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freeMT

백운봉(940m)산행기

▶일시: 2005년 3월 15일(火) ▶양평산악연맹 등산교실 100회 기념산행

▶참석인원: 약40명

화강암 백석에 백운봉(白雲峰 940m)이라 백두산에서 돌과 흙을 공수해 통일암 (統一岩) 을 새긴 상징 석단이 정수리에 설치되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양평일대는 남한강 큰 줄기 (大水流)와 용문산 산악군(山嶽群)이 조화롭게 어울려져 평화로운 고을을 빚어냈다.


 

양평골! 전에 양근군과 지평군을 통합하여 1908년 양평군이 탄생하고 1979년 양평면이 읍(邑)으로 승격 1읍 산하에 11개 면 양평읍과 강상면(江上面)·강하면(江下面)·양서면(楊西面)·옥천면(玉泉面)·서종면·단월면(丹月面)·청운면(靑雲面)·양동면(楊東面)·지제면(砥堤面)·용문면(龍門面)·개군면(介軍面)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두가 조망되는 백운봉정상! 지존용문산이 영혈의 맥을 이곳 백운봉에 집결시켜 고루 빗살 나는 양평을 세우니 천기와 지기의 인재들이 백운처럼 일어나 고을을 빚내도다!

~~~~~~~~~~~~~~~~~~~~~~~~~~~~~~~~~~~~~~~~~~~~~~~~~~~

09:00시 양평시내에 접어드니 하늘을 받들고 있는 우람한 삼각봉이 범상한 준엄함으로 와 닿는다. 37번국도 청평으로 길목을 잡아 신애리 마을회관을 경유해 일방통행로인 마을길을 가니 주차장이 있고 그곳에서 약2km가니 사나사(舍那寺)다. 우리를 기다리는 양평산악연맹 지인들이 형제를 대하듯 반갑게 맞이한다. 신운희 회장님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뒤이어 간단히 산행멘트로 09:50분 들머리에 접어든다.


 

양편에 길다란 타원의 산맥이 진을치고 호로병 분지에 천년사찰 사나사가 자리하고 있다. 김영식대원 하고 사나사 경내를 보고 입구에서 D카로 기록을 남긴다.

사나사! (문헌: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923년 고려 태조의 국정을 자문한 대경국사(大鏡國師) 여엄(麗嚴)이 제자 융천(融闡)과 함께 세운 절이다. 1367년(공민왕 16) 보우(普愚)가 다시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그 후 1698년 덕조(德照)가 다시 지었으며, 1907년 의병과 관군이 싸우던 중에 모두 불에 탔다. 1909년과 1937년 다시 고쳐지었으며, 1993년에 정면 4칸, 측면 3칸의 대적광전을 새로 지었다. 문화재로는 사나사원증국사석종(경기도유형문화재 72)과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경기도유형문화재 73)가 전한다.1978년 10월 10일에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었다. 사나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나사를 뒤로하여 함양골을 오른다. 앞서간 님 들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수려한 계곡 양편의 절경을 내 눈 속에 넣는다. 삼거리 직전하면 용문산가는길 우측 계류방향으로 함양성지-함양산 이정표가 있다. 계류에 접어드니 투명한 1급수가 봄을 재촉하는 맑은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다시금 백운봉 오르는 이정표를 지나 함양산 방향으로 치고 오른다. 잠시 후 줄지어 오르는 일행 후미에 합류하고 힘들어하는 아주머니와 인솔하신 신운희 회장님, 윤덕선 사무국장님을 추월해 함양성지터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함양성지(문헌:1990년 9월 6일 경기도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함왕성은 함공성(咸公城)·양근성·함씨대왕성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 축성되었으나 정확한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용문산(龍門山) 줄기의 해발 740m 지점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사나사(舍那寺)에서 약 1㎞ 떨어져 있으며, 성터로 올라가는 길은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사나사가 있는 절골 마을에서 북동쪽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절골의 북서쪽 능선에 있는 큰골마을에서 시작되는 산길이다.

*사나사 입구 계곡에는 ‘함왕혈(咸王穴)’이라는 큰 바위굴이 있는데 여기에서 삼한 초기 함왕(咸王) 주악(周鍔)이 탄생하였고, 그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을 쌓고 부근을 정복하여 왕이 되었으나 뒤에 삼한에 의해 멸망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4차 침입 때 인근 주민들이 이 성으로 피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내성 둘레는 2㎞에 이르고, 외벽은 천연적인 바위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축성 둘레가 29,058척(약 8,800m)에 이르렀지만 현재는 700m 정도만 남아 있으며, 북서쪽 성역은 보존이 잘된 편이다.

*성의 주요한 유구인 장태지(將台址)가 성의 북쪽(크기 15m×10m)과 서쪽(크기 25m×20m)에 남아 있고, 서쪽 장태지 옆에 있는 성역은 높이가 1.6m나 되며, 이곳의 능선에 성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성지에는 돌무덤이 있는데 자연석 단층 쌓기 방식으로 축성되었다.

*성의 산꼭대기 북쪽에는 60m×40m 면적의 터가 있는데, 주춧돌로 이용된 듯한 편평한 큰 돌과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어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터 옆에는 성에서 유일하게 물을 구할 수 있는 우물이 있으며, 건물터에서 서쪽을 보면 멀리 한강 너머 백병산이 보이고, 가까이는 양평읍과 옥천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한강을 중심으로 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함양성지 터를 지나니 우물터가 있고 한사발정도 고인물이 얼어있다. 가는 겨울이 아쉬울까? 북서면 음지에 잔설이 남아 가는 걸음을 붙잡고 있다. 삼거리안부능선, 좌측 북(北)으로 가면 함왕산-용문산 가는 길이요 우리는 우측(南)으로 856봉을 지나 암봉인 865에 닿는다. 목단이 설치되어 매우 훌륭한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급경사 내리막 칼날 같은 암릉이 매우 위험하다. 조심스레 내려서니 형제약수 삼거리를 지나 잘 다듬어진 등로를 날을 듯 봉우리 하나를 넘어서니 조광명씨와 양평연맹대장님이 백운봉을 경유해 내려오신다. 반갑게 조우하고 급경사 오르막을 올려친다. 그러고 보니 몇 년전에 이곳을 지나간 추억이 떠오른다. 비슬재-도일봉안부-싸리재-폭산(992m)-문례재-용문산기재 철조망을 트레파스하여-1.135m 한강기맥 분기봉-함왕산-백운봉-헬기장을 경유해 37번국도로 하루 왼 종일 걸었던 기억! 그때의 등로는 말 그대로 짐승이 다니던 길이였는데 이처럼 훌륭히 등로가 변화되어 있으니 참으로 양평군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이와 같이 변화된 동기는 양평산악연맹이 대대손손 산을 보호하고 물려주어야 할 자연유산이기에 앞선 산악문화를 접목

친 자연주의를 선택함이 아니겠는가? 지대한 공헌을 한 연맹에 존경의 예로서 감사를 드린다.


 

코가 바위에 부딪히듯 잘 메어진 로프를 잡고 전에 없던 철계단을 오르니 11:35분백운봉 정상 신천지가 열리듯 양평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이다. 북으로 지존 용문산기지와 어비산-대부산-유명산-소구니 그 옆에 중미와 그 아래 우뚝한 청계의 준수한 산군들이 구릉을 박차고 솟구쳐있다. 한강의 유역이 우리수도 천년의 서울을 잉태하여 찬란한 기상을 펼치듯 강이 흐르고 한강기맥을 품은 양평역시 보배로운 기상이 살아있음이니!............


 

속속들이 정상에 운집한다. 영험한 백운봉 탑신 앞에 모두가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제단이 설치되어 만사만봉께 지극한 예를 올린다. 양평산악연맹 등산교실 100회특집 용문봉 등정 한국등산중앙연합회 자유인동지들과 월간 산 전속화백이신 곽화백님과 재경 양평동지들 그리고 현직 임원 및 회원들과 백운봉에 핀 아름다운 100회 등정은 잊을 수 없는 고귀한 추억으로 자리하리라.

이분들이 있기에 양평산하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동산이 되리라 확신하며 150회 200회 300회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해 보리라! 재삼 환대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렁찬 만세를 백운봉에 남기고 헬기장을 경유해 두리봉(575m)을 거처 백안3리

약수사에 떨어지니 14:00시경 봄기운이 완연한 계곡수와 물오른 나목의 생기! 그리고 저물어가는 동장군의 실태를 느끼며 갈무리한다.


 

▶코스: 사나사-계곡합수점-함양성지터-샘터-능선3거리-856-865-수둑골안부-형제약수3거리-백운봉-갈림길-헬기장-두리봉(575m)-525봉-백안3리 약수사

▶도상거리: 7.6km  ▶소요시간: 4시간소요 *휴식시간 *산제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