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사량도 지리산 , 칠현산

일  자   :  2005년 3월 19일

날  씨   :  맑음

산행시간 :  6시간 20분

 

 

04 :00   :   대전출발

        (사량도 윗섬)        

07 :40   :   용암포 승선     

08 :05   :   사량도 도착         

08:40    :   돈지산행시작   

09:43    :   지리산

10:05    :   옥동 갈림길  

 (내지:0.6km  , 지리산: 1.3km , 옥동:1.3km  옥녀봉:2.7km)

10:20    :   달바위   

10:30    :   대항갈림길

           (옥동:1.2km , 대항 :1.0km , 지리산 :2.1km 옥녀봉 :0.8km)

10:47    :  가마봉

11:06    :  옥녀봉

12:00    :  금평항 하산

 

        (사량도 아랫섬)

12:10   :  다리호 승선

12;20   :  덕동 등산로 들머리

12:50   :  바다가 보이는 봉우리

13:05   :  칠현산

13;50   :  칠현봉    

14:10   :  망산

14:40   :  하산

 

 

 

 

누가 그랬지

변화를 즐겨라.

세상은 변화로 가득 차 있고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흘려 버리긴  아깝고 소중한 시간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나 고민들이야 세상 살아 가면서

의례껏 따라 붙는 것들이고

그 것 마저 없다면 톡 쏘는 맛이 없는 김빠진 사이다처럼

살아가는 게 닝닝할 수도 있지 않겠나?

어르고 달래도 안 되는 건 그냥 냅싸 두는 것이 좋다.

고민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고

시간이란 원군은 언제나 나의 편이니까.

 

편하게 생각하자

어차피 잠깐 동안 흘러갈  인생들인데

그 옛날 잘나 가던 사람들 죄 죽어 무덤으로 갔지

제왕도 내시도

부자도 가난뱅이도

흙으로 가면 다 똑 같아 지는 걸.

흘러간 세월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렸나?

내가 수학여행에서 처음 만났던 동해바다와

꿈 많던 시절은 그렇게 서둘러 과거의 강으로 흘러 들었다.

바다 위의 섬은 우리보다 더 오래 거기 있어도

우린 바람처럼 왔다가 흔적 없이 가지

그게 자연의 섭리 인 걸

그래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래보다 현재일 뿐이다.

 

떠나도 좋고 머물러도 좋다.

머무른다 한 들 잿빛 둥지에서 깃털을 날릴 일은 없으니

별다른 차이는 없다고 볼 수는 있지만

계절이 변하는 때 근교 수림에 칩거함은 답답함과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엉덩이가 실룩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리는 계절이 돌아 왔다.

봄바람은 헤살거리고 봄 볕은 눈부신 교태로 유혹한다.

남도의 들녘은 봄의 가져다 주는 변화로 분주할 것이고

그 계절의 변화를 먼저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아침에 출근 길을 걸어 가면서 갑천 변 어느새 새파랗게 솟아난 풀 밭을 보니

벌써 가까이 다가온 봄의 모습에 역마살이 달떠온다..

보리와 마늘이 훌쩍 자라 있을 남도 의 봄

 

 

 

토요일  서대산 산행

토요일 부부동반으로 친구들과 서대산에 다녀 왔다.

산세가 가파르고 정상에서 굽어 보는 풍광 말고는 푸근한 산행 길의

멋이 없어서 잘 찾지 않는 곳인데 토요일 오후에 다녀올 만한 곳이라

김 사장이 길을 잡았다.

집사람은 저번에 다녀 온 천둥산 보다 험하다고 했다.

봄의 자취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B 코스로 등정을 했는데 정상을 목전에 두고 마지막 가파르게 일어선

고갯길은 눈이 녹지 않고 여전히 빙판인 채로 미끄럽다.

 

중간 초보자 코스 하산 길을 가는 중에 임릉 우회 구간을 하산 길로

잘 못 알고 내려 가는 통에 여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하늘을 뒤 덮었다.

쌩고생하고 따라 간 길이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암벽을 우회하여

능선에 붙어버렸으니.

내려오는 길은 녹아 내리는 길에서 흙이 떡처럼 등산화에 엉겨 붙고

바지에 튀어 올라 마치 모래주머니를 달고 행군하는 특전사 훈련 같다.

하지만 3시간 남짓 걸린 등산 길은 즐거웠고 정상에서 굽어 본 대전

근교의 풍광에 모두들 모처럼 가슴이 후련했을 게다.

산행이 가져다 주는 카타르시스

한잔의 술을 치며 함께 나눈 식사는 입에 쩍쩍 들러 붙었고

오랜만의 푸근한 대화는 우리가 좋은 친구들임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일요일- 사량도 여행

 

7시에 모임약속이 있어 집사람에게는 4시까지 돌아와서 아들과 목욕하고

청소까지 다 해준다고 철썩 같이 약속한 터라 새벽 4시 알람이 울리자 마자

소리를 죽이고 조용이 안방을 빠져 나온다.

잠귀가 밝은 마누라는 어제 산행이 피곤 했는지 기척이 없다.

주섬주섬 준비된 행장을 꾸리고 길을 나선다.

사량도 지리망산

항상 봄을 먼저 알리는 남해의 관문에 선 그림 같은 섬

내 육감으로 오늘이 제일 좋은 타이밍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용암포에서 7시 40에 출발하는 배를 타면 아침 해가 아직 붉은 바다를

질러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봄이 오는 능선 길을 휘돌아 유유자적하게

흘러 내릴 수 있다.

손수 차를 모는 수고는 방해 받지 않는 자유와 봄의 낭만을 전세 내기

위한 대가일 뿐

 

그 옛날 흘러 간 노래의 추억을 반추하며

속도는 시속 80km를 좀 넘게 해서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남으로 간다.

내 전용 도로에는 가끔 의전의 불 빛을 밝히는 가로등이 도열해 환영에 마지

않고 아주 가끔 바쁜 불 빛이 내 곁을 스쳐 지난다.

창 밖을 보면 희미한 별 빛 아래 능선의 실루엣이 살아 오고 능선에 맞닿은

하늘이 희끄무레하다.

6시가 안되어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 온다.

내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라 하는 새벽은 청정하고 투명한 모습으로

먼 곳에서 조용히 달려오고 있다..

 

인적과 차적이 드문 새벽 6시의 휴게소  

날이 밝아 오는데 한 사람의 손님도 없는 함양 휴게소에서 아침 손님을

받을 준비에 분주한 아가씨를 재촉해서 라면을 끓인다.

라면 하나에 공기밥 하나가 달려 나오는데 이름이 라면 정식이다.

점심식사는 내려 와서 할 테니 든든하게 먹어 두는 게 좋다.

신 새벽에 라면 한 그릇에 밥 한 공기 말아 먹을 수 있으면 여행 길은

즐거울 수 밖에 없다.

 

시간이 남은 것 같아 일부러 천천히 식사하고 분재와 화분까지 감상하는

여유를 부리다 정작 용암포에는 배가 떠나기 3분전에 도착했다.

용선을 마무리하는 아저씨한테 배를 잡아 달라고 이야기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다음 발바닥에 고무탄내 나게 매표소로 달려가 승선일지 작성한

후 매표를 하고 기다리는 배에 올랐다.

자칫하면 커트라인에 걸려 멍하게 떠나는 배를 바라볼 뻔 했다.

나를 마지막으로 배는 닻을 올리고 봄 속으로 떠난다.

 

 

 

바다를 보니 후련해진다.

아침바다의 바람은 차지 않고 부드러웠다.

태양은 구름 사이에서 은은한 빛을 던지고

부지런한 등산객들은 뱃전에서 흥분되고 들뜬 목소리로 아침바다를

수런거리게 한다.

다시 1년 만에 봄이 오는 길목에서 사량도 뱃길에 올랐다.

물길 따라 오는 아름다운 남해의 봄

그 여울목에 서성이는 기대와 그리움을 만나러

하얗게 포말지는 물보라를 꽁무니에 달고 섬으로 간다

 

작년 아침 9시 40분에 출발하던 배는 돈지 포구에 등산객들을

내려 주었는데 오늘은 생뚱맞게 금평항이다.

배에서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는데 많은 등산객들로 마을버스 두 대가

콩나물 시루가 되어 떠난다.

불편하긴 해도 해변 일주도로 드라이브 까지 시켜 주니 더 할 나위

없는 섬 일주 관광인 셈이다.

하늘에서 굽어 보는 풍광과는 색다른 맛이다.

좀더 낮은 고도에서 빨리 움직이며 바라보는 섬과 바다의 모습은

거제도의 도로를 움직여 갈 때처럼 지금껏 가본 적이 없는 다른 섬을

둘러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은 푸른 마늘과 이름 모를 봄나물로

온통 싱그러운 봄의 색조를 띠고 있다.

 

햇빛은 구름 뒤에 숨고 흐린 날씨에 바다는 조용히 묵상하고 있다.

아직 봄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처럼 들뜨지 않은 무심한 얼굴이다.

 

오늘은 마을 좌측 능선 길로 붙었다.

유일하게 사량도에 남겨둔 미답의 길

등산로에 나무들과 들풀은 아직 가을 색이다.

눈에 뛰는 봄은 필 듯 말듯한 진달래 꽃봉오리에 앉아 있고 산수유

노란 꽃망울로 수줍게 피어 나고 있다.

지세히 보면 나뭇가지에 새순들은 작은 솜털 안에 연초록의 발아를

머금은 채 망설이고 있다.

올해 봄은 좀 늦은 셈이다.

작년에 2월에 진달래가 피었고 3월엔 산 능성이에 연초록 푸른 빛이

번져 있었다.

오늘 태양 빛이 어제 같았으면 초목은 앞 다투어 새움을 피워 냈을

텐데

하루 만에 들판을 푸르게 했던 갑천의 들풀처럼

하여간 차분하게 가라 앉은 바다와 조용한 봄바람이 벌써 다가온 채 아직

망설이는 봄을 말 없이 기다리고 있다.

 

봄의 오는 섬산행의 멋은 감미로운 바람에 산다.

온통 푸른 바다.

그림 같이 떠 있는 섬

통통배가 정지된 화폭에 흰 물꼬리를 덧칠하고 

난 갈매기처럼 경쾌하게 능선을 날아 다닌다.

 

조용이 가라 앉은 날씨가 주변의 모든 풍광을 한 폭의 수채화 같이

만들어 버린다.

오랫 만에 바다를 바라보니 걸음을 옮길 때 마다 기분이 좋아 지고

봄은 내 발끝을 타고 올라 가슴을 문을 활짝 열어 젖힌다.

 

 

 

 

변화를 즐겨라

정신 없이 변해가는 세상에서 변화를 따라 잡기란 그 자체가 스트레스와

더불어 자본적 지출을 동반한다.

개혁과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 관리는 ?

그 생존을 위한 변화관리에만 집착하기엔 아까운 우리 삶이 너무 건조하고

황량하다.

 

자연의 변화는 어떤가?

문만 박차고 나가면 만날 수 있는 흔쾌한 일탈과 자유 그리고 가득한

변화들

자연과 계절은 수 많은 변수와 조합으로 항상 다른 얼굴을 들어 우릴

맞는다.

바다를 바라보며 생명과 봄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섬의 능선을 거닐면서

언젠가 지나친 적 있는 길의 권태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너그러워 진다.

 

스펜선가 뻰친가가 그랬다.

과거는 역사 이고 미래는 신비 글구 오늘은 선물 이라고.

내가 받은 오늘의 선물보따리는 변하는 계절의 향기로 가득 채워보자 .

 

어둠에 쌓인 텅 빈 도로를 마음대로 달려 시리게 깨어나는 새벽의

강을 건너면 거기 밝게 떠오르는 태양과 드넓은 바다가 있다.

우리가 살아 갈 날의 기쁨과 희망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느껴야 할 감동과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봄으로 떠나는 배가 어떻게 기대와 설레임을 섬으로 실어 나르는지

 

 

 

주어진 일주일을 열심히 살며

언제나 떠날 곳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삶의 활력이다.

어디에선가 문득 만날 아름다움과 감동에 대한 기대가 삶을 관조하는

여유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만든다.

어디든지 떠돌 자유와 마음의 여유가 주어지고 자연 속에서 따뜻한 가슴과

기쁨을 지켜갈 수 있다면 인생은 살맛 나는 거 아닌가?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자연 한가운데서 우린 언제나 부자가 된다.

 

지리산에서 달바위- 불모산  가마봉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암릉미는

언제 보아도 압권이다.

섬에 4시간씩 걸리는 이렇게 장쾌하고 거친 산이 있으니 해마다 봄이면

무수한 인파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할 게다.

8시 40분부터 돈지항에서 등산을 시작하여 9시 40분 경에 지리산에

올랐는데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인파가 북적 인다.

오늘은 대학생들인 듯 젊은 친구들이 유난히 많은데 오금이 저리는 등산로

와 바다를 굽어 보는 멋진 조망에 탄성과 비명을 올리며 함께하는 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우회하지 않고 바위벽을 올라 성곽 같이 아슬아슬한 암릉을 지나면

달바위가 선다

달바위에서 굽어 보는 바다는 환상적이다.

보름달이 뜬 밤바다를 달바위에서 바라본다면 그 처절한 낭만에 흔들리는

이태백을 다시 보리라.

 

불모산을 지나 대항 갈림길이 있는 곳에서 작년처럼 막걸리는 파는 곳이

있다.

차가운 막걸리 맛은 변하지 않았다.

천 원에 사버린 그 컬컬한 시원함과 나른한 봄

 

속도도 제법 빠른데 노래도 하도 구성지게 부르며 혼자 즐거운 산행을 하는 

아저씨가 있어 말을 붙여 본다

거제도에서 왔다는데 잠시 동행을 하며 이러 저러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처럼 혼자 산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린 둘다 계룡산 옆에서 사는 사람들 이었다

세 번 다녀온 거제도지만 4월에 계획이 있어 이것 저것 물어보다 헤어졌다.

 

 

 

 

 

로프를 타고 가파르게 솟아 있는 봉우리에 올라 검은 대리석 표석으로 그곳이

가마봉임을 확인한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채 바다를 바라보는 옥녀봉 앞에서 심각한 정체에 마주한다.

그 무수한 사람들이 모두 오를 때 까지 기다렸다간 하 세월 일 것 같아

좌측으로 조금 우회하여 난 코스에 로프가 매달린 곳으로 옥녀봉에 올랐다.

정상부에 바위가 돌출된 부분으로 로프가 걸려 있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엄두를 못 내는 곳이라 오히려 정상에 빨리 오를 수 있었다.

뒤따라 오르는 젊은 여자한테 이쪽은 위험하니 오르지 말라고 했는데

보란 듯이 거뜬하게 올라 와서는 모두 줄 서서 내려가는 옥녀봉 사다리도

마다하고 좌측 위험해 보이는 절벽에 매달린 로프를 타고 훌쩍 내려가 버린다.

그 옛날 용아장성 최고의 난코스 직벽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돌출된 돌부리를 잡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가던 아가씨처럼 세상은 넓고

무한한 내공의 고수도 참 많다.

(산에서는 잘난 척 말아야지..)

 

 

 

옥녀봉을 지나면 간담이 서늘해 오는 수직 철계단을 만나는 데 덜덜 떨면서

내려 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괜찮다.

옥녀봉 지나 봉우리 하나를 올라서면 금평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12시에 금평항으로 내려섰다.

산행로 들머리에서  활짝 꽃을 피워낸 매화 나무가 반긴다.

별로 속도를 의식하지 않고 평상시대로 걸으며 풍광과 산행을 즐겼는데

세시간 20분 걸렸다

해수 목욕탕이 보이고 다라에 낙지며 해삼 멍게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보인다.

사우나도 하고 싶고 회도 한사라 먹고 싶지만 일단 배 시간을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한다.

 

 

 

12시 40분 배니 시간이 좀 남았다.

삼천포 어항에서 식사해도 4시 30분 쯤이면 대전에 도착 할 수 있겠다.

그러면 마누라와의 약속도 저녁 모임도 문제가 없다.

 

마지막 배 시간을 보고 갈등이 생긴다.

지금 배로 아랫섬에 들어 가면 칠현산 등산도 마무리하고  마지막 배를

무리 없이 탈 수가 있다.

문제는 마누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모임은 1시간 30분쯤 늦을

것이다

모임이야 부부동반 모임이라 마누라만 참석해도 큰 지장이 없을 터

마누라에게 긴급타전을 하니 예상했던 대로 태클을 걸긴 하는데  할 수  

없는지 나중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선선히 응해 준다.

함께 한 세월이 15년이 넘었으니 내 삶의 방식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마누라다 .

때는 봄이고 마누라는 어쩌면 내가 일찍 들어오겠다는 말을 애초부터

믿고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다음주 함께 가기로 했던 사량도 아랫섬을 혼자 돌아 보고 가자니

미안하긴 하다.

 

 

아랫섬은 금평항에서 빤히 바라다 보인다.

용암포에서 들어온 다리호가 사량도 금평항에서 승객들을 내려 놓고

아랫섬 승객을 싣기 위해 12시 10분에 덕동항으로 떠난다.

나는 서둘러 배에 무임승차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랫섬에 무사히

상륙했다.

 

사량도 윗섬은 지리산이라는 걸출한 산이 암릉을 이끌고 바다로 흘러 내리고

아랫섬에는 칠현산이 있다.

으례껏 일등에 가려진 이등의 비애처럼 워낙 유명한 지리산 때문에 별로

주목 받지 못한 산이지만 요즘 들어 산행인파가 늘어나는 곳이다.

사실 사량도는 몇 년 전 까지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요즘은

봄 가을에 등산인파가 북새통을 이루고 한적하던 등산로가 훼손되어 가고 있다.

 

선착장 매표소 아가씨에게 이것 저것 물어 보고 해안 도로 좌측을 따라

등산 들머리로 간다.

해안도로 공사가 한 창이다.

해 마다 찾는 사람의 수가 늘어 나고 있는 사량도이고 보면 앞으로

관광지로서 가치가 계속 높아질 테니 인프라 투자는 필연적이겠다.

 

 

 

 

한참을 등산로를 오르다 보니 시야가 트이고 바다가 보인다

아랫섬의 풍광 역시 단조롭긴 해도 사량도에 별로 손색이 없다.

동으로는 드넓은 바다와 아련한 다도해.

남으로는 섬을 달리는 산릉 너머로 보이는 바다가 가슴을 부풀게 한다.

앞 쪽의 사량도 능선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 온다.

섬의 크기로는 윗섬 보다 아랫섬이 더 크다.

윗섬이 지리산을 가운데 놓고 솟아 오른 타원형의 섬이라면 사량도는

동과 서 남과 북을 흘러 가는 주릉을 축으로 여러 구릉과 분지가 형성된

둥그런 섬이다.

 

어느덧 하늘엔 태양이 빛나고 푸른 하늘과 푸른 물 빛은 눈부신

봄을 가득 담아 내고 있다.

가는 길엔 아무도 없으니 이 길은 너무 호젓하다 .

나만을 위한 십만평의 정원과 백만평의 바다 그리고 수 억평의 푸른 하늘

 

칠현산에서 사과 한 조각 베어 물고 잠시 나무등걸에 걸터앉아 그림 같은

다도해의 평화로움 속으로 빠져든다.

우리 금수강산 서리서리에 배어 있는 숱한 아름다움을 찾기에도 부족한

너무 아깝고 짧은 우리 인생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정들이 짧은 우리 인생에 향기를 주고 기쁨의

나비를 날린다.

시간이 지칠 줄 모르는 내 체력 덕분에 마르지 않는 자연의 샘에서 넘쳐나는

신선한 감동과 기쁨의 샘물을 길어 올릴 수 있으니 이 또한 축복이다.

 

칠현산에서 갈라져서 남으로 흐르는 능선이 통포 쪽으로 떨어지는데

그 쪽에서 올라 칠현산을 휘돌아 칠현봉. 망봉을 거쳐 읍포로 떨어지면

다섯시간 정도 걸린단다.

아랫섬 종주코스인 셈이다.

내가 가는 길이 주 능선이고 그 능선 어디에서나 앞섬의 암봉과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평화로운 섬들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칠현산을 지나 능선에서 칠현산악회 사람들을 만났다.

산 사람들의 인심이란 후하기 이를 데 없다.

능선 경개가 좋은 곳에 대 여섯명이 성찬을 풀어 놓고 술과 바다에

취하고 있다.

시장한 차에 염치 불구 하고 김밥과 맛깔스런 음식을 얻어먹고 

소주 두 잔에 맥주 까지 한잔 걸치고 나니 청정 남해 바다가 온통 내

가슴으로 뛰어든다.

아랫섬에 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훗날을 기약하며 일어섰다.

 

 

킬킬거리며 봄은 달려 오고

나는 높이 나르는 새의 눈으로 바다 세상을 본다.

섬 한 가운데를 흘러 가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코발트 색 바다와

외로운 섬들

 

칠현봉에는 일단의 젊은 친구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암봉과  푸른바다 그리고 작은 섬들의 조화가 절묘하다.

망봉을 거쳐 초등학교로 떨어지는 하산 코스는 다음 봉우리에서 마주할

멋진 풍광의 기대가 살아 있는 아름다운 능선 길이다.

 

바다가 보이는 초등학교 교정으로 내려섰다.

잘 접혀진 채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동심처럼 기다림을 간직한

작은 교정에는 시이소와 그네가 있다.

교문 밖으로 푸른 바다가 내다 보인다.

한 번 공을 잘 못 차면 바다에 풍덩 빠질 것 같은 작은 운동장

한 켠에 동백꽃이 피어 있고 그 옆에는 나 혼자 서 있다.

 

 

 

나른한 봄의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여행 길의 멋진 동행이었다..

봄날의 서정이 꿈처럼 날리던 감미로운 여행 길은 웃자란 마늘잎이

푸른 이랑 사이로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읍포에서 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덕동으로 간다.

봄을 피워 내는 밭에서 아지랑이 피어 오르고

배는 소리 없이 수면을 스쳐 가는 나른한 봄날의 섬

멀리 떠나와서 능선 위에서 눈이 시린 봄을 만나고 낭만적인 해안

도로를 혼자 걸어내리는 한 없는 게으른 이 시간이 너무 좋다.

 

 

 

길을 알고 서둘렀으면 2시 30분 배도 탈 수도 있었겠다.

마을버스가 잘 운행되지 않는 섬이고 초행 길이라 오늘은 그 종주 코스를

선택할 수 없었지만 다음 번에는 읍포에서 출발하여 통포까지 산행을 한

다음 남쪽 해안을 구경하고 해안 일주도로를 드라이브 하면서 섬의 풍광을

제대로 돌아보아야겠다.

오늘 같은 일정으로 움직이면 시간은 충분하다.

 

2시 40분에 하산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천천히 움직였는데도 시간이 한 시간

넘게 남았다.

오히려 산 위보다 아래 쪽 바람이 더 세차게 불고 있어서.

선착장 앞 슈퍼 마켓 안에는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매표소 아가씨 한데 4시 50분에 출발하는 배편 말고 더 일찍 출발하는

배가 없다는 다짐을 받고 배낭을 가게 앞에 내려 놓고 마을 구경을 갔다.

좁은 골목길 곳곳을 돌아 다니고 바다가 보이는 교회도 둘러 보고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언덕 아래 그림 같은 집도 둘러 보았다.

 

여유를 부리다 4시 20분 쯤에 돌아 왔는데 아가씨가 깜짝 놀란다.

윗섬에 사람이 너무 많아 비정기선 한 편이 긴급 운항되었다는데

4시에 기다리던 사람들을 모두 싣고 훌쩍 떠나 버렸다나 어쨌다나

 

용암포에서 운항되는 정기선은 한 편이라 긴급 운항편성 되는 바람에

마지막 배는 예정보다 30분 이상 밀린다고 했다..

4시 배를 탔으면 약속시간에 별로 늦지 않았을 터라 아쉽긴 해도

마지막 배가 남아 있다면 문제될 건 없다.

섬이 이별이 아쉬워 날 더 오래 붙잡고 있는데

 

바쁘게 움직인 날

봄날의 향기가 풀풀 날리던 꿈 같은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나는 여행길에서 싱그럽게 깨어오던 푸른 새벽과 들떠 있는 섬과 바다를

만나고 기쁨의 선물을 한아름 안은 채 그렇게 뭍으로 돌아왔다

시골 장터처럼 소란한 선실에서 꼬박 꼬박 졸면서..

눈부신 여행 길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바람에 취했고 봄 바다 위를

새처럼 멋지게 날아 다녔다.

오늘

너무나 많은 것을 만나고 희망찬 내일을 꿈 꿀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