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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의 백두대간 6

- 두 번째 만남.


 


 

동엽령을 지나 송계사 삼거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쯤이다. 동엽령에서 물을 보충하고 왔어야했는데, 물을 뜨러 몇 백 미터를 내려간다 생각하니 아득해져, 남은 물로 버티기로 한다. 해가 서편 장안산 지나 먼 하늘에 걸치자 바람이 심해진다. 텐트를 쳐야하는데 텐트 칠 장소가 없다. 바람이 심해 능선 상에 텐트를 칠 수도 없고, 멀리 향적봉 대피소까지 가자니 체력도 바닥이 난 상태이다. 진퇴양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어둡기 전에 빨리 텐트치고 안정을 취하는 일이다. 텐트를 칠 만한 작은 공간 하나 없어 결국 바람이 불어오는 서쪽 반대편 경사진 곳 나무 아래 텐트를 친다. 이젠 텐트 치는 일에 익숙하다. 십분도 채 안 걸려 텐트를 친다. 더 어둡기 전에 밥을 한다. 물이 부족해서 쌀에 물만 부어 버너에 올린다. 배고프다. 백두대간을 시작한 이후로 늘 배가 고팠다. 배고프다 못해 허기가 진다. 걷는 일은 장운동을 하는 일이어서 소화가 잘된다.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변한게 있다면, 밥맛이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장이 편해졌다. 배변이 일정하고, 뱃살이 줄기 시작했다. 나는 일종의 복부 비만자였다. 키 165에 허리 둘레가 34였으니, 거의 자루나 다름없는 몸매였다. 내 몸, 뱃속은 온통 누런 지방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내장 지방, 그것을 빼야 나의 성인병이 근본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산길을 걷기 전 나는 늘 소화불량에, 가스에 더부룩한 배와, 심한 설사와 불규칙한 배변이 나의 문제였는데, 산길을 걸으면서부터는 그러한 현상이 어느새 사라졌다. 속은 늘 편했다. 소화가 잘됐고, 몸은 항상 가벼웠다. 다만 하루 종일 걷는 장시간의 산행을 받쳐주지 못하는 나의 체력만이 문제였을 뿐 몸은 점차 좋아지고 있었다. 밥을 할 때는 다음날 아침과 점심에 먹을 밥까지 한꺼번에 다 해놓는다. 저녘에 먹고 남은 밥은 비닐에 두 덩어리로 나누어 싸놓는다. 한 덩어리는 아침에 먹고, 나머지는 점심에 먹는다. 그렇게 해야 밥해먹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한꺼번에 세 끼 분의 밥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째는 물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물이 있어야 밥을 한다.  물이 없으면 생쌀을 먹어야한다. 산에서 물을 구하는 일은 어렵다. 다행히 능선상에 물이 있으면 좋지만 그러나 대게는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몇 분에서 심지어는 몇 시간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은 산을 오르내리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고통은 곧 체력과 연결된다. 끝까지 가려면 체력이 있어야한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고, 참을 수 있는 것은 참아야 한다. 아니 참지 못할 일도 참아야 한다.  산에서 밥을 매 끼니 해, 밥 냄새 구수한 밥을 먹는 일은 매우 행복한 일이지만 사실상 힘든 일이다. 그래서 매 끼니의 막 지어낸 밥 냄새의 황홀함을 참아야 한다. 저녘은 방금 지어낸 밥을 먹어도, 해뜨면 천막을 걷고 배낭을 꾸려 출발해야하는 분주한 산행자에게는 아침을 해 먹는 것은 시간 부족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아침부터 운행을 하는 점심까지는 주먹밥으로 대신한다. 밥을 지어놓고 잠간 짬을 내 해지는 것을 보러간다. 멀리 장안산 너머로 해가 진다. 붉게 스러져 가는 태양을 본다. 산 정상에서 노을을 보는 일은 드문 일이지만 지금 여기서 오늘 보고 있다. 하늘이 온통 보랏빛 기운 가득한 붉은 색 물감처럼 번진다. 멀리 태양이 오렌지 빛에서 붉고 탐스러운 감빛으로 산등성이에 걸친다. 바람이 심하다. 추워 바람막이 점퍼아래 몇 겹의 옷까지 껴입고 능선에 서 있는 데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 까지 노을을 본다. 파랗던 하늘이 점차 붉어지다가 나중엔 어둠에 지워진다. 먼 산부터 먹물 번지듯 시야에서 사라진다. 별이 하나 둘 얼굴을 내민다. 등 뒤에선 이미 초승달이 떠 있다. 텐트로 들어가 밥을 먹는다. 산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추천 하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세 가지를 추천 한다. 첫 째는 물이다. 물이 산에서는 제일 맛있다. 두 번째는 막 해놓은 밥이다. 이른바 산밥 즉 산에서 먹는 밥은 그 맛이 다르다. 게다가 막 해 논, 김이 하얗게 올라가는, 그 밥은 먹지 않아도 그 냄새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산밥은 반찬이 없어도, 오직 간장에다만 비벼먹어도 행복하다. 세 번째는 과일이다. 하지만 과일은 무거운 것이어서 가지고 다닐 수 없어 거의 먹어 보질 못했다. 다행히 당일 산행하는 분들이 가지고 온 과일을 좀 얻어먹게 되면 종일 그 과일 향이 내 몸에서 나에게 속삭인다. 정말 맛있지? 라며 말이다. 며칠만에 느끼는 여유다. 무거운 어둠이 멀리있는 능선부터 짓누를 때 쯤  나는 오랜만에 촛불 아래서 그동안 밀렸던 일기와 그동안 찍었던 사진을 보며 내가 걸어왔던 길을 생각한다.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처음 출발 할 때의 불안함은 산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행복함으로 바뀌었다. 주사도 맞고 나면 별거 아니지만 맞기 전이 가장 불안하다. 백두대간도 시작하기전이 불안한 거지 부닥치고 나면 불안과는 다른 감정이 생긴다.


 

  뒤돌아보니 길을 걷는 일은 단순히 걷는 일만은 아니었다. 길을 걷는 것은 나를 살피는 일이었다. 나를 살피는 일은 철저하게 아픈 일이었다. 백두대간을 걸으며 백두대간에 내 땀을 흘리며 걸었다. 산길은 그냥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내려가야 하는 그 길은 땀을 흘려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걸음의 숫자만큼 보폭만큼 등에 진 배낭의 무게만큼 땀을 흘려야만 걸을 수 있는 길이었다. 뒤돌아 본 길은 곧은길도 평탄한길도 없었다. 하지만 이만큼 왔다. 이만큼 와서 뒤돌아보는 내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왜일까? 나는 서서히 산이라는 존재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산에서 먹고, 산에서 자고, 산길을 걸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산 속의 사람, 산 안의 사람, 산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당일 산행하는 누군가 물었다. 산에서 혼자 자면 무섭지 않냐고? 혼자 산을 걸으면 무섭지 않냐고? 혼자 산에서 밥을 먹으면 외롭지 않냐고? 그때 나도 모르게 이런 대답이 나왔다. 전혀 생각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툭 하고 나온 답에 나도 놀랐다. “산은 무섭지 않습니다.” “다만 산 아래 세상이 무섭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속에 산이 내장 되어있었다. 산길을 걷는 다는 것은 내가 산에게 배운다는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속삭여 주는 사람도 없고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는 법도 없다. 백두대간은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일이다. 누구의 간섭도 누구의 지시도 받고 가는 길이 아니다. 다만 나는 변하고 싶은 욕망에 시작했다. 나를 변화 시키고, 내 삶을 바꾸고 싶었고, 내가 처한 이 견딜 수 없는 상황들을 바꾸고 싶어 선택한 것이 백두대간 단독 연속종주였다. 산에 있는 나 홀로의 시간 동안 나는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처음엔 외로웠다. 무서웠다. 처음엔 사람만 만나면 반가웠다. 이젠 시원한 바람이 더 반갑다. 처음엔 밤이 어둠이 무서웠지만 이젠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더없이 반갑고 아름다웠다. 처음엔 맷돼지나 짐승들을 만날까봐 무서웠지만 이젠 멀리 몰려오는 시커먼 비구름이 더 무섭다. 처음엔 고기나 패스트 푸드처럼 기름진 음식이 없인 못살았지만 이젠 시원한 물 없인 살 수 없다. 처음엔 밝은 전깃불아래서만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줄 알았지만 이젠 촛불 아래서 일기도 쓰고 성경도 읽는다. 처음엔 반찬 없는 밥 김치 없는 밥은 먹을 줄 몰랐지만 이젠 소금 하나만 있으면 밥도 맛나게 먹는다. 처음엔 외로움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인줄 알았지만 지금은 외로움은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을 때 온다는 것을 알았다. 산에 왜 가냐고 물으면 “외로워지려고 산에 간다”는 어느 노시인의 고백처럼 산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충분히 외로웠고 앞으로도 외로울 것이다. 이젠 외로움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끝까지 못가고 포기하는 게 무섭다. 외로움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변해야하는 내 자신이 변하지 못하는 게 무섭다. 변해야하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게 무섭다. 변해야하는 모든 것들이 전혀 변하지 않고 딱 버티고 있을 상상이 더 무섭다.

  물이 없어 수건에 물 조금 묻혀 얼굴과 손, 발을 문질러 닦는다. 내일 마실 물 때문에 미리미리 아껴둔다. 혹 신풍령까지 물이 없다면 큰 낭패이기 때문에 있을 때 아껴 두어야한다.  일기를 쓰다  별을 보러 나간다. 하늘에선 별이 쏟아진다. 바늘 한 땀 들어갈 틈도 없이 별이 빼곡하다. 추워도 좋다. 별을 보다 기도를 한다. 나를 변화 시켜 달라고. 간절히. 별이 온통 등과 머리로 쏟아지는 듯하다. 한참을 지나니 몸이 으스스 떨려 온다. 텐트로 들어가 침낭을 뒤집어쓴다. 잠이 들기까지는 오랜 시간 걸려야했다. 몸은 피곤할 대로 피곤했지만 너무 추웠다. 침낭 안에서 옷이란 옷은 다 입고 들어가 내 체온으로 버티는데도 견딜 수 없었다. 빨리 아침 햇살이 와 축축하고 추운 이 몸을 뽀송뽀송하게 말려 주기를 바란다.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아침햇살이 텐트위에서 한참을 뛰어다니고 있었나 보다. 새소리가 들렸고, 바람 소리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도 들렸다. 추위에 꽁꽁 얼었던 몸을 녹이려고 햇빛 가득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미 태양은 나무도 돌도 길도 다 따스하게 만들었다. 몸이 녹자 나는 주먹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천막을 걷고 배낭을 꾸린다. 일상의 반복이다. 아침 햇살이 더 뜨거워지는 한 낮의 태양으로 바뀌기 전에 나는 서둘러 대간 길을 가야한다. 너무 뜨거우면 쉽게 지쳐 가는 길이 힘들다. 간밤의 행복했던 밤하늘의 추억과 아름다웠던 노을의 그림을 내 기억에 곱게 접어 넣고 길을 걷는다. 송계사 삼거리에서 대간 길은 우측으로 90도 정도 꺽여 들어간다. 송계사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그냥 북덕유산,  향적봉으로 가게 된다. 향적봉의 아름다움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신풍령을 향해 간다. 신풍령 가는 길은 지도상에 6시간 정도로 표기 되어있다. 여유있게 가도 될 듯하다. 게다가 지도상으로는 내리막이니 그리 힘들 것 같지는 않은듯하다. 백암봉에서 귀봉을 거쳐 1302봉을 지나 대봉까지 가서 내려서면 신풍령이다. 지도상에 있는대로 그대로 길만 따라 가면 된다. 처음 출발은 좋았다. 귀봉에서 멀리 보이는 덕유능선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에서 1,000미터가 넘는 능선으로 하루 길을 걸을 수 있는 산을 몇 개 안된다. 그 중 하나가 덕유능선이다. 그 덕유능선을 어젠 걸으면서 행복했고 오늘은 멀리서 보며 걷는다. 능선은 직선처럼 주욱 뻗었다. 그 능선의 끝에 장수덕유와 남덕유가 보인다. 대간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능선 능선마다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걸어 왔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능선은 장쾌하고 거대했다. 걸음은 정직했다. 걸은 만큼 앞으로 나가고 뒤돌아보면 걸은 만큼 보인다. 귀봉을 지나 1302봉 가는 길 헬기장으로 꽃이 가득하다. 봄 꽃. 노랑색의 물결이 작지만 편편한 헬기장으로 가득하다. 바람이 불면 바람에 따라 춤을 추는 작은 꽃들, 잠시 그곳에 앉아 쉰다. 사탕을 꺼내 먹는다. 걷는 일은 칼로리 소모가 많은 일이어서 수시로 사탕이나 초콜렛 과자등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한다. 먹어야 간다. 칼로리가 떨어지면 걷는 일은 지옥이 된다. 나비가 꽃 사이로 날아다닌다. 햇볓은 따스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간 밤에 잠을 못잔 탓인지 잠간 머무는 사이 잠이 온다. 스르륵, 붙잡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지만 못이기는 척 잠에게 내 몸을 내어준다. 꽤 잤나보다. 일어나보니 배가 고프다. 간밤에 만들어 놓은 점심을 먹는다. 반찬은 없다. 고추장에다 근처에서 뜯은 나물 몇 가지.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고픈 배를 채울 수 있는 밥이 있고, 그 밥을 맛나게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있고, 그 밥을 먹고 난 후 마실 수 있는 물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밥을 먹고 일어선다. 조금만 가면 1302봉이다. 그런데 가는 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다. 신풍령까지는 긴 거리가 아닌데 길이 오르막과 내리막의 연속이다. 이렇게 오르내리고 하면 오늘 넘고 넘는 작은 봉우리는 아마 수십개는 될 듯하다. 벌써 온 몸은 땀에 젖었다. 간밤에 씻지 못해 끈적끈적해졌던 몸이 새로 솟아나는 땀이 씻어준다. 머리부터 발까지 온몸은 이미 땀으로 젖었다. 그 위로 땀이 또 흐르면서 적시고 또 흐르고 하다보면 어느새 땀은 끈적끈적해지는 것이 아니라 물처럼 변한다. 아침에 추위로 얼마 못잔 잠 때문에 얼굴이 잔뜩 부은 것처럼 둔했으나 땀을 흘리면서 얼굴의 붓기는 가라앉은 듯하다. 바람이 시원하다. 고도가 높은 산일 수록 바람이 시원하다. 대봉에 도착할 때 이미 시간은 다섯 시를 넘기고 있었다. 운행속도가 너무 느린 건지 아니면 지도상의 거리와 시간이 잘못 표시된 건지, 알 수 없다.  좌우간 신풍령 내려가는 길은 나오지 않고 지루하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길만 반복된다. 몸도 서서히 지쳐간다. 배낭끈이 어깨를 죄어온다. 어깨가 너무 아파 배낭끈을 쇠골에 옮겨 놓았다가 쇠골이 아프면 어깨 바깥쪽에 걸치기도 하다 그래도 아파오면 손으로 배낭끈을 치켜 올려 손으로 잡고 가기도한다. 그래도 얼마나 행복한가?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은 그 자체가 행복이다. 나는 지금 가야할 길을 간다. 가고 있다. 걷고 있다. 자기 길이 아닌데 가는 사람처럼 힘든 길을 가는 사람은 없다. 나는 지금 목표가 있고 가야할 길이 있다. 그 길을 걷는 나는 지금 비록 어깨가 아프고 체력이 바닥이 났어도 행복한 길을 가는 중이다. 힘들면 여기서 쉬고 텐트를 치면 되는 것, 꼭 반드시 어디까지 가야한다는 법칙도 없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쉬고, 가다 쉬다 힘들면 잠자고, 그래도 힘들면 나를 들여다보면 된다. 편할 때, 좋을 때, 힘이 넘쳐 날 때 나를 보면 잘 안 보인다. 그러나 힘들 때, 어려울 때, 외로울 때 나를 들여다보면 보인다. 가는 길에 나물하는 분들을 또 만난다. 그분들이 참을 드시다가 나를 보며 놀란다.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게다가 배낭도 크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드리고 신풍령 가는 길을 물어본다. 가르쳐 준다. 그리고 배낭 내려놓고 참을 먹고 가라한다. 몇 숟갈 얻어먹는다. 꿀맛이다. 인사를 드리고 간다. 가다 또 혼자 다니는 약초꾼을 만난다. 나는 그 사람을 얼마간 따라가며 이것저것 배운다. 맷돼지를 만나면 그 자리에 서 있어라. 절대 싸우겠다는 몸짓을 하지 마라. 혹 그 멧돼지가 임신을 했거나 숫퇘지이면 일단 배낭을 벗고 가장 가까운 곳의 굵은 나무를 찾아라. 그리고 거기로 올라가라는 정보부터, 물 찾는 법도 배운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굉장히 빠르다. 내가 좇아가기엔 나는 너무 느린데다 배낭도 무거웠다. 그는 나와 헤어지면서 신풍령(빼재)이 멀지 않았다고 격려해준다. 나는 힘을 내 얼마 남지 않은 길을 간다. 이미 길에 산그림자가 드리웠다. 한참을 내려 가다보니 커다란 송전탑이 나온다. 거기서부터 길이 끊겼다. 길을 찾다보니 우측으로 길이 나있다. 내려가니 신풍령이라는 돌비석이 나온다. 다 왔다. 몸은 다시 지칠대로 지쳤다. 백두대간 정보에서는 이곳에 휴게소가 있다 표시되어있다. 대간꾼들은 신풍령 휴게소에서 물도 보충하고 필요한 식량도 보충할 수 있을 거라고 나왔다. 게다가 식당까지 있어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 했다. 그 기대만큼 조급한 마음으로 신풍령 휴게소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유리로 만들어진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이미 안은 폐허처럼 변했다. 휴게소는 이미 폐업을 했고 주유소도 영업을 안 한지 오래 되어 보인다. 식량보급을 하려고 모든 것을 비웠는데 큰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해가 지기 전에 텐트를 쳐야한다. 텐트 칠 자리를 찾았다. 휴게소 처마 밑에 친다. 물을 찾아 돌아다녔다. 없다. 다만 맞은 편 언덕 위에서 흐르는 물이 있다. 물의 양이 많지 않아 물이 흐르는 자리에 웅덩이를 만들어 놓고 물이 고이면 코펠에 퍼 담아 물을 받았다. 코펠이란 코펠과 물통이란 물통은 온통 다 물로 가득 채웠다. 마치 물에 굶주린 사람처럼. 씻을 곳을 찾았다. 배고픈 것보다는 씻는 게 급했다. 휴게소 화장실을 갔다. 휴지에 온통 난리가 아니다. 나는 당연히 폐휴게소이니 전기도 물도 안 나올 줄 알고 포기했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해서 전등의 스위치를 누르자 불이 들어온다. 환하다. 물을 틀어보니 우측 세면대에서 물이 나온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선 바닥에 널린 휴지와 오물을 치우고 씻기 시작한다. 피로와 땀으로 축축 늘어졌던 피부에 물이 닿는 순간, 피부가 탱탱해진다. 나는 오래 오래 물을 부어주고, 문질러 주고 깨끗하게 닦아준다. 행복하다. 씻고 난 후 쌀을 씻어 앉힌다. 이미 어둠은 땅거미처럼 내려앉았다. 버너의 불이 환하게 푸르다. 버너의 불을 보며 앉아있는데 산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낯익은 얼굴이었다. 김태환씨였다. 옆에는 지원을 나온 김태환씨의 후배 김종호씨라 했다. 동엽령에서부터 출발해 지금 도착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도 나처럼 물 없이 온 듯, 코펠 가득 담겨있는 물을 보더니 달라한다. 두 사람은 코펠 가득 담겨있는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진다. 더 마시라고 나머지 물통의 물도 권하지만 배부르단다. 물배 채운 셈이다. 어디서 자느냐 물었다. 내심 함께 자자 권하고 싶었는데, 저 밑에 조금만 가면 산장이 있다는 것이다. 지도에 그렇게 표시가 되었단다. 거기서 식사도 하고 씻기도 하겠단다. 사실 나는 지도도 변변한 것을 들고 온 게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충 유용하다 싶은 지도 몇 개 종류별로 프린트해가지고 온 것이 전부였으니 태환형처럼 자세한 정보가 없다. 정보가 없는 것은 그만큼 불편하고 힘들다는 것. 나는 태환형 일행을 따라 함께 산장에 가려는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텐트를 쳐놓고 밥을 하고 있으니, 지칠대로 지친 태환형 일행을 마냥 여기 묶어둘 수 없는 일이다. 밥이 다 되면 함께 먹고 가자고 권하고 싶었으나 반찬이 없다. 차마 권하지 못했다. 태환형과 종호씨는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내일 아침 만나자고 말을 건넨 후 말이다.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나는 혼자 남아 텅비어 더 넓게 보이는 폐주유소 자리에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밥이 다 된 듯하다. 주변에서 취나물과 참나물을 딴다. 막영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장소인데 산이 아닌 탓인지 어제 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신풍령고개를 넘어가는 자동차 소리가 연방 들리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가끔 내가 있는 텐트를 비추며 지나간다. 하늘엔 온통 별이 가득하다. 오늘은 푹 자야 할텐데, 자동차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에 쉽게 잠들지 못할 것 같다. 혼자 있을땐 몰랐지만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더 허전한 법인가 보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태환형을 스치듯 만난 게 겨우 두 번째이지만 그러나 그 만남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느낌이 오고간 듯, 형이 지나간 자리가 구멍처럼 넓어져간다. 추스르고 자야한다. 촛불 아래서 일기를 쓴다. 오늘은 바닥이 평평해서 쉽게 잠들듯하다. 게다가 처마가 지붕 노릇을 해줄터이니 오늘은 이슬도 맞지 않고 잘듯하다. 아침이면 세상이 온통 햇빛이 지천일 거다. 아침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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