가 자전거도 못탈 지경이 되면?.....

작약산 정상에서

작약산 정상의 기린초

 

선두조와 후미조가 함께 점심을 먹는 영광은 갖게 된 것은 목요산악회 창립이후 처음 있는 일이란다. 선두조가 후미조를 배려해서가 아니고 노련한 엉아들이 3번이나 알바를 했기 때문이란다. 앞으로도 종종 부탁합니다요!...ㅋㅋㅋ

11:33 나는 지금까지 국과 밥이 아니면 안되는줄 알았다. 이제는 곰취 장아찌 쌈밥이다. 이렇게 나의 도시락도 진화하는 것이다.... ㅋㅋㅋ

둥굴레 군락지

동참한 동병상련의 제대군인들...

우와!...고사리 무덤이다

12:42 작은 작약산(시루봉)...오석으로 정성스럽게 다듬어논 민젯상이 민망하여 지팡이 2개 올려놓고 장난질 친다

 

13:14 송이막에서 우측으로 표지기가 놓여져 있다

13:20 임도에 내려서자 땅바닥에 표지기는 오른쪽 방향으로 놓여져 있다. 그러나 임도의 끝은 어디인지 모른다.

아직은 널널한 마음으로 임도에 널려있는 까치수영도 담어보고...

14:04 44분의 알바...아!...이런 왠수같은 표지기여!...길을 걸을 때 왼편에서 걷느냐 오른편에서 걷느냐, 신발을 신을 때 왼발 먼저 신느냐 오르발부터 신느냐, 와이셔쓰를 입을 때 왼팔부터 걸치느냐 오른팔부터 걸치느냐? 라는 등 좌우 방향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이나 그날의 운세를 점칠수 있다는 심리학자의 학설도 있기는 하다만 특히 산행시 임도에 떨어지면 오른쪽으로 걷느냐 왼쪽으로 걷느냐에 따라 종종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요즘 우리나라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싸움이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까지 번져서 걱정이다. 도대체 나라꼴이 이게 뭔가 싶어 차라리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오불관언!...느그들은 피터지게 싸워도 나는 산에 갈란다!...ㅋㅋㅋ

그러니까 나는 임도에 내려서자 표지기를 보고 임도의 오른쪽 방향으로 걷다가 설마 임도 어디쯤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샛길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하고 얼마쯤 가면 임도가 왼편의 마을쪽으로 구부려지겠지 하는 기대로 3십분정도 줄창 걸어가니 산굽이를 몇 개나 돌고 나서야 아무리 대장님이 원점회귀 산행이라고 했지만 그건 구미리에서 정상적인 산행을 했을 때 얘기고 이건 아니다 싶어 대장님에게 휴대폰을 때리니 오른편으로 가다가 임도의 왼편에 표지기를 놓았다고 한다. 임도가 너무 넓고 잡풀이 무성했던 탓이었을까? 왼편에 내려놓은 표지기를 오른편에서 걸어가는 나는 보지 못햇던 것이다.

어느날 새끼 원숭이가 물을 건너고 있었다... 꼬랑지를 물에 적시지 않기 위해 곧추세워 조심스레 걷다가 한발이 땅에 닿자 꼬랑지에 힘을 빼니 그만 꼬랑지를 몽땅 물에 적시고 말었다. 오늘의 내가 영판 새끼 원숭이 꼴이다!...장자(莊子)에 있는 말이다.

앞에 간 사람들이 밟아 쓰러뜨린 우북한 풀들을 보고서야 안심한다.

14:18 마을뒤 고사리밭

뽕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무시무시하게 전기 울타리를 쳐놨으니?....

산딸기밭

꿩대신 닭이라더니 구미리 느티나무를 보고 싶었지만 엉뚱하게 수예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바람에 늙어 죽은 감나무로 대신한다.

임도에서 빤히 보이던 파란 지붕을 보니 울화통 터진다!....ㅋㅋㅋ

다랭이논

14:28 에효!...막걸리도 바닥, 동태찌게도 바닥, 산행도 바닥....ㅋㅋㅋ

14:48 마을회관뒤 이미 폐가로 전락한 상주여객 함창영업소가 있었던 곳이다. 40여년전...군대간 막둥이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머님전 상서!...마음이 찡해지는 순간이다...(산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