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석문봉(677m) 정상에서.

* 가야산 산행기 *
일상의 허잡스러운 것들이 나의 내면속에서 하나 둘씩 쌓이면 나는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여 산으로 간다.
지난 토요일(3/12) 새벽,동변상련(同病相憐)의 산병(病)을 앓고있는
산친구와 충남 서산에 있는 가야산(677m)으로 출발하였다.
이른 새벽길이라 서해고속도로는 한가롭다.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휴개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목적지(가야산)를 향하여
바로 출발하였다.
차창밖으로 흐르고 있는 풍경들은 아직은 겨울이다.
하지만 산행 들머리인 상가리에 도착하여 주변을 휘둘러보니 봄은
버드나무 가지끝에 소담스럼게 와 있었다.
남연군묘소옆 등산로 길섶에는 봄의 전령이라는 복수초가 묵은
가랑잎을 뚫고 노란미소를 머금고 수즙은듯이 반기도 있다.
잠시 복수초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름길은 유순한듯 가파르다. 몰아 숨쉬기를 여러번 거듭하고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때쯤 옥양봉(621m)에 올랐다.
한시간 정도의 다리품만큼 아래를 휘둘러 보는 상큼함을 맛보며
올라온 길을 뒤돌아 보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 오늘도 산은 나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조화로운 상태에 머물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의 등산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시간동안 내가
영혼의 신비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내가 전혀 모르는 자아를 찾아 나선다는 것을 끊임없이 깨닫게
하여 주었다. 산행을 하는 시간동안 난 종교와 같은 성스러운
느낌속으로 돌아간다. 그때 나는 늘 다시 '참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등산은 때로 번거롭고 지루한 운동일수도 있다. 그러나 등산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계절의 변화는 스스로 존재하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것으로부터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오감)를 배운
다면 결코 등산은 무미건조 한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참나'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을 거처야 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삶의 방법를 다시 찾으려면 올바른 삶의
방법을 잊기전 우리 몸의 상태로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몸안에서 즐거워 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 즐거움이란 말로 설명하기 곤란하지만,더 없는 육체의
피곤(나른함)속에서 새롭게 태여나는 듯한 느낌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산행은 신체를 정화 시킬뿐 아니라 머리속 생각들을
명확하게 해 주며,분화되지 않은 행동을 알려주는 [상선약수]
와 같은 것이다.

 

옥양봉에서 부터는 서산 천수만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에
부딧기며 몇차례 오르내기를 반복하여 석문봉(653m)에
도착하였다. 정상 표지석이 있는 바위 부근에는 개심사와
일락사쪽에서 먼저 올라온 산행객들이 매서운 칼바람을 불평
하며 곧 바로 하산하고 잇었다. 그네들이 떠나가자 정상은
우리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기념사진도 찍고,주변의 산과
지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음,내가 가져간 마가목주로
정상주로 나누고 원래의 가야산 정상인 통신탑(가야봉677m)
으로 향하였다.
가야봉 정상은 통신탑이 있으므로 철조망까지 산행하고
철조망 옆으로 빙 돌아서 헬기장까지 가서 상가리 쪽으로
하산 하였다.

 

가야산은 희대의 명지관이 점지한 명당이 있는 곳이 바로
상가리 자락이다. 조선시대의 명지관인 '정만인'이 점지한
남연군묘와 [육관도사]라 불리는 현대의 풍수지리 도사인
'손석우'의 묘가 있는 곳이다.
남연군묘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풍수지리설을 믿고 '정만인'
이 2대에 걸처 천자가 나올자리라고 점지해준 자리에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장한 곳이다.그러나 지관이 점지해준 자리는
원래 가야사 절이 있던 자리였고 무덤자리에는 탑이 있었다.
대원군은 1846년 절을 불지르고 탑을 헐어내고 아버지 남연군
묘를 이장하여 예언대로 고종과 순종을 왕위에 올리지만
비운의 왕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육관도사] 손석우는 김일성의 사망을 1년 앞서 예언
하고 95년 김대중 대통령의 부모등 가족묘 이장를 잡아줘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풍수지리가 인데, 그의 묘는 남연군
묘에 비하면 비석하나 없이 초라하게 있어서 그런지 세속적
명당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단지 내가 보기엔 자손들의 평안을 기원할수 있는 소박한
명당 정도로 보였다.

 

4시간의 원점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주변에는
초로의 할머니가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냉이와 달래를
팔고 있기에 한봉지씩 구입하였다. 모양새나 향기로 판별
하건데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 아닌 야생냉이와 달래
이기에 할머니가 가지고 있던 것을 몽땅 떨이 하였다.
돌아가 주위의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봄내음 물씬 풍기는 냉이와 달래로 무치고 국끓여 먹을
생각을 하니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서둘러 차를 간월도로
향하였다.


예상대로 간월도에는 거침없는 매섭고 애린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래도 3월의 춘풍이라 바람끝에는 봄이
주렁주렁매달려 우리를 반겨주는듯 하였다.
어디쯤에 있을까 ? 두리번 거릴것도 없이 [까꾸리]을 보았고
그 집앞에 차를 일사분란하게 주차를 하니 함께간 친구가
아는 집이냐는 듯 눈으로 묻고 있다...^^*흐흐흐
간단하게 [굴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친구가 음식점
차림표를 흩어보며 이 집은 [굴밥]이 전문이 아니듯 한데
어찌 이 집으로 들어와 [굴밥]을 먹으려 하느냐고 정식으로
묻는다.
그래서 친구에게 [굴밥]이 나올때까지(30분 정도) 굴에 대한
일반적 상식에서 전문적 지식까지 콩나라 팥나라 설명해 주고
간월도의 굴이 전국 제일인 까땋과 [굴밥]의 평가는 먹어본
후에 하라고 했다.
[굴밥]를 다 먹은후에 친구가 말하였다.
"흐흐흐 자식 ! 아주 멋진 곳을 알고 있었군.
가격/만점, 맛/만점, 량/만점이야!!!"
라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만족스러운 [굴밥]을 먹고
바람부는 간월암으로 갔다. 너무 맛있게 먹은 [굴밥]
때문인지 예전에 느꼈던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간월암에
보이지 않았다.
차를 돌려 꽃지로 향하였다.
흐린 하늘에 거친바람으로 바다는 몸부림치며 할매와
할망바위를 못살게 하고 있었다.
꽃지의 대표적 아름다움인 일몰은 아무래도 물 건너
간것 같아서 잠시 머문후 서울로 향하였다.

                      2005. 3. 16.  휘뚜루.

*행담도에서 본 서해대교.

*행담 휴개소.

*산행 들머리에 있는 안내도.

*석문봉 정상에서 본 통신탑(가야봉).

*석문봉 정상표석.

*석문봉에서 본 옥양봉 능선.

*한서대학교 전경.

*석문봉 부근에서 본 상가리 저수지 전경.

*헬기장의 솟대.

*상가리에서 올려다 본 가야산 통신탑.

*남연군묘소.

*계곡에 핀 버들강아지.

*간월암 전경.

*간월암.

*까꾸리집 전경.

*까꾸리집 차림표(차림표에는 굴밥이 없음)

*2005.3.12.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