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면 죽는 다는 것도 모른 체 (염초봉)

언제 : 2005년 3월 20일

어디로: 북한산성매표소--원효봉---염초1봉--염초 2봉--백운대

누구와 : 나와 그림자 그리고 기환님


지난주 원효봉으로 해서 여우굴 거쳐 백운대를 오르면서 왼쪽에 길게 누운 염초봉을 바라보며 한없는 구애의 손짓을 보냈지만 염초는 말이 없고 내 마음만 애간장을 태웠다.

꼭 오르겠다고 다짐을 하고 일요일만 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은 시간을 빠르게 보내는 마술을 부리는 것일까, 일요일이 금방 내 앞에 다가 왔다.

이번주만 혼자서 산에 간다는 허락을 받고서는 무작정 배낭을 메고 구파발로 향했다.

비록 장비는 없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귀인을 만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 앞서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여전히 구파발은 붐비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즐 뒤에 서서  혹시나 지난주에 만난 산꾼을 만날 수 있을까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보이지 않는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서야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몸을 비틀 수 없을 정도의 복잡한 공간이지만 여간 다행스런운 것이 아니었다.

혼자 가면 늘 시간에 제약을 받다보니 조금이라도 절약 할 수 밖에 없다.

산성매표소에서 매표를 하고 계곡 탐방로를 따라 오른다.

덕암사 미륵님이 오늘도 소나무 위로 고개를 치켜들고 누가 오나 지켜보고 서 있다. 희미한 길이 말해 주듯 산꾼들의 발걸음이 적은 곳이다.

오늘은 큰맘을 먹었으니 슬랩지대를 타고 오른다.

날씨 탓인지 지난주 보다 훨씬 많은 산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좋은 예감이다.

오늘은 분명 귀인을 만나 염초를 오를 기회가 닿기를 기원했다.

출입금지 동아줄을 넘어서 조금 오르면 첫 번째 슬랩이 나온다. 지난번 올라간 곳이라 쉽게 통과한다.

슬랩을 오르니 다리에 실리는 힘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슬랩.

오늘 컨디션을 체크할 수 있는 곳이다. 감이 좋다.

지난주보다 많은 사람들이 끙끙거리며 오르고 있다. 리더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니 힘이 더 생긴다.

첫 번째 슬랩을 지나고 나면 일면 땀바위(?) 슬랩이다.

대충 6-70m정도의 슬랩으로 오르면 이마에 땀이 솟기에 붙여진 이름 같다.

아기자기한 바위 길을 오르다 보니 정상 아래에 선다.

아직도 따라갈 리더를 못 만났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혹시 못 만나 또 우회를 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어쩌나 하고.

북문을 지나 염초 1봉을 향해 오르면서도 혹시나 동반자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주위를 살폈다.

직벽을 만날때까지도 만나지 못했다.

지난주 이곳에서 우회하여 시발 크럽쪽으로 돌아간 지점이다.

‘이곳부터는 위험으로 사고 다발지역으로 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등반을 삼가 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플랫카드를 보니 긴장도 되고 마음이 약해진다.

‘2003년 10명 사망’

그때였다. 직벽을 오르는 산꾼이 눈에 들어 왔다. 혼자다.

기회는 왔다. 잽싸게 뒤따라 오른다. 무섭다는 각도 위험하다는 생각도 없이 무작정 오른다.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체.

직벽을 오르고는 말이 없이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부터 초보도 갈 수 있나요”

“릿지 해보셨어요”

“아뇨, 지난주에 와서 못가서 오늘 가볼려고요”

“장비가 없으면 위험한데, 그래도 갈 수 있어요”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만나랴 싶어 도와달라고 말을 이었다.

보조 장비가 있으니 따라 오란다.

횡재를 한 기분 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리더는 산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북한산 모든 코스를 섭렵했다고 했다. 인수봉의 암벽까지.

난 안심하고 따르기로 하고 시키는 대로 홀더를 잡고 안간힘을 쓰며 따라 갔다.

바위마다 설명을 하는데 받아 적을 시간도 없고 머리로 외울 능력 또한 안 되었다.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다.

염초 1봉을 넘고 성벽을 따라 2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기가 돌았지만 밥을 먹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다.

커피라도 한잔 하려고 했지만 바람골에 가서 마시자며 걷기만 했다.

바람골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따랐다.

정신이 없었다. 잘못하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는데 긴장에 긴장이 될 수밖에.

바람골은 안부였다.

숨은벽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숨은벽 대슬랩에 산꾼들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지난 가을이 생각났다. 숨은벽을 오르며 오금을 절이며 식은땀을 흘린 기억이 떠오른다.

바람골에서 차를 마시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는 친한 친구같이 느껴졌다.

말바위만 지나면 된다며 출발하잖다.

말바위는 양쪽이 낭떠러지 였다.

그야 말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는 곳 이었다.

말바위는 정체되고 있었다. 보조자일을 메어야 하고 안전벨트도 착용을 해야 했다.

말안장 같은 바위를 오르면서 떨어진 얘기를 했다.

무서웠다. 나의 몸에도 보조 자일이 메어지고 안전벨트가 채워졌다.

위로는 백운대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좌측은 숨은벽, 인수봉이 보이고 우측은 여우굴 계곡이다.

 

늘 그렇듯이 사람들을 정상에서 손을 들고 환호를 한다.

난 지금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고 긴장이 되는데.

말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기수처럼 바위등을 붙잡고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자일에 힘이 실리는 힘을 느낄때마다 안전장치가 있다는데 안도감이 느껴졌다.

여우굴 계곡은 아직도 잔설이 남아 있다.

백운대를 향하는 마지막 절벽(?)

 

보조자일에 의지한체 내려와 작은 바위를 타고 오르니 오른쪽에 마당바위다. 눈이 녹지 않고 있어 발이 미끄러지고 위험했다.

마당바위는 포기를 하고 개구멍을 내려서 백운대를 오른다.

정상을 지나 만경대가 보이는 바위처마 밑에서 자리를 잡았다.

허기에 저려오는 팔이며, 긴장된 다리 근육은 쥐가 날 지경다.

컵라면과 떡을 먹으면서도 리더는 산에 대한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만경대의 피아노 바위며, 위문위의 스타바위, 많은 가르침을 주어도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릇이 모자랐다.

 

자신의 경험을 얘기 할 때는 내가 오늘 겁 없이 죽음 앞에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도 없고, 준비도 없이 산에 오르며 마음하나 믿고 릿지로 오르는 내가 얼마나 무모한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도 산신의 가호를 입었겟지.

내려와 막걸리 한잔으로 수강료를 대신했다.

이제는 만경봉을 오르고 싶은데 또 은인을 만날지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