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흘림골 겨울스케치
언제 : 2005년 1월 9일
누구랑 : 사계절 산악회 따라
어디로: 한계령-- 흘림골 매표소 --여심폭포 --등선대--무명폭포(?)--12폭포--주전골(용소폭포--선녀탕--제2오색약수)--성국사터--오색매표소( 3시간 소요 )

 

설악산 흘림골!
난 설악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직도 멀치서 바라본 대청봉과 거대한 울산바위, 비선대와 비룡폭포, 신선대, 십이 선녀탕, 흔들바위 정도가 설악의 이력서 일뿐이다.
여기에 오늘 흘림골과 주전골 한 줄을 더 삽입하고자 한다

 

어둠을 가르며 달려온 버스는 한계령을 넘으면서 마지막 힘을 다할 즈음 차안은 부산한 움직임이 시작 되었다. 한계령 내리막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오늘의 등산기점이라는 안내방송 때문인 듯 하다.
아이젠과, 스페츠를 꺼내들었다.


눈이 유난히도 눈이 많은 강원도의 겨울이라 잔뜩 기대에 부풀어 성애 낀 차창을 입김으로 녹이며 바라본 설악은 백색외투를 걸친 겨울 속의 설(雪) 산이 아니라 속살을 덩그러이 드러내 놓고 추위에 떨고 있는 나체로 서 있었다..

유난히도 눈이 적은 을유년 겨울. 그래서인지 설악의 겨울이 더 추워 보이고 나무들도 더 추위에 떨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얀 눈이라도 덮고 있으면, 찬바람을 맨살로 부딪히지는 않을텐데.
버스가 멈추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리니 차거운 겨울바람이 뺨을 때리며 환영을 한다.
추운 날씨라 하지만 예년의 겨울에 비하면 추운것도 아닌 것 같다.
겨울산행의 맛은, 눈 위를 걸으며 뽀드득 뽀드득 들려주는 겨울 노래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상고대 속을 추위와 싸우면서 시린 손과 발을 비비고, 구르며, 얇은 햇살의 고마움을 느끼려 양지바른 곳을 찾아 발갛게 익은 얼굴을 부비고, 눈 위에 새겨진 발자욱을 헤아려보는 것이리라.

 

흘림골! 1984년 인간의 발걸음에 의해 찢어지고, 망가진 계곡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고 생각한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등산로를 폐쇄하고 인간의 손과 발을 거부한 체 자연 휴식년에 들어간지 20년이 지난 2004년 9월,  강산이 변해도 두번이나 변했을 20년의 세월을 자신을 파괴한 인간을 용서하며, 다시 인간에게 다가서려는 몸부림으로 상처 난 속살을 치료하고, 새살을 만든 끝에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온 설악산 흘림골!

통나무로 지어진 작은 매표소를 지나며 설레는 마음을 다잡았다.
20년동안 숨겨진 속살을 다시 내 보일때의 흘림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제 내린 눈인지 모르지만 잔설이 여기저기 흩어져 조금은 주의를 기울이며 걸어야 했고, 바위가 등산로 주위를 뒤덮고있어, 쉽게는 몸을 허락하지 들지 않았다.


등선대로 향하는 길을 수많은 사람이 다녀갔는지 선명하게 등산로가 나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무색 할 정도였다.
이낀낀 돌들과, 고목들만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었지만 등산로 주위는 이미 파괴의 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심(女心)폭포까지 오르는데는 얼마의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10여분)
원숙한 여인의 은밀한 부분을 달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이라 하얀 물기둥 대신 얼음기둥을 드리우고 있었다. 아마도 얼음장 속으로는 물이 떨어지고 있으리라. 주흘산 여궁폭포가 성숙한 여인이라면, 흘림골 여심 폭포는 조숙한 아가씨 같다. 한때는 신혼부부들이 이곳에 들러 물을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고 하여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았다는데, 아들보다 딸이 좋은 세상이고 보니 신혼부부들이 힘들게 다리품을 팔아 이곳에 오는 풍경은 더 이상 보기가 힘들어질 것 같았다. 한참 서서 눈속으로 그려 넣고는(누가 봤으면 싱그운 사람이라 했겠지) 등선대로 향해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흘림골을 지나면서도 왜, 무엇 때문에 자연 휴식년을 했는지, 20년동안 무엇이 복원되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등선대!
이미 먼저 온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가파른 고개 마루에 양지를 찾아 식사를 하는 산꾼들의 조잘거림이 조용한 겨울산의 오염중의 오염이 아닐까?
20년의 침묵과 고요속에 살았을 고개이고 보면 소음은 오염중에 오염이리라.
왼쪽 등선대가 위용을 자랑하듯 서 있다.


만물상의 정상(?)이라는데 대청봉과 점봉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라는데 조망을 포기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어 무명폭포까지 단숨에 달렸다. 등선대를 지나면서 만물상의 모습들이 하나둘 자태를 들어내며 맘껏 몸매를 자랑한다. 연신 감탄사를 남발해 보지만 들어 줄 사람은 나와 산 뿐이다.
 가끔 등산로 주위에 세월의 무게를 말해 주는 듯 아름드리 고목들이 곳곳에 쓰러지며 빗어낸 풍경에 가던 길을 멈추게 만든다.
무명폭포를 지나 12폭까지는 미끄러운 얼음길이 곳곳에 널려있어 조금은 조심하면서 걸었다.
주전골로 이어지는 12폭은 거대한 얼음 기둥이었다.
수량이 부복한 탓일까 얼음의 두께는 그다지 두꺼워보이지 않았지만 철계단으로 이어진 계곡은 가히 절경이었다. 물이 떨어지는 여름, 아니 만산홍엽으로 뒤덥힌 가을에 이곳에 섯 다면 어떠했을까? 눈이 없는 겨울의 계곡은 그야말로 앙상한 갈비살에 붙어있는 군더더기 살과 같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목사이로 바위의 위용을 구석구석 감상할 수 있어 위안중의 위안이었다.


어디서 흘림골이 끝나고 주전골이 시작되는지 표시가 없다.
12폭을 뒤로하고 용소폭포 내려가는 길은 좌우전후 펼쳐진 조망에 눈이 즐겁고, 발걸음은 가벼웠으며, 입은 흥얼거리며 풍광에 푹 빠져들었다.
용소폭포에 도착하니 제법 계곡이 넓어지고, 계곡의 펼쳐진 소(沼)에는 두꺼운 얼음으로 뒤덥혀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용소에는 오색에서 올라온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눈에 띈다.
작은 폭포지만 역시 얼음띠를 두른 체 속으로만 울고 있었다. 이곳이 설악에서 가장 단풍이 아름답다는 주전골의 가운데란 말인가?
단풍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고 앙상한 가지에 겨울바람만 모질게도 불어대고 있다.


용소에서의 감상도 잠시 선녀탕으로 향했다.
여름이라면 풍덩 뛰어 들고 싶은 소에도 얼음이 덥혀 있었고 선녀의 용돈인지 소(沼) 바닥에는 동전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조심스레 내려가 얼음 위에 올랐다.
찡!~~~ 겨울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봄을 기다리는 인고의 소리리라.
한번 휙~~~ 발 미끄럼을 타고는 등산로로 다시 놀랐다.
제2약수터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선녀탕에서 300M)
선녀들이 목욕을 하다 목을 축이는 곳일까?
계곡의 암반 위에 작은 홈 두개를 만들어 놓고 빨간 표주박을 머리에 인체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설악의 오색약수!
한 모금 들이키니 철분이 녹아 있는 물이라 뒷맛이 습슬하다.
당뇨병 고혈압 위장에 좋다니 한 모금 더 마시고, 물병에 담아 배낭에 넣었다.
산행하면서 생긴 습관 중에 유일하게 가족에게 선물하는 것이 산행지의 물 한잔이다.
무병장수를 바라지는 않지만 년초에 약수 한잔을 마셨으니 올 한해도 건강하기를 기원하며 하산 길을 재촉하는데 전혀 고풍스럽지 않은 한옥 한 체를 만났다.


성국사터다.
말 그대로 터이고 보니 아직은 요사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한 스님의 불력(佛力)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기원하며 삼배를 올렸다.
계곡이 넓어지고 길이 넓어지나 싶더니 오색 매표소다.

매표소 앞 설악의 안내판을 읽으며 오늘 걸어온 길을 회고해 보았다.


흘림골과 주전골.
더 이상 인간에 의해 훼손되지 않고 산님들의 친구로 항상 곁에 남아 있기를 기원하며 오늘 산행기를 매듭짓는다.

 

--산님들 새해도 즐산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