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박 2일 지리산 주능선 야간종주 산행을 마치고

(智異山 天王峰, 韓國人의 氣像 그 發源地를 찾아서: 自卿山人 산행기/5)

지리산 종주 산행기를 남겨 나의 산행에 한 획을 긋고자 하는 생각은 간절했으나, 12월 대입 수능시험을 앞둔 우리 집 둘째 녀석이 아빠가 집에 오면 늘 노트북을 빼앗아 공부를 하기 때문에 기회가 없어 차일 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산행할 때 메모지를 꺼내어 정리해 보았다.

이 산행기는 필자의 둘째 아들에게 남기고 싶다. 그래서 그 녀석도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을 더 가까이 두었으면 좋겠다. (둘째 녀석은 지난 1월 15일 경북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참 대견한 놈이다).

필자는 2003년 10월11-12일 무박2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길(14:00경)에 나섰다. 나홀로 배낭을 꾸려서 집을 나서 88 고속도를 경유하고, 함양IC에서 대전-통영 고속도를 올라타서 생초TG를 나와서 임천강으로 들어섰다. 임천강은 지리산능선 북쪽의 물을 가두어 진양호로 흘러 보내는 남강의 지천 이다.

임천강 들머리 주상리에 있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릉의 고분유적(17:00)을 둘러보고, 왕산(923m) 중턱 자락의 조선시대 의성 유의태의 약수터에서 쪽박으로 목을 축이고 내려온다. 어둠이 내리는 구형왕능의 너덜겅 지대를 올라서 돌아 내려오니 돌연 망국 가야국의 서러움이 몰려왔다.

예나 이제나 통치자의 흥망성쇠는 타산지석이 되어 선정의 시대를 염원 하지만, 늘 칭송과 탄식이 교차되는 시대상이 신화로 후대에 전해 온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간 구형왕의 금관가야는 역사에서 왜 그렇게 기록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부답이니 이 곳을 찾은 여행자의 발걸음 또한 무겁다.

노을이 드리워지는 임천강변 길을 드라이브 하며 성산재로 오르는 길에 바라본 강변에 흐르는 물소리는 석양의 노을속으로 묻혀가고, 학바위 계곡을 지나니 왼편의 추성동의 칠선골 길이 나를 부른다. 계곡미의 수려함에 시선이 뺏길 때 즘 차는 마천 산내를 지나 뱀사골 초입에 들어 섰다.

도로상에 설치된 매표소에서 가는 길을 제지 당하고 입장료를 요구 당하니 순간 당황스럽지만 이미 이곳 뱀사골의 경관에 흠뻑 취한 몸 인지라 그렇게 아깝지 않다. 만수천 계곡길의 포장도로를 따라 달궁 계곡으로, 하늘아래 첫동네 심원마을을 지나 성산재 산마루에 올라서 시암재 휴게소(19:00)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도 5년 전 처녀 산행처럼 지리산 주능선종주 야간산행이다. 단지 지난번 산행의 출발지가 화엄사 였다면 이번은 성삼재를 들머리로 해서 산행을 시작한 것이 다를 뿐이다. 차는 주차료 관계로 시암재 휴게소에 두고 갔으며 산행은 시암재(20:30)에서 시작했다.

잠을 자지 않고 걷는 무박 2일 산행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또 다시 지리산 주능선 산행후의 보람과 성취감은 나를 부르고 유혹했다. 시작할때는 체력이 된다면 천왕봉에 올라 지리산 주능선을 왕복해서 도로 이곳 시암재 휴게소로 돌아와 차를 타고 집으로 가리란 생각도 해 보았지만 중산리로 하산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진주, 하동, 구례를 돌아서 이곳 성삼재로 돌아오는 코스를 머리에 그렸다.

땅거미가 찾아와 주위에 어둠이 몰려오는 시암재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야간산행 길을 머리 속에 떠 올리며 차안의 의자 등받지를 뒤로 재겼다. 이내 잠이 몰려왔지만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저녁 8시반 이다. 배낭의 내용물을 점검하고 시암재 휴게소(20:30)를 뒤로 하고 성삼재를 향해 도보로 거슬러 올라 간다.

20분즘 걸어니 성삼재에 닿았다. 대지는 잠들고 오가는 사람도 없는 이 밤, 어둠이 발밑까지 찾아온 길 위에서, 오늘 다시 나는 지리산 주능선 종주의 출발점(21:00)에 섰다. 캄캄한 산길을 혼자 오른다. 잠시 옷깃을 여미고 눈을 감았다. 이번 산행에 하나님이 동행하여 눈동자처럼 나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로 산행을 시작한다.

들머리의 초입 부터 돌과 시멘트로 잘 단장되어 넓게 포장된 등산로는 노고단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노고단산장까지는 산행한다는 기분을 느낄수 없다. 성삼재를 넘어 구례쪽 길이 열리면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예전의 길이 아니다.

화엄사가 내려다 보이는 코재부근의 전망대에 오르니 밤공기가 한결 차갑다. 자켓을 꺼내 입었다. 뱀처럼 굴곡진 길을 돌아서 길섶 사이로 나있는 등산로 옛길을 찾으니 그렇게 반가울수 없다. 경사진 등산로를 오른다. 사람도 옛 친구가 좋고, 산길 또한 옛 등산로가 좋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머니 산 지리산. 지리산을 한번 찾은 등산인 이라면 누구나 후덕하게 생겨 한없이 포용하고, 끝간데 없이 열려서 모든 산들을 아우러는 지리산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품성을 찾은 이 땅의 진정한 산꾼들은 누구나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르는데 주저 하지 않는다.

노고단산장(22:00) 취사장에서 늦은 식사를 하는 일행을 창 넘어로 보며 나홀로 하는 야간산행이 인기척에 방해받기도 싫고, 남을 놀라게 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해서 빠른 토끼걸음으로 돌 계단을 따라 산마루로 올라 갔다.

노고단 좌측 안부의 돌탑(22:30)을 한바퀴 돌고 너럭바위에 앉아 숨을 돌린 후, 老姑壇 정상으로 나있는 나무계단을 따라 오른다. 노고단 정상부의 자연휴식년제는 2002년 12월31일까지 끝나는 것으로 예고되어 있었는데 또 순연 되었는지 철책 보호망으로 출입통제가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원래대로 복원할수만 있다면 다행이 아닌가.

노고단이 미개방 상태인 것을 보고, 임걸령으로 곧장 가려다가 아쉬운 발걸음에 조심스럽게 보호방책을 넘었다. 조금 올라가니 나무발판위에 천막을 깔고 침낭안에서 야영하는 일행을 만났지만 모른체 하고 노고단 정상으로 올라 갔다. 길섶 위에 많은 풀과 야생꽃들이 자라는 노고단 정상부의 복원의 현장, 나는 자연의 생명력에 마냥 놀란다.

노고단(23:00) 정상의 돌탑과 표지석을 돌며 밤의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시고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볼수 없지만 5년전 처녀 종주 산행시에 밤 12시에 노고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지리산1경 노고운해를 보았다. 그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동쪽으로 지리산 주능선길이 끝간데 없이 펼쳐져 있고 화엄사계곡이 발아래 산자락에 붙어 있는 남쪽 골짜기 저 멀리 구례읍의 야경이 환한 불빛을 밝히고, 어제 보름을 넘긴 음력16일의 둥근 달은 반야봉 머리위로 떠 올라 주위를 밝힌다.

지리산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주능선과 첩첩산중, 그려 놓은 듯한 마루금과 점점히 박혀있는 봉우리들 그 면면을 감상하고 헤아려 보며 동쪽의 반야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을 걷는 다는 것이 때로는 산마루를 걷다가 숲속으로 들어서곤 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지리산의 깊이를 보았다. 잘못 길을 들어 되돌아 나와 능선 날등의 바위사면를 타고 내리고 오르며 되돌아 나오기를 여러번 시도끝에 가까스로 노고단 안부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등산로를 찾을 수 있었다.

숲길에서 나오자 시야가 탁 트인다. 돼지평전의 능선이 나타났다. 완만한 경사에 그렇게 크지 않은 나무와 풀과 숲이 잔잔히 파도 친다. 알림 팻말을 보니 야간산행 금지란다. 이전의 노고단 안부의 방책에서도 얼핏 야간산행금지 팻말을 보았지만 애써 외면해 버렸다. 이제 확실하지 않는가. 영락 죄인이 된 기분이다.

이곳 돼지평전에는 가끔 산돼지가 나오니 숲속에는 들어가지 말며, 곰을 너 댓마리 방사했으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덧붙여 야간산행금지가 곰과 인간의 보호 때문에 시행중이란 것이다. 1998년 10월 추석 이틀전에 한 지리산 야간종주 산행시에는 이런 팻말을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말이다.

돼지령의 평평한 안부에서도 복원현장에는 통행금지줄로 새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호 하고 있었다. 우편 안부에서 바라보는 왕시리봉 능선, 질매재의 그리움을 얘기해 보고, 곧장 임걸령으로 향한다. 달은 중천에 떠 있다. 길위의 능선도 선명하고 계곡도 뚜렷하게 보인다

임걸령 샘터(24:00)는 예전과 다름없이 시원한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물맛이 참 좋다. 물을 보충하고 세수를 하고 자켓을 벗어 땀을 딱고 다시 입었다. 주변이 잘 정돈되어 있는 샘터를 나와 남쪽으로 나있는 전망대에서 피아골을 내려 보고 돌아 나오는데 침낭 밖으로 얼굴만 나오게 하고 길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등산인이 발밑에 걸렸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역시 산에서는 사람이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 그럴까.

지리산 주능선 종주길에서 만난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리산만이 품을 수 있는, 지리산만이 가질수 있는 산행을 하기위해 그도 이밤 산길을 나서지 않았겠는가. 예상은 했지만 섬뜩하다. 혼자 씩 웃었다.

반야봉을 보고 노루목으로 향해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반복된다. 가파른 길도 나오지만 조금은 쉽고 편한 길이다. 20분즘 걸어가니 노루목이다. 화개재로 가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반야봉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많은 지리산 종주꾼들이 스쳐 지나간다는 반야봉, 나는 지난번 종주길과 같이 반야봉 비탈진 바위길을 올라 갔다. 오르고 내려오는데 1시간 30분이면 족하다. 반야봉정상(01:30)에 올라서니 위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새벽 한 밤중에 산정에서 만나니 서로가 서먹하고 신경이 써인다. 반야봉 정상에서 비박하는 남녀 등산인을 만났다.

처음 인사할 때 한 사람인 줄 알았는 데 조금 뒤에 여자분이 천막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것이 아닌가. 아마 놀란 모양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으로 못 본체 하고 옆으로 나와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반야봉 산정에서 사방을 바라 보았다. 남북으로 구름이 횡단하니 노고단의 모습이 왔다가 사라진다. 뒤이어 별 무리가 쏟아진다. 반야운무의 신비감이 잔잔히 남는 하산길에는 중천에 떠 있는 별빛이 앞길을 환하게 열어준다. 헤드랜턴을 꺼고 내려 온다.

노루목으로 돌아오는 샛길에서 삼도봉으로 난 비탈진 길로 내려와 삼도봉(02:30)에 도착했다. 삼각뿔의 독특한 표지석으로 삼도를 상징한 너럭바위에서 목을 축이고 김밥으로 힘를 충전했다. 다시 화개재로 방향을 잡고 걷는다. 통나무 계단길을 밟고 내려오는데 끝이 없다. 팔 다리를 가볍게하고 딛고 내려서니 한결 기분이 가뿐하다.


뱀사골산장으로 가지 않고 곧장 토끼봉을 향한다. 비탈진 오르막 길을 올라 토끼봉에 이르는 가파른 길을 단숨에 오른다. 토기봉(03:30)을 내려와 숲길를 걷다가 또 한봉우리를 오르고 명선봉으로 오르는 길위에서 배낭을 베게 삼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1시간 즘 지났을까 눈을 떴다

다시 낙옆이 두껍게 갈린 길위에 섰다. 지리산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산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으로 한 동안 걸었다. 우편의 바위 안부를 올라 내려서니 왼쪽의 우묵한 곳, 바위아래 샘터가 있다. 물이 말라 있어서 곧장 등산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길을 구분 할수 없다.

주위는 쥐죽은듯 고요하다. 순간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가다 듬었다. 독도에 주의를 집중했지만 야간산행 인지라 길을 잘못 찾아든 것이다. 이럴 때는 초심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가장 확실한 지점인 바위 안부로 되돌아 나왔다. 알고 보니 바위 아래 샘터는 총각샘 이었다.

아침이 부옇게 밝아 올때 즘 연하천으로 내려가는 긴 계단길이 나왔다. 연하천산장(06:00) 샘터의 물맛은 소박한 산장에 걸맞게 정말 기막히다. 대개 지리산 종주길에 나선 산꾼이 종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 샘터는 잊을 수없다. 맛도 맛이지만 수량또한 풍부하다. 그래서 얼굴도 닦고 양치질도 했다. 지난번 처녀 산행에서 이곳 산장지기는 다음에 오면 노을이 질때즘 피어 오르는 연하선경을 꼭 보라고 했다.

산장앞 통나무 의자에 앉아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일출을 보기위해 서둘러 산장을 출발했다. 구상나무 군락지의 보호철책길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삼각봉 산마루로 향했다. 삼각봉 못 미쳐 앞이 탁 트인 산마루의 바위에 걸터 앉았다. 뒤이어 저멀리 붉은 선이 구름사이로 하늘로 솟아 오른다. 정말 황홀하고 멋진 일출이다. 구름에 좀 가렸지만 황홍색 검붉은 빛이 솟아 오른다.


일출을 보고 난 후에 다시 삼각봉으로 가는 길은 예사롭지 않다. 지금까지는 어렵지 않게 산행을 했는데 허벅지 부근에 통증이 느껴지고 발바닥이 편하지 못하다. 이번 종주에 앞서 산행다운 산행을 하지 못하고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5년전 나는 화엄사-노고단-반야봉-천왕봉-중산리 코스의 지리산 야간종주산행에서 무박 2일로 23시간 30분만에 산행을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별 준비없이 마음만 앞서 지리산을 찾아 왔다. 지리산을 보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말이다.

이후의 나의 산행은 혹독한 시련과 톡톡한 대가를 치루어야 만 했다. 해돋이의 장관을 보기 위해서 30분간 쉰 것이 화근이었다. 삼각봉 길은 평탄한 길이라 그럭저럭 갔지만 삼각봉를 지나면서 부터는 다리가 후들 거리기 시작했다.

뒤 돌아 보니 삼각봉 산자락과 빗점골에는 붉고 때로는 황갈색 단풍물결로 일대에 장관을 이루고 있다.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산장(08:30)에 도착했다. 벽소령 관통도로는 6.25 한국전쟁후 남부군 도벌과정에서 군사적인 목적에서 만들어 진 도로인데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주능선을 갈라놓아 지리산 자연생태면에서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지리산 자연파괴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다.

근래 북쪽 광대골쪽에 지리산자연휴양림이 들어 서면서 더욱 산림이 훼손되었고 경관이 망가 지고 지리산이 오그라 들었다니 지리산을 찾는 이 땅의 산꾼이라면 어찌 울분이 치 솟지 않겠는가. 그나마 관통도로는 지리산 지키미들의 노력으로 공사를 중지 하고 도로 포장계획을 백지화 했다니 다행이다.

우편의 의신마을 쪽의 길은 제법 숲으로 변해있어 생태계가 되살아 나고 있는 모습도 볼수 있다. 산장아래 남쪽 30m지점의 샘터에서 물병에 물울 채우고 다시 올라와 산장앞 통나무 의자에 누웠다. 잠시 몸을 풀고 등산화를 고쳐 신고 양말을 갈아 신고 길을 따르니 웬걸 딛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허벅지의 통증은 좀 잦아 들었지만 발바닥의 물집이 걷는데 어려움을 준다. 참아 내고 덕평봉을 향해 갈 수밖에 없다. 벽소령을 출발 할때 여학생 3명과 함께 출발했는 데 덕평봉 오름길에서 길을 내 주었다. 오른쪽 발아래로 대성골의 끝을 알수 없는 긴 골짜기를 보고, 평평한 너덜지대를 지나 한참을 걸으니 덕평봉 아래 널따란 공터가 나왔다. 일단의 등산인 들이 물을 받고 있다. 선비샘(10:30)이다. 바위위에 앉아 목을 축이고 곧장 일어섰다.

내 앞에 가장 지루하고 힘든 길이 놓여 있다. 지난번 종주시에도 가장 힘든 구간 이었다.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 길이 한참 연이어 나오는 험한 길의 연속이다. 가파른 바위지대와 통나무 계단을 올라 정신없이 영신봉에 올라갔다. 말 그대로 몸속에 있는 진이 다 빠졌다.

날씨가 다시 바뀌어 주위에 안개가 자욱하고 가끔 빗방울도 뿌린다. 이런 뿌연 잿빛 하늘은 천왕봉까지 계속 이어 졌다. 영신봉으로 오르는 통나무 계단길에서 한참을 배낭에 기대고 발을 계단에 올려 놓고 눈을 감고 발바닥과 다리의 통증을 다스리기도 했다. 영신봉을 지나 철쭉 군락지로 이름난 세석평전(13:00)에 도착했을때는 구름이 자욱하게 깔려 시야가 흐려져서 좌우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넉넉하고도 시원스럽게 펼쳐진 세석평전을 구경할 수없어 아쉽다. 길섶에는 세석을 보호하고 되살리기 위해 보호로프가 매어 있고 철쭉보다는 억새와 키 큰풀로 뒤 덮여 있었다. 촛대봉을 지나 연하봉 가는 길에서 본 주위 경관은 점점 기품있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등으로 바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연속되는 곳으로 한계에 도달한 체력과 의지의 시험장 이었다.

다시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운다. 그래도 가야한다. 장터목 산장(15:00)에 당도 했다. 피곤은 누적 되었지만 다시 투지가 샘솟는다. 산장은 붐비고 있었다. 가장 활력 넘치고 생동감이 느끼지는 산장중의 산장이 바로 장터목이다.

나무의자에 걸터 앉아 지나온 여정을 뒤 돌아 보았다. 천왕봉 산행을 마치고 다시 노고단으로 되 돌아 가겠다는 1차 계획은 포기하고 내일 날이 좋으면 천왕봉 일출을 보고 중산리로 하산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산장의 숙박을 물어니 예약하지 않았다면 오후 5시에 와서 입실절차를 밟으면 숙박이 된다고 한다.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수는 없어서 배낭을 메었다.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제석봉으로 향했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경사진 비탈길을 올랐다. 다리는 천근 만근 이지만 길 가장자리의 목책을 잡고 의지하며 한발 한발 딛고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통과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제석봉 오르막 길에서 천왕봉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는 여성 등산인 한분이 격려를 해주면서 안스러운지 땅콩을 손에 지어 준다. “이제 다 왔으니 힘 내세요”. 정말 고맙다 지리산 종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잘 하산할 것을 당부했다. 다시 기운이 솟는다.

살아 있는 생명체라곤 키 작은 풀과 초목밖에 없던 제석봉 고사목지대에도 이제 구상나무, 잣나무등이 자라 야생꽃도 여기 저기 피어 있고 풀은 억새숲으로 복원되고 있었다. 놀라운 자연의 생명력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죽으서도 자취를 남기는 고사목의 애한이 서린 이곳, 구상나무 주목 잣나무 등의 천혜의 원시림으로 우거진 이곳이 6.25 이후 벌목업자들이 도벌과 산불로 이중으로 파괴한 자연 훼손현장이 고사목이라는 안내문을 보고 있으니 인간의 탐욕에 아연실색 할 뿐이다.

제석봉을 내려와 다시 오르니 통천문이 나타났다. 철계단을 딛고 올라간다. 마지막 경사길 비탈진 바위지대를 올라 천왕봉 정상(16:10)에 발을 딛었다. 성삼재에서 출발한지 19시간 10분이 지났다. 무박 2일간 쉬지않고 앞만 보고 걸어 남한 육지부 최고봉, 1915m봉에 발을 딛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는 智異山 天王峰 백두대간의 출발점이다.

정상에는 강한 바람이 매섭게 휘 몰아 치고 있고,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온통 뒤덮여 뿌연 안개로 주변을 분간 할수 없기에 칠선계곡의 비경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몸과 마음이 두둥실 떠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주위를 내려 보고 있는데 4.5명의 등산일행이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내키지 않지만 한 컷 두 컷을 찍어 주었다.

천왕봉에서 하산하는 발걸음은 그렇게 가벼울수 없고 다리와 발바닥의 통증과 물집도 간곳 없다. 서둘러 하산을 했다. 장터목산장에 5시까지 도착하여 입실 절차를 받아야 한다. 잰 걸음으로 바위지대를 내려온다.

제석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휴가를 받아 홀로 지리산 종주산행에 나서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으로 하산하는 서울에서 온 젊은 등산인을 만났다. 서로 산행의 경험을 나누고 금방 친구가 되었다. 산장에서 숙박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그 분의 호의와 도움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뜻하지 않게 신세를 졌는데 그 분과 변변한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이 지면을 통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산장에서 입실절차를 밟고, 통나무집 2층으로 된 목재침상 1층바닥에, 담요 두장을 펴고 그대로 침상에 몸을 던졌다. 팔 다리도 아프고 심신이 지쳐 있는 나는 이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잠을 깼다. 간밤은 정말 따뜻하고 편안한 밤이었다. 호텔 같은 산장에서 하루밤을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산장(04:10)에서 산화샘터로 내려와 시원한 물 맛으로 목을 축이고 급경사 돌로 된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 온다. 간간히 비가 뿌리는 안개 자욱한 새벽의 날씨로 볼때 천왕봉 일출은 불가능하다.

잿빛 이른 새벽에 길을 나서기가 두렵다. 안개가 앞을 가려 지척을 분간 할수 없다. 간간히 비가 뿌리는 하산 길,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유암폭포 길로 중산리를 향해 내려 간다. 계곡을 가로 질러 놓인 통나무 다리도 건너고 출렁다리를 지나 깊섶에 산죽이 지천으로 깔린 등산로를 찾아 내려오니 조금씩 땀이 났다. 땀이 나니 무섭지 않다. 홈바위의 너덜지대를 지나오니 안개가 걷히기 시작한다.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와 법계사길과 만나기 200m 전 마지막 목재교량을 지나 계곡물 소리가 너무 좋아 계곡으로 내려 갔다. 새벽의 차거운 계곡물에 머리 감고 발도 씻고. 몸을 담갔다. 범벅이 된 땀을 닥고 다시 등산화끈을 고쳐 매었다. 칼바위(06:30)를 지나니 제법 빗방울이 커지고 비는 쉼없이 내린다.

중산리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니 이쪽을 향해 젊은 등산인들이 올라온다. 다들 우의를 입고 산을 오른다. 다음 지리산에 올때는 꼭 우의를 준비해서 와야 겠다. 중산리(07:30)에서 아침 8시 진주행버스를 기다리면서 정류소옆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곁들여 아침식사를 했다.

단숨에 밥그릇을 비우니 밥 한그릇을 더 주신다. 추가 밥은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인심이 넉넉 하냐. 정말 훈훈한 마음씨가 고맙다. 하동을 경유하고 구례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성삼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암재휴게소에서 도착하니 오후2시가 되었다. 진주로 나와 이곳까지 오는데 6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섬진강변의 섬진청류(지리산10경)를 바라보며 물길을 거슬러 가는 길은 또 다른 감동을 가져다 주었고, 지나오는 도중에 훈훈한 우리 이웃의 인심을 보았다.

시계줄을 공짜로 고쳐준 하동 시계점 주인의 인심, (*중산리 하산길에 넘어져 시계줄이 끈어 졌다. 하동정류소부근 시계점에서 지리산 종주길에 시계줄이 끊어 졌다니 선뜻 공짜로 고쳐주지 않은가.) 성삼재행 버스기사의 지리산에 대한 사랑도 보았다. 모두가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 곳곳에 있었다.

집으로 오는 차안에서 3일간의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육체의 피로는 간 곳 없고, 산행 기억을 더듬고 좇았다. 다음 지리산 종주를 벌써 그리워 하며 말할수 없는 보람과 성취감이 찾아 온다, 마음 편하게 88고속국도로 차를 몰았다.

지리산이 언제 또 나를 부를지는 모르지만 그 때는 좀더 빠른 걸음으로 여유를 갖고 덕담도 더 많이 나누며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야간산행을 하고 싶다. 그 때는 꼭 연하천산장에서 해질녘 연하선경을 보고 싶다. 그 때에는 산장주인과 산꾼들과 더불어 밤세워 산 사나이들 만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다.

(2004. 1.23金.)
▣ 산거북이 - 검푸른 야간산행의 단색조 이미지가 눈에 잘 그려집니다. 다음날의 허벅지 통증도 실감나고요... 지리산 무박종주를 홀로하시니 그 고적함을 즐기시는 성향이 어렴풋하게 그려집니다. 역사성과 옛것에서 의미를 엮어내시는 일련의 경향도 뚜렷하시고요. 자주 올려주십시오. 저는 이렇게 호흡이 차분하면서 빽빽한 글(?)을 무척 좋아합니다.
▣ 자경산인 - 부족한 산꾼의 초보산행기에 너무 좋은 말씀 해주시니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님의 사진산행기는 정말 놀랍습니다.조망하는 즐거움은 너무나 좋구요. 이번에도 관심을 가져 주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